368. 드디어
368. 드디어
변경 기동 전투 부대 파일럿들은 관문 도시 가베스를 향해 달렸다.
휴식 없이 계속 달리는 바람에 그들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나 선두에 선 우르사가 멈추지 않으니 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여러 곳이 찔리고 잘린 채 쓰러져 있는 근위대 멕 나이트들이 뒹굴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바로 다음에는 마차와 차량들이 어수선하게 뒤엉키거나 짓밟혀 박살 나 있는 현장을 지나갔다.
계속 투덜대던 변경 파일럿들도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루산이 속도를 늦추며 말했다.
[조금 더 가면 작은 도시가 하나 나옵니다. 도시 중앙에서 근위대와 남방군이 싸우고 있는데, 거기서 남방군을 공격할 테니 속도 늦추고 대열 정비합니다.]
어수선하게 달려오던 변경의 멕 나이트들이 루산을 따라 속도를 줄이고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제국군 멕 나이트 부대처럼 자로 잰 듯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바에서 며칠이나마 전투 훈련을 했고 실전이 곧 펼쳐진다 하니 변경의 느슨한 파일럿들도 오와 열을 맞춰 보려고 애를 썼다.
뒤에 처져 있던 멕 나이트들도 차례차례 따라붙어 대오에 합류했다.
루산이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마나포는 반동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사격을 해 본 적이 없는 여러분은 약간만 거리가 떨어져도 빗나갈 겁니다. 바로 적 기체의 몸통에 붙이고 쏜다고 생각하고 발사하세요.]
이번에는 파일럿들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알았소!]
[그리 하리다!]
전투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변경 파일럿들에게는 단순한 명령을 반복적으로 숙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줄이 적에게 가까이 붙어 마나포를 쏘고 난 뒤에는 바로 뒤로 빠지고, 다음 줄이 접근해 마나포를 쏘고 빠지세요. 뒤로 빠진 멕 나이트들은 방패를 붙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버팁니다. 명령 없이 함부로 교전하면 안 됩니다!]
변경 파일럿들 가운데는 군 출신들이 종종 있었다.
제국군 파일럿으로 근무하다 죄를 짓고 변경으로 도망쳤거나 파일럿으로 전선 복무를 마치고 은퇴한 뒤 변경으로 들어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멕 나이트 전투를 치를 실력이 된다고 보고 이렇게 따로 부대를 편성했지만, 오랫동안 변경에서 근무하면서 따로 전투 훈련을 하거나 집단전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꾸준히 전투 훈련을 해 오고 지난 5년 동안 실전을 치러 온 남방군과 맞붙어 싸워서 이기기는 어려웠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획한 마나포로 적을 쓰러뜨리고, 재빨리 물러나 방패 벽을 세워 버텨야 했다.
그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루산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저 앞에 관문 도시 가베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싸우고 있는 멕 나이트들도 보였다.
건물이 무너지고, 강철 몸체끼리 부딪치고, 거대한 마나 진동 대검이 방패를 자르고, 자르다 방패에 낀 대검이 부러지고, 넘어진 멕의 가슴에 대검이 박혔다.
처절한 전투의 현장에 마침내 도착한 변경 기사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열 맞춰 전진!]
루산의 지시에 변경 멕 나이트들이 줄을 맞춰 나아갔다.
가베스는 국경 지대 작은 도시라 건물이 작고 허름한 편이라 근위대와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이미 무너지고 짓밟혀 휑했다.
넘어지고 부서진 그 건물들 위를 이제 변경의 멕 나이트들이 다시 밟고 지나갔다.
쿵! 쿵! 쿵! 쿵!
갑자기 나타난 멕 나이트 부대를 보고 근위대 남방군 모두 깜짝 놀랐다.
[저것들 뭐야?]
[아군은 아니잖아?]
근위대를 둘러싸고 마구 공격하던 남방군 파일럿들은 뒤쪽에서 나타난 멕 나이트 부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부르가스 방면에서 자기들이 모르는 아군 병력이 추가로 도착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근위대 1전단 역시 새로 출현한 부대를 적으로 판단했다.
조금 전까지 남방군이 장악하고 매복해 있던 땅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적이 더 늘었다! 서둘러 반란군 놈들을 무찌르고 황제 폐하를 구하러 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남방군 병력이 근위대보다 훨씬 많아 도저히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남방군이 새로 출현한 멕 나이트 부대에 신경을 쓰느라 공세가 약해졌기에 망정이지 한 대씩 차근차근 쓰러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때 루산이 외부 확성기로 소리쳤다.
- 반란군을 무찔러라!
- 와아아아아!
멕 나이트 외부 확성기를 통해 나온 함성이 가베스를 뒤흔들었다.
남방군 파일럿들은 심장이 철렁했고, 근위대 파일럿들은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그래 봐야 겨우 낡은 멕 100대다! 2전단, 근위대 놈들 밟아 버리고 3전단이 반전하여 저놈들을 쳐라!]
지휘관이 재빨리 명령했다.
근위대 1전단을 둘러싸고 있던 남방군 3전단 멕들이 재빨리 뒤로 빠져 변경 기동 전투 부대에 맞섰다.
변경 파일럿들은 남방군 멕 나이트 부대가 순식간에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 진형을 형성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루산이 소리쳤다.
[1열! 방패, 대검 내려놓고 전진!]
변경에서 온 중고 아이언 워리어들이 방패와 무기를 옆에 두고 마나포를 옆에 낀 채 나아갔다.
사실 이 전술은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산도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단지 전투 거미 테스트 이후 멕 나이트로 마나포를 발사하면 어떨까 하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 건의한 적이 있었던 데다 이번에 남방군이 기동 전단과 마나포 부대로 근위대를 잡을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었다.
어차피 남방군과 정면으로 맞붙으면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1회용으로 사용하더라도 마나포로 한 대씩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남방군의 멕 나이트 수를 근위대와 비슷하게 맞춰 상쟁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놈들이 마나포를 들고 온다! 조심해!]
[겁먹지 마! 저렇게 쏴 봐야 반동이 심해서 명중시킬 수 없다! 방패, 비스듬히 들고 전진!]
남방군 3전단이 방패를 비스듬히 들고 대열을 지어 전진해 왔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동료 멕 나이트와 방패를 붙이고 가지런히 전진하는 남방군 3전단의 위용은 무시무시했다.
변경 파일럿들의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속도가 느려졌다.
그 모습을 보고 루산이 호통을 쳤다.
[이렇게 되면 다 죽어! 처지지 말고 나란히 전진!]
필센군 출신들은 루산의 말을 알아들었다.
대열이 무너지면 각개 격파를 당해 모두 죽는다.
[젠장! 알았다고!]
[쓰벌! 가자! 처지지 마!]
변경 기동 전투 부대 1열의 멕 나이트들이 좌우를 살피며 동료 멕과 줄을 맞추고 계속 나아갔다.
거리가 좁아질수록 그들의 가슴은 거세게 뛰었다.
[대장, 지금 쏴야 되는 거 아니야?]
[아직 아니야!]
루산이 소리쳤다.
그 사이에도 양측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지금은 쏴야지!]
[기다려-!]
거리가 더욱더 가까워졌다.
그때 마나포를 가까이서 본 남방군 파일럿들도 두려움이 엄습했다.
대전쟁 이후 마나포를 어느 부대보다 많이 활용한 것이 바로 남방군이기 때문에 그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나포를 단단히 고정시키지 않고 발사하면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이대로 밀집 방진을 형성한 채 거리를 좁히면 명중률이 높아진다!
[놈들이 사격 자세를 제대로 잡기 전에 밟는다! 3전단, 돌진!]
전단장의 명령에 남방군 3전단 멕 나이트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방패를 왼손에 들고 빛을 머금은 마나 진동 대검을 오른손에 들고 파도처럼 달려오는 남방군 3전단 멕 나이트들!
변경 기동 전투 부대 1열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한 파일럿이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발사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마나포를 발사했다.
슈웅-!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서둘러 마나포를 발사하자 강력한 진동에 멕이 뒤로 넘어지고 포구가 위로 올라가고 말았다.
마나 진동 화살은 남방군 3전단 머리 위로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쏘지 말란 말이야!]
루산이 호통을 쳤다.
남방군 선두 멕 나이트들과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루산은 다른 변경 멕들에게 무기를 뒤에 두고 오라고 한 것과 달리 그때까지 왼손으로 들고 있던 대형 해머를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마나포, 옆구리에 단단히 끼어!]
변경의 중고 멕들이 마나포를 옆구리에 꽉 끼었다.
[왼발 앞에, 오른발은 뒤에! 자세 낮추고, 반동 버텨!]
한 줄로 나란히 선 변경 멕 나이트 20여 대가 굵고 긴 마나포를 옆구리에 꽉 끼고, 앞뒤로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그래도 루산은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기다려!]
변경 파일럿들은 손이 벌벌 떨렸지만, 마나포를 성급히 쏘면 어떻게 되는지 방금 경험했기 때문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기다렸다.
쿵쿵쿵쿵!
남방군 아이언 워리어 Ⅱ들이 방패를 앞에 들고 마나 진동 대검은 뒤로 뻗은 채 몸통 박치기를 감행하려 했다.
‘놈들이 들이받아 쓰러지면 뒤에 달려오는 남방군 멕에 의해 찢겨 죽는다!’
그럼에도 루산은 기다리라고만 했다.
이윽고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코앞까지 달려왔다.
그제야 루산이 외쳤다.
[발사!]
슝!
슈슈슝!
슈슈슈슈슝!
마나 진동 화살들이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빛살처럼 날아갔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명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자세를 낮추지 못하거나 마나포를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시키지 못한 멕 나이트 몇 대는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그 가까운 거리에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철제 방패 세 개를 겹쳐야 겨우 막을 수 있는 것이 마나포의 위력이다.
열다섯 발은 바로 앞까지 달려온 아이언 워리어 Ⅱ의 두꺼운 철제 방패를 뚫고 몸통을 관통한 뒤 등으로 길게 삐져나왔다.
마나 진동 화살에 관통당한 아이언 워리어 Ⅱ들이 변경 멕 나이트를 덮쳤다.
쿵!
쿠쿠쿵!
거대한 충돌음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쓰러진 변경 멕들은 마나포를 팽개치고 얼른 자신을 누르고 있는 아이언 워리어 Ⅱ를 밀치고 일어나 달아났다.
루산은 함께 달아나지 않고 옆에 두었던 대형 철퇴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1열 돌아가 방패 들고, 2열 전진!]
그러고는 잇따라 달려오는 남방군 아이언 워리어 Ⅱ를 향해 달려가 대형 철퇴를 휘둘렀다.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변경 기동 전투 부대 본진을 덮치면 안 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버티고 서서 전진을 늦추려는 것이다.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킨 대형 철퇴의 돌기 부분이 빛을 뿜어내며 공간을 가르자 그 부분에 맞은 방패, 몸통, 머리가 움푹 파이고 완전히 찌그러졌다.
우르사가 남방군 멕 나이트를 상대하는 동안 1열의 마나포 발사 성과를 확인한 2열의 멕 나이트들이 남방군 멕 나이트에 가까이 붙어 마나포를 발사했다.
슝!
슈슝-!
겁에 질려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발사한 마나포는 반동에 포구가 확 돌아가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까이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쏘는 경우에는 무조건 적의 방패를 뚫고 몸통을 관통했다.
발사를 마친 뒤 마나포를 팽개치고 돌아가려는 변경 멕 나이트의 등에 성난 남방군 멕 나이트가 대검을 꽂아 복수하기도 했으나 마나포를 직접 들고 싸우는 적의 파괴력에 남방군 3전단은 큰 충격을 받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2열에 이어 5열까지 마나포 발사를 끝내고 6열이 다가오는 순간 뒷걸음질 치는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있을 정도였다.
루산은 마지막 6열이 발사를 마칠 때까지 남방군 중앙에서 홀로 여러 대의 아이언 워리어 Ⅱ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어 주었다.
본진까지 도달하는 남방군 멕을 상대하기 위해 뒤에 남아 있던 시에나가 통신으로 보고했다.
[대장님, 놈들이 물러갑니다!]
짧은 시간에 40여 대나 되는 멕 나이트가 마나포의 거대 화살에 맞고 쓰러졌으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남방군 새끼들, 별거 아니네! 왓하하하!]
기뻐하는 변경 파일럿들.
루산은 후퇴 명령을 받고 몸을 돌리는 마지막 아이언 워리어의 등판을 대형 철퇴로 찌그러뜨린 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닥치고 대열 맞춰! 이제 우리 손에 마나포가 없다는 걸 명심해!]
소란스럽던 통신기들이 일제히 잠잠해졌다.
[살아서 돌아가려면 명령에 따르세요. 알겠습니까?]
변경 파일럿들은 이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똑똑히 보았다.
마나포를 이용한 전술, 남방군 기동 전단이 한꺼번에 본진을 덮치지 못하도록 홀로 앞에서 막아선 우르사의 위용, 모두 루산의 덕이었던 것이다.
[예!]
[알겠소, 대장!]
변경 파일럿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대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변경 기동 전투 부대는 다시 전진했다.
그 모습을 본 남방군이 1전단을 피해 동쪽으로 달려갔다.
황제를 쫓아간 아군과 합류하려는 것이었다.
절반 이상의 멕 나이트를 잃은 근위대 1전단 역시 황제를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달렸다.
맨 뒤에서 근위대 1전단장이 통신기로 물어 왔다.
[어느 부대인가?]
[변경 기동 전투 부대입니다.]
루산의 대답에 근위대 1전단장이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루산이 덧붙였다.
[필센 제국에 원군으로 보낼 병력이 없어 변경에 동원령이 떨어졌습니다. 황제께서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온 겁니다.]
[그런가?]
[······.]
[어쨌든 어서 폐하를 구하러 가세! 놈들의 수가 여전히 많아!]
[······.]
근위대 1전단장은 루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동쪽으로 달려갔다.
변경 기동 전투 부대도 그 뒤를 따라 나아갔다.
가베스를 통과해 산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멕 나이트들 간에 대규모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방군의 수장 바트 오베론과 황제가 바로 저곳에 있었다.
‘드디어!’
이 복수를 위한 전쟁을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오만 생각이 떠올랐으나 루산은 머리에서 털어 버렸다.
그때 전투 거미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대장님, 슐츠 경이 언제든 나갈 준비가 돼 있답니다!]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의 목소리에서 흥분한 것이 느껴졌다.
루산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다리라고 하세요.]
오랜 복수를 기다려 온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네, 대장님!]
우르사가 변경의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격전장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