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69화 (369/450)

369. 네 목숨 외에는

369. 네 목숨 외에는

산길로 접어드는 길을 막고 악착같이 싸우는 근위대 멕 나이트와 이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남방군 멕 나이트.

아직까지 산길이 막혀 황제가 동쪽으로 달아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바트는 마음이 조급했다.

지형은 유리하지 않았다. 오르막으로 올라가면서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뭣들 하느냐! 교대로 근위대 놈들의 힘을 빼라!]

어쨌든 남방군의 아이언 워리어 Ⅱ가 근위대 기체보다 성능이 조금 더 나았고 수적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근위대 기사들의 체력을 소모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가베스 중앙에서 근위대 1전단과 싸우고 있던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급히 달려왔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1개 기동 전단 규모! 적이 발사한 마나포에 의해 아군 멕 나이트 50여 대가 순식간에 기동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바트는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적이란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본토에서 보낸 병력이 부르가스에 상륙했는지 아니면 부르가스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이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나타났는지······.]

바트는 둘 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필센 본토에는 부르가스 항에 배치한 남방군을 물리치고 이 땅을 탈환할 만한 병력이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상륙했다 해도 그 소식이 진작 보고되었을 것이다.

한편 부르가스에 주둔하고 있던 동방군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새로 출현한 병력이라 봐야 고작 1개 전단이다! 뒤를 막고 근위대를 박살 내라!]

[알겠습니다!]

남방군 1전단과 2전단은 산길을 막고 있는 근위대 2전단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방패를 잡아당기고 그 사이로 마나 진동 대검을 찔러 넣으려 애를 썼다.

역으로 근위대의 마나 진동 대검에 찔리더라도 칼날을 잡고 동료가 근위대를 공격하도록 버텼다.

어쨌든 이번 전투에서 황제를 붙잡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기 때문에 사력을 다했다.

그때 근위대 1전단 50여 대가 달려와 산길을 막고 있는 남방군을 공격했다.

수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황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남방군을 들이쳤다.

그 기세가 무척 사나웠지만, 남방군은 더 많은 수로 여유롭게 막으며 근위대 멕 나이트를 한 대씩 차근차근 부숴 나갔다.

군사 훈련을 처음 받는 훈련병들처럼 멕 나이트의 방패를 들고 줄을 맞춰 천천히 나아가면서 그 모습을 본 변경 기동 전투 부대 파일럿들은 피가 끓는 것 같았다.

[대장! 이렇게 느긋하게 가도 되는 거요? 우리가 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루산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기려면 싸우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건 뭔 소리야?]

[공격할 듯 말 듯 나아가고 물러나기를 반복한다면 상당한 병력을 우리를 견제하는 쪽으로 돌리겠지만, 맞붙어 싸워서 우리 실력이 들통나면 남방군은 우리를 경시하게 될 테고, 자신 있게 근위대를 전멸시킬 것입니다.]

변경 파일럿들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지시에 맞춰서 전진하고 후진해야 합니다!]

[알았소!]

변경 기동 전투 부대는 근위대 1전단이 싸우는 곳 오른쪽으로 붙어 남방군을 밀어붙일 듯 접근했다.

그러자 남방군 2전단이 방패를 붙여 대응했다.

[밀어!]

루산의 지시에 변경 기동 전투 부대가 방패를 앞에 든 채로 남방군 2전단을 강하게 밀었다.

한참을 그렇게 씨름하다 루산이 소리쳤다.

[물러나!]

변경 기동 전투 부대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물러났다.

근위대 1전단이 사력을 다해 싸우는 사이 변경 기동 전투 부대는 가까이 다가갔다 물러나고, 달려들 듯 빠르게 전진하다 멈추고, 근위대 1전단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등 남방군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데 힘을 썼다.

근위대 1전단장이 루산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싸우지도 않고 왜 시늉만 하는 거야! 도우러 왔으면 싸워야 할 것 아니야?]

루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변경 파일럿들의 전투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맞붙어 싸우면 우리 실력이 드러나고 적에게 자신감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우리가 상당수의 적을 묶어 두는 사이에 최대한 많이 해치우십시오.]

근위대 1전단장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더욱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근위대 기사들은 이미 힘이 바닥이 났지만, 남방군 멕 나이트를 박살 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짰다.

남방군 파일럿들 역시 부르가스 국경 너머에서부터 이곳까지 뛰어오면서 전투를 계속하느라 이미 기운이 다 빠진 상태였으나 거사의 실패는 멸문이므로 더욱 악착같이 싸웠다.

차라리 싸워 주면 좋으련만 싸우지 않고 전진과 후진만 반복하는 변경 기동 전투 부대가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근위대 1전단과 싸우던 멕 나이트 부대가 병력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상당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분노한 바트가 명령했다.

[산길을 공격하던 1전단은 뒤로 빠져! 일단 서쪽에서 온 적의 원군부터 마무리한다!]

남방군 1전단이 뒤로 빠져 남방군 2전단과 함께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질서 정연하게 뒤로 물러나!]

루산의 외침에 변경 멕들이 방패를 꽉 쥐고 옆 기체와 어깨를 붙이며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 공세는 심상치가 않았다.

변경 파일럿들이 버틴다고 버텼지만, 실전을 치러 온 남방군 멕 나이트의 강공을 버틸 수가 없었다.

가장자리부터 전열이 허물어지고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중고 멕 나이트들이 성난 남방군 멕 나이트의 마나 진동 대검에 찔려 쓰러졌다.

[시에나! 부대를 보호해!]

[네, 대장님!]

루산은 거세게 공격해 오는 남방군을 시에나와 함께 저지했지만, 20여 대의 멕 나이트를 순식간에 잃었다.

그 모습을 본 근위대 1전단이 지원군을 구하기 위해 남방군 틈으로 파고들었다.

한편 황제를 지키기 위해 산길을 지키고 있던 근위대 2전단 역시 남방군 상당수가 후방으로 물러나 전투를 치르는 것을 보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해 남방군을 몰아붙였다.

그곳에서도 대혼전이 벌어졌다.

강철 거인들 간의 쇠 부딪치는 소리와 거대한 마나 진동 대검이 방패를 긁고 자르는 소음이 요란했다.

많은 멕 나이트들이 혼전 중에 쓰러졌으나 절박한 양군 파일럿들은 격렬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변경 기동 전투 부대는 루산의 명령에 따라 계속 후퇴했다.

우르사와 003의 활약으로 겨우 남방군을 떼어 내고 멀찍이 물러나 가베스 안으로 도망쳤다.

남방군은 도망치듯 물러난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추격하지 않았다.

근위대 멕 나이트들이 워낙 살벌하게 날뛰어 이 병력으로 원군을 쫓는다면 남은 남방군이 크게 피해를 입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근위대 1전단과 죽기 살기로 싸웠다.

쉬지 않고 이어진 전투에 양측 멕 나이트들의 피해는 점점 쌓여 갔고, 움직이는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후유~, 뒈질 뻔했네.]

가베스 안으로 달아난 파일럿들이 남방군과 근위대 멕 나이트를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잠깐 사이에 20여 대의 변경 멕이 쓰러지고 30여 대는 크고 작은 손상을 입었다.

변경 기사들은 이토록 살벌한 전쟁터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심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전히 황제를 구하지는 못한 상태.

황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전쟁터로 달려가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루산이 말했다.

[손상이 심한 멕은 뒤로 빠지고 나머지는 전열을 가다듬고 움직입니다!]

[에이, 쓰벌!]

변경 파일럿들이 할 수 없이 대열을 정비했다.

[변경 기동 전투 부대 열 맞춰 전진!]

우르사를 필두로 변경 멕들이 횡대로 줄을 지어 전진했다.

마나포로 재미를 보고 자신감에 차 있던 변경 파일럿들은 단 한 번의 접전으로 자신감을 모두 잃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심정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며 나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

아라드 변경에서 온 파일럿들은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과 반란에 가담했다 체포되어 최전선에서 죄수 부대로 싸우다 루산으로부터 구출 받은 구귀족파 기사들이었다.

아라드 변경에는 부르사 왕국 포로 출신들도 있었고 북부 이스타드 변경 출신들도 있었지만, 이번 전투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들만 왔던 것이다.

바로 복수를 위해서였다.

전원 아우로라 연합이 사용하던 멕 나이트를 타고 가베스 외곽에 숨어 있던 그들이 마침내 가베스로 진입해 변경 기동 전투 부대의 앞길을 막았다.

변경 파일럿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갑자기 아우로라 연합군이 여기에 왜······!]

[대장!]

당황하는 변경 파일럿들에게 루산이 외쳤다.

[당황하지 말고 방패 높이 들어!]

그러면서 루산은 맞은편에 서 있는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헤비 스틸을 향해 돌진했다.

대형 철퇴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치는 우르사.

후웅-!

대형 철퇴가 헤비 스틸의 머리 위로 강하게 떨어졌다.

그런데 헤비 스틸은 그 공격을 방패로 막았다.

쾅!

엄청난 충격음이 발생하며 방패가 찌그러졌지만, 적절한 방어로 헤비 스틸은 무사했다.

헤비 스틸은 방어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우르사의 공격을 막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여 대형 철퇴를 내리친 우르사의 왼팔을 마나 진동 대검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그 공격은 루산이 든 대형 철퇴 자루에 막혔다.

텅!

우르사와 헤비 스틸은 엄청난 공방을 주고받았다.

변경의 파일럿들은 그 모습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우르사가 남방군 멕 나이트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그들은 루산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아우로라 연합군의 파일럿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듯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우르사의 왼팔 팔뚝이 헤비 스틸의 마나 진동 대검에 잘리고 말았다.

쓰릉!

우르사는 세르펜스의 가죽을 몸체와 장갑판 전체에 두른 덕에 마나 진동 대검에 잘 베이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헤비 스틸은 그마저 베어낼 정도의 실력자가 탑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비 스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방패로 우르사를 두드리며 몰아붙였다.

그때 루산의 위기를 목격한 시에나가 003을 빠르게 움직여 우르사 앞을 막아섰다.

헤비 스틸은 003 또한 묵직한 공격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한쪽 팔을 잃은 우르사가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을 때 아우로라 연합군의 지휘관이 말했다.

- 아우로라 땅에 발을 들인 순간,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모두 죽여!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이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파도처럼 덮쳤다.

이미 대장인 루산이 패하는 것을 목격한 파일럿들은 그럼에도 방패 벽을 유지한 채 버티려 했으나 그 기세는 변경에서 괴수를 상대하던 파일럿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육중한 헤비 스틸들이 강하게 밀어붙이자 변경의 중고 아이언 워리어들이 쭉쭉 밀리기 시작했다.

루산이 우르사의 왼쪽 팔뚝을 집어 들며 분하다는 듯 명령했다.

[전원 후퇴! 물러나라! 후퇴하라!]

루산의 외침 소리가 들리자마자 변경 기사들이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 뒤를 아우로라 연합군 멕 나이트들이 쫓기 시작했다.

한번 밀리자 덩달아 밀려 쓰러지고, 방패에 찍히고, 팔다리가 잘리는 멕 나이트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그들은 가베스 서쪽 너머까지 쫓겨났다.

[다들 무사한가?]

루산이 외쳤다.

[손상을 입은 멕은 많은데 죽은 놈은 얼마 없는 것 같소!]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도망치는 적에게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은 남방군과 근위대가 싸우고 있는 동쪽 길목으로 몰려갔다.

[우린 어쩌면 좋겠소?]

[어쩌긴? 우리는 원군으로 왔으니 할 일을 해야지.]

루산은 두려움에 떠는 변경 파일럿들을 수습해 다시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제 파손된 멕이 늘어난 데다 방금 부딪친 아우로라 연합군 기동 부대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그 발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왼쪽 팔뚝 없이 오른손으로 대형 철퇴를 들고 걸어가는 우르사의 걸음이 아까보다 몹시 느렸지만, 그것을 타박하는 변경 파일럿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루산이 조금 전에 나타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타고 있는 파일럿과 통신을 주고받는 것을 알고 있는 파일럿도 없었다.

[슐츠 경, 최대한 천천히 다가갈 테니 그 전에 끝내세요.]

[알겠습니다, 대장님!]

[레보르크!]

[네, 대장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방금 우르사의 팔을 자른 것처럼 근위대든 남방군이든 멕 나이트의 팔만 자르면 좋겠군요.]

가급적 죽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원수는 황제와 오베론뿐이니까.]

레보르크가 잠시 침묵하다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루산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라드 변경군 파일럿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루산이 왼쪽 팔뚝이 잘린 우르사를 타고 서서히 나아가는 동안 아라드 변경에서 온 파일럿들은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타고 남방군과 근위대를 덮쳤다.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서로 힘겹게 싸우고 있던 남방군과 근위대는 갑자기 나타난 아우로라 연합군을 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켈 슐츠는 부채 모양의 포위망을 형성하여 단 한 대의 멕 나이트도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

그런 뒤 마나 진동 대검으로 멕 나이트 팔과 다리를 자르며 나아갔다.

실력이 뛰어난 파일럿이 탑승한 멕 나이트에는 조종석에 박히기도 했으나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만큼 근위대와 남방군 파일럿들 모두가 무척 지친 상태였다.

그저 갑자기 출현한 아우로라 연합군을 보고 놀랐을 뿐이었다.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은 지휘관 바트가 탑승한 멕 나이트를 둘러싸고 조종실을 마나 진동 대검으로 수십 차례 찔렀다.

파일럿의 형체가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멕 나이트가 쓰러진 자리에 한 사람의 피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붉은 피가 흥건히 흘러나왔다.

그렇게 남방군을 처리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부대는 산길을 막고 있는 근위대의 멕 나이트도 차근차근 베어 넘기고 산으로 올라갔다.

막힌 산길을 뚫던 멕 나이트들이 남방군과의 전투로 많이 차출되어 황제 곁에는 멕 나이트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전투 거미의 통신을 받은 아라드 변경군 일부가 막아 두었던 산길을 열고 그쪽에서 다가오고 있었기에 황제와 근위대가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근위대 멕 나이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다수의 적을 모두 쓸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침내 근위대 멕들이 모두 쓰러지고 근위대장이 황제의 마차 앞을 막아섰다.

결코 당당함을 잃을 수 없었던 필센 제국의 황제가 마차 밖으로 나와 근위대장을 물러나게 하고 고개를 치켜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어느 나라 소속인가?”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에 탑승하고 있던 기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바로 필센 제국의 황제다! 만약 페르보 제국의 황제가 대화를 원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

그러나 여전히 멕 나이트들은 잠잠했다.

산바람에 프리드리히 황제는 문득 한기를 느꼈다.

황제가 다급히 소리쳤다.

“필센군의 철수를 포함하여 이 전쟁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

그제야 한 사람이 멕 나이트 외부 확성기를 켜고 말했다.

- 필요 없다.

“음?”

- 네 목숨 외에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멕 나이트는 거대한 발을 들어 황제를 밟았다.

황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쿵!

황제를 밟은 멕 나이트는 황제의 마차까지 밟고 그대로 동쪽으로 나아갔다.

다음 멕 나이트도 황제를 밟았다.

그 다음 멕 나이트도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황제를 밟고 지나갔다.

그 다음, 그 다음······, 계속해서 멕 나이트들이 죽은 아버지와 형, 숙부와 외숙들을 생각하며 황제의 시체를 밟고 지나갔다.

머지않아 오카수스 대륙과 아우로라 대륙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 제국의 황제가 될 뻔했던 필센 제국의 황제는 폐허가 된 부르사 왕국의 국경 도시 근처 어느 산길에서 형체도 남지 않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변경 기동 전투 부대가 이 현장을 찾아왔을 때 황제를 습격한 적은 이미 찾을 수가 없었다.

변경 파일럿들이 황제의 마지막 흔적을 보고 그 끔찍함에 눈살을 찌푸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루산은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