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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74화 (374/450)

374. 잘 알고 있습니다

374. 잘 알고 있습니다

“루산 보름스?”

밤베르크 백작은 부관이 양손으로 들고 있는 은빛 사자 검을 보고 되물었다.

“네, 사령관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무공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황궁에서 사령관님을 뵌 적이 있답니다.”

“음······.”

벌써 6년 전의 일인 데다 요새 신경 쓸 일이 많아 밤베르크 백작은 얼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부관이 덧붙였다.

“자신을 소개하기를, 율리안 볼프스 마이센 님을 모시며 가프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했습니다. 필센 정부와 율리안 님의 명령에 따라 우리 네세베르 공략군을 구원하러 왔답니다.”

“율리안을 섬기고 율리안의 명령으로 왔다고?”

“그렇습니다.”

그제야 밤베르크 백작은 율리안의 부하 중에 반란 진압의 공로로 2등 무공 훈장을 받은 인물이 떠올랐다.

반란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율리안과 함께 찾아왔던 젊은 변경의 기사 루산 보름스.

그때 율리안이 루산을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인 양 소개했는데, 밤베르크 백작이 젊은 시절 황제의 총애를 받을 만큼 워낙 빼어난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기에 다른 사람을 잘 인정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변경 기사 수준이야 빤한데 그중에서 뛰어나 봐야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세상 경험이 부족한 율리안의 안목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그저 귀한 조카인 데다 반란 사건이라는 심각한 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기에 도와주었던 것이다.

나중에 루산이 변경에서 올라오는 반란 세력의 멕 나이트 수백 대를 부하 몇 사람만 데리고 막아 2등 무공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금은 실력이 있나 보다 생각했으나 당시 네세베르 공략군 사령관으로 내정된 상황이라 신경 쓸 일이 많았기에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 루산 보름스가 율리안의 명령으로 왔단 말이지? 용병단을 이끌고? 병력이 얼마나 되던가?”

“멕 나이트 두 대뿐이었습니다. 기종이 레오파드랍니다.”

“뭐? 고작 두 대?”

“네. 그런데 그들이 나타난 방향이 부르가스 쪽이 아닌 루한 왕국 쪽이었습니다. 남서쪽 해안에서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음?”

그쪽은 루한 왕국군이 지키고 있는 루한의 영토였다.

“그래서 루한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닌가 싶어 영내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포위하고 있습니다.”

“들여보내.”

밤베르크 백작의 말에 부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는 사람이야. 나를 암살하려고 이런 인물까지 찾아서 포섭하여 보낼 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면 루한이 이미 이 세상을 지배했겠지. 데려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부관이 은빛 사자 검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채 밖으로 나갔다.

밤베르크 백작은 그 은빛 사자 검을 다시 한번 보다 탁자 왼쪽 옆에 놓여 있던 자신의 금빛 사자 검에 눈길을 주었다.

당번병이 늘 깨끗하게 닦아 놓지만 새삼 낡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훈장을 받은 지 벌써 30년도 더 됐던 것이다.

‘율리안이 보냈다고?’

밤베르크 백작은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변경 통치자가 변경 기사에게 용병단을 이끌게 하여 구원군으로 보냈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만나 보면 알게 되겠지.’

아우로라 연합군의 포위망이 완성되어 네세베르 공략군이 갇히게 되면 6년 동안 진행된 이 전쟁은 물거품이 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온 필센 제국군 전체가 위태롭게 되고 이는 곧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부르가스에서 근위대 기사가 포위망을 뚫고 전갈을 보내왔다.

황제의 사망, 오베론 공작의 반란, 남방군의 이탈, 그리고 근위대와 잔존 남방군의 지원 등에 대한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시바스 왕국군을 비롯한 아우로라 연합의 병력이 갑자기 이쪽 전선으로 대거 몰려와 네세베르 공략군을 포위한 까닭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최악의 위기 상황!

지금은 일개 용병 단장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밤베르크 백작은 이내 생각을 접고 지형 모형을 둘러싼 채 병력 배치를 하고 있는 참모들에게 걸어갔다.

제대로 씻지 못한 참모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남방군을 단독으로 동쪽에 배치하는 건 위험합니다. 언제 다시 배신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남방군 병력을 잘게 쪼개어 다른 부대에 편입시키는 게 낫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각 부대의 응집력이 깨지지 않겠소? 그렇지 않아도 우리 네세베르 공략군은 여러 방면군에서 차출된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알력이 상당하지 않았소. 이제 반란을 일으킨 병력까지 집어넣으면 애써 규율 잡힌 부대들이 다시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이오.”

“차라리 우리 군 전체가 부르가스로 물러나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은 황태자 전하를 노바로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소수 병력만으로 모시다가는 적의 포위망에 걸려 위험에 빠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도 포위된 채 고사되는 것보다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네세베르를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엄청난 병력을 희생시켜 겨우 차지했는데 이렇게 물러나 버리면 언제 다시 이 땅을 획득할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네세베르에서 루한 군을 붙들어 두었기에 이번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황제 폐하께서 그런 일을 당하시고 제국이 위태로우니 하는 말 아닙니까?”

밤베르크 백작은 참모들이 의견을 개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네세베르 공략군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남방군이 시바스 왕국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시바스 왕국군이 주변 나라들의 병력과 함께 루한 왕국을 도와 네세베르 공략군을 포위 공격하는 바람에 루한 공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가 애써 점거한 네세베르를 포기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과 황제의 사망 소식에 지휘부 참모들도 순수하게 전쟁터의 작전에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전장에서의 승리를 거두는 데만 집중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황태자의 안전과 제국 전체의 안위를 마음속으로 신경 쓰게 된 것이다.

어떤 의견이 옳은지,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밤베르크 백작도 확신하지 못했기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의견이 나올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러운 네세베르 공략군 지휘부에 루산이 들어왔다.

네세베르 공략군 고위 참모들이 일순 입을 다물고 낯선 방문자를 쳐다보았다.

***

“오랜만이군.”

“예, 각하. 6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밤베르크 백작이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탁자로 루산을 이끌었다.

다른 쪽 구석에서는 참모들은 다시 시끄럽게 논쟁을 재개했다.

밤베르크 백작이 그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우리 상황이 지금 이렇군.”

“이해합니다, 각하.”

“그런가······?”

“···네.”

밤베르크 백작이 루산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지금도 젊었지만, 6년 전에 봤을 때와는 다른 관록과 몸 전체에서 묻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젊고 서투른 열정이 아니라 진중한 강인함이 느껴졌다.

밤베르크 백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설명이 좀 필요하겠는데?”

루산이 밤베르크 백작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가프 용병단은 아라드 왕국과 이스타드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네세베르에서도 큰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밤베르크 백작은 네세베르 공략군 사령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한동안 군문을 떠나 있었고, 임명된 뒤에는 줄곧 동방에서 지내 왔기 때문에 오카수스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과 용병에 대한 소식에 그리 밝지 않았다.

“그렇다 치고, 자네는 변경 기사가 아닌가? 용병단은 또 뭐란 말인가? 변경에서는 두 개의 직업을 겸하는 게 흔한 일인가?”

루산은 오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밤베르크 백작은 율리안과 달리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의혹 어린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프리드리히 황제와의 친분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율리안 옹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진솔하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가프 용병단은 제가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제작한 멕 나이트 레오파드를 시험하는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면서 만든 것입니다. 변경에서는 두 가지 일을 겸하는 게 흔한 일이냐고 물으셨는데, 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멕 나이트 조종 실력이 남들보다는 좋았고, 레오파드에 타고 변경 괴수를 상대하면 되는 일이니까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죠.”

루산의 자신 있는 태도에 밤베르크 백작이 저절로 반응했다.

“호오!”

“변경에서 테스트를 하다 어쩌다 보니 아라드 왕국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레오파드 실전 테스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름 붙이기가 마땅히 않아서 가프라는 이름을 따와 용병단으로 행세하게 된 것입니다. 레오파드를 타고 승리를 거두면 새로 등장한 멕 나이트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렇게 아라드 왕국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고, 필센 제국의 공식 획득 시험에 통과해 레오파드를 필센 제국에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그래.”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뒤 제국군에 납품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북방군이었습니다. 저는 레오파드를 누구보다 먼저 타 보았을 뿐 아니라 이것을 타고 가장 많이 싸워 본 사람으로서 북방군 파일럿들에게 레오파드를 이용한 전술을 지도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북방군은 페르보 제국 굴다크 공작의 대군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죠.”

“그랬었지.”

“속도가 빠른 레오파드로 원시의 땅을 크게 돌아 북부 이스타드 왕국으로 들어가 굴다크 공작이 지휘하는 아우로라 연합군의 배후를 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밤베르크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부 전선의 위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네세베르 공략군을 본국으로 돌려 북부로 보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당시 굴다크 공작이 이끄는 아우로라 연합군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그게 자네의 솜씨란 말인가?”

“그때 북방군 3군단을 이끌던 아이젠 자작께서 북부 전선을 철저하게 틀어막고 끈질기게 버티셨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군단 파일럿들이 용감하고 과감하게 제 작전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결국 자신이 그 작전을 세웠다는 것을 루산은 부정하지 않았다.

“음!”

루산을 보는 밤베르크 백작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아라드와 이스타드에서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포로도 잡았죠. 그들이 용병단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용병단 규모가 처음보다 늘어난 것입니다.”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얼마나 되나?”

“100명은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일럿이 100명이나 된단 말인가!”

밤베르크 백작은 해연히 놀랐다.

필센 제국에 파일럿이 100명이나 되는 용병단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루산은 300명은 족히 된다고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당장 모두를 투입할 수는 없어서 일단 연락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우리 병력이 정규군에 비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벼운 레오파드의 특성상 산을 넘어 적의 후방에 침투하는 작전에 자신 있습니다. 말씀만 하신다면 적의 중요 거점을 파괴하고 돌아올 수도 있죠.”

루산이 말하는 작전이 가능하다면 현재 네세베르 공략군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밤베르크 백작은 깨달았다.

당장 머릿속에 적의 주요 거점 몇 군데가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 루산의 말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작게 하고 물었다.

“변경 기사가 그 정도 규모의 용병단을 운영하고 있다니, 놀랍군. 필센 제국이 그토록 허술하단 말인가? 그리고 율리안의 명령이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린가?”

이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말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사실대로 말해 온 것이다.

“이 용병단은 당연히 율리안 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가?”

지금도 참모들은 이쪽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격론을 펼치고 있었지만, 루산은 밤베르크 백작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노바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율리안 님께서 황위에 오르실 수도 있을 겁니다.”

“뭐라고!”

밤베르크 백작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심각성을 인지한 밤베르크 백작이 참모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는 목소리를 착 깔고 루산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느냐?”

루산은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네세베르 공략군이 루한 왕국군과 시바스 왕국군을 물리칠 방법 그리고······.”

루산이 침을 꿀꺽 삼키고 낮게 깐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각하의 조카께서 황제가 되는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밤베르크 백작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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