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피리 부는 사나이
377. 피리 부는 사나이
마나포를 운용하기에 멕 워커는 작았다.
그래서 두 대가 한 조를 이루어 움직였다.
약간 다른 점은 있지만 남방군의 이동식 마나포 부대가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제각각인 혁명군 멕 워커들은 혁명을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만은 동일한 노동자 파일럿들을 태우고 차가운 노바의 아침 공기를 뚫고 나아갔다.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첫째, 막심 황자가 있는 황궁.
작년에 변경 8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이 노바로 들어와 반란군을 진압하면서 무너진 이후에 재건에 들어갔지만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쪽에 있는 황족들의 생활공간은 부서지지 않았고 황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막심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혁명군으로서도 황궁을 점령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둘째, 노바 경찰청 기동 타격대.
노바 경찰청이 보유하고 있는 멕 나이트를 제압해야 했다.
셋째, 수도 군단의 6개 기동 전단.
남아 있는 수도 군단의 멕 나이트를 처리하지 않으면 혁명은 물 건너 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제압해야 했다.
넷째, 군무부.
다섯째, 정부 청사.
그 외에도 점거해야 할 곳과 제거해야 할 대상을 철저히 정해 놓았으나 당장 해야 할 일은 혁명을 방해할 수 있는 정부 병력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혁명군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일부는 신문사들에 혁명을 알리는 선언문을 보냈고, 일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같은 내용의 벽보를 붙였다.
그리고 또 다른 혁명 동지들은 전에 다니던 학교와 공장으로 흩어져 새로운 동지 모집에 나섰다.
지금 인원도 적지 않지만, 정부군과 경찰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정부를 장악하고 질서를 유지해 새 나라를 건설하려면 더 많은 동지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 맡은 임무대로 바삐 움직였다.
지난 밤,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혁명 동지들은 리모주 마법 연구소의 마나포 생산 공장 습격 작전을 성공하자 자신감에 넘쳤다.
비록 첫날이지만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희망과 뜨거운 열정이 두려움을 밀어내고 가슴을 채웠다.
꿈결처럼 아득하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비현실적인 황홀감을 느끼던 혁명군 동지들이 다시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황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경찰 병력을 만나고부터였다.
노바 경찰청 소속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 네 대와 무장 경찰들.
멕 워커와는 차원이 다른 멕 나이트의 높이와 덩치.
두툼한 몸체와 거대한 방패 그리고 무시무시한 마나 진동 대검.
과연 마나포가 통할까 싶은 그 강력한 모습에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노동자 파일럿들은 긴장하고 말았다.
반면 경찰 병력은, 작년 황궁 점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적도들이 황궁까지 도달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한 일로 크게 추궁을 당했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무장 세력의 등장에 단호히 대처했다.
경찰들은 마나포를 들고 나타난 멕 워커들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지침에 따라 일부는 황궁으로, 일부는 가까운 다른 검문소와 군부대로 서둘러 소식을 전하고, 경찰청 멕 나이트는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 정체를 밝히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외부 확성기로 퍼지는 멕 나이트 파일럿의 사나운 목소리.
긴장한 멕 워커 파일럿들이 허둥지둥 마나포를 발사했다.
슈웅-!
슈슝-!
그러나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은 마나포가 적을 명중시킬 수는 없었다.
남방군의 이동식 마나포대는 포대 역할을 하는 멕 워커와 마나포가 일체형으로 결합되어 있고 마나포 앞뒤에 지지대가 있어 멕 워커와 함께 마나포를 단단히 고정시킴으로써 흔들림을 방지하는 방식이었지만, 혁명군의 멕 워커는 앞의 기체가 마나포를 옆구리에 끼우거나 어깨 위에 올리고 있으면 뒤의 기체가 발사하는 방식이라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 진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멕 워커들이 뒤로 넘어가고 다른 기체와 부딪쳐 쓰러졌다.
마나포가 위험한 무기라는 것을 아는 경찰 파일럿들이 서둘러 제압하기 위해 달려왔다.
쿵쿵쿵쿵!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느낀 노동자 파일럿들이 재차 마나포를 발사했지만,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은 강력한 반동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졌다.
- 감히 마나포를 들고 와? 여기가 어디라고!
경찰 파일럿들은 마나포로 무장한 멕 워커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마나 진동 대검을 활성화시킨 멕 나이트들이 멕 워커를 베기 시작했다.
멕 워커는 잔가지처럼 힘없이 잘려 나갔다.
앞쪽 멕 워커들이 너무나 쉽게 쓰러지자 뒤쪽 멕 워커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는 악으로 버티며 소리쳤다.
-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죽어라!
마나포를 두 팔로 가슴에 끌어안다시피 한 멕 워커가 경찰 멕 나이트 앞으로 달려 바로 앞에서 마나포를 발사했다.
엄청난 진동에 마나포를 들고 있던 멕 워커의 몸체가 들썩였지만, 표적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빗나갈 수가 없었다.
슈-!
쩡!
마나 진동 화살이 발사 되는 소리와 멕 나이트 방패를 뚫고 몸통을 관통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경찰청 멕 워커는 마나 진동 화살에 가슴이 뚫린 채 멕 워커를 덮쳤다.
멕 워커 파일럿이 쓰러지면서 소리쳤다.
- 붙어서 쏴! 이길 수 있다고!
혁명을 성공시키겠다는 열망으로 죽어라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경찰 멕 나이트가 그가 타고 있는 멕 워커 가슴에 마나 진동 대검을 찔러 넣으면서 더는 들리지 않았지만, 혁명 전사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울렸다.
- 가자! 잡을 수 있다!
- 가자! 마나포는 통한다!
- 가자! 동지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
멕 워커들이 다시 나아갔다.
그들은 첫 싸움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깨달았다.
마나포는 완전히 근접해서 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한다면 충분히 멕 워커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쿵쿵쿵쿵!
혁명의 열기로 두려움을 태워 버린 노동자 파일럿들이 멕 나이트를 전진시켰다.
그리고 달려오는 멕 워커 코앞에서 마나포를 발사했다.
슈슈슈슝!
그들의 급료를 다 합쳐도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들이 허무하게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다행히 날아가지 않은 화살 몇 개가 경찰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에 관통했다.
쩌저저정!
많은 멕 나이트가 쓰러졌지만, 황궁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경찰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 네 대도 모두 쓰러졌다.
처절한 승리!
그들은 이겼다는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멕 워커로 멕 나이트를 이기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찰 멕이 사용하던 마나 진동 대검을 들고 죽은 동료의 멕 워커를 넘어 전진해 나갔다.
그러나 황궁에는 수도 군단 멕 나이트가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15대로 방금 전 경찰 멕 나이트 4대를 상대하면서 전력 절반을 잃은 혁명군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혁명군 멕 워커들은 황궁 앞 광장에서 수도 군단 멕 나이트와 싸워 세 대를 파괴했지만, 멕 워커 20대를 잃고 후퇴했다.
수도 군단 멕 나이트가 멕 워커 뒤를 추격했으나 마나포 발사에 대한 감각을 어느 정도 익힌 노동자 파일럿들이 좁은 도로로 달려오는 수도 군단 멕 나이트를 꽤 정확하게 겨냥하는 통에 더 추격하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보고를 들은 막심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마나포로 무장한 멕 워커들이 황궁을 공격해? 멕 워커들이 마나포를 들고 설친단 말인가! 황실의 위엄이 이토록 무너질 때까지 다들 무엇을 하고 있었느냔 말이야! 당장 쓸어 버려!”
오베론 공작의 황궁 점거, 남방군의 반란, 황제의 죽음에 이어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군부의 고위 장군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위신이 땅에 떨어진 수도 군단 사령관이 분노를 숨기지 않고 부하들을 잡았다.
“최단 기간에 진압하고 배후를 확인해. 해내지 못하면 다 죽을 각오를 하라!”
참모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멕 나이트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우로라 대륙으로 보낸 병력이 많은 데다 오베론 지방 장악을 위해 보냈고 얼마 전에 근위대를 무장시키면서 보낼 수 있는 건 다 보냈습니다. 놈들은 멕 워커라지만 마나포로 무장을 했는데, 많지 않은 멕 나이트로 공격했다가는 자칫 남은 멕 나이트를 모두 잃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러니 노바 밖에 있는 변경 군단을 동원하는 것은 어떨까요?”
동원령으로 상경한 변경 각 구역의 멕 나이트들이 여전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노바 밖에 주둔해 있었던 것이다.
“으음······!”
수도 군단 사령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변경 군단 병력은 군대처럼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그 병력을 노바 안으로 들여 무장 불온 세력을 소탕하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파일럿 개개인의 실력은 형편없지만 멕 나이트는 멕 나이트.
그것을 가지고 노바 안으로 들어와 마나포로 무장한 멕 워커를 잡게 한다면 노바가 난장판이 되지는 않을까?
과연 수도 군단 병력만으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 수도 군단 병력만으로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수도 군단에 비상령이 떨어지고 남이 있는 모든 멕 나이트가 소위 혁명군 진압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이 신문에 고스란히 실려 노바 백성들을 불안하게 했다.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 덕분이었다.
***
브르노로 가는 길.
루산은 자신들의 행적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가 없었다.
레오파드가 아우로라 대륙의 헤비 스틸이나 그레이 울프 같은 멕 나이트보다 가볍기는 해도 산을 평지처럼 넘거나 강을 자유롭게 건널 수는 없었다.
마을과 도시를 지날 수밖에 없기에 목격자도 많았다.
이런 모든 상황을 그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루한 군으로 하여금 우리를 추격하게 하시려는 겁니까?”
미켈 슐츠가 루산의 의도를 짐작하고 물었다.
“맞아요. 그것도 전선에서 네세베르 공략군을 저지하고 있는 주력 병력을 빼도록 하려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려면 우리가 꽤 많은 적을 해치워야겠군요. 우리를 잡으려면 주력 병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해야 하니까요.”
“그렇죠.”
루산은 이 나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 황태자 문제를 처리하고 노바로 돌아가 막심을 처리해야 한다.
이번 일은 세심하게 해야 한다.
꼬리를 잡히면 안 된다.
직접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브르노가 비록 매우 중요한 물자 생산 기지라지만 브르노의 생산 공장을 파괴한다고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브르노로 다가가며 만나는 적을 모두 무찌를 겁니다. 소규모 적은 부수고 규모가 큰 적은 피하면서 괴롭히는 거죠.”
가프 용병단의 주력 기체가 레오파드이고 별도의 지원 부대가 없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전투 거미로 주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상태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우리를 잡으려면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어요.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포위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으니까요.”
미켈은 루산의 무력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부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아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잡히거나 피해를 보면 안 됩니다. 루한 왕국을 누비고 다니는 거죠. 그러면 적은 우리를 잡기 위해 쫓아올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거점을 막고 있던 전선이 무너지고, 그때 네세베르 공략군이 루한 왕국을 덮치면 싸움이 끝나는 거죠.
시바스 왕국과 중소 왕국들의 군대가 있다 해도 중요한 축인 루한 왕국이 쓰러지면 나머지 나라들도 버틸 수 없다고 보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적을 끌고 다니겠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어쨌든 우리가 병력 피해를 입지 않아야 계속 피리를 불고 다닐 수 있겠군요.”
“그렇죠. 그건 경에게 맡길게요.”
루산이 웃으며 말하자 미켈도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적진 한복판을 누비고 다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루산의 계획은 무모해 보이지만, 늘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루산이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율리안 님이 황제가 되시면 과거 반란죄를 진 기사들이 모두 사면될 겁니다.”
미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대로 말한 것은 아닌데 비슷한 약속을 받아냈어요.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할 테니 파일럿들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다잡으세요.”
“알겠습니다, 대장님!”
반란 파일럿들 대부분은 남방군을 무너뜨리고 황제를 죽인 것으로 복수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원한을 풀었다고 생각해 왠지 모르게 몸도 마음도 축 늘어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의욕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루산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힘을 낼 것이다.
가족들에게 당당히 돌아갈 길이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기꺼이 최선을 다해 따를 것입니다!”
“고마워요.”
루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003에 올랐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르는 것은 루한 왕국군만이 아니구나!’
미켈은 자신들이 루산이라는 피리 부는 사나이 뒤를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한 왕국군과 달리 희망을 품고서.
가프 용병단 전체가 003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