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78화 (378/450)

378. 구차함보다는 당당함이

378. 구차함보다는 당당함이

대규모 병력이 상륙하기 어려운, 작은 어촌 마을로 들어온 가프 용병단은 내륙으로 쭉쭉 나아갔다.

루한 왕국 병력 대부분이 네세베르 공략군과 맞서 있었기 때문에 저지할 병력이 없었다.

처음에 상대한, 조사를 위해 찾아온 기동 전대 멕 나이트 30대를 격파한 이후 한참 동안 적을 만나지 못했다.

가프 용병단은 작은 마을은 무시하고 도시는 행정청을 무너뜨리며 전진했다.

간간이 만나는, 옛 정취가 살아 있는 영주의 성도 가뿐히 쓰러뜨려 주었다.

전쟁 발발 이후 총동원령이 내려졌음에도 몰래 감춰 둔 멕 나이트를 영주들은 꺼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소규모 멕 나이트로는 가프 용병단의 발걸음을 전혀 늦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길을 가다 동전 줍는 것처럼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 수를 늘려 주었다.

[퓨리 브롱코, 루한 왕국에서 생산된 멕 나이트입니다. 구형 멕이지만, 건물 부수는 데는 지장이 없지요.]

루산의 의중을 이해하고 있는 미켈은 영주들이 꿍쳐 둔 구형 멕 나이트를, 완전히 에워싼 뒤 방패를 앞세워 압착해 감싸는 방식으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뒤 항복을 받아 내거나 끝까지 저항하는 경우 조종실 보호 장갑판을 뜯어내고 강제로 파일럿을 빼내 멕 나이트를 획득했다.

[조종실 앞이 뻥 뚫려 있어도 건물 부수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찬바람에 몸이 시리겠지만 움직이다 보면 열이 날 겁니다.]

조종실 앞이 뻥 뚫리거나 팔 한쪽이 없는 루한 왕국의 구형 멕 나이트에도 가프 용병단 파일럿들이 탑승해 건물을 밟고 나아갔다.

가프 용병단이 도시의 행정청을 부수고 영주들의 성을 파괴하며 루한 왕국 내륙을 통과하자 루한 왕국 궁성은 피해를 호소하는 지방관과 영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할 수 없이 루한의 국왕은 대반격을 위해 애써 준비해 두었던 기동 군단을 출동시켰다.

지난 6년 동안 루한 왕국을 괴롭혀 온 네세베르 공략군을 무찌르기 위해 준비한 헤비 스틸 3개 전단을 투입한 것이다.

지휘관은 루한 왕국의 젊은 검호 루니 백작.

군단장이 되기에는 다소 젊은 4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루한의 국왕이 네세베르 공략군을 쓰러뜨리는 중임을 맡길 만하다고 보고 임명한 인물이었다.

부대 구성원들 또한 초보 파일럿들이 아니었다.

나이가 어린 초보 파일럿들도 있었으나 상당수가 네세베르 공략군과 싸워 패했거나 붕괴된 부대의 생존자들로 루니 백작이 철저히 훈련시킨 파일럿들이었던 것이다.

존재를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네세베르 공략군을 짓밟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내륙으로 들어온 적의 유격 부대 하나 때문에 군단을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루니 백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왕 우리 존재가 노출되었으니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잡은 뒤 전선으로 간다!”

루니 백작이 이끄는 반격 군단은 정찰대를 앞세우고 보급 부대와 경호 부대를 뒤에 단 채 가프 용병단을 잡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모든 기체가 육중한 헤비 스틸이었지만, 낙오하는 기체도 없고 행군하는 멕 나이트 간의 간격도 일정했다.

그처럼 강인한 부대였으나 상대가 가프 용병단이라는 것이 그들의 불행이었다.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간격이 일정하고 휴식 군기도 제대로 잡혀 있어요. 그런데 서브 파일럿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투 거미들이 다가오는 기동 군단의 특징을 보고했다.

루산이 그 이야기를 듣고 미켈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예 부대인 것 같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브 파일럿이 많고 저들은 없어요. 그 점을 이용하도록 하죠. 저들을 지치게 만들고 우리를 경시하게 만드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루산의 뜻을 이해한 미켈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적이 아군을 경시하게 만드는 일은 쉬웠다.

가슴 장갑판이 뜯어져 나가고 팔이 잘려 무기도 들지 못하는 멕 나이트들이 축 처진 채 길게 늘어져 패잔병 같은 대열을 형성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가프 용병단은 노획한 멕 나이트들로 그런 모습을 연출하면서 지나는 도시의 행정청을 계속 부수며 이동했다.

반격 군단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가프 용병단은 따라잡힐 듯하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노획하여 타고 다니던, 부서진 멕 나이트 한두 대씩 포기하고 달아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프 용병단 파일럿들은 달아나는 연기 실력이 점점 늘었다.

아슬아슬하게 감질 맛이 나도록 거리를 유지하다 겨우 빠져 나갔다.

그러다 실수해서 붙잡힐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루산과 시에나, 레보르크와 슈야가 뛰어들어 루한 군 멕 나이트를 밀치고 구해 주었다.

그때에도 적의 멕을 부수지는 않았다.

그렇게 가프 용병단은 반격 군단을 끌고 다녔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도무지 잡히지 않자 루니 백작은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언제까지 쫓아만 다닐 것인가! 얼마 되지 않는 놈들이 우리나라를 온통 휘젓고 다녀도 잡지 못 하다니, 이 무능한 것들!”

루니 백작은 침투한 적의 유격 부대를 최대한 빠르게 소탕하고 전선으로 갈 생각으로 추격 대신 포위 작전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놈들의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

적의 이동 속도가 살짝 빠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놈들은 브르노를 향하고 있다.”

적의 진로가 의미하는 바도 확실했다.

브르노의 공업 단지를 부수어 루한 왕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

“추격을 계속하되 이동 속도를 늦추면 놈들도 속도를 늦추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계속 달아나다 힘이 빠졌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2개 전단이 옆으로 전속력으로 돌아 자포리 지방에서 길을 막는다.”

자포리는 브르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평원 지방으로 세 개의 길이 연결되는 곳이었다.

3개 전단이 세 개의 길을 막고 적 유격대를 포위하여 섬멸하겠다는 뜻.

“2전단과 3전단은 전속력으로 달려 자포리 북동쪽과 동쪽 길을 막아라. 나는 1전단과 함께 이대로 추격을 계속해 놈들을 자포리로 밀어 넣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반격 군단은 추격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자 가프 용병단도 이동 속도를 늦추었다.

반격 군단의 2전단 3전단이 가프 용병단에 들키지 않기 위해 크게 우회하여 전속력으로 자포리 방면으로 달렸다.

그러나 전투 거미들이 그 모습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2전단과 3전단이 1전단과 마나 통신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가프 용병단은 다시 속도를 높였다.

반격 군단 1전단이 부리나케 쫓아왔다. 적이 아군 2전단, 3전단이 길을 막기 전에 자포리를 통과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발을 묶어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프 용병단은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떨어뜨리고, 늦추었던 속도를 다시 높이며 1전단 파일럿들을 흔들었다.

겨울임에도 1전단 파일럿들은 구슬땀을 흘렸고,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왔음에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철저하게 행군 군기를 유지해 온 반격 군단 멕 나이트 행렬이 힘 빠진 뱀처럼 축축 늘어져 자포리까지 따라왔다.

[뒤따르는 부대의 대열이 길게 늘어졌습니다!]

전투 거미 1호의 통신을 들은 루산이 미켈에게 말했다.

[1개 군단이면 모를까 1개 전단, 그것도 지쳐서 길게 늘어진 1개 전단이면 부숴야죠.]

미켈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도망치던 가프 용병단이 거짓말처럼 가지런한 대열을 형성했다.

가슴 장갑판이 떨어져 나가 조종실이 훤히 보이거나 팔이 잘린 노획 멕 나이트는 뒤로 빠지고, 노획한 멕 나이트 중에 상태가 좋고 육중한 헤비 스틸 위주로 거대한 방패를 들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레오파드 파워가 받치고, 레오파드 스피드는 날개를 형성했다.

그 상태로 가프 용병단은 달려오는 반격 군단 1전단을 향해 발을 맞춰 다가갔다.

패잔병 모습에서 최정예 부대로 순식간에 돌변한 가프 용병단의 모습에 루니 백작은 소름이 돋았다.

[이동을 멈추고 진형을 가다듬어라!]

선두를 형성하고 있던 헤비 스틸들이 얼른 나란히 섰다.

그러나 추격전을 계속해 오면서 뒤로 처졌던 멕 나이트들은 얼른 집결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루산과 시에나가 옆으로 돌아 뒤로 처진 반격 군단 멕 나이트들이 선두로 합류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미켈이 지휘하는 가프 용병단이 반원형 진형으로 반격 군단 1전단 선두 대열을 감쌌다.

노획한 헤비 스틸들이 반격 군단 헤비 스틸과 강하게 부딪쳤다.

그때 부르사의 전사들이 탑승한 레오파드 파워가 마나 진동 도끼를 들고 적의 옆구리를 마구 찍었다.

원형 방패와 도끼를 든 레오파드 파워들이, 서둘러 형성한 루한 왕국 헤비 스틸 부대의 방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옆구리를 파고든 것이다.

부르사 전사들의 거칠고 과격한 공격에 헤비 스틸 대열이 흐트러지자 미켈은 본대의 힘으로 적을 밀어붙여 짓밟으며 나아갔다.

가프 용병단의 반원형 포위망은 절구처럼 안으로 들어온 적들을 갈아 버렸다.

[우리 병력이 더 많다! 뭉쳐라! 내가 구할 것이다!]

루니 백작이 마나 진동 대검을 휘두르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뒤에 흩어져 있던 반격 군단 멕들은 루산과 시에나가 저지하는 바람에 선두에 합류하지 못했고, 강력한 루니 백작의 공격은 부르사 최강의 전사 슈야의 방패에 막혔다.

자신의 예리한 공격이 막히자 루니 백작은 경악했다.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가 문제가 아니라 루한 왕국 내부에 큰 우환덩어리가 들어왔음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장!]

무무족 족장의 아들이자 부르사 최강의 장군이었던 슈야 마우메가 루산을 불렀다.

[왜···?]

헤비 스틸을 베어 넘기고 있던 루산이 짧게 대답했다.

[우리가 부르사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변함이 없는가?]

루산은 헤비 스틸의 가슴에 마나 진동 대검을 강하게 찔렀다 빼며 대답했다.

[그렇소!]

슈야가 루니 백작의 강공을 방패로 흘려 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싸움에서 공을 세운 만큼 아라드 변경에 있는 우리 가족들 살림살이를 늘릴 수 있나?]

전투 노예인지 용병인지 다시금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야······.]

루산이 자신을 양쪽에서 공격해 오는 헤비 스틸의 압박을 피하며 동시에 두툼한 몸체를 빠르게 베어 버리고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하지! 정확히 셈을 해 줄 것이오!]

[알았다!]

슈야가 탑승한 레오파드 파워의 전투 도끼가 루니 백작의 헤비 스틸 머리 위로 강하게 떨어졌다.

쩡!

슈야의 도끼질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머리에 이어 양쪽 어깨가 움푹 파이고 깊이 박혔다.

쩡쩡쩡쩡!

헤비 스틸은 크고 작은 파편들을 사방으로 튀기다 잠시 후 허물어졌다.

전투 도끼를 든 슈야와 부르사 전사들이 거칠게 적의 진형을 찢어 버리고 가프 용병단 본대의 반원진이 착착 적을 집어 삼키면서 1전단은 루니 백작과 함께 쓰러졌다.

루산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파일럿 교체하고 나머지 전단도 각개 격파한다!]

자포리 포위망을 완성시키기 위해 달려간 2전단과 3전단도 1전단이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

밤베르크 백작은 루한 왕국의 주력 부대가 전선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부에 심어 놓은 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 유격 부대가 루한 내륙을 뒤집어엎고 다니는 바람에 전선을 유지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내부로 침투한 병력을 소탕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물린다고 합니다. 이미 피해가 막심하여 1개 기동 군단, 근위 전단이 쓰러지고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성과 행정청이 모두 무너졌답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참모들과 달리 밤베르크 백작은 흥분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사실 참모들보다 훨씬 복잡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기쁨만이 아니라 루산과 가프 용병단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 조카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야심, 그리고 친구였던 황제의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쳐야 하는가 하는 죄책감.

그러나 그는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해 길게 고민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시바스 왕국과 나머지 연합 병력을 견제하며 주력 부대를 모두 동원하여 루한 왕국으로 밀고 들어간다! 이번에 완전히 끝장 낼 것이다!”

“알겠습니다, 각하! 그런데 근위대와 남방군은 어떻게 할까요?”

근위대가 남방군 잔존 병력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근위대는 황태자를 모시고 돌아갈 때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네세베르 공략군과 논의하는 중이었다.

밤베르크 백작이 말했다.

“루한 왕국을 쓰러뜨리면 포위망은 저절로 풀린다. 황태자께서도 포위망을 뚫고 겨우 돌아가는 구차한 모습보다는 루한 왕국을 정벌하고 당당히 개선하시는 것이 훨씬 보기가 좋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