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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79화 (379/450)

379. 우리 모두를 위해

379. 우리 모두를 위해

노동자, 학생들의 무장 봉기는 노바를 큰 혼란으로 몰아넣었으나 결과는 그들의 열정과 비례하지 않았다.

마나포는 군대의 멕 나이트를 부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보였지만, 그것을 다루는 노동자 파일럿의 숙련도가 매우 떨어져 마나 진동 화살을 급격히 낭비하고 말았다.

멕 워커를 조종하는 노동자 파일럿들은 목숨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 마나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금방 감을 잡았다.

그럼에도 유효 사격을 위해 근거리에서 사용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무척 컸고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 않아 멕 워커의 피해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혁명군은 황궁 공격에 실패했고 수도 군단 사령부와 노바 출입 관문 장악에도 실패했으며 경찰 기동 타격대도 분쇄하지 못했다.

자연히 정부 청사와 노바 경찰청도 점거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들은 수도 군단 멕 나이트의 무자비한 진압에 쫓기다 결국 익숙한 동부 공업 지구로 물러났다.

동부 공업 지구 사태 이후 그곳에 입주해 있던 공장들이 보헨 공단으로 옮겨가면서 빈 건물이 늘고 주변 상권이 죽어 이 지역은 대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유령 도시가 되어 버렸다.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건설 업체들이 수많은 인부를 동원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베론 공작이 체포되면서 사업 자체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는 바람에 장비와 자재는 방치되고 인부들은 모두 돌아가 전보다 더 쓸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장 봉기 세력이 이곳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엘버 강을 통해 동지들과 보급품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진입하는 수도 군단 멕 나이트를, 전보다 사용이 능숙해진 마나포로 저지하면서 동부 공업 지구에 폐건물과 폐자재로 철벽을 쌓으면서 장기 농성을 대비했다.

수도 군단은 평소 사용하던 철재 방패보다 세 배나 두꺼운 방패를 특수 제작하여 마나 진동 화살을 막으며 진입을 시도했지만, 멕 나이트 수가 크게 부족한 데다 폐건물과 폐자재로 건설한 성벽이 너무 두껍고 마나포 유효 사격을 고려해 건설하는 바람에 함부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버 강을 통해 학생과 노동자들이 새로이 포섭한 동지들을 데리고 지원 물자를 싣고 동부 공업 지구로 진입하려다 경찰 순시선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는 정부의 진압이 무척 강경한 상태라 경찰 순시선은 정선 명령을 거부한 배를 강하게 들이받아 배에 타고 있던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두 물에 빠졌고, 겨울의 엘버 강에 빠진 노동자와 학생들은 순식간에 얼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경찰이 그 시체들을 건져 냉동 생선처럼 수레에 던져 넣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이 사진 한 장이 무장 봉기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

바덴은 오랜만에 상무대신 벤야민을 만났다.

황제가 공석이라 정식으로 임명받지 않아 재상은 아니지만 막심 황자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어 실질적으로 재상과 다름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오베론 공작이 휘두른 검에 맞았을 때보다 좋지 않았다.

무장 봉기가 일어난 이후 몇 년은 늙은 것 같았다.

벤야민이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바 경찰청장이 경질되었어요.”

바덴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공업 지구 사태가 발생한 이후 두 번째로 일어난 노동자, 학생들의 무장 봉기 사태.

노바 경찰청장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바덴은 후임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그동안 그리마를 띄우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그녀가 직접적으로 고위 관리들에게 청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노바 경찰청장을 새로이 밀어 사업적으로 유착하려고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사업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율리안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신문 기사에 그리마의 활약상 - 유흥가 폭력배에 대한 압도적인 소탕 건수, 오베론 공작 가문의 불법 행위에 대한 완벽한 조사 등 - 을 간간이 실어 그가 얼마나 유능하고 믿음직한 경찰인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숙박권을 그리마에게 제공했을 뿐이었다.

고위 귀족이나 고위 관리들은 유능한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유능하기만 해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적절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고 유연한 사고를 지녀 융통성이 있어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물로 보는 것이다.

바덴은 그리마가 선물한 숙박권으로 장원 별장에 투숙한 귀족, 관리와 그 가족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다해 매우 만족하고 떠나게 했다.

“그리고 동부 공업 지구 진압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상무대신의 말에 바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도 강경하게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수도 군단 멕 나이트 수가 부족하니까요. 동시 다발적으로 밀고 들어가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변경 군단을 동원해 끝내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

“이번 작전을 마치고 변경 병력은 변경으로 돌아가기로 했죠.”

필센 정부는 노바 바깥 서쪽에 주둔하고 있는 변경 각 구역에서 올라온 멕 나이트 병력을 마침내 해산시키기로 했다.

마나 연료와 괴수 부산물 생산에 더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에 노바 상황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마나 연료와 괴수 부산물을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노바가 혼란에 빠진 상황이면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어쩔 수 없어요.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끝내는 것이 맞아요. 지금 대학가와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반발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요. 좋지 않아요.”

바덴은 상무대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번 무장 봉기는 노바 백성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나라가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내부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불순한 세력, 이 나라를 파국으로 이끄는 급진 혁명 세력 정도로 이해하고 얼른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물에 빠져 꽁꽁 얼어붙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체를 경찰이 쓰레기처럼 함부로 던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노바 백성들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아직 겨울방학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학교에 나가는 대학생들이 늘어났고 경찰과 군대가 출근을 방해한다고 화를 내고 항의하는 백성들이 많아졌다.

바덴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이 시기에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그 사진이 신문에 실린 이후 노동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보고를 많이 들었다.

동부 공업 지구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전시 임금 동결법이 개정되기는 했으나 노동자들의 삶이 전보다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바르나 대첩 이후 이 전쟁이 곧 끝나리라고 환호했으나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가 사망하고 아우로라 연합의 대반격 작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전쟁은 기약 없는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엘버 강 동사 사건 사진은 백성들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도 군단이 지키고 있는 동부 공업 지구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려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늘어났고, 동부 공업 지구 외에도 다른 투쟁 거점을 마련하려는 시도 또한 증가했다.

바움 대학이 제2의 동부 공업 지구가 될 것이라는 소문, 노바 남동 공단에 노동자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잡지 못하면 노바는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 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덴은 과연 변경의 멕 나이트를 투입하는 것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게 될지 아니면 더욱 불을 붙이게 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요?”

상무대신이 바덴을 빤히 쳐다보고 반문했다.

“무장 반란 세력을 진압하는 데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겠습니까?”

바덴은, 같은 평민인 상무대신이라면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무장 반란 세력이라는 말에서 상무대신 벤야민의 생각이 모두 묻어 나왔다.

나라가 아우로라 연합과 어려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무장하고 반란을 일으킨 세력이라면 박멸해야 할 적이지 타협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확고한 태도에 바덴은 살짝 논점을 돌렸다.

“변경에서 올라온 멕 나이트가 매우 많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멕 나이트를 동부 공업 지구에 투입한다면 오히려 백성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까 싶네요. 반란을 일으킨 자들도 평민이고 반란 소식을 듣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평민이라 묘한 유대감이 있지 않겠어요?”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이 말에는 바덴도 해연히 놀랐다.

“신문에 자유를 주는 건 유익한 점보다 해악이 훨씬 큽니다.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지금까지 신문을 이용해 많은 이득을 보아 온 바덴은 벤야민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과연 신문들이 이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처음부터 자유가 없었다면 모를까 줬다가 빼앗는다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 폐지로 신문 기자들이 반발하여 오히려 과격한 노동자와 학생들 입장을 실어 주고 저쪽에 유리하도록 사진과 기사 논조를 배치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불길이 살짝 옮겨 붙은 백성들의 가슴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무장 봉기의 빠른 진압을 원하는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철저한 고민이 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바덴은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고 보급 물자 생산과 확보 현황,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자 공정 선정 방법, 아라드 왕국과 북부 동맹국 재건 사업 원조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점심 식사 시간에 가진 짧은 만남이었지만, 무척 고된 일을 처리한 것처럼 온몸이 녹초가 돼 버렸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바덴은 뒷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방학이라 바덴의 일을 돕고 있던 클라크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려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바덴은 순간 고심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

“노바 밖에 있는 변경 군단을 이용해 동부 공업 지구에 틀어박혀 있는 무장 봉기 세력을 진압하겠다는군요.”

“······!”

“멕 나이트가 천 대도 넘는다는데 그걸 다 들인다는 것인지 일부만 투입한다는 건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해요.”

“······.”

바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어쩌면 좋을까요?”

클라크는 입술을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덴이 다시 물었다.

“투쟁 세력뿐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이 나라를 위해······?”

클라크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이 나라를 위한다는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아요. 모두,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요?”

클라크는 누군가가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알려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노바에서 사귄 자신의 친구들이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아 있는 동부 공업 지구에서 변경의 멕 나이트들에 짓밟히는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어느새 역사학과 대학생이 된 변경의 집사 소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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