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82화 (382/450)

4부 1. 역사는 여러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4부 1. 역사는 여러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1차, 2차 대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클라크가 강의실에 앉아 있는 제복 차림의 앳된 학생들을 죽 훑어보며 말했다.

필센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제국 기사 아카데미 학생들이라서 한눈을 팔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너무 빤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 전 마지막 수업이라 마음이 이미 강의실을 떠나 집으로 향하고 있어서인지 대부분은 그렇게 열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클라크는 학생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강의를 계속해 나갔다.

“통일된 지휘 체계를 갖춘 강력한 군대, 물론 이 덕분에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죠. 이 대규모 군대를 떠받칠 수 있는 튼튼한 생산력, 그러한 생산력을 가능하게 한 사회 개혁, 그리고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한 황제 중심의 정치 체제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갖춰져 있었다 해도 대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다들 알겠지만, 2차 대전쟁 당시 아우로라 연합군의 규모는 필센 제국군의4배나 되었으니까요.”

4배나 되는 적을 격파했다!

아는 내용이지만, 들어도 들어도 가슴이 벅찬 이야기였다.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제국 기사 아카데미 1학년 생도들의 눈빛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10년 전에 끝난 전쟁에서 자신들의 부친, 친척, 선배들이 거둔 승리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자원, 즉 마나 연료를 우리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죠. 괴수가 사는 원시의 땅을 우리가 성공적으로 차지하고 관리했기 때문인 겁니다.”

“물론 아우로라 대륙의 국가들도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전쟁 전에 막대한 양의 마나 연료를 수입해 갔기 때문에 실제로 연료 부족으로 패배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마나 연료 공급이 차단된다는 불안감,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마나 연료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고 작전을 수립할 때 마나 연료를 마음껏 쓰지 못하고 스스로 제약을 걸게 되었어요.”

“반면 우리는 적국이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도록 마나 연료를 판매한 어리석은 짓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막대한 판매 수익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군비를 충실히 갖출 수 있었던 겁니다.”

“마나 연료를 언제든 확보할 수 있는 변경을 거의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것,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승리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어요. 그로 인해 아우로라 대륙의 많은 나라들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어요.”

클라크가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엄지와 검지로 잡고 생도들에게 보여 주었다.

번들번들 윤이 나는 작은 검은색 돌조각.

“마나석이에요.”

클라크의 말에 학생들의 눈이 더욱 반짝거렸다.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클라크가 맨 앞에 있는 생도에게 손가락 마디만 한 마나석을 넘겨주며 말했다.

“옆으로 넘기며 한 사람씩 구경해 봐요. 그거 내 급료보다 비싼 거니까 꼭 돌려주고.”

미소를 머금은 농담에 생도들 역시 생글생글 웃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마나석을 구경하고 옆 사람에게 넘겼다.

그러는 동안 클라크의 강의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쟁 기간에 아우로라 연합에 속했던 많은 나라들을 정복했어요. 우리 영토로 편입한 것이죠. 율리안 황제께서 새로운 영토에 대한 전후 복구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시고 새로운 국민이 된 점령지 백성들을 필센 제국의 백성들과 동일하게 대하는 포용 정책을 펴신 덕에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제국이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카수스 사람과 아우로라 사람들의 적대감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고 이번 전쟁으로 직접 피해를 입은 양 대륙 사람들 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죠. 내 부모, 내 가족을 죽인 나라를 좋아하기가 쉽겠어요? 불가능에 가깝겠죠. 전쟁이란 그런 것입니다.”

생도들이 어느새 방학은 완전히 잊고 진지한 표정으로 클라크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는 사이, 마나석이 강의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클라크의 손으로 전해졌다.

클라크가 그것을 다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로라 대륙에 대규모 마나석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사실로 밝혀졌어요. 만약 20년 전에 발견되었다면 2차 대전쟁은 우리가 패했을지도 모릅니다. 뭐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말이죠. 마나석에서 마나를 추출해 멕 나이트나 다른 기계의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2차 대전쟁 당시 아우로라 연합군의 병력이 우리의 4배, 아우로라 대륙의 인구가 우리의 7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은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혹자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필센 제국의 힘은 전에 없이 강하고 율리안 황제의 현명함과 관료들의 유능함과 국민의 진취성 또한 유례가 없기 때문에 마나석 광산의 발견은 우리 필센 제국의 성세에 더욱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말이에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은 늘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성기를 겪은 나라가 곧바로 패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국민이 평화를 구가하고 있을 때에도 군인은 경계의 눈초리를 번뜩여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 제국은 2차 대전쟁 승리로 무척 크고 강해졌지만, 그것이 1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마나석이 제국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할지 아니면 재앙의 될지는 바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역사는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클라크가 긴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는 어린 생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자, 그럼 첫 번째 방학, 잘들 보내기 바랍니다. 이상!”

학생장이 일어나 구령을 외쳤다.

“차렷! 교수님께 경례!”

생도들이 일치된 동작으로 경례하며 구호처럼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여기까지가 제국 기사 아카데미 수업에서 정해진 인사 방식이지만, 방학을 맞아 들뜬 목소리로 규정을 벗어나는 목소리들이 등장했다.

“방학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교수님!”

“두 달 뒤에 봬요!”

클라크가 미소로 일일이 답례하며 강의실을 나왔다.

다른 강의실에서 나오던 생도들이 클라크를 보고 경례를 했고 클라크는 걸으며 가볍게 답례했다.

사실 예전이라면 평민 출신인 클라크가 제국 기사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반 황제의 사회 개혁 이후에도 제국 기사 아카데미는 철저히 귀족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진까지 모두 귀족들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율리안이 황제가 되면서 그 불문율을 깨뜨렸다.

“필센 제국 멕 나이트 파일럿 가운데 평민 출신 비중이 절반이 넘은 지 30년도 더 되었는데 아직도 귀족 출신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은 이반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겁니다. 핏줄이 아니라 능력으로 증명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제국 기사 아카데미의 입학 자격이 귀족에서 평민으로까지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 점령한 아우로라 대륙의 학생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진 역시 신분 제약이 사라져 평민인 클라크가 제국 기사 아카데미의 역사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의 관성은 무척 강하여 클라크의 교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노바 대학 역사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변경과 마법 공학 발전의 역사 연구라는 훌륭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따 제국 기사 아카데미 역사학 교수로 임용되었음에도 기존의 교수들이 평민 출신 교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따돌렸던 것이다.

그에 대한 교수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율리안 황제가 제국 기사 아카데미 졸업식에 참석하여 클라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부터였다.

“하하! 변경에서 글을 모르는 아이와 어른들을 가르치던 기특한 소년이 제국 최고 아카데미의 교수님이 된 걸 보니 정말 반갑구나! 내가 그리던 우리 제국의 모습이야!”

클라크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루산이 온다고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10년 전 교수가 되었을 때 바덴에게 선물로 받은 탐탐 자동차는 세차를 잘 하지 않은 탓에 다소 퇴색되어 보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변경 특유의 날것 느낌이 나는 것 같아 좋다고 생각했다.

바덴이 볼 때마다 새로 나온 모델로 바꿔 준다고 해도 사양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자신의 차가 좋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젊은 교수 축에 드는 클라크는 먼지로 덮인 탐탐 자동차를 타고 제국 기사 아카데미 정문을 나서 대로로 접어들었다.

***

“그 계획은 대체 누가 세운 겁니까?”

루산의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가 화를 낸 것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밤베르크 공작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내가 의견을 냈소.”

루산이 밤베르크 공작을 쳐다보았다.

밤베르크 공작도 루산을 마주 보았다.

황제 율리안은 연신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었다. 어떤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 부드럽게 개입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상무대신에 이어 제국 재상에 오른 벤야민이 이 난감한 광경을 뇌리에 새기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필센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권을 휘두른다는 황제 폐하께서 이렇게 어찌할 줄 몰라 하시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하긴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

밤베르크 공작은 율리안 황제와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2차 대전쟁을 승리로 이끈 1등 공신으로 가장 큰 식민지를 다스릴 권한을 받았고 기존 필센 제국에서는 없던 제국군 총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한편 보름스 백작은, 10여 년 전에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 여러 날 신문 지상을 장식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고슬라 그룹 회장의 운 좋은 남편 정도로 기억하고 있으나,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공식 직함은 변경 8구역 통치 대리인.

율리안은 황제가 된 뒤로 8구역에 새로운 통치자를 임명하지 않고 루산을 대리인으로 두었다. 황족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 대리인이지 8구역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것이다.

사실 황족이 아니면서 변경 구역 통치자가 된 것도 대단하지만, 이 공식 직함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일개 변경 통치자인 이름 없는 황족 율리안을 황제로 만든 사람.

필센 제국 산업의 중추가 되는 고슬라 그룹과 피닉스 제철 그룹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변경 전 구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필센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유일한 명예 마법사.

그리고 규모를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운 가프 용병단의 단장.

사회 개혁 이후 봉건제가 폐지되고 귀족들의 사병 보유가 사실상 사라진 필센 제국에서 유일하게 강력한 사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율리안은 황제가 되면서 루산을 근위대장이나 비서실장으로 옆에 두고 싶어 했지만, 밤베르크 백작이 강하게 반대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고슬라 그룹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루산이 황제 가까이에서 권력까지 쥐고 있으면 너무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는 루산이 율리안 곁에서 멀찍이 떨어지기를, 정부에서 공식 권한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루산도 자신을 견제하는 밤베르크 백작과 노바 고위 귀족들과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변경에 남아 있어도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 때문에 고슬라 그룹이 타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변경 8구역 통치 대리인이 되고 백작으로 승작한 데 만족했다.

이반 황제 이후 작위 부여와 승작이 사라졌지만, 율리안이 부활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대전쟁에서 공을 세운 많은 장군들과 관리들을 돈 들이지 않고 격려하기 위해서 율리안 황제가 개혁 조치에 역행하는 정책을 부활시켰다고 비판했지만, 루산은 율리안이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기에 그 말을 기꺼이 믿었다.

어쨌든 율리안 황제에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 기껍지 않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있으니 황제와 재상이 곤란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루산이 말했다.

“공작님, 괴수 목장을 바다 건너 루한 땅에 설치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어렵겠지요. 그래서 그쪽 분야의 전문가인 백작을 부른 것이 아니겠소?”

변경에서 괴수나 다루는 전문가라는 뉘앙스가 밑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루산은 굳이 말꼬리나 잡고 늘어질 생각이 없었다.

밤베르크 공작이 말했다.

“오카수스 대륙에서 마나 연료를 생산하여 아우로라 대륙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하오? 여러 날 철도로 육지를 가로질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아우로라 대륙 깊숙이 운반해야 하지 않소? 그야말로 엄청난 낭비가 아니오? 아우로라 대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마나 연료 공급 방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일면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루산은 밤베르크 공작의 속셈이 너무나 빤하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