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4. 네오 우르사도 준비해 주세요
4부 4. 네오 우르사도 준비해 주세요
스승 가라로슈의 사망 이후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가 된 칼리슈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일단 가프 마법 연구소의 규모가 예전에 비할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프 마법 연구소의 주력 사업인 마나 연료, 윤활유, 멕 부품 생산이 20년 전에 비해 30배 이상 성장하여 필센 제국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멕 나이트 분야에서 아이언 워리어를 만드는 물랭 마법 연구소에 이어 2위, 멕 워커 분야에서는 생산한 지 10여 년 만에 1위에 올랐다.
게다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마나포와 전투 차량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분야의 마법 연구소들을 합병하고 생산 설비를 증설했다.
칼리슈는 늘어난 사업 분야, 늘어난 생산 설비, 늘어난 마법사와 엔지니어로 인해 할 일이 너무나 많아 차라리 생산 시설을 증축하고 관리하기만 하면 되었던 아라드 변경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그가 힘든 이유는 할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업 분야가 추가되고 새로운 마법사와 엔지니어가 대폭 증가하는 등 가프 마법 연구소의 규모가 커진 탓에 내부 갈등이 전에 비할 바 없이 심해진 것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이다.
가라로슈가 대표 마법사로 선출될 때만 해도 가프 마법 연구소는, 마나 연료 등을 생산하여 돈은 어느 정도 잘 벌지만, 변경의 이름 없는 마법 연구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가프 마법 연구소의 장래를 책임질 신규 사업 분야 진출을 위해 당시 고위 마법사들이 똘똘 뭉쳐 멕 나이트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는 가라로슈를 밀어 줄 수 있었다.
그 시도는 크게 성공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2차 대전쟁 특수에 힘입어 멕 나이트 분야 2위, 멕 워커 분야 1위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나 연료 등 기존 사업 부문에서 멕 나이트와 멕 워커 부문으로 주력 사업이 전환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업이 멕 분야 못지않게 커진 것이 갈등을 키우게 되었다.
2차 대전쟁 발발 직전에 벌어진 반란 사건으로 인해 변경 다른 구역들은 파일럿들이 반란에 연루되어 괴수 부산물 생산량이 급감한 반면 8구역은 루산이 장벽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괴수 목장을 설치하고 아라드 변경을 개척하여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나 연료, 윤활유, 각종 소모품 생산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기존 사업 분야를 관장하던 고위 마법사들로서는 가프의 장래를 위해 전에 가라로슈에게 대표 마법사 자리를 양보했으니 이제 자기들에게 양보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라로슈는 멕 나이트, 멕 워커, 마나포, 대형 거미 등 강력한 신규 사업들과 이를 위해 흡수한 마법사들을 등에 업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우리의 멕 나이트 사업이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다 해도 아이언 워리어 점유율에 비하면 갈 길이 멀었습니다. 멕 워커는 고슬라 그룹의 유통망에 힘입어 간신히 1위를 차지한 것이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이 분야에 좀 더 힘을 쏟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타당한 이유였으나 기존 사업 분야를 관장하던 고위 마법사들에게는 가프 마법 연구소 운영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처럼 들렸다.
“우리 쪽에서 대표를 맡는다 해서 멕 나이트, 멕 워커, 마나포, 대형 거미 사업을 등한시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얼토당토아니한 것 아니오? 같은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인데 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말 자체로는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가프 마법 연구소의 순수한 수익은 기존 사업 쪽에서 훨씬 높았다.
신규 사업 분야는 막대한 설비와 연구 비용을 계속 쏟아붓고 있어서 눈부신 판매량 증가에 비해 수익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 기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 이후 산업 발달에 막대한 양의 마나 연료와 윤활유가 필요했기에 가프 마법 연구소의 기존 사업 분야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운신하기도 어려운 가라로슈로서는 기존 사업 분야의 고위 마법사들 주장을 찍어 누를 수가 없었다.
후계로 삼기 위해 불러들인 제자 칼리슈는 너무 오랫동안 아라드 변경으로 가 있는 바람에 레이크 시티에서 별로 권위가 없었다.
양측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고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라로슈는 할 수 없이 루산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 내부의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으나 멕 나이트, 멕 워커, 마나포, 전투 거미 등 신사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라로슈의 요청에 응했다.
그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명예 마법사 자격으로 가프 연구소 고위 마법사들 앞에서 가프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대전쟁이 끝났으니 전쟁용 멕 나이트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레오파드 판매가 준다는 것은 필센 제국 내에서 가프 마법 연구소의 영향력이 준다는 말이나 다름없어요. 레오파드 판매를 늘릴 방법은 두 가지. 첫째는 변경용 레오파드 판매를 늘리는 것, 둘째는 연식이 오래되어 퇴역하게 되는 아이언 워리어 자리를 레오파드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변경용 레오파드 판매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겠지만, 어쨌든 한계가 있지요. 반면 전쟁용 레오파드는, 비록 대전쟁이 끝났다 해도 아우로라 대륙까지 지배하게 된 필센 제국으로서는 최소 2만 대의 멕 나이트는 유지하려 할 것이므로 여전히 레오파드 판매고를 높일 시장이 열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대표 마법사가 멕 나이트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정부 측 전문가나 고위 관리들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설득해 여전히 막강한 물랭 마법 연구소의 점유율을 가져올 수가 있겠어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가 멕 나이트가 아닌 마나 연료 전문가라고 하면 정부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이들이 멕 나이트 분야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루산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다.
레오파드를 이용한 작전으로 큰 공을 세워 이 새로운 멕 나이트 판매량을 높인 것이 바로 그였고, 새로 제작한 경량 멕 워커를 가장 많이 구입한 것이 그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농업 회사였으며, 이 경량 멕 워커를 필센 제국뿐 아니라 아라드 왕국, 부르사 왕국, 아우로라 대륙 등 세계 곳곳에 판매하는 회사 역시 바덴의 회사였다.
무엇보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전통 사업 분야인 괴수 부산물 생산량이 늘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루산 덕분이었다.
만약 루산이 괴수 목장과 아라드 변경의 괴수 부산물을 가프 마법 연구소에 판매하지 않기로 해 버리면 가프 측 마나 연료 생산 시설, 윤활유 생산 시설, 멕 부품 생산 시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가프의 규모가 커진 만큼 다른 마법 연구소의 견제 또한 강해져 가프는 다른 변경 구역에서 재료를 조달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루산이 신사업 부문 쪽의 손을 들어준 덕에 칼리슈가 가라로슈의 뒤를 이어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가프 마법 연구소가 레이크 시티로 자리를 옮기고 성장해 나가는 동안 이 도시에 없었기에 마법사와 엔지니어들로부터 진정으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내부 결속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루산이 찾아왔다.
칼리슈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노바에 다녀오신다더니 일찍 오셨군요.”
“하하, 폐하께서 일을 맡기시니 서둘러야죠.”
“어떤 일을······?”
루산은 칼리슈에게 밤베르크 공작이 제안한 루한 왕국 괴수 목장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 주었다.
평생을 변경의 마법 연구소에서 일해 왔고 그중 15년 이상 아라드 변경에서 살아온 칼리슈였기에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않았다.
“가능하겠습니까?”
“쉽지 않겠죠.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괴수의 생태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에 가프 측 마법사도 투입했으면 합니다.”
“귀한 연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인데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해야죠.”
칼리슈가 기꺼이 응했다.
“사실은 한 가지 사안이 더 있습니다.”
“뭡니까?”
루산이 전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클라크 교수가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마나석 발견이 해당 지역과 우리 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연구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겉으로 내세운 이유였지만, 루산은 율리안 황제의 밀명까지 말해 줄 수 없어 그렇게 둘러댔다.
“변경과 괴수 부산물이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 왔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마나 전문가는 아니라서 가프 측 마법사가 동행해 주면 좋을 것 같더군요. 마나석은 가프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을 테니 이참에 함께하면서 연구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괴수 부산물로 마나 연료를 생산하는 가프 마법 연구소로서는 마나석의 등장에 누구보다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나석의 밀도, 매장량, 추출 방식 등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이익, 나아가 존립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마법사들을 아우로라 대륙에 파견해 놓았을 것이기에 서로 충분히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야기를 들은 칼리슈의 표정 역시 괴수 목장 건설 건을 들었을 때보다 더 심각해졌다.
문제는 그가 마나 연료 부문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칼리슈가 말했다.
“이 문제는 부르쥬를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부르쥬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나 연료 사업 부문을 관장하는 마법사로 기존 사업 부문을 대표하고 있는 고위 마법사였다.
루산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죠.”
칼리슈가 사람을 보냈다.
잠시 후 칼리슈보다 한 세대 선배로 보이는 초로의 마법사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루산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백작님. 별일 없으시지요?”
“잘 지냅니다. 부르쥬 님도 잘 지내시죠?”
“저야 늘 같지요.”
루산은 부르쥬가 칼리슈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나 굳이 아는 체하지 않았다.
칼리슈가 부르쥬에게 루산의 이야기를 대신했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클라크 교수가 이번에 마나석 발견이 해당 지역과 우리 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연구해 보기 위해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간다는군요.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우리 연구소에서 마법사가 동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십니다.”
“음······.”
부르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루산에게 말했다.
“중요한 일이군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부르쥬 님.”
“별말씀을요. 클라크 교수의 일이라면 이미 박사 논문을 쓸 때부터 도운 적이 있는걸요.”
“그러시군요.”
“네. 제국 기사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기특한 사람이지요.”
루산이 미소를 짓자 부르쥬 역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짓다가 잠시 후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나석 광산 허가 문제는 언제 정리가 되는 것인지요?”
“그건 여전히 논의 중인 것으로 압니다.”
“만약 정부에서 마법 연구소들에 마나석 광산 개발의 자유를 준다면 마나석 광산은 지금보다 더 빨리 활성화될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마법 연구소들이 마나석 광산 개발에 뛰어든다면 마나석 광산 개발이 더 활발해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현재는 마나석 광산이 발견되면 필센 정부가 소유권을 가지고 해당 지역 식민지 총독이 개발권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부와 식민지 사이에도 개발권 가격을 두고 다툼이 있는데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마법 연구소를 끼게 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뿐 아니라 중요한 마나 연료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다고 보고 마법 연구소를 배제한 것이다.
그래서 마법 연구소들은 알음알음으로 식민지 총독들의 요청을 받아 마나석 광산 개발에 참여하거나 마나석 가공 사업을 비밀리에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나석 광산 개발이 양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음지로 숨어들고 있는 것이다.
루산이 말했다.
“언제까지 억지로 누를 수는 없으니 이 문제도 곧 결판이 날 테지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부르쥬의 협조 약속을 받아낸 루산은 그가 방을 나가자 칼리슈에게 말했다.
“루한에 괴수 목장을 설치할 때 괴수 운반을 위해 상당수의 멕 나이트를 동원하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때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30문 정도 가져갈까 생각 중입니다.”
“······!”
칼리슈가 깜짝 놀랐다.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는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비밀 무기였던 것이다.
“네오 우르사도 준비해 주세요.”
“······!”
칼리슈는 루산이 괴수 목장 설치 외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굳이 묻지 않았다.
자신이 알아야 할 일이라면 루산이 말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루산은 칼리슈의 방을 나온 뒤 8구역 간부들을 불러 괴수 목장 설치 건에 대해 의논했다.
준비할 일이 많았다.
루산이 변경에서 준비하는 동안 클라크도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