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7. 노력은 잘하는 편입니다
4부 7. 노력은 잘하는 편입니다
투릭 오제로는 아우로라 연합국의 3개 강국 페르보 제국, 루한 왕국, 시바스 왕국 같은 힘센 나라가 아니라 이들의 눈치를 보던 작은 나라 코벨 왕국의 기사였다.
첫째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 가문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없었던 그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출세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라드 왕국으로 출전했으나 약소국 출신 파일럿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공을 세울 기회는 없고 귀찮음만 많은 산악 지대 경계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루산이 이끄는 가프 용병단이 가벼운 기체인 레오파드 특성을 활용하여 아라드 레인저의 도움을 받아 산을 넘는 과정에서 그가 주둔해 있던 마을을 습격하게 되었고 그때 포로로 붙잡혔다.
이후 룬드 항 습격 작전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되었고, 룬드 항 작전을 성공시킨 뒤에는 아라드 변경에서 전진 사냥 기지를 건설하는 등 포로 생활을 했다.
그러다 루산이 구귀족파 기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르나 왕국으로 갔을 때 아우로라 연합군 출신인 그를 길잡이로 데려갔다.
그때 최선을 다해 루산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루산은 그를 풀어 주려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
“지금 돌아가 봐야 탈영병 취급을 받거나 패전국의 일개 기사가 될 뿐이겠죠. 전쟁도 곧 끝날 것 같으니 그때 포로로 잡혀 있다 풀려난 것으로 해 주십시오.”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때까지 변경에서 파일럿으로 일하게 해 주십시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어렵지 않죠.”
“마지막으로 혹시 대장님이 아우로라 대륙에서 어떤 사업을 하실 생각이라면 코벨 왕국의 사업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눈치가 빠른 그는 루산이 일신의 무력이 대단할 뿐 아니라 변경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가프 마법 연구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라드 왕국을 가볍게 통과하고 부르사 왕국의 지배자와도 막역한 사이라는 것도 목격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루산의 눈에 들기로 마음먹고 멕 나이트 시가전이 벌어져 건물이 수없이 무너지는 위험천만한 라브나 시에서도 구귀족파 구출 작전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후 루산은 그를 바덴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고향인 코벨 왕국으로 돌아가 고슬라 그룹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오제로 상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오제로 상사는 반달 식품의 식자재, 양념, 간편식과 간단 조리식, 바덴이 많은 공을 들인 홍차 세트부터 붐붐 자동차에서 생산한 승용차와 화물차,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생산한 멕 워커까지 판매했다.
대전쟁 이후 귀국한 그는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지만, 이미 큰 세상을 경험했기에 작은 나라 코벨 왕국에서의 성공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자신의 시장을 넓혀 나가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센 제국의 총독들과 식민지 회사들, 필센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나라의 권력자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우로라 연합의 약소국 출신, 귀환 포로 출신이라는 점으로 인해 필센 제국 사람들에게는 무시와 조롱을 받았고, 아우로라 사람들에게는 필센 측에 붙은 배신자라며 적대적인 시선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변경에서의 포로 생활도 견뎌낸 악바리였으며 기회를 포착할 때까지 꾹 참다가 결국 고슬라 그룹과 연을 맺을 정도로 끈기가 있었다.
그는 세심하고 광범위하게 정보를 모아 나갔고, 그 정보를 고슬라 그룹에 제공하여 도움을 주면서 필요한 도움을 받아냈다.
그러면서 판로를 점점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바덴에게 있어 아우로라 대륙에서 사업과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중요한 인물과 주목 받는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믿을 만한 현지인이 바로 투릭 오제로였다.
물론 고슬라 그룹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을 수 있지만, 현지에서 사람을 만나고 필요한 일 처리를 하려면 현지 감각이 있는 사람이 더 도움이 된다.
그래서 클라크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클라크 교수님은 연구 명목으로 오셨지만, 실제로는 보름스 백작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마나석과 관련하여 부정을 저지르거나 딴생각을 품고 있는 식민지 총독들을 파악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군요?”
이야기를 들은 투릭이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맞습니다.”
“그 자체로 상당히 위험한 일인데, 동행한 가프 연구소 마법사들에게는 목적을 들키지 않아야 하니 어렵기까지 하군요.”
“얼마나 위험하다고 보십니까?”
“페르보 제국과··· 아, 물론 지금은 제국이 아니죠.”
“괜찮습니다.”
“대전쟁도 결국은 마나 연료를 장악하기 위해 벌어진 것 아닙니까?”
“그렇죠.”
“ 페르보와 인근 나라들뿐 아니라 아우로라 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마나석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필센 제국에 편입되지 않은 나라의 권력자들이나 아우로라 대륙의 마법 연구소들에서도 온갖 명목으로 개발에 뛰어들기 위해 사람을 파견하고 있고, 무지렁이 백성들이나 유랑민들도 금맥을 캐겠다는 마음으로 페르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소한 광산에서 광부는 될 수 있겠지 하고 들어오는 사람도 많고요. 말하자면 대륙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대륙이 들썩일 리는 없다.
워낙 과장된 표현이라 클라크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고 투릭이 덧붙여 설명했다.
“아우로라 대륙의 마법 연구소들은 대전쟁 패배로 사실상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구입해 줄 나라가 사라졌으니까요. 그런데 마나석이 발견되면 마나 연료 가공으로 새로운 숨통이 트이게 되는 겁니다. 사활을 걸고 뛰어들 수밖에 없죠.”
“이해가 됩니다.”
“아우로라 대륙의 나라들, 그러니까 필센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나라들은 필센 제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언제든 필센이 자신들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미 3대 강국이 무너졌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마나석이 머나먼 오카수스 대륙이 아니라 가까운 페르보에서 나온다면 조달하기가 훨씬 쉽지 않겠어요? 어떻게든 조달하여 마나 연료를 자체적으로 수급한다면, 아우로라 연합군 출신 망명객들을 이용해 필센 제국과 다시 한번 붙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클라크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독들이 정부 방침을 잘 지킨다면야 물론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죠. 마나석을 발견하면 정부에 보고하라. 잘 지키면 무엇이 문제겠어요.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가 않지요. 필센 정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총독들마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페르보 땅을 다스리게 된 총독들은 사실 실망감이 큽니다.”
“무엇에 실망했다는 겁니까?”
“그래도 페르보가 강한 나라였으니 총독이 되어 큰 몫을 챙길 수 있겠거니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점령을 마치고 보니 별것도 없더란 말이지요. 전쟁 자금으로 이미 국고를 탕진했고,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된 바람에 대도시는 무너지고 농지는 단단히 굳어 버렸죠. 게다가 결정적으로 필센 제국이 동화 정책, 유화 정책을 방침으로 내걸었어요. 이 땅의 백성들을 함부로 쥐어짤 수가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쥐어짜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껏 쥐어짜는 건 어려워요. 그렇다 보니 부하들에게 넉넉히 나눠 줄 수가 없어요.”
“부하들?”
“식민지 총독은 보통 군단장급 아닙니까? 군단장 혼자 전쟁을 했습니까? 멕 나이트 전단 세 개, 마나포 부대 한 개, 수송 부대 한 개, 공병 부대 한 개, 보병 사단 한두 개. 파일럿 숫자만 최소 3백 명에서 많으면 1천 명, 보병까지 하면 2만에서 5만 사이를 거느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내가 식민지를 다스리게 되면 너희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이렇게 약속하고 부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막상동화 정책이라는 강력한 제약이 걸려 버리자 약탈을 못 하게, 양에 차게 실컷 못 하게 된 겁니다. 불만이 찰 수밖에 없죠.”
투릭의 설명을 듣다 보니 클라크는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바르나처럼 고슬라 회장님께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키운 식민지는 10년쯤 지나면 달콤한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되겠지만, 어느 총독이 10년 후를 보고 폐허가 된 땅에 거금을 쏟아붓겠습니까? 그럴 만한 자금도 없을 테고 말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바덴이 민망한 미소를 지었으나 대화에 끼어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말씀은 페르보 땅의 총독들 대부분이 마나석 부정 거래와 관련이 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가문이 탄탄한 고위 귀족을 제외한 총독들을 제외하면 모두 그렇다고 봐야죠. 이건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부하들에게 포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게 시작하다가 이제 몸에 배어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
“마나석 발견을 위해 애를 쓰지 않는 총독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땅에서 마나석이 발견되지 않은 사람은 많지만 말입니다.”
클라크는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마나석이 발견되지 않은 식민지는 갈 필요가 없겠군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마나석이 발견되었지만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식민지로 가서 매장량과 품위를 확인하고, 누구와 거래했는지를 알아봐야겠군요. 그러면 단순한 부정인지 우리 제국에 해를 끼칠 것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인지 그걸 넘어서 딴마음을 품은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정부에 보고되지 않은 마나석 광산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까요?”
클라크의 질문에 투릭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가 너무 쉽게 대답하자 클라크가 바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투릭의 자신감을 보장해 주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오제로 사장님.”
“별말씀을요. 덕분에 마나석 사업의 실태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그때 바덴이 말했다.
“알아서 잘들 할 테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곧바로 마나 통신으로 연락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그럼 몸조심하세요.”
두 사람은 바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바르나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투릭의 운전기사가 자신의 사장을 보고 얼른 자동차를 갖다 댔다.
노바에서 수입한 신형 탐탐 자동차였다.
두 사람이 타자 자동차가 출발했다.
“가프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개입한 광산으로 먼저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에 다른 광산으로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교수는 이번 조사에 적합하지 않으니 상황에 따라 다른 신분으로 소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게 좋을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우로라의 마법사나 사업가 같은 게 좋겠죠. 아우로라의 귀족이나 국왕의 밀명을 받은 신하가 나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 하시죠.”
“알겠습니다.”
“연기는 잘하십니까?”
투릭이 웃으며 묻자 클라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노력은 잘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