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91화 (391/450)

4부 10.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4부 10.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아라드 왕국과 아라드 변경 구역의 경계에는 변경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단지가 있었다.

마나 연료, 윤활유 생산 공장, 괴수 부산물 가공 공장 등이 있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생산 단지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가 처음 아라드 변경에 들어왔을 때는 이 시설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변경 8구역에 있는 생산 시설보다 규모가 더 컸다.

아라드 변경 구역이 서쪽으로 더욱 확대됨에 따라 이 생산 시설도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대신 변경 구역 안쪽으로 철도를 놓아 괴수 부산물을 빠르게 운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하여 아라드 변경 구역에는 아라드 왕국 쪽에서 들어온 철로가 가프 마법 연구소 생산 단지를 기점으로 아라드 변경 쪽으로 부챗살처럼 퍼져 있었다.

괴수 목장들과 전진 사냥 캠프에서 획득한 괴수 혈액과 각종 부산물들이 개척 도시로 운반되고 그곳에서 열차에 실려 이곳까지 오는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아라드 변경 생산 단지에서는 직접 생산한 마나 연료와 윤활유, 각종 소모품 그리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취급하지 않는 괴수 부산물을 열차에 실어 아라드 왕국에 판매할 일부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전량을 필센 제국으로 실어 나른다.

그리고 아라드 변경에 필요한 용기, 자재, 생필품, 기계 등이 열차에 실려 필센 제국을 출발해 아라드 왕국을 거쳐 아라드 변경으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아라드 왕국과 아라드 변경 구역을 잇는 철로를 막는 것은 가프 마법 연구소와 아라드 변경 구역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행위였다.

사실상 적대 행위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라드의 국왕 코우볼라도 노골적으로 철로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간간이 자체적으로 변경 개발에 나서겠다며 멕 나이트와 병력을 보냄으로써 열차 이동을 방해할 뿐.

쿵쿵쿵쿵!

003을 비롯한 루산 일행의 멕 나이트들이 아라드 왕국과 아라드 변경 구역의 경계를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는 양측 멕 나이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003은 마나 진동 도끼와 원형 방패로 무장한 아라드 변경의 레오파드 파워들을 지나 아라드 왕국군 진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실제로 멕 나이트들이 대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레오나는 시에나가 조종하는 멕 나이트 어깨 위에서 그 모습을 긴장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003의 외부 확성기를 통해 루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는 루산 보름스입니다. 책임자가 누굽니까?

갑작스러운 루산의 등장에 아라드 왕국군 파일럿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루산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식 직함은 필센 제국 변경 8구역 통치 대리인에 불과하지만, 아라드 변경의 실질적인 지배자이며 현재의 필센 제국 황제를 만든 사람.

그리고 마리노 왕국의 침공을 물리치고 대전쟁에서 아우로라 연합군을 무찌른 아라드의 구국의 영웅이 아닌가!

아라드 왕국 진영에서 레오파드 스피드 한 대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 아라드 왕국군 수도 군단 3전대장 키엘입니다, 각하!

수도 군단이라고는 하지만, 아라드 왕국 수도에는 군단급 기동 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규모를 부풀리는 부대 호칭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루산은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한 아라드 왕국군 지휘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각하!

003이 다가가자 아라드 왕국군 레오파드 스피드도 걸어 나왔다.

두 기체가 가까워지고, 루산이 먼저 가슴 덮개를 열고 조종실 문에서 나와 가슴까지 올린 멕 나이트 손바닥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수도 군단 3전대장 키엘도 똑같이 자신의 멕 나이트 손바닥 위로 걸어 나왔다.

키엘이 먼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루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키엘 전대장. 그런데 지금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키엘이 당황한 와중에도 공식적인 목적을 말했다.

“우리 왕국에서 자체적으로 변경 개발을 하기로 결정하여 변경 개척단을 창설했습니다. 우리 부대가 그 일을 맡았지요.”

“변경 개척단이라······. 변경 개발권은 이미 가프 마법 연구소에 있고, 가프 마법 연구소는 우리 아라드 변경 본부와 변경 운영 계획을 체결해서 우리가 변경 개발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이군요.”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루산의 말에는 위엄이 있었다.

키엘이 애써 변명했다.

“결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변경 개발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개발되지 않은 미개척지를 개발할 계획이니까요.”

이 말 또한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라면 굳이 이 길로 오지 말고 다른 길을 뚫어 보는 건 어때요? 빈 땅을 개간하기 위해 남의 밭을 밟고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라드 왕국에서 변경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변경 구역과 인간 세상의 경계는 대개 자연적으로 결정이 된다.

괴수가 함부로 넘어갈 수 없는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 넓은 강 같은 것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아라드 왕국에서 변경 구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 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결국 변경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아라드 왕국의 주장은 가프 마법 연구소에 주었던 변경 개발권을 전처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키엘이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입술만 달싹이자 루산이 말했다.

“아라드 병력이 길을 막고 있어 열차가 다닐 때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저, 저희는 결코 철도를 막고 있지 않습니다. 옆으로 비켜서 있지요.”

“그렇다 해도 거대한 멕 나이트들이 철도 옆에 늘어서 있는데 기관사들이 마음 편히 지나다닐 수 있겠어요?”

“여, 옆으로 더 비키도록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루산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아라드 왕국 수도 군단의 전대장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사실 이 문제는 전대장이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

“그렇지 않아도 국왕 폐하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는데, 온 김에 가서 이 문제도 의논해 볼 테니 그때까지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어떻습니까? 우리는 동맹이고, 협력 관계에 있는 동반자이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키엘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각하.”

“그러면 우리가 수도까지 갈 수 있게 길을 터 주겠어요?”

“네, 각하.”

잠시 후 아라드 왕국군 수도 군단 멕 나이트가 길을 터 주자 루산 일행이 지나갔다.

아라드 왕국의 멕 나이트 한 대가 맨 앞에서 길 안내 명목으로 앞장을 서는 가운데 루산 일행이 탄 멕 나이트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때 키엘이 은밀히 루산에게 마나 통신을 보내왔다.

[각하, 조심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죠?]

[근위대에는 옛 영주의 자제들이 많습니다.]

[······.]

키엘은 루산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줄 알고 추가로 설명했다.

[고슬라 그룹과 각하를 싫어하는 자들이 국왕 폐하 주위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산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슬라 그룹이 아라드 재건 프로젝트라는 초대형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라드 왕국이 토지 개혁을 포함하는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시했고, 당시 재상으로 있던 니트라 공작과 국왕은 그 내용을 받아들였다.

영주들은,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땅을 빼앗겼다.

당연히 반발을 했으나 힘으로 찍어 눌렀다.

그 강력한 사회 개혁 덕분에 아라드 재건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어 아라드 왕국 최대 평야 지대인 호리아 평원은 전후 10년 만에 최대 곡물 생산량을 기록하여 잉여 생산물을 수출까지 할 수 있었고, 수도와 호리아 평원의 공단에 많은 업체들이 입주해 아라드 왕국의 소득을 비약적으로 올려 주었다.

이 사업을 주도한 니트라 공작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그가 사망한 뒤에도 그를 따르던 개혁 세력이 아라드 왕국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새로 왕이 된 코우볼라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그래서 코우볼라는 개혁 세력을 미워하는 옛 영주들과 손을 잡고, 개혁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라드 왕국의 도시와 마을과 농지를,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투입하여 재건하고 발전시킨 고슬라 그룹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장악하려 했으며, 루산과 가프 마법 연구소가 십 년 이상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발전시킨 아라드 변경을 가로채려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루산은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아라드 왕국에는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옛 영주들뿐 아니라 재건 프로젝트의 수혜를 입어 큰 사업가로 변신한 귀족들, 니트라 공작을 따르던 군부의 장군들이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복고 세력에 맞서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땅을 가지게 된 자영농들과 전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된 도시민들이 든든하게 나라의 기초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라 함부로 개입할 경우 필센 제국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을 걱정했기에 굳이 나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별일 없을 것입니다.]

루산은 전대장 키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철길 옆으로 난 작은 도로를 따라 수도로 향했다.

***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소?”

아라드 왕국의 국왕 코우볼라는 갑자기 나타난 루산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맞이했다.

“폐하께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보시오.”

“밤베르크 공작이 다스리는 루한 땅에 괴수 목장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괴수를 이동시켜야 하는데, 괴수를 무사히 옮기는 데 필센 제국을 통과하는 게 나을지 아라드 왕국을 통과하는 것이 나을지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만약 아라드 왕국을 통과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고자 미리 온 것입니다.”

“흐음······.”

“열차를 이용할 것이고 멕 나이트로 철저히 호위하여 아라드 왕국에 조금의 피해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코우볼라 왕은 대답하는 대신 한참 동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 비꼬는 투로 말했다.

“우리 왕국은 바로 붙어 있는 변경의 괴수도 구경하지 못하는데, 귀국은 바다 건너 식민지까지 괴수를 옮겨 키우려 하다니, 참 대단하구려.”

“······.”

“어쩌겠소? 경이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코우볼라는 루산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었다.

“이왕 괴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변경 개발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소. 어째서 아라드 변경 본부는 우리의 독자적인 변경 개발을 막는 것이오? 우리 변경 개척단이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무력으로 막고 있다고 하던데, 이게 옳은 일이오?”

“······.”

“아라드 변경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개척하지 않은 땅에서 우리가 스스로 개발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을 막다니, 이게 과연 동맹국의 의사인지 아니면 경의 의지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소. 게다가 아라드 변경의 백성들은 죄다 우리 아라드 왕국의 백성들이 아니오? 이렇게 교류를 차단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소.”

코우볼라가 외교적 언사라고 볼 수 없는 힐난의 말들을 쏟아냈지만, 루산은 흥분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과거에는 청년이었으나 이제는 중년이 된 동맹국의 왕이 왜 이렇게 경솔한 언행을 하는지, 따로 노림수가 있는지 아니면 욕심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얼 믿고 이런 무리한 일을 진행하면서 나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일까?’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루산은 루트 오베론을 너무 오랫동안 쉬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그에게 아라드 왕국의 내부 사정을 철저히 파악하도록 지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코우볼라에게 말했다.

“폐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아라드 왕국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툼밖에 더 일어나겠습니까? 원하는 게 정녕 그것입니까? 다툼이 일어난다면 어느 한 쪽은 크게 피해를 입을 텐데, 피해를 입는 쪽이 아라드 변경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그는 굳이 이 생각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이미 코우볼라를 바라보는 루산의 눈빛은 사자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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