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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92화 (392/450)

4부 11. 털어나 봐요

4부 11. 털어나 봐요

코우볼라는 루산의 눈빛에 순간 소름이 돋고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니트라 공작이 죽기 전에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폐하의 뜻은 잘 압니다. 그러나 약한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참을 줄 알고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

“고슬라 그룹을 압박하면 우리나라를 지탱하던 자본이 다 빠져나가 우리는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될 것입니다.”

“······.”

“섣불리 변경을 넘보지 마십시오. 루산 보름스 백작을 자극하지 마세요. 그가 지금은 비록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변경에서 겨우 한 자리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레오파드 네 대로 마리노 공화국을 물리쳤고, 레오파드 1개 전대로 아우로라 연합군을 패퇴시켰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센 북부 전선에서 굴다크 공작이 이끄는 아우로라 연합군을 물리쳤고, 부르사 왕국을 통일시켜 왕의 조카에 불과하던 므라드를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

“이름 없는 일개 변경 통치자를 대제국의 황제로 만든 자입니다. 그러고도 숙청되지 않았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밤베르크 공작이 왜 그를 살려두는 것일까요?”

“그야 율리안 황제가 총애하니까 그렇겠지요.”

“아니지요. 그건 오히려 죽일 이유가 되지요.”

“흐음······.”

“죽이지 못하는 겁니다. 시도했다가 죽이지 못하고 역으로 당할 것이 두려운 겁니다.”

“······!”

“참고 또 참으십시오. 우리는 필센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고슬라 그룹과 보름스 백작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강해지십시오.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코우볼라는 왜 하필 죽기 전 니트라 공작의 말이 지금 떠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루산의 눈빛을 보고 잠시나마 위축되고 두려움을 느낀 것이 불쾌했다.

‘재상, 당신이 틀렸어요. 루산 보름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경에 머물러 있어요. 힘이 있다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코우볼라는 한순간 주눅 들었던 사실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

“지금 우리나라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말하라 했소?”

“예, 폐하.”

“좋소! 나는 변경 개발권의 변경을 원하오.”

코우볼라가 이렇게 세게 나올 줄 몰랐기에 루산은 잠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 침착하게 물었다.

“어떻게 바꾸길 원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필센 제국의 경우에는 변경 땅을 개척한 뒤 시간이 지나 안전하다고 확인되면 일반 영토로 편입이 되는데, 우리 아라드 변경은 그런 내용이 전혀 없소. 개척이 끝나고 괴수를 볼 수 없는 땅도 계속 변경에 속한단 말이오. 이 부분을 필센 제국 변경 정책에 준하여 바꾸어 주기를 바라오.”

“그것이 전부입니까?”

“또 있소.”

루산은 일단 묵묵히 들었다.

“변경 개발권 보유 기간을 명확히 해 주기를 바라오. 30년이면 30년, 50년이면 50년, 확실히 해야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독점적으로 이용한단 말이오? 그리고 우리가 변경을 돌려받기 전에 변경 운영 방법을 습득해야 하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변경 개척단을 받아들이고 변경 통치와 운영 방법을 전수해 주기를 바라오.”

루산은 코우볼라의 요구에 기가 막혔다.

대군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침탈된 나라에 레오파드라는 신형 멕 나이트를 제공해 주었다.

워낙 가난하여 멕 나이트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기에 변경 개발권을 레오파드 대금으로 받기로 했다.

변경 개발을 진행할 여력이 없는 나라라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변경을 대신 개발해 주고 그 대가로 일정한 세금도 내기로 했다.

게다가 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피란민 수십만 명을, 막대한 물자를 투입하여 굶어 죽지 않게 돌봐 주었고, 마을과 도시를 세우고 농지를 개간하여 살길을 열어 주었다.

이제 안정화되었으면 그 땅을 아라드 왕국에 내놓으라는 말인가?

필센 제국의 변경 정책은, 필센 제국 정부가 변경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투입하기 때문에 변경 땅이 안정화된 다음에 일반 영토로 귀속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아라드 변경을 안정화시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꾸는 데 아라드 왕국이 들인 노력과 비용은 전혀 없었다.

모두 자신과 변경 8구역, 가프 마법 연구소의 자금과 노력으로 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안정화된 땅은 아라드 왕국으로 귀속시키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었다.

루산은 그러나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동안 아라드 변경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덴을 알게 된 이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덕분이었다.

“아라드 변경 개발권의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폐하?”

“음?”

“기본적으로 가프 마법 연구소는 변경 개발권을 레오파드 판매 대금에 갈음하여 받은 것입니다. 그동안 아라드 왕국으로 들어온 레오파드는 세 종류의 모델을 모두 합하여 4백 대가 조금 넘습니다. 가프 연구소가 제공한 것은 기체만이 아니죠. 그동안 아라드 왕국군이 사용한 연료와 부품, 수리·정비 비용 등 운용비를 모두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계산은 해 봐야겠지만, 3억 5천만 골드가 넘을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에 코우볼라와 아라드 왕국 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우볼라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반박했다.

“그래 봐야 그동안 아라드 변경에서 획득한 괴수 부산물 수입이 그보다 훨씬 많을 거 아니오?”

“그 역시 계산을 해 봐야겠으나 변경에 쏟아부은 액수도 감안을 해야지요. 가프 마법 연구소가 아라드 변경에 건설한 생산 공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아라드 변경으로 들어온 아라드 백성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데 들어간 식량, 의복, 건축 자재, 농기구와 농기계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까지 들어와 있는 멕 워커는 2천 대가 넘습니다. 변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멕 나이트와 운용비도 계산해야겠지요?”

듣고 있던 대신들의 눈동자가 떨렸다.

“게다가 지금이야 철도가 놓여 수월하게 들어오는 편이지만, 처음에는 멕 워커로 설비와 부품, 식량과 생필품을 짊어지고 원시의 땅을 한 달 넘게 가로질러 왔습니다. 그 운송비까지 고려해 볼까요?”

“흐음······!”

여러 신하들에게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레오파드 간편식만 한 달에 20만 상자가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아라드 변경에 들어간 레오파드 간편식만, 운송비를 제외하고도 180만 골드가 넘을 것 같군요. 운송비를 계산하면 몇 배는 더 나올 테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비용보다 곡물, 멕 워커, 가축, 농기계, 건축 자재, 생산 설비 멕 나이트 운용비 등의 항목에 소요된 금액이 훨씬 많겠지요. 다 합치면 아라드 왕국에 판매한 레오파드와 그 운용비보다 아라드 변경 개척 비용이 더 클 것입니다. 과연 이 비용을 다 제하고도 남을 만큼 수입을 올렸을까요?”

“믿을 수 없소! 그건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오?”

신뢰가 없다면 관계 지속이 어렵다.

그러나 루산은 아직 그 단계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은 엄청난 액수에 충격을 받아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루산은 여전히 상대와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폐하, 저도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변경 통치를 위해 기록해 놓은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소요 비용을 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당한 기간이 지났기에 그것을 계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리고 저는 루한으로 가 봐야 하기 때문에 당장 그 자료들을 가져와 계산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돌아오고 나서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레오파드 판매와 운용에 관한 대금을 정확히 계산하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괴수 부산물로 얻은 수입을 감안하여 변경 개발권 보유 기간을 양측이 논의해 보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루산의 제안에 아라드 왕국 대신들이 깜짝 놀랐다.

단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가프 연구소와 루산 보름스가 변경에 쏟아부은 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필센 제국이 이렇게 강성한 상황에서 - 비록 말에 불과할지라도 -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언젠가는 돌려주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라드 왕국 대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왕이었다.

“뭐, 바쁘다 하니 그렇게 합시다. 그래도 협의를 언제 할지 대략적인 날짜라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오?”

코우볼라 왕이 대체 무얼 믿고 저리 강하게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루산은 다시 한번 감정을 누르고 잠시 생각해 보다 말했다.

“반년 뒤로 하시지요. 루한 왕국에서 충분히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챙겨 다시 오는 데까지 그 정도는 걸릴 테니까요.”

“알았소. 그럼 내년 3월에 논의하는 것으로 합시다. 설마 말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은 아니리라고 믿겠소.”

신하들은 코우볼라의 언행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루산은 끝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룬드 항까지 우리 일행이 타고 온 멕 나이트를 싣고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뭐 알아서 하시오.”

귀찮다는 듯 대꾸한 코우볼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언제 허락 받고 했다고······.”

루산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참았다.

루산이 나가자 신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국왕에게 진언했다.

“폐하, 언행을 신중히 하시는 게 좋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사절도 예의로 대하는 것이 법도인데 우리나라에 무척 중요한 인물인 보름스 백작을 어찌 이렇게 거칠게 대하신단 말입니까?”

“시끄럽소! 보름스 백작 눈치나 보려거든 썩 물러가시오!”

코우볼라는 신하들을 쫓아내듯 내보내고 그 역시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비서의 안내를 받아 내전 집무실로 한 사람이 조용히 들어왔다.

“오셨소!”

“예, 폐하. 어찌 되었습니까?”

“경이 시키는 대로 했소.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잘하셨습니다.”

“정녕 이리 해도 아무 탈이 없는 것이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만 하시면 아라드 변경의 운영권은 아라드 왕국으로 귀속될 것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경만 믿겠소.”

“예, 폐하!”

그는 코우볼라에게 예를 표하고 밖으로 나와 비서를 따라 왔던 길로 걸어갔다.

건물 그늘 아래로 지나갈 때 잘 식별되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그늘 밖으로 나오자 환하게 드러났다.

그는 바로 과거 루산 보름스의 상관이었던 트리어 지겐이었다.

***

루산 일행은 아라드 왕국의 수도에서 멕 나이트를 화물 열차에 싣고 룬드 항까지 이동했다.

그곳에는 루산의 연락을 받은 고슬라 그룹의 도시 계획 팀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루한에 건설할 괴수 목장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루산의 연락을 받은 그들은 넓은 부지를 순찰하기 위해 자동차도 몇 대 가져왔는데, 도로가 아닌 험지도 다닐 수 있도록 붐붐 자동차에서 새로 연구하고 있는 ‘신타르’였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고슬라 그룹다웠다.

루산 일행은 멕 나이트, 신타르 자동차 세 대와 함께 화물선에 올랐다.

신타르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유심히 살피던 루산은 이내 관심을 끄고 생각에 잠겼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어릴 때 이후 오랜만에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는 여행을 하는 것이라 무척 들뜬 레오나가 뱃머리에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루산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뭔데 그래요?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요? 털어나 봐요.”

“하하, 우리 딸이 아빠 고민을 해결해 주려고?”

“그까짓 거 해결해 주지, 뭐.”

“하하, 고맙다.”

루산은 이해할 수 없는 코우볼라의 언행은 잠시 잊기로 하고 딸과 함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멀어지는 룬드 항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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