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94화 (394/450)

4부 13.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4부 13.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나석 광산 갱도 안에는 천장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불이 밝혀진 램프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불빛은 깜박임이 전혀 없이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램프는 마나 등인가요?”

클라크가 묻자 빌르봉이 대답했다.

“마나 등인데, 마나 연료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나석을 넣습니다. 생명 구슬에 깃든 마나를 바로 사용하던 옛날 방법을 활용한 것이죠.”

“아!”

클라크는 마나 연료의 역사를 연구해 왔기에 마법사의 설명을 듣자마자 이해했다.

괴수 혈액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괴수의 생명 구슬만 사용했다.

밤에 불을 밝히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고가의 괴수 생명 구슬을 겨우 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으니 무척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기술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크가 놀란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불빛이 전혀 깜박이지 않고 일정한 걸 보니 안정화 기술이 상당히 발전한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마나석에서 균질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도 가능한 것 아닌가요?”

빌르봉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동료 마법사들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크루소와 아발롱이 미소를 지었다.

크루소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나 연료의 역사 연구로 박사가 되신 분이에요.”

“아!”

빌르봉이 새삼 떠올랐다는 표정을 짓고는 클라크 옆에 붙어 걸으며 설명해 주었다.

“잘 아시겠지만, 아우로라 대륙의 마법사들이 마나석에 대해 연구해 온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마나석이 대량으로 발견되지 않아서 그렇지 마나석과 관련된 기술 자체는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지요. 방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마나석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과 마나석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해 사용하는 것이죠.”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석을 그대로 이용하는 건 편리하기는 한데 마나석마다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밀한 기계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균질성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마나석에서 마나를 추출해 균질한 연료로 만들어 사용하고자 하는데 그건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 뿐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괴수 혈액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그래서 마나 연료 생산 공장의 설비가 거대한 것이다.

“그래도 괴수 혈액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마나석에서 균질적인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은 훨씬 빨리 완성될 겁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완성되었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클라크의 질문에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잠시 멈칫했다.

빌르봉이 대답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그동안 멕 나이트를 제작해 왔다는 건 오카수스에서 수입한 마나 연료봉이 어떻게 거대한 멕 나이트를 움직이는지 그 작동 기제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역으로 마나 연료의 균질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아우로라 대륙 마법 연구소들의 마나 연료 균질화에 대한 관심은 멕 나이트 제작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 같네요. 그러니 마나석의 존재를 알고 있던 마법 연구소들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마나 연료 추출 기술을 확보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 물론 기술이 있다고 해도 곧바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막대한 자본과 생산 시설 건설의 노하우가 없으니까요. 마나석의 대량 채굴이 처음 있는 일이라.”

“맞습니다.”

그래도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펜도르의 마법 연구소도 오래전부터 마나석 연구를 해 왔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들은 마나석이 매장된 곳을 찾는 연구를 오래해 왔지 마나 연구가 중심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마나석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다면 아우로라의 마법 연구소들 가운데 어느 연구소가 어떤 분야로 유명한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도 동종 업계 사람들은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누가 어느 분야에 강하고 무엇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안 하던데······.”

“모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프 측에서 워낙 마나 추출 분야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딱히 관심을 안 가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프 마법 연구소는 괴수의 체액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뿐 아니라 괴수의 생명 구슬을 이용하는 고도의 기술 또한 가지고 있었다.

멕 나이트 엔진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 구슬에서 밀도 높은 마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균질하게 추출하여 사용한다는 뜻인 것이다.

마나석과 생명 구슬 형성 원리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둘 다 단단한 물체.

가프 마법 연구소는 마나석에서 마나를 추출하는 기술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프 측 마법사들이 클라크의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크가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 아펜도르의 마법사도 굳이 먼저 말해 줄 이유가 없을 것 같군요.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아무리 애초에 마나석 광산 개발 전문가로 고용되었다지만, 마나석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이 앞서 있는 마법 연구소 출신 마법사가 있다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확인해 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가프 측 마법사들과 투릭은 새삼 클라크에 대해 놀랐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지만, 갱도 천장에 박혀 있는 램프를 보고 여기까지 생각해 내는 예리함과 뛰어난 연상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제국 기사 아카데미 교수를 하나 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쨌든 그들은 갱도 깊이 들어갔다.

마나석 광산의 지질과 광맥을 연구하는 아펜도르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가 그곳에 있었다.

***

폴타바의 총독 블란트 베른카슈는 휘하의 병력을 점검했다.

그가 거느리는 병력은 경량 멕 로쿠스타 2개 전단, 일반 멕 아이언 워리어 1개 전단이었다. 공병대와 보병 사단도 있었지만, 오늘 소집 대상은 아니었다.

총 3개 전단, 1개 기동 군단급 규모이지만, 경량 멕 나이트가 많아 야전에서 통상적인 기동 군단급 전투력을 보이기는 어려운 산악 기동 군단 규모.

인접한 벨고트 왕국과의 국경을 지키는 데 투입된 부대가 빠졌기 때문에 300대에 못 미치는 필센 제국의 정규군 멕 나이트.

그런데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 필센 제국의 멕 나이트 부대 옆에 아우로라 연합군이 사용하던 멕 나이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대, 한 대 모으다 보니 어느새 200대나 된 것이다.

파일럿 역시 아우로라 대륙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아우로라 연합군 패잔병들이지만 간간이 아우로라 연합군에 복무한 전력이 없는 귀족 출신들도 있었다.

이들은 아우로라 연합의 패망 이후 필센 제국에 저항할 의사는 없지만 그렇다고 필센 제국에 정식으로 항복하여 감옥에 가거나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 파일럿들이었다.

이런 경우에 보통 나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럴 용기가 없는 사람들, 산을 넘어 벨고트 왕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폴타바 지방으로 들어왔다가 잡혀 설득을 당해 눌러 앉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동방군 출신 폴타바 주둔군 파일럿들은 그들을 겁쟁이라며 깔봤다.

사실 블란트의 부하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상관이 이 ‘겁쟁이 부대’를 만드는 것을 보고 우려했었다.

“각하! 상부의 허락 없이 페르보나 인근 나라 출신의 아우로라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를 만들어도 되는 것입니까?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저들로 군대를 편성하는 이유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다.”

“네?”

“가만 두면 불만 세력이 될 것이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저항 세력이 될 것이다. 우리 군에서 복무하면 감시하기도 좋고 저항 세력에 붙을 위험도 없으니 좋지 않겠느냐?”

“하지만 각하, 상부에서 어떻게 볼지······.”

“어차피 다른 지역에서도 치안군이니 화합군이니 동반군이니 하는 이름으로 아우로라 출신 병력을 이용하고 있다. 굳이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러나 다른 식민지에서 채용한 현지 병력과 블란트가 새로 만든 부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멕 나이트에 탑승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블란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폴타바는 벨고트 왕국과 닿아 있다. 벨고트에는 페르보의 귀족들과 아우로라 연합군 출신 파일럿들이 많이 들어가 부흥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는 귀족들과 패잔병들 중에는 벨고트로 넘어가 부흥 운동에 가담하려는 자들이 많아. 그리고 부흥 운동을 한답시고 이 땅으로 다시 잠입해 들어오거나 공격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찰과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광활한 산악 지대를 우리 주둔군만으로 모두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귀순한 파일럿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블란트에게는 한 가지 의도가 더 있었다.

“불순분자들이 날뛰는 벨고트 왕국을 응징할 필요가 있다. 제국에 해가 되는 요소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지.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대들을 다시 전쟁터로 밀어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부하들도 겁쟁이 부대, 귀순 부대를 본격적으로 운용하면서 그 이점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국경 정찰과 감시라는 가장 귀찮고 힘든 일에서 점점 해방된 것이다.

사실 그들은 블란트를 따라 산악 지방 폴타바로 들어오면서 크게 실망한 상태였다.

대전쟁에서 승리한 뒤 달콤한 포상의 꿈에 부풀어 었는데 볼 것도 없는 산악 지방을 돌며 감시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임무에서 해방되자 그들은 그나마 폴타바에서 번화한 도시에서 술집과 도박장에 드나들며 여유롭게 승자의 권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상관인 블란트는 그들을 타박하지 않았고, 전보다 급료도 많이 주어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동방군 폴타바 주둔군 파일럿들은 귀순 부대의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편안한 세월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귀순 부대의 규모는 점점 불어나 2개 전단이나 되었다.

블란트의 부하들 대부분은 이 상황에 적응해 버렸지만, 여전히 걱정하는 참모도 있었다.

특히 베키오 굴다크의 존재를 알고, 마나석을 몰래 채굴해 벨고트 왕국에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최측근들은 이 귀순 부대를 조직하는 데 베키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컸다.

“각하, 과연 굴다크 공작의 막내아들이 딴마음을 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블란트는 태연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과가 중요하지.”

“······?”

“사람의 마음이 다 똑같겠느냐? 황제를 섬기는 신하들의 마음도 모두 다를 것이고, 나를 따르는 그대들의 마음도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황제를 위해 일하고 나를 위해 싸운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블란트의 부하들은 자신의 상관이 현재 상황을 설명할 때 황제에 빗대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깨닫지 못했다.

“겉으로 하는 행동이 나에게 이로우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는 순간, 녀석의 목숨은 끝장이야.”

블란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측근들은 총독에게 베이코를 제어할 수단이 확실히 있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블란트가 휘하의 기동 부대 병력을 인적이 드문 거대한 골짜기에 모은 것이다.

블란트가 멕 나이트 통신기로 명령을 내렸다.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벨고트 왕국을 응징할 것이다!]

[······.]

[······.]

[······!]

[······!]

누군가는 태연했고 누군가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깜짝 놀란 이들도 총독의 명령에 거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벨코트 왕국은 오래전부터 불순분자들이 모여 있는 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끌 것도 없다. 신속하게 이동하여 최단 기간에 점령하라!]

폴타바에서 채굴한 마나석을 벨고트에 팔기 위해 이동하던 좁은 산길로 멕 나이트 400여 대가 긴 대열을 이루며 행진했다.

야심 많은 블란트, 입술을 꾹 다문 베키오, 걱정하는 참모들, 그리고 저마다의 상념에 잠겨 있는 파일럿들이 앞선 기체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