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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95화 (395/450)

4부 14.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시오

4부 14.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시오

폴타바에서 벨고트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통과해야 했다.

그 말은 길이 좁고 험준해 멕 나이트 대병력이 이동하기 어렵다는 뜻.

그래서 그 길을 막고 있는 벨고트 군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10여 년 동안 폴타바에서 마나석을 싣고 벨고트 왕국으로 넘어갈 때 이 통로를 지키는 부대에 적지 않은 뇌물을 뿌렸기 때문에 벨고트 군의 기강은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멕 나이트의 머리들이 굽이굽이 도는 골짜기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했음에도 그것을 발견해 낸 감시병이 없었다.

폴타바의 멕 나이트들이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와 땅이 울릴 때에야 겨우 적의 침입을 알아차렸다.

그때도 감시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거··· 멕 나이트 아니야?”

“그러게. 멕 워커도 아니고 멕 나이트가 이 길로 왜 이리 많이 오는 거지?”

얼빠진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 누군가가 적의 침입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감시병들은 혼비백산 달아났고, 몇 대 되지 않는 국경의 멕 나이트도 좁은 길을 제때 막지 못했다.

설사 막아섰다고 해도 400대가 넘는 멕 나이트 앞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을 테지만, 어쨌든 동방군 파일럿들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일이라 저도 모르게 일어난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로 싱겁게 국경을 통과했다.

블란트의 가슴도 부풀어 올랐다.

베키오의 계획에 따라 군을 움직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쉽게 국경을 통과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멕 나이트에서 내린 블란트는 동방군 지휘관들만 불러 모았다.

“이대로 왕궁으로 진격할 것이다!”

블란트의 과감한 명령에 부하들이 우려했다.

“각하! 주변 지역을 먼저 장악하면서 나아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블란트의 머릿속에는 베키오가 세운 완벽한 계획이 이미 새겨져 있었다.

“벨고트는 작은 나라다. 왕궁만 점령하면 이 싸움은 끝이 난다. 왕이 달아나기 전에 잡을 것이다.”

“하지만, 각하! 벨고트가 작은 나라이기는 해도 아우로라 연합의 망명객들이 많고 그들이 가져온 멕 나이트도 상당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도로 밀고 들어갔을 때 놈들이 우리 뒤를 끊고 공격하면 어찌합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벨고트에 머물고 있는 망명객들 중 가장 세력이 큰 페르보 출신들이 나에게 투항하기로 했으니까.”

여유가 넘치는 블란트의 말에 그의 부하들은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이···!”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놈들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을 수 있다. 그들의 가족이 폴타바로 들어와 있거든.”

“······!”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에 속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놈들이 나를 속인다면 베키오를 죽일 것이다.”

“음······!”

블란트의 부하들이 침음을 흘렸다.

이번 작전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대강 짐작이 갔던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놈들도 속셈이 있겠지. 우리는 그 속셈을 이용할 것이다.”

“······.”

블란트가 우려하는 부하들을 다독였다.

“우리는 이미 국경을 넘었다. 진군하여 이 나라를 점령하고 막대한 부를 차지할 것이냐 아니면 궁벽한 산골지방으로 돌아갈 것이냐?”

“음······.”

블란트의 부하들은 돈 씀씀이가 헤펐다.

블란트가 마나석 판매 대금을 부하들에게 아끼지 않고 풀었기 때문이다.

벨고트 왕국이 비록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페르보 땅, 그중에서도 첩첩산골인 폴타바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페르보를 비롯하여 필센 제국에 점령된 여러 나라들에서 귀족과 마법사들이 막대한 재산을 들고 도망쳐 왔던 것이다.

군침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휘둘러 봐야지요!”

“좋다! 각자 병력을 이끌고 최단 시간에 왕성을 들이친다!”

“예, 각하!”

지휘관들이 멕 나이트에 올라 휘하 부대를 거느리고 지축을 울리며 달려갔다.

베키오가 이끄는 귀순 부대 멕 나이트들이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블란트가 자신을 호위하는 로쿠스타 전대와 함께 맨 뒤에서 따라갔다.

블란트가 베키오에게 마나 통신을 보냈다.

[베키오, 문제없겠지?]

[걱정 마십시오, 각하!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까요.]

[그래야지. 너를 위해서라도.]

[···네!]

베키오의 목소리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블란트는 통신을 끊었다.

어차피 베키오는 이 일에 목숨을 걸었다.

문제가 생기면 죽는 것이다.

그것은 블란트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빼어난 자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이용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400여 대의 멕 나이트들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

갑작스러운 폴타바 총독의 공격에 벨고트 왕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폴타바와 맞닿은 지역은 산악 지방이라 대군이 이동하기에 적절한 지형도 아니고 그동안 폴타바와는 마나석을 은밀하게 거래하고 있어서 나름 우의를 다져 왔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이미 국경이 무너진 데다 침공 소식도 뒤늦게 전해졌기에 대응이 쉽지 않았으나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왕성 수비대장이 말했다.

“적의 규모는 멕 나이트 약 400대라 합니다. 그런데 경량 멕의 비중이 높아 일반 멕은 약 200대 정도라 하니 충분히 상대할 만합니다. 일단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멕 나이트 100대와 근위대 멕 나이트 20대로 왕성으로 들어오는 길을 막고 버팁니다. 그동안 국경에 있는 기동 전단을 불러들일 것입니다.”

“아무리 경량 멕 비중이 높다지만, 당장 우리보다 4배나 많은 멕 나이트를 상대해야 하지 않소? 일반 멕으로만 봐도 우리보다 많은데 어찌 당해 낸단 말이오?”

벨고트의 국왕이 묻자 수비대장이 대답했다.

“우리나라에는 망명객들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필센의 군대가 이 나라를 점령하게 되면 그들 또한 갈 곳을 잃게 될 터이니 그들을 움직여 함께 방어에 나서면 충분할 것입니다.”

“오! 그들이 있었지!”

국왕이 반색했다.

과거에는 동맹의 일원이었으나 바다를 건너온 필센 제국군이 이 대륙을 휩쓸어 아우로라 연합을 해체시키면서는 필센 제국과의 평화를 위협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아우로라 연합 출신의 망명객들.

그들과 한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왕은 망명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전부터 필센 놈들은 믿을 수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라도 놈들의 본색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요? 어쨌든 돕겠습니다.”

망명객들은 기꺼이 나서기로 했다.

벨고트 왕국이 점령되면 저항의 거점을 상실하고 다시 또 대륙을 떠돌아야 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벨고트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했다.

망명객들은 녹이 슬지 않도록 간간이 움직여 본 것이 전부이고 사실상 10년 이상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멕 나이트에 시동을 켰다.

아우로라 대륙에서 가장 큰 페르보 제국과 인접한 나라들 가운데 필센 제국에 짓밟히지 않은 땅이 바로 벨고트 왕국이기에 이 땅으로 넘어온 망명객들과 멕 나이트의 수가 상당히 많아 무려 150여 대나 되었다.

벨고트의 왕성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좁은 길목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길이 험준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국경 지대에 배치된 벨고트의 기동 전단이 돌아올 때까지는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제야 국왕은 안심했다.

“고맙소! 그대들의 공을 결코 잊지 않으리다.”

국왕이 망명객들을 대표하는 슈토프 백작의 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자 페르보 제국 출신의 슈토프 백작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전하, 인사는 적을 물리친 뒤에 하시지요.”

“아, 알았소.”

폴타바 군이 왕성으로 들어오는 길로 접어들었다.

선봉은 아우로라 연합 출신의 귀순 부대 멕 나이트들이 나섰다.

그들은 마치 블란트와 그의 부하들에게 인정을 받고야 말겠다는 듯이 거세게 벨고트 왕국군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벨고트 왕국군도 사력을 다해 막았다.

양군의 멕 나이트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좁은 통로에서 벌어진 전투라 수적 우위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블란트의 부하들은 초조했다.

[각하, 아무래도 아우로라 출신 겁쟁이 놈들이 몸을 사리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하지만······!]

[모두 작전 계획의 일부니 그런 줄 알라.]

[······?]

지휘관들은 의아했지만, 대장이 그렇게 말하니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귀순 부대와 대치하고 있던 벨고트 왕국군 파일럿들이 지쳐 망명객 파일럿들과 교체하기 위해 멕 나이트를 조심스럽게 뒤로 빼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망명객 멕 나이트들 역시 교체를 위해 앞으로 이동했다.

벨고트 왕국군의 멕 나이트와 망명객들이 타고 있던 멕 나이트가 좁은 길목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망명객들이 타고 있던 멕 나이트들이 마나 진동 대검을 활성화시켜 벨고트 왕국군 멕을 가차 없이 찌른 것이다.

쓰릉!

츠릉!

강철 대검이 강철 몸통을 꿰뚫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적을 막느라 완전히 지친 상태로 병력 교대를 위해 뒤로 빠지던 벨고트 왕국군 파일럿들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일격을 당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배신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벨고트 왕국군 파일럿이 소리쳤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망명객 멕 나이트들이 마지막까지 귀순 부대 멕 나이트들을 상대하고 있던 벨고트 왕국군 기체의 등을 찌른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블란트의 부하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런 작전을······!’

‘워낙 길목이 좁아 순수하게 병력으로 뚫으려 했다면 우리 군의 피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세상에······!’

어쨌든 이토록 소름 끼치는 작전 계획을 수립한 자가 굴다크 공작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찝찝하면서도 자신들의 상관인 총독 블란트가 이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기도 했다.

폴타바 군의 멕 나이트들은 쓰러져 있는 벨고트 왕국군의 멕 나이트들을 지나쳐 왕성으로 향했다.

길옆으로 망명객들의 멕 나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도열해 있었고, 그 옆에는 망명객들이 자신의 멕 나이트와 마찬가지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처분을 맡긴다는 항복의 표시로 멕 나이트 시동 열쇠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폴타바 군의 멕 나이트들이 행진을 멈추었다.

이윽고 멕 나이트에서 내린 블란트가 호위 기사들에 둘러싸인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와 망명객들 맨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시동 열쇠를 바치는 자세를 하고 있는 기사 앞에 섰다.

“누군가?”

“예전에 굴다크 공작을 보좌하던 슈토프 백작입니다. 앞으로 성심을 다해 총독님을 섬기겠습니다.”

굴다크 공작이 아우로라 연합군의 대군을 이끌고 필센 제국 북부를 공격할 때 참모장으로 있던 슈토프 백작이었다.

뒤에서 듣고 있던 블란트의 부하들은 깜짝 놀랐다.

어마어마한 거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블란트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베키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가 슈토프 백작이로군!”

블란트는 슈토프 백작이 두 손으로 바친 멕 나이트 시동 목걸이를 집어 들고는 잠시 음미한 뒤 너그러운 태도로 백작의 목에 다시 걸어 주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시오.”

“감사합니다, 총독 각하!”

블란트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망명객 파일럿들이 바친 멕 나이트 시동 목걸이를 일일이 걸어 주었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에는 자신감과 포부가 온몸이 짜릿짜릿할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블란트가 이끄는 폴타바 군은 항복한 망명객들의 멕 나이트와 함께 벨고트 왕국의 왕성을 공격했다.

벨고트 왕국은 국경의 멕 나이트들이 도착할 새도 없이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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