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7. 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4부 17. 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가프 마법 연구소 출신의 마법사들은 멕 워커 엔진으로 교체하고 있다는 마나석 엔진의 성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연료로 사용하는 마나석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그 품질은 어떠한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요청했다.
“성능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찾아오시죠.”
아펜도르 연구소 출신의 마법사들은 요청한 사람이 놀랄 정도로 생각보다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다들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 제품을 직접 보셔야 구입을 하든 소문을 내든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반응을 보고 클라크는 깨달았다.
이들은 비밀스럽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당당히 물건을 팔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것은 마나석을 정부 몰래 채굴해 유통시키는 필센 제국의 총독들과 그것을 조용히 조사하는 자신이지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멕의 연료봉 엔진을 대체할 마나석 엔진’이 널리 알려질 기회를 얻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을 막지 않는 것이다.
이 제품의 품질이 정말로 좋다면 머지않아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클라크가 크루소와 아볼롱을 보고 말했다.
“그럼 마법사님들은 내일 가셔서 자세히 살펴보세요. 정말 훌륭하다면 우리가 연구비를 지원해 드릴 수도 있고, 설비 증축을 위해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정말 좋은 제품이라면 가프 연구소에서 투자를 하든 지원을 하든 하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알아들은 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순다르의 옛 동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클라크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투자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장용 엔진을 구입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방직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한 엔진도 구할 겁니다. 그걸 찾는 데 마법사님들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업가라면 좋은 제품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요. 초면에 이런 말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충분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순다르의 옛 동료들은 클라크의 말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희 연구소는 자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필센의 대형 마법 연구소에서도 찾아와 합병 이야기를 꺼내고 투자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다 거절했습니다.”
“아!”
“물론 공장용 기계 엔진을 찾는 건 도와드리겠습니다.”
클라크 일행은 이들이 만든 엔진에 관심을 보이고 접근한 필센의 대형 마법 연구소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괜한 의혹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좀 더 자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 크루소와 아발롱은 순다르와 함께 그의 옛 동료들이 현재 속해 있는 이지움 마법 연구소로 찾아갔다.
이지움 마법 연구소는 과거 페르보 제국 유수의 마법 연구소에서 활동하던 마법사들이 탈출하여 만든 곳이었다.
마법 연구소들의 특징이 보통 그러하듯 외부의 힘에 휘둘리기를 싫어하고, 기본적으로 상당한 자금이 있었기에 투자받는 것을 거절했지만, 클라크가 마법사들을 데리고 다니며 엔진을 구할 정도로 큰 사업을 하고 있기에 향후 홍보나 판매에 도움이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여 상당히 친절하게 자신들의 제품을 체험하고 살펴볼 기회를 주었다.
마법사들이 이지움 마법 연구소에서 마나석 엔진과 그것에 사용될 연료용 마나석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클라크와 투릭은 다른 활동을 했다.
“우리는 페르보 땅의 식민지들을 돌며 마나석 매장량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고, 그런 중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투릭이 물었다.
“어차피 니코폴과 가까운 페르보 땅의 식민지들은 마나석을 이곳으로 판매하지 않겠어요? 이곳으로 들어오는 물량을 파악하는 것이죠. 어느 식민지에서 얼마나 판매하는지 알아보는 겁니다.”
“매장량이 아니라 유통하고 있는 물량을 파악하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매장량이라는 건 결국 전문가의 예측일 뿐이고 판매하는 물량이 결국 해당 식민지 총독의 마나석 광산 개발 의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지표가 아니겠어요? 굳이 소량의 마나석을 판매하는 총독을 들쑤실 필요는 없죠.”
클라크는 기터 자작에게 말한 대로 마나석 광산 조사 건과 관련해 그물코를 적절히 키울 작정인 것이다.
그것이 현명했다.
루산이 루한 땅에 괴수 목장을 건설하는 건으로 움직이는 동안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판매량을 알아보는 거라면······.”
미간을 찌푸리며 방법을 생각하던 투릭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투릭은 대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한동안 멸시를 당하면서도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확장시켜 온 사업가였다.
그동안 몸에 밴 친화력과 빠른 머리 회전으로 페르보에서 들어오는 마나석의 양을 측정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공단에 들어와 있는 마법 연구소들을 돌며 마나석 유입 경로와 물량을 알아내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죠.”
“마나석을 싣고 국경을 넘는 멕 워커 수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아!”
페르보 땅에서 오는 마나석들은 대개 멕 워커에 의해 운반되었다.
멕 워커가 어느 지방에서 몇 대씩, 얼마만큼 자주 오는지 확인해 보면 되는 것이다.
투릭은 국경 검문을 담당하는 부대들을 과감하게 돌아다녔다.
때로는 돈과 선물을 준비해 부대를 직접 방문해 물어 보고, 그 방법이 먹히지 않는 경우에는 인근 숙박업소나 음식점에 들러 이곳을 통과한 멕 워커의 소속과 대수 등을 파악했다.
그의 친화력과 임기응변은 놀라워 국경 마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까지 장난감과 사탕을 받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정도였다.
클라크는 투릭이 그렇게 모은 정보를 가지고 일정 기간 국경을 통과한 멕 워커의 수를 식민지별로 추산해 보았다.
그런데 기이한 결과가 나왔다.
직할령 로그라드 시에서 파악한 자료에 비추어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직할령에서 받은 정보에 따르면 카니프, 체르카, 크레멘 지방에는 마나석 광산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세 지방에서도 마나석을 실은 멕 워커가 니코폴로 들어오고 있어요.”
클라크의 의문에 투릭이 말했다.
“최근에 발견되어 직할령에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 걸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직할령 주둔군이 인근 식민지의 마나석 채굴량이나 구체적인 유통 경료, 수입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고 해도 마나석 광산 발견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할 수 있을까요? 드나드는 사람, 외부로 이동하는 화물 물량 등에서 숨길 수 없는 변화가 생길 텐데 말이에요.”
“그렇지요.”
“게다가 최근에 발견됐다고 하기에는 물량이 적지 않아요. 최근에 발견됐다면 물량이 적어야죠. 광산이 개발되면서 점점 늘어날 테니 말이에요. 그리고 이 세 지방에서 들어오는 멕 워커 대수가 똑같은 것도 기이하고······.”
“직할령에서 파악하기로 마나석이 발견되지 않은 지방 세 곳에서 똑같은 물량의 마나석을 외부에 판매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군요.”
투릭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직할령에서 의도적으로 숨겼다고밖에······.”
그러나 클라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숨기고 있던 자료를 제게 준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황제 폐하의 특별 감찰관에게 뻔히 들킬 자료를 주겠어요?”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대체 뭘까요?”
클라크는 직할령 로그다르 시 주둔군 사령관인 기터 자작의 말과 태도를 떠올렸다.
‘마나석 열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총독은 없다, 황궁에서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을 흔한 비위 사건 다루듯 하면 안 된다.’
무언가를 알고 있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료에서 이상한 점이 계속 발견되었다.
“노바오는 라이네 공작이 다스리는 식민지 아닙니까?”
“그렇죠. 페르보 땅에서 가장 큰 식민지죠. 면적으로나 인구로나 경제 규모로나······.”
동방군 총사령관 라이네 공작.
당연히 가장 큰 식민지를 받게 되었다.
물론 루한 왕국 땅을 통째로 받은 밤베르크 공작보다 다소 작기는 했지만, 군단장급 지휘관들이 받은 식민지와는 규모가 달랐다.
현재는 라이네 공작이 사망한 이후 그의 큰아들이 작위를 계승하고 총독으로 있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마나석 광산도 그 땅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투릭의 말마따나 마나석 광산이 많은 지방이었다.
면적이 넓은 지역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라이네 공작 정도면 국가 방침을 어기고 마나석 광산을 몰래 개발해서 외부에 판매하기는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 정도나 되는 대귀족 가문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황제 폐하로서는 배신감을 크게 느낄 만한 일이고, 굳이 마나석을 몰래 판매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닐 것 같은데요.”
“아들이잖습니까. 아버지와 성향이 다른지도 모르죠.”
“그럴까요?”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지만, 필센 제국군 군부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라이네 공작 가문이 돈을 위해 국가 방침을 어기고 마나석을 몰래 유통시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클라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또 있었다.
“굳이 몰래 내다 팔 거면 많이 팔 것이지 다른 식민지와 별 차이가 없는 것도 이상하네요.”
라이네 가문이 다스리는 노바오 지방은 마나석 광산이 많이 발견되었다.
직할령에서 받은 자료로도 알 수 있었다.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광산을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예 몰래 유통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왕 유통할 거라면 굳이 이렇게 적은 물량을 판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클라크가 투릭에게 말했다.
“마나석과 관련하여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다른 지방도 돌아보죠.”
“알겠습니다.”
클라크가 가프 연구소의 마법사들에게 떠나자고 말했다.
그런데 가프 연구소의 마법사들은 이지움 마법 연구소의 마나석 엔진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다.
도무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클라크가 말했다.
“아발롱 님은 이곳에 남아 마나석 엔진이나 이 도시에 있는 다른 마나석 가공 시설을 살펴보시죠. 어차피 이지움 연구소에 공장용 엔진을 구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마법사님이 그들의 안내를 받아 다른 연구소와 접촉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가프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반색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게 낫겠어요. 가프 측에도 도움이 되고 제 조사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교수님.”
결국 아발롱이 남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니코폴 왕국을 떠났다.
클라크 일행은 다시 페르보 땅으로 돌아가 마나석 광산이 많이 발견된 지역들을 관장하는 직할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황금 사자 패를 이용해 자료를 얻고, 가프 연구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정보와 투릭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 방법을 세워 마나석과 관련한 내용들을 파악해 나갔다.
그러자 클라크의 눈에 이 문제의 윤곽이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식민지로 나뉜 옛 페르보 제국의 지도 위에 그동안 파악한 내용을 표시해 나가던 클라크가 투릭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페르보 땅의 마나석 문제와 관련하여 라이네 공작 가문이 중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설이라고 말했으나 클라크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필센 제국군의 방면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전투력이 강한 동방군의 총사령관 라이네 공작.
그의 가문이 동방군 군단장 출신의 총독들과 마나석 문제로 밀접히 엮여 있고, 황제가 그 문제를 해결하라며 변경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던 루산 보름스 백작을 불러올린 것이다.
“확실합니까?”
투릭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클라크가 자신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투릭의 표정도 점점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