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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06화 (406/450)

4부 25. 헤비 스틸을 최초로 만든 연구소이지요

4부 25. 헤비 스틸을 최초로 만든 연구소이지요

벨고트 왕국으로 들어온 조사단의 활동은 순조롭지 않았다.

“아우로라 연합의 잔당들이 페르보 탈환을 위해 이 나라에 모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벨고트의 왕이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선제적으로 공격에 나선 것이오. 다른 어떤 이유가 있겠소?”

“하지만, 각하!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본국에 먼저 보고를 하고 명령을 기다리거나 직할령 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하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없었소. 본국에 보고를 하고 명령을 기다린다면 적어도 두세 달은 허비할 것이고 직할령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면 적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 챌 것이오. 적들이 우리 땅으로 먼저 쳐들어오기 전에 공격해 쳐부수는 것이 제국에 이로운 일 아니오?”

블란트의 말은 타당했다.

전선의 장군이 몇 달씩 걸리는 보고-명령 체계를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작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군부터 속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란트의 독자적 선제공격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그의 말대로 아우로라 연합의 잔당이 벨고트 왕국에 모여 페르보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조사단이 그것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벨고트 왕국의 국왕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은 목이 날아가거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고, 포로로 잡힌 아우로라 연합의 잔당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조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직할령의 조사단이 왔을 때 이미 벨고트에는 페르보 땅에 있는 여러 식민지들의 총독 혹은 대리인들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환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알아보고 온 투릭이 클라크에게 말했다.

“벨고트 왕국에 있는 마나석 가공 공단에서 페르보 식민지의 총독들에게 마나석을 더 고가에 사 주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식민지 관계자들의 표정이 그처럼 밝았던 것이군요?”

“그렇죠. 혼자 꿀꺽하는 게 아니라 나눠 먹자고 불렀으니 기특할 수밖에요.”

“다른 식민지 총독들은 블란트의 편을 들어 주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폴타바의 군대가 벨고트에서 물러나거나 제국군이 차지해 버리면 마나석을 유통할 때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할 테니까요.”

“블란트가 머리를 썼군요. 다른 총독들을 방패막이로 삼았어요.”

그러나 이익을 나눠 주겠다는 약속만으로 총독들이 블란트에게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익의 약속과 더불어 이들의 결속을 더 강하게 하는 요인들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클라크는 벨고트 왕국의 수도에 있는 총독, 대리인, 고위 지휘관들을 지켜보며 그 이유를 파악해 냈다.

‘같은 동방군 출신이라는 점이 큰 몫을 하는구나. 페르보 땅에 있는 동방군 출신 총독, 장군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해. 그래서 더욱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거야.’

조사를 나온 직할령 소속의 군인들조차 같은 동방군 출신 총독, 장군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쩔쩔 매거나 함께 어울렸다.

주둔군 유지비라는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같은 동방군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이들의 유대감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이곳에 와 있는 고위 장군들 대부분이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들이구나!’

벨고트 왕국을 점령한 폴타바의 총독 블란트는 루산의 1년 선배로 당시 수석 졸업생이었다.

그 외에도 기동 전단장, 기동 군단장들 대부분이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자식들 가운데 특별히 실력이 뛰어나야 들어갈 수 있는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해 대전쟁을 거치며 승승장구한 군인들이 어느새 군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출신 성분이 뛰어난 고급 군인들이 변경 출신의 황제를 깔보는 건가?’

사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결과론이었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나온 군인들은 애초에 뛰어난 자원들이기에 전쟁을 거치며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마침 그들이 군 요직에 두루 포진할 나이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들이 이런 공통점을 바탕으로 유대감을 형성해 똘똘 뭉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조사는 지지부진했고, 알맹이가 없었다.

투릭이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직할령 조사단에 확실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그렇죠. 방면군 시절에는 상하가 확실했어요. 동방군 사령관 밑에 군단장들이 있고, 군단장 밑에 전단장이 있고, 그 밑에 전대장이 있고··· 이런 식이죠. 그런데 방면군을 해체하면서 애매하게 돼 버린 겁니다. 식민지 주둔군과 직할령 주둔군, 어느 쪽이 위죠? 총독과 직할령 주둔군 사령관 사이에 상하 관계가 있나요?”

“···없죠.”

“그겁니다.”

직할령 사령관도 다른 식민지의 총독들이었다.

자신의 식민지를 대리인에게 맡기고 직할령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방침에 불만이 있으며 같은 동방군 출신이고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인 데다 상하 관계마저 분명하지 않다 보니 총독의 비위를 직할령 사령관이 조사하고 징계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클라크는 율리안 황제가 옛 페르보 제국 땅에 있는 식민지 총독들의 비위 문제를 왜 루산을 불러 해결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저히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야죠.”

클라크가 말했다.

“결국은 마나석 흐름을 따라가 보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같은 동방군 출신이든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든, 돈이 엮여 있지 않으면 비위가 아니다.

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결국 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게 분명해지겠죠.”

사업을 하다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돈거래를 한 사람이 관련자인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크루소와 아펜도르 출신 마법사 순다르는 이미 벨고트의 마나석 가공 공단을 돌아다니며 이곳의 기술과 마나석 유통 상황에 대해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벨고트의 마나석 기술은 니코폴 왕국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니코폴 왕국에서는 마나석 자체를 직접 연료로 삼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마나석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여 기존의 괴수 부산물 마나 연료를 대체하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마나석의 품질, 농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마나석 연료 방식’과 다르게 마나석에서 마나를 뽑아내 연료로 사용하는 ‘추출 방식’은 마나석의 품위를 살필 필요가 없었다.

이물질이 많이 함유되었든 적게 함유되었든, 농도가 짙든 옅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품위가 낮은 마나석이 대량으로 채굴되는 광산에서 특히 벨고트 왕국의 마나석 시장을 많이 찾는다.

그런데 이렇게 마나석에서 추출한 마나 연료는 공장을 돌리기에는 적합하지만, 멕 나이트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멕 나이트는 중량이 많이 나가고 정밀한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마나의 밀도와 순도가 매우 높아야 하는데, 방금 추출한 괴수 체액이 아닌 오랜 세월 여러 이물질과 함께 단단하게 굳어 버린 마나석에서 고순도, 고밀도의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막대한 에너지가 들고 정밀한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카수스 대륙의 마법 연구소들이 괴수 체액에서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마나석으로 정밀 기계를 움직이는 고순도, 고밀도의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크루소와 순다르는 벨고트의 마나석 가공 공단을 조사하며 이 기술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순다르의 옛 동료인 아펜도르의 마법사가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잖아요. 재료는 약간 다르지만, 이미 오카수스 대륙의 마법사들이 완성시킨 기술인데 어려울 게 있나요? 멕 나이트 연료 작동 기제만 알면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아낼 수 있죠.”

마나 연료를 생산하는 가프 연구소의 마법사 크루소가 불쾌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말이야 쉽지만, 그게 어디 쉽겠어요? 괴수 혈액으로 마나를 추출하는 방식을 접하지 못한 상태로 어떻게 멕 나이트만 연구해서 마나석에서 고급 마나 연료를 추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미 성공한 곳이 있는걸요.”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자 순다르의 옛 동료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타라스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완성시켰다고 하더군요.”

“타라스?”

그러자 아펜도르 마법 연구소 출신의 순다르가 설명해 주었다.

“페르보 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마법 연구소입니다. 멕 나이트 헤비 스틸을 최초로 만든 연구소이지요.”

아우로라 연합군의 주력 기체였던 헤비 스틸은 워낙 많은 나라에서 생산하다 보니 다양한 모델이 존재했다.

모양과 출력도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아우로라 대륙 전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생산하다 보니 많은 마법 연구소들이 생산에 관여했지만, 최초로 이 모델을 만든 것이 바로 타라스 마법 연구소였다.

“타라스 마법 연구소가 이쪽으로 통째로 옮겨 왔나요?”

순다르가 자신의 옛 동료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낯선 크루소보다는 과거에 함께 일했던 자신이 묻는 것이 저항감이 없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통째로 옮겨 왔는지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타라스의 마법사들이 꽤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양질의 마나 연료가 대량으로 필요해서 말입니다.”

“전에는 이곳 공단에 함께 있었는데 얼마 전에 옮겼어요. 필센 제국군이 침공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어디로 갔나요?”

“그건······.”

순다르의 옛 동료 마법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잘 아시겠지만, 현 시국에 이런 내용을 외부인에게 함부로 발설하는 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순다르 님 부탁이니. 께서 부탁하시니······. 제가 말했다고 하지는 마세요.”

“그럼요.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자 순다르의 동료 마법사가 작게 속삭였다.

그가 말한 곳은 벨고트 왕성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공장 지대였다.

그는 타라스 마법 연구소의 공장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현재 점령군이 마나석 유통을 통제하고 있어서 타라스 연구소는 마나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마나석을 공급해 주고 그 대가로 마나 연료를 받기를 원한다고 제안해 보면 아마도 받아들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어려운 처지에 돕고 살아야죠.”

크루소와 순다르는 단지 마나석을 활용한 기술이 이만큼이나 발전했다는 사실을 듣고 흥분했을 뿐이지만, 그 소식을 들은 클라크와 투릭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폴타바의 총독 블란트가 벨고트 왕국을 침공한 사건이 타라스 연구소의 고급 마나 연료 생산 기술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든 것이다.

클라크와 투릭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가 봐야죠.”

“네, 교수님.”

클라크와 투릭 그리고 두 명의 마법사는 왕성을 벗어나 지저분하고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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