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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10화 (410/450)

4부 29. 누군가는 이익을 봅니다

4부 29. 누군가는 이익을 봅니다

아우로라 연합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페르보 제국을 시종일관 몰아붙여 필센 제국이 2차 대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동방군 사령관 라이네 후작.

그 공으로 공작으로 승작하고 페르보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노바오 지방 - 밤베르크 공작이 받은 루한 왕국 땅에 필적하는 거대한 지역이었다 - 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첫째 아들 마르켈이 작위와 식민지를 승계하여 라이네 공작이 되었다.

마르켈 라이네 역시 대전쟁 기간에 동방군에서 기동 전단장으로 활약하다 전시 증편으로 동방군 병력이 급격히 불어날 때 군단장까지 올랐다.

그는 차기 동방군 사령관으로 누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었으나 아버지의 후광을 빼면 공적 면에서 오스카 빈켈에 밀린다는 평이 많았다.

오스카 빈켈은 바르나 대첩 당시에 활약이 워낙 컸고 향후 선봉 부대를 맡으며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복무 경력과 통솔력 면에서 오히려 마르켈이 적임자라는 평도 적지 않았다. 동방군은 사병이 아니므로 라이네 가문에 연속으로 사령관직을 맡기지 않을 것이기에 오히려 아버지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마르켈은 이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미소를 지을 뿐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 중후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적임자라고 애써 나설 필요도 없었다.

동방군 사령관으로 있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제 개편으로 방면군 체제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할령 사령관을 맡을 수 있었으나 고사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별개로 라이네 공작 가문에서 방면군 사령관이 아닌 고작 직할령 사령관은 격에 맞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에 누를 끼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제국군에서 제대하고 식민지 노바오를 다스리는 총독으로 지내왔다.

군에서 제대했다고는 해도 노바오는 넓은 지역이라 주둔군이 다른 식민지보다 훨씬 많아 기동 전단이 6개, 보병 사단이 9개나 있었다. 기타 지원 부대들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였다.

그 외에도 과거 페르보 제국군에 속해 있던 병력의 일부를 치안 유지를 위해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방면군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력이 많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군제 개편으로 주둔군 유지비를 해당 식민지에서 모두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바오는 넓고 비옥한 평야뿐 아니라 마나석 광산도 많은 지역이라 마르켈은 주둔군 유지비를 충분히 부담할 수 있었고 남은 여력으로 형편이 어려운 동방군 출신 총독들까지 지원해 왔다.

이것이 지금의 라이네 공작인 마르켈에 대해 루산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페르보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인 셈인가?’

포고를 내린 뒤 처음으로 찾아온 총독이 라이네 공작이라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했으나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페르보 땅의 다른 총독들은 어쨌든 그의 눈치를 볼 테고 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보름스 백작. 그렇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희미해질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나게 되었군요. 인생사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어요.”

마르켈 라이네 공작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는 말은 일개 변경 통치자에 지나지 않았던 율리안이 느닷없이 황제가 되고, 그를 황제로 만든 사람이 바로 루산 보름스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생긴 궁금증을 말하는 것이니까 무려 10년도 더 된 과거의 이야기였다.

정확히 14년 전에 율리안이 황제가 되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던 마르켈로서는 루산 보름스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논공행상도 마무리된 뒤 루산 보름스가 권력 다툼에 밀려 변경으로 다시 쫓겨 갔다는 소문을 마지막으로 방계 황족을 황제로 만든 놀라운 사나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저 역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각하. 부친이신 라이네 공작님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제 우상이셨거든요. 그분의 아드님도 뛰어난 군인이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허허, 듣기에 나쁘지 않군요.”

마르켈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만나 보니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한 번 보고 이 사람은 어떻다 하고 평가할 능력은 없으나 제가 볼 때 공작님은 온화한 인상을 지니셨지만, 책임감이 무척 강하신 분 같습니다.”

“그래요?”

“동방군 출신들의 어려움을 차마 보아 넘기지 못하고 도와주려 하시니까요.”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루산은 상대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죠.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해도 말입니다. 특히 위험한 일일 때는 더욱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각하가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우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실천하셨으니까요.”

비꼬는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주둔군 유지비를 식민지에 떠넘긴 정부의 정책이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총독들의 잘못은 그보다 작은 것이죠. 그래서 제안한 것입니다. 전에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고 새로 시작하자고요. 함부로 군대를 동원한 폴타바의 총독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겠지만, 나머지 총독들은 마나석과 관련된 일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주둔군 유지비와 군제 문제를 현실성 있게 개선하도록 힘을 써 보겠습니다.”

루산의 이야기를 들은 라이네 공작이 찻잔을 들어 식어 가던 차를 입술에 댔다.

호로록 한 모금 마시니 개운하고 고급스러운 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와 루산의 아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차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페르보와 이웃한 바르나를 눈부시게 발전시킨 여인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의 남편, 황제를 만든 남자이니 능력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당히 많이 알아본 모양이군요.”

“대강의 형태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백작은 스스로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녕 마나석 문제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군제를 바꿀 수 있어요? 황제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황제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역시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루산은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율리안 님, 아니 황제 폐하께서는 합리적인 분입니다.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율리안 님이라는 호칭에 마르켈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그럼 10년 전에는 합리적이지 않으셔서 군제를 개편하고 식민지에 책임을 떠넘기셨을까요?”

마르켈은 굳이 루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국의 재정 상황이 군대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제국의 재정 상태가 많이 개선되었습니까?”

루산은 이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했다.

다만 어림짐작은 할 수 있었다.

“산업이 발달하기는 했지요.”

“하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식민지 재건에 쏟아붓는 돈이 많아 재정 상황은 여전이 여유가 없어요. 빚은 계속 쌓이고 있고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 세금을 더 걷으려 한다면 발전한 산업 부문에서 걷어야 할 텐데, 사업가들의 강한 반발을 살 겁니다. 결코 쉽지 않아요. 황제라도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이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명한 황제라면 차라리 지금껏 해 오던 대로 식민지 총독들에게 짐을 지우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들은 군 출신이라 우직한 면이 있고 어쨌든 명령에 따르는 것이 몸에 뱄기 때문이지요. 반면 사업가들은 자기 이익을 해치려 하면 황제라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노바 본토가 시끌시끌할 텐데 황제가 그 모습을 보고 싶을까요?”

루산은 우직한 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로지 이익에만 골몰하는 사업가도 아니기에 마르켈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백작은 우리나라에 공작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마르켈이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

“네? 글쎄요. 작위라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루산은 작위란 이반 황제의 사회 개혁 이후 껍데기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껍데기가 지니는 가치와 사람들의 동경을 알고는 있었지만, 율리안이 자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백작으로 승작시켜 준 것처럼 실질적으로는 크게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생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반 황제 이전에만 해도 원래 일곱 명의 공작이 있었습니다.”

“······!”

루산은 필센 제국에 공작이 그렇게 많았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필센 제국은 작은 나라에서 출발하여 주변 나라들을 병합하며 커 왔다. 통합에 기여한 다른 나라의 중요한 가문에 높은 작위를 주어 공을 포상함으로써 이웃 나라들이 쉽게 항복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반 황제께서 사회 개혁을 단행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했던 공작 가문 네 개가 무너졌어요. 두 개는 이반 황제의 정책에 순순히 따라 가문의 드넓은 영지를 내주고 약간의 자금을 보상금으로 받아 사업 전환을 꾀했지만, 망하고 말았죠. 모두가 사업 머리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보면 보름스 가문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유제품 가공업으로 사업 전환에 나름 성공했던 것이다.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공작 가문이 서너 개는 될 테지만,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가진 게 없는 공작은 이미 공작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작 가문은 오베론 공작 정도 아닙니까? 하지만, 그 역시 곧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겠지요.”

그러고 보니 벌써 오베론 가문이 무너진 지 15년 가까이 흘렀다.

루산이야 남몰래 루트 오베론을 부려왔기에 오베론을 기억하고 있지 아무도 그 가문을 거론하지 않았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루산은 새삼 깨달았다.

“백작은 내가 책임감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건 참 고마운 평가입니다.”

“네?”

“물론 그런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마나석을 동방군 출신 총독들에게 나눠 준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예요.”

마르켈의 이야기는 차분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율리안 황제가 합리적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합리적이어서 더 무서운 것입니다.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공작 가문도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습니까? 황제도 순식간에 바뀌는데 공작 가문이 대수겠습니까?”

“······!”

“황제 폐하께서 혹은 제국 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었겠죠. 그럼에도 내가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는 내 방법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 행한 것이고, 앞으로도 이 방법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동방군 출신 총독들의 결속을 강화해 왔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마르켈은 굳게 믿고 있었다.

차분하고 확신에 찬 그의 말에서 루산은 더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왜 백작이 이 일에 나섰는가 하는 겁니다.”

“······?”

“누군가는 이익을 봅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더군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짐작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알아보세요. 나를 치기 위해 온 백작에게 그런 걸 알려주는 건 지나친 친절이 아니겠어요?”

마르켈 라이네 공작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루산은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그이 마지막 말이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을 공격할 황제 측을 이간질하기 위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라이네 공작은 황제에게 숙이는 것은 멸문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결코 숙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페르보 땅의 총독들 상당수가, 아니 어쩌면 전부가 적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 나를 보내셨단 말인가?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아니면 사태가 이 정도나 심각한 줄은 모르고 보내셨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폐하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인가?’

루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이내 털어 버렸다.

클라크가 조사한 내용을 보고 동방군 출신 총독들이 똘똘 뭉쳐 저항할 것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변경에서 칩거하는 동안 제국이 깊게 곪아 들어가 썩은 부위가 생각보다 크다 해도 충분히 제거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가프 용병단에 동원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필센 제국의 황제 율리안의 고민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그를 황제로 만든 자신의 의무였다.

***

오카수스 대륙과 아우로라 대륙을 오가는 거대한 수송선보다 훨씬 더 큰 배 한 척이 홍차로 유명한 나푸라 왕국의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라도 철판으로 만든 배 곳곳에 구멍이 나고 부서져 누더기처럼 임시로 수리를 해 놓았고, 선체가 왼쪽으로 기우뚱해서 금방이라도 전복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도 살았으니 되었다!’

험한 몰골의 사나이가 뱃머리에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항구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는 루트 오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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