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31. 400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4부 31. 400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갑자기 나타난 루트 오베론을 보고 바덴은 깜짝 놀랐다.
“사장님, 무사하셨군요?”
“네. 운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
루트 오베론이 찾았다는 길이 항로를 말하는 것인지 방법을 말하는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찾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가 아우로라 대륙 동쪽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 것은 5년도 넘었다.
루산이 밤베르크 공작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변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밤베르크 공작은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율리안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 벌어진 귀족들과 관리들의 은근하면서도 끈질긴 저항을 잠재우며 새로운 통치 체제를 수립하는 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전쟁이 끝나고 노바로 돌아온 밤베르크 공작은 루산이 그토록 공들여 이룩한 체제를 자신에게 맞게 바꾸려 했다.
루산이 노바에 있을 때 발탁하고 등용한 인물들을 쳐내고 자신이 고른 사람들을 앉히려 했던 것이다.
루산은 변경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때 노바에서 싸운 사람이 바로 스텐커와 루트 오베론이었다.
처음에는 스텐커가 일을 주도했지만, 귀족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루트가 훨씬 은밀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고 나중에 스텐커가 노환으로 은퇴하면서부터는 노바의 암투를 전적으로 지휘하게 되었다.
물론 스텐커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루트를 증오하는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지켜보고 있었기에 루트가 멋대로 할 수는 없었으나 밤베르크 공작과의 물밑 대결에서는 루산 측의 장수가 되어 싸움을 이끌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모르게 진행된 노바의 암투는 오랫동안 이어지다 어느 순간 거짓말 같이 멈추었다.
밤베르크 공작이 루산 보름스가 구축해 놓은 통치 제제를 더는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루산 보름스가 여전히 변경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그가 이룩해 놓은 체제를 좀처럼 흔들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루산 보름스가 발탁한 인물들이 딱히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필센 제국과 황제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베르크 공작의 공격은 멈추었고 그것이 잠깐의 눈속임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루산 쪽 사람들은 한편으로 승리했다는 기쁨에 도취되고 다른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루트는 그 사람들 중에 포함되지 않았다.
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루산을 위해 일하는 상황 자체가 결코 반가운 것은 아닐지라도 능력을 발휘하여 적대 진영의 공작을 와해시키고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일이 사라진 것이다.
오베론 가문은 반란죄를 뒤집어쓰고 망해 버렸기 때문에 필센 제국의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루산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루산 밑에서 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루산에게 권력을 향한 의지가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은 잠깐 숨을 고르고 있더라도 나중에 힘을 길러 밤베르크 공작을 끌어내리고 높이 올라갈 의지가 보인다면 할 일이 있을 텐데, 묵묵히 변경 통치에만 신경 쓸 뿐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목줄에 묶인 채 가만히 밥만 축내다 늙어 죽는 사냥개가 되고 싶지 않았던 루트는 어떻게든 할 일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낸 것이 바로 배를 타고 오카수스 대륙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둥글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아우로라 대륙에서 괴수 부산물을 얻기 위해 굳이 서쪽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동쪽으로 계속 가도 괴수가 사는 오카수스 대륙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우로라 대륙의 많은 모험가와 국가들이 아우로라 대륙 서쪽 바다를 건너 필센 제국을 공격하는 루트가 아닌 동쪽 바다를 건너 오카수스 대륙에 도착해 필센 제국 반대편 땅을 차지할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거친 파도, 험악한 날씨, 강한 해류로 인해 모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아우로라 동쪽 바다를 건너 오카수스 대륙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에 확고하게 들어차게 되었고, 시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큰 배, 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는 게 가능하지 않소? 어차피 노바에서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으니 도전하게 해 주시오. 성공하면 괴수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오베론 가문의 남자 하나가 죽는 것뿐이니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소.”
자조적이면서도 간절한 루트의 요청에 루산은 결국 허락했다.
새로운 마나 연료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얻기 위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마나 연료가 욕심이 났다면 지금이라도 원시의 땅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괴수 사냥에 더 많은 멕 나이트를 투입하면 된다.
그가 허락한 이유는, 비록 원수이지만 갈 곳이 없는 막막한 남자의 목숨을 건 도전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족쇄 혹은 과거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몸부림을 도외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
“······!”
“성공하길 바란다.”
결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오카수스 대륙 서쪽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야 했다.
그 일은 고슬라 그룹의 조선소에서 맡았다.
아우로라 대륙 동쪽 바다에 대한 정보도 얻어야 했다.
루트는 노바를 떠나 아우로라 동쪽 나라들로 가서 예전에 동쪽 바다를 건너려고 시도했다가 난파해 겨우 생존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기억을 모아 나갔다.
배를 움직일 선장과 선원들도 필요했다.
선장은 과거 밀수선을 몰던 파셔에게 맡겼다.
루산은 예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율리안이 황제가 되고 새로이 통치 체제를 다져나가고 있을 때 밀수를 허용할 수는 없었기에 엄중히 단속했다.
일자리를 잃게 만든 셈이었다.
물론 그는 유능한 사람이라 선장 자리를 구하려면 언제든 구할 수 있었으나 평범한 항해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게 거친 바다를 건너 오카수스 대륙 서쪽으로 가는 배의 선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 좋습니다!”
그리하여 ‘돌파호’의 선장이 된 것이다.
선원들은 파셔가 알아서 모집했다.
목적은 비밀에 붙였지만, 고슬라 그룹에서도 무척 신경을 써서 자금과 인력을 총동원해 새로운 배를 건조했다.
3년 만에 배가 완성되고 루트 오베론은 선장 파셔와 함께 떠났다.
그 일이 2년 전이었다.
다시 말해 2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바덴은 무척 궁금했지만, 루트는 당장 궁금증을 풀어 주지 않았다.
더 급한 일을 언급한 것이다.
“아라드 왕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게······.”
길고 복잡했지만, 바덴은 차분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
이야기를 들은 루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가프 용병단이 이미 페르보 제국으로 들어갔다는 겁니까? 얼마나 됩니까?”
“멕 나이트가 400대 정도 된다고 해요.”
루트는 사실 가프 용병단의 규모가 상당하리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몰랐다.
노바에서 활동할 때 멕 나이트를 동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었다.
루산도 굳이 필요 없는 일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400대면 가프 용병단 전력의 어느 정도를 동원한 겁니까?”
“정확히는 몰라도 아라드 변경 전력의 6, 70퍼센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괴수를 사냥하고 괴수 목장을 관리하고 변경의 안전을 지키는 데 200대 안팎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루트 오베론의 두뇌가 맹렬히 회전했다.
“일시에 400대나 되는 멕 나이트가 아라드 왕국을 통과해 룬드 항으로 가는 것을 지켜봤다면 아라드의 국왕이 아무리 무지해도 고슬라 그룹에 이토록 경우 없는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바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산이 아라드 왕궁을 뒤집어엎을 만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면서도 루산 아내의 회사를 함부로 쫓아낸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라드 변경에서 나와 바다를 건너간 멕 나이트들이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무사히 돌아왔을 때의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이런 짓을 하지는 못하겠지요.”
바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름스 백작의 비밀 임무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라드 변경의 병력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확신에 차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필센의 누군가로부터 강력한 메시지를 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누구···일까요?”
“밤베르크 쪽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밤베르크 공작일 수밖에 없었다.
율리안이 황제가 된 뒤에 루산을 몰아내고 제거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루한 땅에 갑자기 괴수 목장을 설치한다는 계획부터가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루산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던 그가 갑자기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루산이 무사히 비밀 임무를 달성하고 병력을 거의 보존한 채로 돌아가면 아라드 왕궁은 보복을 당하게 될 테고, 아라드 국왕을 사주한 밤베르크 공작 역시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그런 위험을 굳이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
바덴은 확신할 수 없었다.
루트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보름스 백작이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되겠군요. 백작은 동방군의 결속을 깨뜨리고 무너진 통치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멕 나이트 400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직할령 주둔군 사령관들이 충분히 협조하리라고 보고, 총독들이 황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단합하지 못하리라 보는 것입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직할령 티라스의 빈켈 사령관은 확실히 협조하기로 했어요. 전 병력을 동원하리라 봅니다.”
총독들이 황제의 사자가 내린 명령을 거역하고 무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반란이다.
그러니 설령 루산의 명령을 거부한다 해도 무력 동원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름스 백작은 정식 명령서를 가진 관리가 아닙니다. 고작 황제가 주었다는 패 하나를 가지고 있죠. 만약 총독들이 똘똘 뭉쳐 가프 용병단을 전멸시키고 보름스 백작을 황제의 패를 위조해 제국의 총독들을 사병을 동원해 겁박한 자라고 음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황제가 보름스 백작의 편을 들어 줄까요 아니면 군대를 동원한 동방군 출신 총독들을 달래기 위해 자기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발뺌할까요?”
동방군 총독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고 황제가 이를 진압하려 한다면 제국은 전란에 빠진다.
“똑똑한 황제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한 것 같군요.”
“······!”
바덴이 입술을 깨물었다.
“400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바덴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털이 쭈뼛 서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