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33. 전 병력, 전진하라!
4부 33. 전 병력, 전진하라!
작전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폴타바 총독 블란트를 응징하는 것.
다른 총독들이 저지른 죄가 마나석을 밀거래하는 정도였다면 그는 무단으로 군대를 동원해 인접 국가를 점령했다.
죄질이 다른 것이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폴타바 군을 무찌른다면 같은 처지라고 돕기 위해 찾아온 다른 식민지 총독들도 깜짝 놀라 저항할 생각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다.
직할령 티라스 주둔군이 북쪽, 남쪽, 서쪽에서 옥죄어 오는 식민지 총독들의 병력을 저지하는 동안, 루산의 군대가 동쪽에 있는 폴타바 군을 무찌른다.
티라스 군의 진형은 이미 갖춰졌고,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 부대가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비교적 사방이 훤히 보이는 평원 지대이지만 완전히 평평하지는 않아서 오스카는 지휘를 위해 멕 나이트를 타고 작은 언덕에 올라 동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는 종류가 다양했다.
레오파드 파워, 레오파드 스피드, 아이언 워리어뿐 아니라 아우로라 연합군이 주력 기체로 사용하던 헤비 스틸과 시바스 왕국의 멕 나이트 그레이 울프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들고 있는 무기도 제각각이었다.
대전쟁 기간에 변경 8구역 수리 공장으로 들어온 아우로라 연합의 파손 기체들 가운데 일부를 아라드 변경으로 빼돌렸다는 것을 오스카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 시절 획득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가 워낙 많아 필센 제국군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들이 변경으로 흘러들어 갔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티라스 주둔군이 방어 진형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티라스 군을 압박하려는 식민지 병력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병력의 움직임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까지 와 있었지만, 같은 나라 군대끼리 충돌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식민지 군대와 직할령 군대는 같은 필센 제국군 소속일 뿐 아니라 같은 동방군 출신이었기에 식민지 주둔군 지휘관과 파일럿들은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극적으로 타결되기를 내심 바랐고, 만약 충돌하게 되더라도 자신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가프 용병단과 문제를 일으킨 폴타바 군이 격돌하여 그 결과로 일이 마무리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총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설마, 하는 초조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비록 군대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반란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군대를 동원하고도 반란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보름스 백작이 동원한 병력을 완전히 무찔러 동방군 출신 총독들의 힘과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을 황제에게 보임으로써 황제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했다.
언덕에 올라 가프 용병단의 이동을 지켜보던 마르켈 라이네가 명령을 내렸다.
“노보라드 군과 자모스 군은 폴타바 군을 도와 보름스 백작의 군대를 격파하라!”
그의 명령을 옆에 있던 부관이 복창하자 바로 곁에 있던 멕 나이트의 파일럿이 마나 통신기로 전달했다.
식민지 노보라드와 자모스의 주둔군이 북쪽과 남쪽에서 가프 용병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폴타바 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프 용병단이 폴타바 군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노보라드와 자모스의 군대가 가프 용병단과 티라스 주둔군 사이를 끊고 가프 용병단을 완전히 포위하는 형세가 된다.
그 모습을 본 오스카가 통신기로 루산에게 말했다.
-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우리 군대와 백작의 군대가 차단됩니다. 우리가 노보라드, 자모스의 군대를 견제하겠습니다!
그러자 루산이 말했다.
-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티라스 군이 움직이면 식민지 군대 전체가 움직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티라스 군이 위험해져요.
- 하지만······!
- 걱정하지 말아요. 모두 격파할 테니까.
오스카는 루산이 대체 무얼 믿고 저리 태연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티라스 군이 움직이면 이 싸움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했다.
루산 본인이 호언장담하니 결국 지켜보기로 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가프 용병단 멕 나이트 400여 대는 여전히 동쪽으로 나아갔고, 식민지 노보라드와 자모스의 멕 나이트 부대가 가프 용병단의 후방으로 들어와 뒤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럼에도 가프 용병단은 계속해서 폴타바 군을 향해 전진했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폴타바 군 멕 나이트 400여 대가 마침내 개전을 위해 움직였다.
후방에서 가프 용병단을 포위해 오는 노보라드, 자모스의 군대를 믿고 싸우기로 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블란트는 마르켈의 호출을 받고 그의 진영으로 갔다가 마르켈과 여러 총독들로부터 강한 질타와 응원을 동시에 받았다.
“베른카슈 총독, 내가 그대를 돕는 것은 그대의 벨고트 점령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오. 벨고트를 공격한 그대의 군사 행동은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소. 황제가 분노할 만하오. 그럼에도 그대를 돕는 것은 군인도 아닌 변경의 측근을 보내 우리를 겁박하는 황제의 무도한 행위를 규탄하기 때문이오. 반드시 무찌르시오.”
마르켈 라이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는 라이네 사령관의 장자로서 페르보 땅을 다스리고 있는 동방군 출신 총독들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변경 출신 따위에게 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자신은 황제뿐 아니라 동방군 출신 총독들에게도 버림을 받는다.
그러니 반드시 이겨야 했다.
- 베키오! 귀순 부대를 이끌고 적의 정면을 들이받아라! 나는 좌우 측면을 공격할 것이다! 다른 식민지의 병력이 적의 후방을 공격할 테니 정면만 막고 있으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블란트가 마나 통신기로 소리쳤다.
베키오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우로라의 부흥을 위해 애써 준비해 온 군대가 느닷없이 벌어진 싸움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무려 20개가 넘는 멕 나이트 전단이 동원된 거대한 싸움에서 고작 2개 전단밖에 되지 않는 아우로라 부흥을 위한 군대가 멋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베키오는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귀순 부대 멕 나이트 200여 대가 전열을 갖추고 나아갔다.
-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런 전투에서 헛되이 죽지 마라! 악착같이 살아남아라! 좌우 밀착! 전진!
쿵쿵쿵쿵!
쿵쿵쿵쿵!
폴타바 군의 귀순 부대 멕 나이트들이 어깨를 맞대고 방패를 가슴까지 치켜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이에 맞서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들도 방패로 긴 벽을 쌓으며 전진했다.
거대한 멕 나이트들이 갈대가 무성히 자란 들판을 짓밟으며 나아갔다.
양쪽 방패 벽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 귀순 부대의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충돌이 머지않다고 느낀 순간, 가프 용병단의 선두에서 방패 벽을 형성하고 있던 전열 세 줄이 갑자기 정지하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자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프 용병단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던 시험단 기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장착하고 있는 기체 30대!
기다란 포신을 왼팔에 장착하고, 발포의 충격에 포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왼발을 앞에 오른발을 뒤로 하고 자세를 낮춘 채 서 있는 멕 나이트 30대!
귀순 부대 파일럿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머릿속에 격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놀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시험단 파일럿들이 먼저 움직였다.
- 쏴라!
시에나의 명령에 시험단 파일럿들이 능숙하게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발사했다.
쿵!
쿠쿠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쿵!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번개처럼 날아간 육중한 탄환이 귀순 부대의 방패 벽을 깨부쉈다.
콰콰콰콰콰콰-!
두꺼운 멕 나이트 방패가 깨지고, 탄환에 맞은 멕 나이트 가슴이 움푹 찌그러지고, 멕 나이트 머리가 마법처럼 터져 나가 산산이 흩어졌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식민지 주둔군들은 폴타바 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이 있는 곳까지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에 결코 반갑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우로라의 부흥, 페르보 제국 재건을 위해 10년을 준비한 귀순 부대의 전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
- 이럴 수가!
오스카는 깜짝 놀랐다.
루산이 그토록 장담했으니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저렇게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모양과 형태를 보니 무슨 무기인지 짐작이 되었다.
그 역시 대전쟁을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마나포를 사용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사용했던 마나포와 많이 달랐다.
과거의 마나포는 기다란 마나 진동 화살을 발사했다.
포신에 7미터가 넘는 마나 진동 화살을 끼우는 일은 보통 멕 워커들이 수행해 왔다.
다시 말해 멕 나이트 혼자서 사용하기 어렵기에 마나포를 운용할 때는 멕 워커 두 대나 세 대가 한 조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멕 워커는 워낙 방어에 취약하기 때문에 멕 나이트 한 대만 포대로 침입해도 전멸하기 십상이었다.
마나포를 멕 나이트가 들고 발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나포의 반동이 매우 강해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대에 고정시켜 발사해야 한다.
그런 마나포를 멕 나이트가 들고 사용한다면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을 낭비하는 셈이다.
그런데 방금 가프 용병단이 사용한 마나포는, 거리가 멀어 모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의 전열이 파괴된 것을 보니 거의 다 명중한 것 같았다.
- 대, 대체 무엇입니까?
오스카의 놀란 음성에 루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 마나포입니다.
- 그건 알겠는데······.
-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인데, 개발하고 개량해 온 지 15년 정도 된 겁니다.
- 그런 게 어찌······?
군대가 아니라 변경을 다스리는 보름스 백작의 수중에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루산은 오스카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생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이해했다.
- 대전쟁 이후 군사비 예산을 맞출 수 없어 채택이 안 된 겁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대형 거미(정식 명칭, 8족 반구형 산악 운반차)에 마나포와 전장 진압용 발리스타를 탑재한 전투 거미와 멕 나이트가 직접 들고 사용하는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루산의 제안에 따라 만들고 개선해 나갔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판매하고 싶었다.
당연히 필센 제국에 이 무기들을 팔고자 했다.
그런데 필센 제국은 대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엄청난 전쟁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렸다.
주둔군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식민지 총독들에게 떠넘겨야 했을 정도이니, 고가의 신무기를 채택할 여유가 없었다.
대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굳이 신무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군부무 무기 획득 관계자들 중에는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이 무기를 도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기존 멕 나이트 소요를 줄여서까지 도입하기에는 많은 반대가 있어서 결국 이 무기들은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루산은 이 무기들의 위력을 직접 시험하고 확인했기에 결코 사장되도록 놔둘 수가 없었다.
직접 구입하여 원시의 땅에서 괴수 사냥에 사용하면서 신무기 사용에 익숙한 부대를 만듦으로써 최소한의 물량을 꾸준히 생산하도록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 프리드리히 황제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면서 변경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법도 염두에 두었는데 만약 황제가 군대를 보내 변경을 공격하면 막을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형의 이점을 활용함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신무기로 방어한다면 결국 변경의 마나 연료로 바깥세상의 굴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황제가 사망한 뒤에도 마나 연료로 바깥세상을 통제한다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밤베르크 공작이 자신을 끝까지 핍박한다면 그 수단을 쓰는 것도 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시에나에게 시험단을 맡겨 운용해 왔던 것이다.
이렇듯 이 무기와 관련해 할 말은 많았지만, 오스카에게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할 필요도 없었고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시험단 멕 나이트들이 두 번째 발포를 시작했다.
쿠쿠쿠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쿵!
지축을 뒤흔드는 엄청난 포성!
루산은 알고 있었다.
이 소리에 모두들 놀라겠지만, 필센 제국군 파일럿들은 대전쟁을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마나포가 결코 만능이 아니고, 이 무기의 약점도 간파될 것이다.
적이 정신을 차릴 여유를 주지 않고 정신없이 들이쳐서 무너뜨려야 한다.
- 레보르크, 폴타바 군을 철저히 분쇄하라!
- 네, 대장님!
레보르크가 명령했다.
- 도끼 부대, 돌진!
레오파드 파워에 탑승한 부르사 왕국 포로 출신 용병들이 작은 원형 방패와 마나 진동 도끼를 들고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진 귀순 부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 전 병력, 전진하라!
기종도 다르고 모델도 제각각인 가프 용병단이 철벽처럼 대열을 갖춰 힘차게 전진했다.
10년 동안 변경에서 숨죽여 온 루산 보름스가 마침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