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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16화 (416/450)

4부 35. 썩은 물은 퍼내야죠

4부 35. 썩은 물은 퍼내야죠

트리어와 켐니츠는 환담을 나누었다.

함께 일한 기간도 길었고 떨어져 지낸 세월도 길어 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켐니츠가 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바쁘신 분이 옛날 생각이 나서 이 먼 곳까지 그냥 와 봤을 리는 없고······.”

그러자 트리어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말했다.

“8구역에 좋은 소식을 알려 주려고 왔지.”

“좋은 소식이라고요?”

“음. 코부스와 7구역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네.”

“예?”

“이로써 철로 복선화를 완성시키고 자동차가 제대로 다닐 수 있게 되는 거야.”

“아! 드디어······!”

트리어가 전해 준 소식에 트리어는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사실 코부스 지방과 7구역 사이에 다리를 놓는 문제는 옛날부터 거론되던 것이었다.

변경은 원시의 땅으로 인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개척지이면서 동시에 괴수들로부터 인간 사회를 지키는 최전선이라 변경 구역을 설정할 때는 괴수들이 인간 세상으로 함부로 들어오기 어려운 자연적 경계를 기준으로 한다.

높은 산, 넓은 강, 깊은 협곡, 사막 같은 것이 인간 세상과 변경 구역의 경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형적 경계는 괴수로부터 인간 세상을 지키기에는 유리하지만, 양쪽이 교통하는 데는 매우 어려워 많은 문제들을 낳았다.

특히 변경 구역이 발전하여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필요해지고 변경 구역에서 생산된 괴수 부산물과 각종 자원이 바깥세상으로 더 많이 이동하게 될 때 크나큰 지장을 주는 것이다.

변경 7구역과 여기에 인접한 코부스 지방을 가르는 것은 험준한 협곡 지대였다.

7구역이 점점 성장하자 필센 제국은 협곡 지대를 굽이굽이 도는 철도를 부설했다.

무척 어려운 공사였으나 필요에 의해 많은 희생과 비용을 치르면서도 결국 해낸 것이다.

이후 8구역이 7구역에서 분리되었는데, 7구역과 8구역 사이는 코부스 지방과 7구역 사이만큼 험하지는 않았다.

설사 괴수들이 8구역을 휩쓴다 해도 곧바로 인간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7구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경계 기준을 지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7구역에서 8구역 본부가 있는 라돔 시까지 철도를 연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8구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어렵게 부설해 놓았던 철도로도 교통량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다.

철로 복선화 논의가 일어나고, 급격히 발달해 가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8구역은 스스로 교통망을 확충할 자금력이 충분했다.

그리하여 라돔 시에서 반달 호수 지역을 잇는 철도를 놓았고, 나중에는 복선 공사까지 마쳤으며, 늘어나는 화물 자동차 통행량을 소화하기 위해 도로 포장 공사까지 했다.

8구역과 7구역을 잇는 길은 물론 7구역을 지나는 구간도 철로 복선화를 마쳤다.

문제는, 7구역과 코부스 지방을 잇는 도로인데, 그 당시 부설한 철로도 산의 비탈을 깎고 아슬아슬한 절벽 가장자리를 다듬어 힘겹게 만든 것이라 복선화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다리를 지으면 굽이굽이 도는 긴 철로를 놓을 필요가 없었고, 길이도 단축되기 때문이다.

8구역에 이어 7구역도 괴수 관광으로 유명해지면서 교통량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에 철로 복선화와 도로 건설의 필요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문제는, 7구역과 코부스 지방 사이의 협곡 지대가 매우 험해 다리를 건설하는 공사가 무척 어렵다는 것, 다리를 놓으면 험한 협곡 지형으로 인해 인간 세상으로 들어가기 어려웠던 괴수가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괴수가 바깥세상으로 갈 것을 우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변경 7구역의 전력은 상당히 강력하여 괴수들이 7구역 본부가 있는 오스나 시까지 도달한 경우도 없을 정도였고, 그래도 걱정이 되면 다리 한쪽을 막으면 되기 때문이다.

깊은 협곡에 다리를 놓는 어려움도, 그동안 건설 기술이 발달했고 이 지대에 최초로 철도를 부설할 때의 어려움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다리가 완공되면 가장 큰 이익을 볼 것 같은 루산이 이 계획을 반대했다.

“너무 위험한 공사입니다. 그곳에 다리를 놓으려다가는 많은 노동자가 희생될 거예요.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토록 어려운 공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도 단선 구간에서 양쪽 신호만 잘 주고받으면 별문제는 없으니까요.”

루산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켐니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 반대하는지 루산에게 따로 물어보았지만,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결국 7구역과 코부스 지방을 잇는 협곡 다리 건설 계획은 무산되었고, 단선 철로 구간 양쪽 끝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교통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도록 중간중간에 통신소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통신소 운영에 드는 인력과 비용은 이 사업에 반대한 루산, 즉 8구역에서 대기로 했다.

다시 말해 현재 코부스 지방과 7구역을 잇는 협곡 지대에 자리한 통신소들을 건설하고 통신 장비와 인력을 배치한 사람이 바로 8구역을 다스리는 루산이었다.

그래서 트리어가 루산을 대신해 8구역을 다스리고 있는 켐니츠에게 와서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고 하니 좋은 일이군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까? 설마 비용 분담을 해야 하나요?”

“정부에서 하는 사업인데 설마 변경 구역에 비용을 분담시키겠어? 걱정 마. 그냥 알고 있으라고 말해 주는 것이니까.”

“공사를 하는 동안 교통에 지장은 없겠죠?”

“지장 없게 해야지.”

당연한 말이었다.

공사를 하는 동안 열차가 다니지 못한다면 7구역과 8구역에서 생산되는 마나 연료, 각종 괴수 부산물, 여러 자원과 상품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는 변경 구역에만 손해인 것이 아니라 바깥세상에도 치명적인 일이었다.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최대한 빨리 시작할 거야.”

“그렇습니까? 아직 보름스 백작께서 안 돌아오셨는데······. 아!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신 건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네. 괴수 목장 건설 건으로 가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부지를 돌아보고 오신다고 했으니 조만간 오시겠죠. 그럼 그때 시작하시죠.”

“언제 돌아올지 정확히 모르는데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겠어? 8구역에 손해가 되는 일도 아닌데, 자네가 반대하지 않으면 된 거지. 안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만······.”

“어차피 시작한다 해도 측량이다 뭐다 하는 것들부터 시작할 테니까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려면 한참 남았어. 그러니 서둘러야지.”

트리어의 말에 켐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트리어는 이 일이 마무리된 것처럼 화제를 돌렸다.

“큰애는 어떻게 지내나? 노바에서 변경부 관리로 일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 변경 말고 노바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는 했는데 사람 구실은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폐하께서 통치자로 계시던 곳에서 왔으니 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통 연락도 없고······.”

“바쁜가 보지. 관리로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보고할 사람이 좀 많아야지. 높은 자리에 올라도 윗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몰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면 할 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걱정 말게. 내가 조만간 한번 들러서 잘 지내는지 살펴볼 테니까.”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식을 돌봐 준다는 말에 깐깐한 켐니츠의 얼굴도 환해졌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럼, 그럼! 다들 한 식구 아닌가. 보름스 백작은 언젠가는 노바에서 큰일을 하시게 될 테고, 그럼 이 8구역은 자네가 맡게 될 거야. 서로 돕고 힘을 내서 다들 잘돼야지.”

켐니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폐하께서 보름스 백작님을 불러올리신단 말씀입니까?”

“그래도 같이 고생하던 사이이고 누구보다 믿는 사람이니 그러지 않으시겠나?”

“그건 그렇지요.”

루산이 노바로 올라가 큰 자리에 오르고, 변경 8구역은 자신이 통치한다.

켐니츠는 듣기만 해도 뿌듯했다.

변경 8구역 출신들이 황제에 오르고 대제국 필센을 장악해 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다스리게 될 8구역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라도 7구역과 코부스 지방 사이의 협곡 지대에 다리를 놓는 공사를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흡족해 하는 켐니츠의 표정을 본 트리어도 미소를 지었다.

***

페르보 식민지 총독들은 루산이 동원한 무기와 병력의 전투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걸 보니 더 저항하면 정말로 큰일이 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황제에게 숙이는 것이 낫지 않을는지······.”

어느 총독의 말에 몇몇 총독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르켈 라이네 공작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나포를 동원했소.”

“음!”

“우리를 완전히 적으로 보고 짓밟아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오!”

사실은 루산이 분명 지난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면 벌하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음에도 그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 잘못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단합이 깨진다.

어쨌든 마나포를 동원하고 사용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멕 나이트 부대만 동원했다면 위력을 과시하여 굴복하게 만들려고 했나 보다 생각하겠지만, 마나포는 의미가 달랐다.

진짜 전쟁인 것이다.

“황제는 처음부터 우리를 죽이려 한 건데 우리는 너무 무르게 반응한 거예요.”

마르켈의 말은 담담하여 오히려 분노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많은 병력을 잃은 식민지 노보라드의 총독이 성난 목소리로 그의 말에 호응했다.

“우리도 마나포를 사용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애매하게 중립을 지킨다는 직할령 사령관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들 역시 다른 식민지의 총독이 아닙니까? 가만히 앉아서 당할 게 아니라 더욱 똘똘 뭉쳐 보름스 백작을 응징하고 황제에게 우리의 각오를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감히 동방군을 상대로 전쟁을 걸어온 거예요.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르켈이 고개를 끄덕이고 페르보 식민지 총독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직할령 사령관들에게도 포고문을 돌렸다.

그리고 첫 번째 전투 이후 소강상태로 대치하고 있던 티라스 군과 가프 용병단을 더욱 강하게 포위했다.

흙과 바위를 쌓아 진지를 건설하고, 멕 나이트 방패를 삼중으로 묶어 벽을 쌓았다.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본 오스카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보름스 백작,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옆에서 자신의 망원경으로 식민지 군대의 진지 구축 공사를 지켜보던 루산이 망원경을 내렸다.

“이래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다? 그동안 페르보 땅의 총독들이 황제 폐하를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겠군요.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어려운 세월을 보내셨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루산이 단호히 말했다.

“썩은 물은 퍼내야죠.”

루산은 이번 기회에 율리안의 통치가 바로 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더 많은 피를 흘리더라도.

그 결연한 태도를 오스카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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