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41. 장악 완료!
4부 41. 장악 완료!
멕 나이트를 실은 열차들은 변경 8구역까지 거침없이 들어왔다.
바깥세상과 통하는 좁은 통로를 확실히 지킴으로써 외부의 군대가 변경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변경의 마나 연료를 통제해 바깥세상을 굴복시킨다는 루산의 비상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루산이 설치한 통신소를 먼저 장악하고 변경 8구역 라돔 시까지 기습적으로 들어온 수도 군단 3전단과 4전단은 화물 열차에 싣고 온 멕 나이트를 타고 8구역 본부를 급습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기습한 병력의 규모가 매우 컸으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본부를 지키고 있던 당직 병력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명단에 적힌 간부들을 체포하고, 본부 건물을 통제하라!”
“예!”
멕 나이트 2백 여 대와 살벌한 눈빛을 뿜어내는 수도 군단 병사들 앞에서 저항할 용기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도 군단이다! 루산 보름스의 반란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왔다!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 다시 한번 말한다!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면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당직을 서던 변경의 요원들과 집에서 잠을 자던 간부들은 결국 항복했다.
“계획대로 거점 도시들을 장악하라!”
라돔 시를 장악한 수도 군단 병력이 서둘러 움직였다.
일부는 반달 호수 지역 북부로, 나머지 대다수는 반달 호수 지역으로,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마나 열차가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나무들의 숲을 지나 8구역에서 가장 발전한 반달 호수 지역에 도착한 뒤에도 수도 군단은 장악해야 하는 건물과 체포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이토록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이번 일이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멕 나이트 부대와 보병 부대를 동원한 수도 군단 병력은 변경 8구역 전역을 하루 만에 장악했다.
반발은 있었으나 무력 충돌은 없었다.
긴장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쉬워서 수도 군단 군인들이 오히려 당황할 지경이었다.
루산의 수중에 있던 변경 8구역을 장악하는 작전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아니, 성공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협곡 지대에 설치된 통신소를 장악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8구역 측이 미처 대응할 여지도 없이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요소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첫째, 8구역 본부가 있는 라돔 시와 8구역에서 가장 발전한 반달 호수 지역의 레이크 시티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수도 군단 병력이 라돔 시에 있는 본부를 습격한 뒤에 레이크 시티까지 들어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라돔 시 변경 본부에서 당직을 서던 요원이 수도 군단을 자처하는 세력이 새벽에 많은 병력을 이끌고 습격해 온 사실을 마나 통신으로 레이크 시티 당직실에 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레이크 시티가 라돔 시보다 훨씬 커지고 8구역의 인구 대다수가 레이크 시티가 있는 반달 호수 지역에 살게 되면서 8구역 본부를 레이크 시티로 옮기자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루산이 반대했다.
“본부를 레이크 시티로 옮기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반달 호수 지역으로 집중된 8구역의 인구와 각종 시설이 더욱 몰려 북부 개발이 위축되고 구 도시가 쇠락할 가능성이 있어요. 8구역 균형 발전을 위해 본부를 그대로 두는 게 낫습니다.”
겉으로 내세운 이유 말고도 간부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밤베르크 공작에게 밀려 변경으로 돌아온 그는 밤베르크 공작이 이대로 자신을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오베론에 의해 가문이 망한 경험이 있었기에 귀족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공격에 대비할 방법을 강구했다.
협곡 지대에 통신소를 새로이 설치했을 뿐 아니라 8구역의 행정 중심 도시와 경제 중심 도시를 나눈 상태로 놔둔 것이다.
외부 병력이 협곡 지대를 통과해 변경으로 들어오더라도 변경 본부가 있는 라돔 시를 내버려 둘 수 없기에 레이크 시티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말하자면 라돔 시를 등대 겸 방파제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속마음을 간부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밤베르크 공작에게 전해진다면 그 역시 자신을 더욱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루산의 마음을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수도 군단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두 번째 요인이 움직였다.
라돔 시 본부 당직실에서 레이크 시티로 외부 군대의 습격 사실을 알리더라도 어찌 대처할지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레이크 시티 당직 요원이 깜짝 놀라 간부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는데, 마침 레이크 시티에는 바이크가 있었다.
시에나가 루산을 따라 장기 출장을 간 바람에 그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최대한 원정 사냥이나 원거리 정찰 근무를 줄이고 레이크 시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당직 요원의 연락을 받고 새벽에 잠이 깬 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루산과 함께 노바에서 지내면서 권력 다툼의 치밀함과 엄혹함을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얘들아, 일어나!”
그는 잠에 취한 아이들을 양쪽 팔로 안아 들고 아이들을 돌봐 주는 에밀리의 집으로 달려가 급하게 부탁한 뒤 레이크 시티 상황실로 달려갔다.
“쳐들어온 놈들이 얼마나 된다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멕 나이트만 수십 대가 넘고 병사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답니다.”
“수도 군단이라고 했다고?”
“예!”
바이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순순히 항복해.”
“네?”
“말단은 건드리지 않을 거야. 백작님을 노리는 거지. 그러니 다 협조하란 말이야!”
“하지만······!”
“다만 내가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모른다고 해. 근무 기록을 없애 버려! 백작님이 안 계시는 동안 게으름을 부렸던 것처럼 하라고.”
“···예!”
레이크 시티 요원들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린 바이크는 급히 부하들을 멕 나이트에 태워 가프 마법 연구소로 달려갔다.
가프 연구소의 경비들이 앞을 막았지만, 워낙 상황이 엄중하여 힘으로 밀고 들어가 대표 마법사 칼리슈를 만났다.
상황을 설명하자 칼리슈 역시 깜짝 놀랐다.
“수도 군단이 왜······?”
“짐작하는 바는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닙니다. 시간이 없으니 도와주십시오.”
칼리슈도 눈치가 있었다.
루산이 10년 전에 겪은 일을 모르지 않았다.
“뭘 도와달라는 것이오?”
“시험단 무기고에 있는 것들과 가프 연구소 무기 창고에 있는 것들을 내 주십시오.”
“으음······!”
칼리슈가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를 오늘날의 규모로 키워 준 은인으로서 가프 연구소의 명예 마법사이면서 개인적으로도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전투 거미는 백작님이 다 가져가셨소.”
“나머지라도 주십시오.”
“알겠소.”
그는 무기 창고에 있는 마나포와 포탄을 몽땅 챙겨 바이크에게 넘겨주었다.
멕 나이트로는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량이어서 바이크는 마침 돌아와 있던 비어슨을 깨워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까지 동원했다.
등에 거대한 철제 바구니를 메고 있는 탐사 부대의 멕 나이트에 마나포와 포탄을 꽉꽉 채운 바이크는 서둘러 서쪽으로 떠났다.
반달 호수 지역을 떠나 원시의 땅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려는 것이었다.
[이제 어쩔 텐가?]
비어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도 몰라.]
[······.]
[상황을 좀 더 봐야지.]
[···알았네.]
바이크가 이끄는 변경 8군단 4전단의 일부와 비어슨이 이끄는 탐사 부대 일부는 원시의 땅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레이크 시티에 도착한 수도 군단 병력은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지만,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그리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수도 군단 병력은 많은 데 반해 사라진 변경의 파일럿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비겁한 변경의 파일럿들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루산 보름스의 근거지를 피해 없이 빠르게 장악했다는 사실이었다.
수도 군단 3전단장이 마나 통신망을 이용해 노바에 보고했다.
“변경 8구역 장악 완료! 주요 간부들 체포하고 핵심 거점 모두 확보함. 원시의 땅 깊숙이 일을 떠난 멕 나이트들이 꽤 많지만, 돌아오더라도 별 저항은 없을 것으로 보임. 이상!”
***
가프 용병단과 티라스 주둔군은 금방이라도 총독들의 군대가 집결한 노바오 공작의 성 - 노바오 지방은 지금은 필센 제국의 여러 식민지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과거에는 페르보 제국의 공작령이었다 - 까지 들이받을 듯이 노바오로 진입했지만, 초반의 사나운 기세와 다르게 진군을 멈추었다.
그 사실을 파악한 총독들은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하고 대응을 논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 지형이 낯선 데다 눈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것도 있겠지만, 루한 군이 갑자기 다가오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페르보의 총독들도 루한 군이 바르나를 거쳐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 역시 섣불리 군대를 움직여 가프 용병단을 공격하지 못했다.
루한 군의 근간이 되는 네세베르 공략군과 페르보 식민지 주둔군의 바탕이 되는 동방군은 모두 필센 제국군 소속이기에 애초에 사이가 나쁠 일이 없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서로 협력하여 강력한 아우로라 연합을 물리친 전우였던 것이다.
그런데 밤베르크 공작이 가장 큰 전공을 기록하면서 양군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전공을 세운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그가 루한 땅을 통째로 식민지로 받는 바람에 동방군 출신 지휘관들은 네세베르 공략군 지휘관들과 페르보 땅을 나눠 갖게 되었다.
몫이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황제의 외숙으로 제국군 총사령관 지위를 차지한 밤베르크 공작이 네세베르 공략군 출신 총독들을 더 챙기고 동방군 출신 총독들을 홀대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실제로 주둔군 유지비 지원에 있어서도 차별이 존재했고 보급품 배정 물량과 순위에서도 홀대를 받았다.
그러니 밤베르크 공작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특사가 나타나 페르보 총독들을 공격하고, 뒤이어 루한 군이 엄청난 병력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으니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저 둘이 한편이라면 힘을 합치기 전에 보름스 백작을 물리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독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들은 아우로라 연합이라는 적을 상대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용맹했지만 자신이 반란자로 기록될지 모르는 싸움을 감행하는 데는 여전히 거리낌이 있었던 것이다.
“루한 군이 열차를 이용하지 못해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합니다.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어떻게 할지 정하도록 합시다.”
마음에 극심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결국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페르보의 총독들은 가프 용병단과 루한 군, 양쪽에 감시 병력을 더욱 늘리도록 하는 가운데 대응책을 모색하느라 연일 토론을 벌였다.
그들이 느슨한 대응을 하는 데에는 계속 내리는 눈이 다가오는 군대의 행군 속도를 더디게 하리라는 믿음도 크게 한몫했다.
그렇게 그들은 눈 덮인 산간 마을의 주민들이 겨울 내내 따뜻한 촌장 집에 모여 담소만 나누듯 별다른 일은 하지 않고 노바오 공작의 성에 모여 대책만 논의했다.
그러는 동안 노바오의 너른 평원을 가로지르는 산줄기로 벌레를 닮은 거대한 물체들이 이동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눈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