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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23화 (423/450)

4부 42. 전투 병력을 투입하라!

4부 42. 전투 병력을 투입하라!

15년 전.

‘8족 반구형 산악 운반차’라는 정식 명칭 대신 ‘대형 거미’라고 불리는 거대한 탈것에 루산은 마나포와 발리스타를 탑재해 줄 것을 가프 마법 연구소에 요청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 가라로슈는 이에 호응하여 생산과 운용에 드는 비용이 너무 커서 멕 나이트의 등장 이후 사장되어 가던 대형 거미를 전투용으로 되살렸을 뿐 아니라 이것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과거 대형 거미를 생산하던 마법 연구소를 과감히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연구와 투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전투 거미는 상품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전쟁은 전투 거미가 없어도 필센 제국의 승리 쪽으로 이미 기울었고 엄청난 전비를 지출한 필센 제국은 대당 가격이 멕 나이트보다 수십 배나 비싼 전투 거미를 굳이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라로슈는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전투 거미 연구를 계속해 왔으나 그가 사망하고 그의 제자 칼리슈가 대표 마법사직을 이으면서 강한 내부 반발에 부딪쳤다.

대전쟁이 끝나 무기 수요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제국의 재정 상황을 보아도 신무기 채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사업 분야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라로슈가 대표 마법사로 있을 때는 멕 나이트 레오파드를 단기간에 크게 성공시킨 공적으로 마나 연료, 윤활유, 괴수 부산물 가공 등 기존 사업 분야의 고위 마법사들을 찍어 누를 수가 있었는데 새로이 대표 마법사가 된 칼리슈는 그들의 압력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를 방문해 고위 마법사들을 설득했다.

“전투 거미는 분명 가격 경쟁력 면에서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전쟁에서는 굳이 전투 거미를 사용하기보다 같은 돈으로 멕 나이트와 마나포를 수십 대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그러나 모든 전쟁이 아우로라 연합과의 전쟁처럼 대규모로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국지전, 특수 작전, 험지 작전에서 전투 거미는 확실히 멕 나이트 수십 대 이상의 가치를 해 낼 것입니다.”

“우리도 그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의 가용 자원은 한정돼 있고 그 한정된 자원을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분야에 계속 투입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마나포와 전투 거미, 이 사업 분야에 투입하는 노력을 한창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멕 워커 쪽으로 돌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만, 레오파드가 빛을 본 데에는 당장 이익이 되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기만 하는 멕 나이트 연구를 수십 년 동안 묵묵히 기다려 준 가프 연구소 마법사들의 인내심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으음······!”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인내의 시간을 함께하겠습니다. 연구용으로 생산하고 있는 마나포와 전투 거미 생산 분량을 모두 구입하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최소한의 연구와 생산을 계속해 주십시오.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십시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연구소가 되어 주십시오.”

루산 보름스 백작에게 과연 그만한 재력이 있는가?

있었다.

놀랍게도 고슬라 그룹의 재산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그의 재력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레이크 시티 세금 징수권, 멕 나이트 수리 공장, 괴수 목장, 레오파드 부품 납품 회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변경 8구역의 통치 대리인으로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업 - 심지어 변경 투어까지도 - 에 대해 가장 큰 분배 비율로 배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변경 8구역에서 얻는 그의 엄청난 수입도 아라드 변경에서 올리는 것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라드 변경에 대한 그의 지분은 무려 90퍼센트였다.

호른을 영입할 때 준 지분 10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율리안이 약속대로 당시 단장과 자신의 몫을 루산에게 모두 주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아라드 변경이 처음부터 돈이 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피란민들을 먹여 살리느라 8구역에서 올린 수입을 몽땅 털어 넣은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지금은 필센 제국 최상위 기업들의 매출에 필적할 만한 수입을 홀로 올리게 되었다.

어쨌든 루산은 마나포, 전투 거미, 파워 아머 등을 꾸준히 사들였고 그 덕에 가프 마법 연구소는 신규 사업을 접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며 생산해 나갈 수 있었다.

그가 이것들을 구입한 것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사장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시의 땅을 정찰하고 괴수를 관찰하고 거대 괴수를 사냥할 때 신무기들이 유용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시험단과 탐사 부대, 괴수 목장에 전투 거미와 파워 아머 등을 배치해 원시의 땅 탐사 면적을 비약적으로 넓히고 해당 지역의 괴수 생태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파악함으로써 괴수 목장을 늘리고 필요한 희귀 괴수의 부산물을 빠르게 획득하여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원시의 땅에서 괴수를 상대하는 것만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다.

가프 용병단을 전장에 투입할 때 이미 대형 거미를 함께 동원해 큰 재미를 본 적이 있었기에 적을 상대로 피해 없이 승리하고 자신을 지키는 데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수도 군단 사령관이 율리안을 인질로 잡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전투 거미를 투입해 이 사태를 피해 없이 - 율리안과 아군의 피해 없이 - 조용히 진압한 적이 있었다.

루산은 이번에도 이 무기들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비밀 무기는 한번 드러나면 효과가 크게 감퇴하기에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루한 군이 다가오고 있는 데다 페르보 식민지에 주둔한 병력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것은 필센 제국 국력을 약화시키는 일이기에 총독들만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동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투 거미 12대는 눈 덮인 산줄기를 타고 이동해 지금은 총독부로 사용하고 있는 노바오 공작의 성 뒷면에 도착했다.

나이가 들어 멕 나이트를 조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이 전투 거미의 조종간을 잡고 루산에 대한 충성심이 특히 높은 아라드 피란민 출신 포수들이 파워 아머를 착용한 채 마나포와 발리스타 사수가 되어 발사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나포를 탑재하지 않고 몸체 양쪽에 발리스타만 싣고 있는 전투 거미 세 대에는 난전에 강한 부르사 포로 출신 전사들 - 포로로 잡혀 아라드 변경으로 온 전사들의 아들들 - 이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전투 도끼를 다리 위에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전투 도끼 대신 마나 진동 단검을 개조한 검을 든 루산도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앉아 있었다.

“대장님, 언제 시작할까요?”

파워 아머 전사들을 실어 나르는 전투 거미 조종수가 물었다.

“날이 저물면.”

루산이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늙수그레한 남방군 출신 조종수가 다른 전투 거미의 조종수들에게 루산의 말을 전했다.

겨울의 해는 짧았다.

순식간에 날이 저물었다.

전투 거미 12대는 노바오 공작의 성에 밝혀진 희미한 불빛들을 등불 삼아 산을 내려갔다.

대전쟁 기간에 이미 파괴된 성벽은 오래전에 재건되었지만 그것은 평지 쪽이지 산이 버티고 있는 뒷면은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온 대형 거미들은 별다른 장애물 없이 성 안으로 진입했다.

***

보초를 서던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이곳까지 왔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싸움이 벌어지지 않아 안심했다.

그런데 하필 눈이 쌓인 추운 날 보초를 서야 했다.

“재수도 없지. 으, 추워!”

투덜대던 병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그때 성 뒤편에서 마나 등에 비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산에서 내려온 거대한 괴물!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의 몸이 다시 한번 떨렸다.

이번에는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괴물이다!’라고 소리칠 뻔했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병사가 뱉을 말이 아니었기에 그는 마음과 다르게 좀 더 정상적인 병사가 내뱉을 말을 골라 외쳤다.

“적이다!”

그러면서 종을 크게 울렸다.

땡땡땡땡땡-!

갑자기 울린 비상 신호에 성 안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들은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전투 부대는 이 성에 있지 않았다.

적이 들어올 만한 길목이나 요충지 또는 많은 병력이 머물 수 있는 숙영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페르보 땅의 식민지 총독들이 거의 모두 모여 있는 곳이라 경호와 위세 과시를 위한 병력이 적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어디냐?”

싸움이 당장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훌륭한 파일럿들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와 상황을 물으며 자신의 멕 나이트에 올랐다.

이윽고 한껏 나태해져 있던 파일럿들과 병사들이 의복을 추스르며 달려 나왔다.

성벽 위에 설치된 탐조등이 성 뒤쪽에서 넘어오는 거대 괴물들을 일제히 비추었다.

“저게 뭐야!”

대형 거미를 처음 보는 병사들과 파일럿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저 괴물체가 사람이 만든 것이든 눈 덮인 산에 살던 괴수든 성을 넘어오는 것은 결코 우호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먼저 멕 나이트에 탑승한 파일럿들이 마나 진동 대검을 들고 달려갔다.

누군가가 마나 통신기로 말했다.

[저건 예전에 변경에서 사용하던 대형 거미라는 것이다! 적이 기습을 노리고 병력을 태워 들어온 것일 수 있다! 외피가 두껍지 않아 가볍게 부서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처치하라!]

대형 거미에 대한 정보를 들은 파일럿들은 이번 소행이 보름스 백작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변경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전쟁에 동원했으면 그일 수밖에 없었다.

[변경에서 괴수 피나 뒤집어쓰던 놈이 황제를 믿고 여기까지 와? 그냥 변경에서 찌그러져 지낼 것이지!]

건방진 변경 출신에 대한 분노를 토해 낸 파일럿이 맨 먼저 뒤쪽 성벽으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대형 거미 세 대가 맨 앞에서 달려오는 멕 나이트를 향해 전조등을 밝혔다.

번쩍!

그리고 몸을 살짝 틀어 자세를 잡더니 굉음을 토했다.

쿵!

화살과 포탄의 중간 형태의 탄이 거미 머리 부분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멕 나이트에 명중했다.

쾅!

‘쿵’과 ‘쾅’ 소리가 들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달려가던 멕 나이트는 엄청난 충격에 들썩인 채 뒤로 날아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가슴과 옆구리가 찌그러지고 팔이 뜯어질 듯 부서져 있었다.

성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투 거미 쪽으로 달려가던 다른 멕 나이트들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마나포다!”

[젠장! 마나포를 탑재했다!]

[어떻게 저런 괴물을 동원한 거야!]

[시끄럽다! 헛소리 말고 멕 나이트는 방패 들고 건물에 몸을 숨기면서 접근해!]

그러나 전투 거미 부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변경에서 괴수를 상대로 다양한 전술 훈련을 해 왔다.

마나포를 탑재한 아홉 대의 전투 거미는 계속해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사각을 줄이고 건물 뒤에 숨은 적의 위치를 확보하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쾅!

굉음이 터질 때마다 멕 나이트는 쓰러졌고, 전투 거미를 향해 달려간 멕 나이트들은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하지 못했다.

전조등을 밝힌 아홉 대의 전투 거미들은 서두르지 않고 성 안에 있던 멕 나이트가 모두 움직이지 않게 될 때까지 천천히 사냥했다.

그 사이 병사들은 성 밖으로 달아나거나 건물 안으로 숨었다.

[움직이는 멕 나이트가 없습니다.]

[모두 정리한 것 같습니다.]

통신으로 전해지는 전투 거미 조종수들은 오랜만에 치르는 실전의 결과에 무척 들떴지만, 노련한 기사답게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루산이 말했다.

“총독들을 잡는다. 전투 거미들은 포위를 유지하여 총독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막고 수송 거미는 전투 병력을 투입한다.”

“알겠습니다. 수송 거미, 전투 병력을 투입하라!”

마나포를 장착한 전투 거미들이 성벽 위에서 전조등으로 주요 건물들을 밝히는 가운데 세 대의 수송 거미가 성 안으로 들어가 전사들을 토해 냈다.

파워 아머를 착용한 부르사의 아들들이 맨몸으로는 들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전투 도끼를 가볍게 들고 건물로 돌입했다.

파워 아머를 착용한 루산이 마나 진동 단검을 들고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건물 안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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