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50. 유인 작전이냐?
4부 50. 유인 작전이냐?
가프 용병단 병력이 대거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아라드 왕국군은 변경으로 멕 나이트 150여 대를 투입했다.
고슬라 그룹은 아라드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라드 왕국에 토지 개혁을 촉발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귀족들이 토지를 상실했는데, 150여 대의 멕 나이트에 탑승한 파일럿들은 주로 그 가문의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루산을 구국의 영웅으로 여기는 이 나라에서 고슬라 그룹과 루산 보름스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쁜 파일럿들을 일부러 동원했다는 것은 이번 작전에 대한 아라드 국왕의 각오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국왕의 기대대로 그 파일럿들은 복수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먹잇감이 어서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며 변경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대의 멕 나이트도 만나지 못했다.
멕 나이트뿐 아니라 변경에 가면 언제든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괴수 역시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경지 정리가 잘된 농토와 꽤 부유해 보이는 농촌 마을들뿐이었다.
[여기가 변경··· 맞아?]
상상해 오던 변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슬라 그룹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호리아 평원의 부유한 농촌 마을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라드 변경에도 고슬라 그룹의 농업 회사가 들어와 농민들로 하여금 농업 기계와 농업용 멕 워커를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구당 경지 면적을 크게 늘리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변경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지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방책뿐이었다.
괴수 출몰 구역이 서쪽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이곳에서는 괴수의 꼬리도 보기 어려워졌음에도 혹시 모를 괴수의 침입에 대비해 마을을 튼튼한 방책으로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변경의 풍경에 당황한 아라드 왕국군은 마을 주민을 잡아 정보 파악에 나섰다.
“변경 구역은 엄청나게 넓습니다요. 이 마을에서도 옛날에는 괴수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 괴수를 보려면 사냥 캠프까지 가셔야 할 겁니다요. 멕 나이트도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요? 높은 사람들도 죄다 개척 도시들 쪽에 있겠지요. 여기는 다 농사짓는 사람들뿐입니다요. 사냥 캠프까지 걸어서 가기는 멀고요 열차를 타고 개척 도시까지 간 다음에 며칠 걸어가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요.”
“으음······! 변경이 그렇게나 커졌는가?”
“그러믄입쇼. 전쟁 통에 피란민이 삼사십만이나 들어왔는뎁쇼.”
“······!”
이번에 투입된 파일럿들이 변경의 구체적인 사정까지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아라드 정부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라드 왕국은 대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벌어진 마리노 공화국의 침공 사태 때 이미 많은 백성들이 필센 제국으로 피란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쟁이 벌어지고 마리노 공화국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병력이 이 땅에 상륙해 밀고 들어왔을 때 엄청난 수의 난민이 발생하여 수도로 밀려왔고 수도에서 감당하지 못한 난민들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떠밀려 변경으로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당시 아라드 변경 개발권을 획득한 가프 연구소와 변경 통치를 책임진 아라드 변경 본부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라드 왕국 정부는 변경으로 많은 백성들이 들어간 사실을 알았지만 수도로 들어온 난민도 버거웠던 탓에 그들을 외면했다.
결국 변경으로 들어온 아라드의 백성들은 루산과 가프 연구소가 모든 힘을 다해 먹여 살리게 되었고 아라드 왕국 정부는 변경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라드 왕국 재건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변경에서 엄청난 양의 괴수 부산물이 열차에 실려 수출되는 것을 보고 변경을 탐내게 된 것이다.
변경으로 들어온 아라드의 멕 나이트 부대는 붙잡은 백성들 - 그들도 자기가 살던 지역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어 아라드 변경의 행정 구역과 통치 구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 을 길잡이로 삼아 서쪽으로 점점 이동했다.
열차는 다니지 않았기에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데 그 덕에 변경의 모습과 생활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슷한 농촌 마을을 수없이 지나도 변경 주민에게서 들은 커다란 개척 도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아라드 왕국군 파일럿들은 아라드 변경의 광대함과 부유함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땅은 이미 다른 나라였다.
루산 보름스가 먹여 살리고 발전시킨 나라.
이곳을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멕 나이트 150여 대로는 턱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병사와 관리들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두려움과 함께 탐욕에 불을 질렀다.
고슬라 그룹 때문에 빼앗긴 땅을 대신해 이 땅을 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아라드 왕국군 멕 나이트 부대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변경의 멕 나이트를 발견했다.
[저기다! 잡아!]
선두의 멕 나이트들이 부리나케 달아나는 변경의 허름한 멕 나이트 뒤를 쫓아갔다.
고대하던 사냥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
[놈들이 미끼에 따라붙었습니다!]
긴장한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들려왔다.
탐탐 등에 커다란 마나 통신기를 싣고 이동하던 정찰 대원이 보내오는 것이었다.
오토 역시 자신의 탐탐에 실려 있는 통신기의 송화기에 대고 말했다.
“알았다. 계속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정찰병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오토는 다른 곳으로 통신을 보냈다.
“지휘부다. 놈들이 미끼를 물었다. 그곳의 준비 상황은 어떠한가?”
[준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괴수들이 밀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바람에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래 끄는 것은 곤란합니다!]
“미끼 팀이 최선을 다하겠지만 놈들이 우리 계획대로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니니 최대한 통제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오토는 다른 곳의 준비 상황까지 연달아 확인했다.
가만히 서 있던 탐탐이 지루한 듯 고개를 쳐들고 두리번거리다 가슴을 두드렸다.
탐탐-
탐탐-
오토는 오른손으로 탐탐의 옆구리를 습관적으로 문질러 주면서 왼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확인했다.
오토 브뤼크.
가문의 어른들이 이반 황제의 사회 개혁에 반발하다 숙청되는 것을 보고 오베론 공작 가문의 꼬임에 넘어가 변경 7군단에 잠입해 반란을 준비하다 루산에게 저지당한 뒤 노바로 압송되던 중에 루산에 의해 풀려나 그에게 합류한 남방군 출신의 귀족 파일럿.
당시에도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었기에 지금은 멕 나이트 조종을 그만둔 지 오래되었지만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역할을 해 왔었기 때문에 가프 용병단 주력 부대가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난 뒤 아라드 변경의 군사 지휘를 맡고 있었다.
오베론 가문을 무너뜨리고 프리드리히 황제를 죽여 복수를 마쳤음에도 그는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았다.
변경은 이미 그의 두 번째 고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라드 변경은 그가 직접 피란민들을 보호하며 개척해 온 곳이라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루산과 가프 용병단 주력이 빠진 틈을 노리고 빼앗으러 들어온, 배은망덕한 아라드 왕국군 따위에게 넘겨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아라드 왕국군은 최근 두 차례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었고 멕 나이트 또한 최신 기체인 레오파드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면 아라드 변경에서 멕 나이트 전투를 치를 만한 실력자들은 거의 다 루산의 호출을 부름을 받아 떠난 뒤였다.
따라서 아라드 변경에 남아 있는 멕 나이트를 모아 정면충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는 놈들이 변경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단 병력을 모두 뒤로 빼고 움직임만 철저히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아라드 왕국군은 변경을 차지하려고 들어왔기 때문에 농촌 마을을 부수면서 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병력 구성이 멕 나이트 부대 위주로 되어 있어서 지나온 마을들을 점령할 병력을 남길 수가 없었다.
농촌 마을들은 안전했다.
그러나 개척 도시로 들어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규모가 상당히 큰 도시로 아라드 왕국군 멕 나이트 부대가 밀려오면 주민들이 두려움에 빠지고 아라드 변경 본부의 통제권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멕 나이트를 동원해 아라드 왕국군이 개척 도시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유인할 작정이었다.
단지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섬멸할 생각이었다.
원시의 땅의 지리와 괴수를 이용해서.
이 일이 쉬울 리 없었지만, 미끼 역할을 맡은 은퇴한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은 멕 나이트 대처법과 변경의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반드시 임무를 성공시킬 것이다.
오토는 지도를 접고 탐탐에 올랐다.
변경에서 탈것으로 이용되는 잡식성의 괴수 등에 올라타는 게 예전만큼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르지 못해 끙끙대지는 않았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오토가 탐탐을 몰아 이동했다.
여러 날 깎지 못한 흰 수염이 바람에 휘날렸다.
“예!”
정찰병들이 탐탐을 타고 오토의 뒤를 따라갔다.
***
개척 도시로 향하던 아라드 왕국군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변경의 멕 나이트를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변경의 멕 나이트 부대가 추가로 나타났다.
[적 멕 나이트, 1개 소대 규모 출현! 구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것으로 보인다. 기종은 레오파드 라이트닝과 아우로라 연합에서 사용하는 와일드 고우트로 이루어져 있다.]
[경량 멕이군.]
경량 멕은 출력과 무게가 낮아 정면에서 붙으면 일반형 멕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다만 속도가 빨라 놓치기 쉬웠다.
[추격에 1개 전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나머지 병력은 서서히 뒤따라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한다.]
아우로라 왕국군 멕 나이트 30대가 추가로 적을 추격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새로 나타난 변경의 멕 나이트들은 투창을 던지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물러났다.
아우로라 왕국군 멕 나이트들이 투창을 막기 위해 습관적으로 방패를 들었지만, 사실 그대로 맞아도 전혀 피해가 없는 공격이었다.
마나 진동 기능도 없는 철제 투창이었기 때문이었다.
[흥! 괴수나 잡던 투창으로 멕 나이트를 상대하겠다고?]
아라드 왕국군 파일럿들은 코웃음을 치며 달아나는 멕 나이트 뒤를 추격했다.
한참 동안 추격전을 벌이던 아라드 왕국군 멕 나이트 부대 앞에 새로운 변경의 멕 나이트들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규모가 더 커서 20여 대나 되었다. 게다가 일반형 멕 나이트도 절반이나 포함돼 있었다.
[유인 작전이냐? 하! 그래 봐야 고작 20대다. 쳐라!]
아라드 왕국군 멕 나이트들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변경의 멕 나이트들은 이에 맞서 싸우다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기체의 체급과 수에서 밀렸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추격전 끝에 변경의 멕 나이트 한 대가 쓰러지고 거기서 튀어나온 파일럿을 변경의 다른 멕 나이트가 겨우 낚아채 목숨을 구해 달아났다.
아라드 왕국군 선두 부대는 추격을 계속해 나갔다.
어느새 주위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농촌 지대와 달리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숲이 나타났던 것이다.
거친 덤불숲과 멕 나이트가 푹푹 꺼지는 늪지대도 간간이 지나갔다.
아라드 왕국군 파일럿들은 경각심이 들었으나 허름하고 성능도 좋지 않은 기체를 타고 힘겹게 달아나는 상대를 그냥 보내 줄 수 없어 추격을 계속했다.
유인 작전이라 해도 아라드 변경의 멕 나이트가 자신들보다 더 많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원시의 땅에 산다는 괴수에 대해서는 애초에 걱정도 하지 않았다.
맨몸이라면 모를까 멕 나이트에 탑승한 인간 앞에서 괴수란 그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척 도시를 지나 사냥 캠프가 설치돼 있는 거대한 원시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