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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33화 (433/450)

4부 52. 내 아버지는

4부 52. 내 아버지는

수도 군단이 변경 8구역을 기습 점거한 날, 바이크는 가프 마법 연구소에 보관하고 있던 무기들을 가지고 서쪽으로 달아났다.

그 뒤로 반달 호수 지역을 몰래 감시하며 수도 군단으로부터 8구역을 되찾을 기회를 노렸으나 쉽지 않았다.

8구역을 점거한 수도 군단 병력은 바이크가 데리고 나온 병력보다 훨씬 많았다. 위력적인 무기를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병력이 받쳐 주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반달 호수 지역에는 매우 많은 주민이 살고 있었다. 섣불리 공격하다가는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 같았다.

반달 호수 지역 외곽에 숨어 수도 군단을 감시하며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는 병력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달 호수 지역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괴수 목장 지대로 미켈 슐츠를 찾아갔다.

미켈 슐츠는 지금은 괴수 목장의 책임자로 지내면서 루한 괴수 목장 프로젝트를 위해 운반할 괴수를 선별하고 장거리 괴수 운송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전에는 가프 용병단의 운용과 지휘를 맡아 온 사람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바이크에게 8구역에서 일어난 변고를 전해 들은 미켈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백작님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간 틈에 수도 군단이 8구역을 점거했다는 건 백작님의 손발을 자르겠다는 것이로군.”

“그렇죠. 끝장을 보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맞아. 그렇다면 아라드 변경도 공격을 받지 않겠나?”

“예?”

“아라드 변경이 백작님의 진짜 힘이니까.”

8구역 파일럿들은 순수한 변경 파일럿인 반면 아라드 변경의 파일럿들은 구성부터가 달랐다.

남방군 출신의 반란 기사, 부르사 왕국 포로 전사, 아라드 왕국군 출신 레인저였으면서 루산이 동원하면 전쟁터에서 멕 나이트와 싸우는 용병 파일럿이었다.

괴수와도 싸우지만 적 멕 나이트와도 싸울 줄 알고 실제로 여러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었다.

“아라드 변경으로 가는 게 좋겠군. 그곳을 빼앗기면 백작님은 정말로 손발이 잘리는 것이야.”

미켈과 바이크는 루산이 페르보 땅에서 동방군 출신 총독들을 징벌하기 위해 가프 용병단을 동원한 사실을 몰랐다.

루산의 진짜 힘인 아라드 변경이 적에게 장악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아라드 변경의 힘을 동원하면 8구역 탈환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바이크가 서둘러 아라드 변경으로 온 것이다.

8구역 서쪽에 있는 괴수 목장 지대에서 아라드 변경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그렇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라드 변경에 아라드 왕국군이 쳐들어온 상태였고 오토가 유인 작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오토와 만나 이곳의 상황을 들은 바이크는 가프 용병단 주력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났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지만, 쳐들어온 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함께 싸우게 된 것이다.

오토의 작전은 매우 대범하고 훌륭했지만, 바이크가 합류하지 않았다면 아라드 변경은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아라드 변경을 공격해 온 적을 모두 쓰러뜨렸다.

포탄에 맞고 쓰러진 아라드 왕국군 멕 나이트에서 생존자들이 기어 나왔다.

그 주위를 서성이던 변경 멕 나이트의 외부 확성기에서 흉흉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안 뒈진 놈들은 빨리 나와라. 조종실을 뭉개 버리기 전에.

- 어이! 방금 나온 놈! 그래, 너 말이야! 빨리빨리 저쪽으로 모여! 소풍 왔어? 확 괴수 먹이로 던져 줄까 보다.

먼저 나온 아라드 왕국군 기사들이 등 뒤로 팔이 묶인 채 한쪽에 무릎을 꿇고 모여 있었다.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버티던 기사 하나가 변경 정찰병이 휘두른 창대에 맞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토가 바이크에게 물었다.

“이제 어떡할 텐가? 정말로 아라드 왕궁을 칠 생각인가?”

바이크가 오랫동안 깎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한 뺨을 쓱 문지르며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성질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은 지키고 있을 때 장점을 살릴 수 있긴 하지.”

적들은 변경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당한 것이다.

만약 변경 병력이 밖으로 나간다면 이번에는 역으로 당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가프 용병단 주력 병력이 없는 상태로 아라드 왕궁을 공격한다면 성공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성공한다 해도 아라드 변경에서 병력이 나왔다는 사실이 필센 제국에 알려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라드 변경의 병력도 필센 제국군을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뿐 아니라 루산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알게 되지 않겠어요? 아라드의 군대가 소식이 끊기면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 아라드 국왕도 변경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점령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 않겠나? 그리고 필센의 모사꾼 녀석에게 아라드 변경 공략에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울 테니 당분간 필센에서 아라드 변경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겠지.”

“시간을 번다······?”

“결국 백작님의 생사가 관건이지. 백작님이 잘못되신다면 우리는 끝장이니까 말일세. 백작님이 무사히 돌아오셔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때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나?”

바이크는 오토의 견해가 못마땅했다.

아라드 왕궁을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는 것은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8구역을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에밀리에게 맡기고 온 자식들의 안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오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8구역을 탈환하기 위해 수도 군단 병력을 공격한다면 노바에 있는 모사꾼 녀석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 된다.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이고 루산을 해치우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라드 변경에는 8구역을 공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멕과 정찰병은 아라드 왕국군이 추가로 투입될 때를 대비해 남겨 두어야 했다.

바이크가 오토에게 말했다.

“말씀대로 하죠. 백작님께서 어떻게든 돌아오실 테니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죠.”

“알겠네. 나는 아라드 왕국군의 동태와 왕궁의 사정을 어떻게든 파악해 보겠네.”

“저는 8구역으로 돌아가서 필센의 사정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어요.”

“가능하겠는가?”

“원시의 땅을 통과해 7구역으로 가서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도 있고, 또··· 가면서 생각해 봐야죠.”

8구역 변경을 점거한 모사꾼이 다른 변경 구역은 감시하지 않고 내버려둘 가능성은 낮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그리고 8구역과 아라드 변경 사이에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경량 멕을 전령으로 쓰는 게 좋겠어요.”

“알았네. 그렇게 하지.”

“그럼 가 보겠습니다.”

“조심하게.”

“조심하시길······.”

바이크는 오토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의 부하와 탐사부대 파일럿들이 탑승한 멕 나이트들이 바이크의 레오파드 라이트닝 뒤를 따라 달렸다.

[이제 어쩔 셈인가?]

비어슨이 통신기로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변경 5구역의 파일럿으로 있다가 루산을 만나 실력을 인정받고 8구역으로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주해 온 그였기에 루산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

루산의 위기는 곧 자신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줄 병력을 구하러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네.]

바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애써 너스레를 떨었다.

당연히 비어슨은 웃지 않았다.

바이크도 억지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그 사이에 미켈이 무슨 수를 생각해 냈겠지.]

[미켈? 괴수 목장 책임자 양반?]

[그래. 싸우는 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음!]

바이크는 막연한 기대로 비어슨을 안심시켰지만, 이 상황에서 미켈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것이라고는 그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어슨도 더는 묻지 않았다.

바이크와 8구역 파일럿들은 묵묵히 계속 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이크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동원할 병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바이크가 비어슨과 부하들에게 말했다.

[먼저 8구역으로 가. 나는 가 볼 데가 있어.]

[어딜 간다는 건가?]

[병력을 구하러!]

[뭐? 무슨 병력?]

[나중에 말해 줄게! 속도 차이가 많이 나니 나 혼자 가는 게 낫겠어!]

마음이 급한 바이크가 방향을 틀었다.

8구역을 목표로 북쪽으로 가다 말고 갑자기 북서쪽으로 달려간 것이다.

원시의 땅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셈이었다.

[대체 어딜 간다는 거야?]

[기다려 봐!]

걸음이 빠른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순식간에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은 파일럿들은 할 수 없이 바이크의 말대로 8구역을 향해 멕 나이트를 움직였다.

미켈과 바이크,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무슨 수를 찾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

클라크와 레오나가 슈텐달 지방의 피닉스 제철 항구에 내렸다.

두 사람은 거대한 벌크선에서 철광석을 하역하는 장관을 구경할 여유도 없이 슈텐달 남작을 만나러 갔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슈텐달 남작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군가? 지금 큰일이 일어난 걸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백작님과 함께 있다가 명령을 받고 오는 길이니까요.”

“그런가? 어디서 오는 겐가?”

클라크는 슈텐달 남작에게 흑막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말을 아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인베크 남작님을 불러 주시겠습니까? 보름스 백작님 이야기는 빼고 급한 일이라고 이곳으로 불러 주십시오. 두 분이 함께 계신 자리에서 전할 말씀이 있어서요.”

“아, 알았네.”

아인베크 해운은 슈텐달 지방 바로 북쪽인 브레머 항에 본사가 있었지만, 수도인 노바에도 사무실이 있었다.

그래서 슈텐달 남작은 두 곳으로 비서들을 보냈다.

자동차 두 대가 최대 속도로 멀어져 갔다.

다행히 아인베크 남작은 브레머 본사에 있었다.

아인베크 해운의 최대 고객이 바로 피닉스 제철이었기에 그는 슈텐달 남작이 급한 용무가 있다는 전갈을 듣자마자 회의를 하다 말고 달려왔다.

아인베크 남작 역시 클라크와 레오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이게 누군가! 백작님과 사장님은 무사하신가?”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은 바다 건너 소식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루한의 군대가 페르보로 가서 루산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밤베르크 공작이 루산 보름스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던 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아인베크 남작의 말에 레오나는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았다.

클라크가 침착하게 말했다.

“저간의 사정은 아실 테니 백작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말해 보게.”

슈텐달 남작과 아인베크 남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클라크의 말을 기다렸다.

“네. 백작님께서 더는 참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멕 나이트 400여 대를 끌고 노바로 진격하실 겁니다.”

노바 진격!

내전이 일어난다!

“으음······!”

“결국······!”

두 남작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 슈텐달 백작이 염려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백작님이 그만한 병력을 동원하실 수가 있는가? 변경은 이미 수도 군단이 장악한 상태이고 바다에는 해군이 필센으로 오는 모든 배를 철저히 검문할 터인데.”

변경이 장악되었다는 말에 클라크는 놀랐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라 티를 내지는 않았다.

“두 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어떤······?”

“아인베크 해운의 벌크선에 멕 나이트를 싣고 철광석으로 덮은 뒤 바다를 건너와 바로 이곳 피닉스 제철 하역 부두에 내릴 것입니다.”

두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것은 단순히 돕는 것을 넘어 함께하는 것이었다.

루산 보름스와 바덴 고슬라와의 인연이 누구보다 각별하지만, 쉽게 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이 잘못되면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가문과 사업이 박살 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침묵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러자 레오나가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소리쳤다.

“내 아버지는 변경의 왕입니다!”

평소 변경의 공주라는 별명을 싫어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분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각별히 부탁을 하신 거예요! 도와주세요! 변경의 왕은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친구를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제발요!”

레오나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슈텐달 남작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마라! 변경의 왕과 재계의 여왕의 소중한 공주님이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서야 되겠느냐.”

레오나가 눈물을 훔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슈텐달 남작이 말했다.

“두 분이 우리를 친구라 하시더냐? 참 고마운 말씀이구나. 나는 두 분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단다.”

그 말에 아인베크 남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슈텐달 남작이 선언했다.

“걱정하지 마라! 백작님이 없었다면 우리 가문도 없었다. 슈텐달 가문은 모든 힘을 다해 보름스 백작님을 도울 것이다!”

옆에 있던 아인베크 남작도 뜻을 굳히고 말했다.

“아인베크 가문도 보름스 백작님과 고슬라 사장님을 기꺼이 도울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레오나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클라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마침내 루산 보름스의 거사에 슈텐달 남작과 아인베크 남작이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필센을 넘어 세계 최대의 철강 회사인 피닉스 제철의 주인과 오베론 해운 이후 가장 큰 해운사로 성장한 아인베크 해운의 주인이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의 결심이 과거의 은혜 때문인지 아니면 장래의 이익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클라크에게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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