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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36화 (436/450)

4부 55. 이제 가는 건가?

4부 55. 이제 가는 건가?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로 떠나기 전에 클라크는 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시바렌 운송의 사장 렌커였다.

젊은 시절 변경 8구역 라돔 시에서 마부로 일하던 렌커는 클라크를 데리고 노바에 다녀오던 루산을 델타 기지까지 태워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가 보여 주었던 기지와 침착함을 높이 산 루산이 그를 변경 투어 사업 파트너로 선택했다.

변경 투어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렌커는 변경 8구역이 반달 호수 지역 개발로 급격히 성장하여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매우 활발해진 시기에 시바렌 운송을 설립해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대규모 괴수 웨이브에 휩쓸려 폐허가 된 변경 7구역이 괴수 관광 사업에 맞게 재건되고 나서는 8구역에서 해 오던 변경 투어 경험을 살려 7구역의 관광업을 선도함으로써 큰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를 변경에서 자생한 보기 드문 사업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루산의 계획과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사업가로 변경에서 루산 재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루산의 재산 규모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렌커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큰 것은 아니나 루산과 매우 밀접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수도 군단이 변경 8구역을 장악할 때 체포나 밀착 감시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가 변경 8구역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거나 병력을 움직이는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변경에서 제법 규모가 큰 사업들을 해 오고 있다지만 8구역에는 매우 많은 사업체들이 들어와 있는 데다 루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닉스 제철이나 아인베크 해운에 비하면 햇빛 옆에 있는 반딧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밤베르크 공작이 루산을 제거하고 나서 그의 나머지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기로 작정한다면 모를까 루산도 잡지 못한 지금은 신경 쓸 만한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클라크는 이러한 사정을 레온으로부터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렌커 사장님. 클라크입니다.”

“아니, 이게 누구인가? 클라크!”

클라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렌커는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백작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네.”

렌커가 얼른 흥분을 가라앉히고 클라크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밤베르크 공작이 백작님을 페르보 땅으로 끌어내 제거하려 했습니다. 루한 식민지의 병력을 총동원했어요. 하지만 백작님께서는 무사히 피하셨고, 조만간 병력을 이끌고 노바를 치실 겁니다.”

“······!”

렌커는 깜짝 놀랐으나 클라크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클라크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노바 공략이 쉽지는 않겠지요. 노바 진격을 저지하는 지방군 병력을 야전에서 처리한다 해도 노바 관문을 뚫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안에서 호응할 병력이 필요한데 군부는 밤베르크 공작 일파가 장악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협조할 병력을 노바 안으로 침투시켜야 합니다.”

“협조할 병력? 그게 누구인가? 어느 장군이 협력하기로 했단 말이야?”

“그게 아니라······.”

“······?”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 있는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 사람들을 설득해 노바로 보낼 생각입니다.”

“······!”

렌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2차 대전쟁이 발발한 뒤 정부의 전시 임금 동결 조치와 극심한 물가 상승에 분노한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손을 잡고 대정부 투쟁을 벌이다 동부 공업 지구로 들어가 농성하자 경찰에서는 멕 나이트까지 동원해 강력히 진압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루산의 배려로 노바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클라크가 바움 대학 학생들과 어울리다 동부 공업 지구까지 함께 들어가 경찰에 포위된 것을 루산이 들어가 경찰 멕 나이트 수십 대를 해치우고 구출해 나왔다.

이른바 필센 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동부 공업 지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당시 운송 회사 설립을 계획하던 렌커는 바덴의 호의로 노바의 운송 회사들을 돌아볼 기회를 얻어 루산과 함께 노바에 있었기에 그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알았다.

그때 루산에 의해 경찰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노동자와 학생들이 나중에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황제와 공작의 갈등을 틈타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가 루산과 클라크의 설득으로 항복하고 변경에 격리 수용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두 번이나 황제 체제에 저항한 급진 과격 공화 민주주의자들.

클라크의 옛 동료들.

루산에 의해 구출되고 목숨을 구한 사람들.

“으음······!”

렌커가 신음을 흘렸다.

변경에 살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고 지낼 만큼 원시의 땅 깊숙이 유배된 그들이 다시 바깥세상으로 풀려나면 어떻게 될지 순간적으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발한 생각이었다.

당장 군부와 정부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루산에게 그들보다 더 좋은 조력자는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내가 어떡하면 되겠나?”

“사람들을 설득하더라도 밖으로 데려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들을 노바까지 데려가는 일을 맡아 주세요.”

만에 하나라도 변경 8구역을 장악하고 있는 수도 군단이나 노바 관문에서 걸리게 되면 렌커는 끝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방법을 마련해 보겠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클라크는 렌커와 굳게 악수하고 반달 호수 지역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

하늘 높이 자란 원시의 나무들과 오랜 세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덤불숲을 어렵게 통과하면 끝을 알 수 없는 늪지대가 나왔다.

늪지대를 지나고 나면 대형 초식 괴수들이 느릿느릿 거닐고 있는 탁 트인 초원이 나왔다.

거대한 나뭇가지 위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바실리스크, 무성한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뛰쳐나오는 사이티, 무리 지어 대형 초식 괴수를 사냥하는 벨로키 떼, 그밖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괴수들이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늘 주변을 맴돌아 신경을 곤두세웠다.

특히 밤에는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곳이 바로 원시의 땅.

바깥세상 사람들은 변경 구역과 원시의 땅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지 몰라도 클라크와 같이 변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양자가 확연히 달랐다.

변경 구역은 원시의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척한 지역이라 간간이 괴수를 목격하고 주기적으로 괴수 떼가 출현해 애써 개간한 농토를 짓밟고 지나가더라도 변경 군단이 지켜주는 안전한 땅이었다. 반면 원시의 땅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변경 군단의 멕 나이트 파일럿이나 정찰병, 괴수 부산물을 채취해 나르는 멕 워커 파일럿이 아닌 한 변경의 주민들도 겪어 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세계.

변경 출신임에도 이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클라크의 마음은 두려움보다 안타까움과 염려로 가득했다.

사라가 이 땅을 통과해 그곳까지 끌려갔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들 헤르츠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다시는 인간 세계로 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던 것이다.

기기묘묘한 괴수들의 울음소리와 거대한 원시의 땅을 휩쓸고 가는 거친 바람 소리를 여러 날 듣다 보니 어느새 괴수 목장 지대에 다다랐다.

변경 8구역을 장악한 수도 군단 병력은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다.

굳이 올 필요가 없었다.

변경 8구역 파일럿들이 주기적으로 멕 워커 수십 대를 이끌고 괴수 혈액과 부산물을 가지러 오면서 생필품을 전해주는데, 수도 군단은 그들이 통과하는 반달 호수 지역 서쪽 출입구만 통제하면 되는 것이다.

클라크 일행은 괴수 목장 수십 개가 흩어져 있는 목장 지대를 지나 원시의 땅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초지를 지나고, 숲을 통과하기를 얼마나 거듭했는지 모른다.

클라크의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그의 얼굴을 얼른 알아보기 어려워졌을 때 멀리 성채가 보였다.

거대한 원시의 나무를 잘라 높은 성벽을 두른 그곳이 바로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였다.

굳이 감시할 병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오래된 멕 나이트 몇 대와 멕 워커 수십 대를 지원해 주었지만 마나 연료를 그야말로 딱 필요한 만큼만 정기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감시 없이 가만 내버려 두어도 그곳을 탈출해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용소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오롯이 변경 8구역에서 제공한 물품으로만 살아갔으나 지금은 수용소 안팎에 농경지와 목장을 만들고 주위에 괴수 목장 몇 곳도 관리하여 자급자족 체계와 존재 가치를 키워 온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

클라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클라크를 태우고 여기까지 온 멕 나이트들이 원시의 땅 깊숙이 자리한 거대한 목재 성채를 향해 다가갔다.

***

부르사 항 철광석 하역장.

아인베크 해운의 대형 벌크선이 부두에 닿자 대기하고 있던 멕 워커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철광석을 배에 실을 수 있도록 컨베이어 벨트 설비를 연결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 광경은 하역장 밖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피닉스 제철이 부르사의 철광석을 수입한 이래로 규모가 더욱 커진 이곳에 전에 볼 수 없던 가림막이 높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 설치가 끝나자 기계가 돌아가고 벌크선 위로 철광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가 워낙 커서 바닥을 어느 정도 채우는 데에도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날이 저문 뒤에도 마나 등이 켜지고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적 작업이 중단되었다.

- 잠시 휴식! 작업자들은 멀찍이 물러서라!

작업을 지휘하던 멕 워커 파일럿 하나가 외부 확성기로 명령하자 멕 워커와 인부들이 배에서 멀리 물러섰다.

이윽고 부두 옆에 서 있던 거대한 창고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멕 나이트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멕 나이트들은 철광석이 선고의 3분의 2까지 채워져 있는 벌크선에 올라 서로 밀착해 눕기 시작했다.

파일럿들은 마치 밑에 깔린 철광석이 보이지 않도록 완전히 덮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남는 공간이 없이 멕 나이트를 바닥에 눕힌 뒤 밖으로 나왔다.

그 위로 멕 워커들이 두툼한 포장을 여러 겹 깔았다.

- 작업을 재개한다!

철광석 선적을 지휘하는 반장이 확성기로 명령하자 다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철광석이 배 위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철광석 위에 누워 있던 멕 나이트, 멕 나이트를 덮은 포장이 다시 철광석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작업은 새벽에야 끝이 났다.

루산이 시에나와 함께 철광석이 높게 쌓인 벌크선으로 다가갔다.

부르사의 왕 므라드가 부하들을 이끌고 배웅을 나와 있었다.

“이제 가는 건가?”

“네, 폐하.”

므라드가 손을 내밀었다.

루산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므라드가 말했다.

“마얄리와 윙구! 신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루산이 레오나와 함께 배에 올랐다.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왔다.

루산을 태운 배가 떠나자 기다리고 있던 아인베크 해운의 다른 벌크선이 배를 부두에 댔다.

철광석이 배에 쏟아지고, 그 후에 멕 나이트들이 탑승해 철광석 위에 눕고, 그 위로 포장이 덮이고, 다시 철광석이 쏟아져 멕 나이트를 가렸다.

작업이 끝난 배가 떠나자 또 다른 벌크선이 부두에 접안했다.

철광석 벌크선을 이용한 멕 나이트 선적 작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므라드는 부르사 항에 머물며 모든 일이 비밀리에 끝날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했다.

루산이 실패한다면 필센 제국의 대군이 루산을 도운 부르사 왕국을 지워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루산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필센 제국은 부르사에 은혜를 갚을 것이다.

멕 나이트를 실은 철광석 운반선이 모두 떠나자 므라드도 부르사 항을 떠났다.

루산의 성공과 부르사 왕국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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