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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37화 (437/450)

4부 56.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이 바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4부 56.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이 바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까지 오는 동안 클라크는 계획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15년 이상 세상과 떨어져 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보름스 백작을 도와 싸우라고 설득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자체도 어려운데 수용소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찾아온 내무부 관리라고 신분을 속인 것도 해명해야 했다.

설사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해도 이곳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여기까지 자신을 데려다 준 멕 나이트들은 어찌할 것인가?

속은 것을 알게 된 변경 8구역의 파일럿들이 적극적으로 진압하려 하지는 않는다 해도 반역죄를 짓고 원시의 땅 깊숙이 격리된 죄수들이 수용소를 벗어나도록 협조할 리가 없었다.

변경 8구역이 이미 수도 군단에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반란을 일으키려는 죄수들을 돕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쉽지 않은 문제라 클라크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으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부딪치고 보자는 심정으로 수용소로 들어왔다.

그런데 다행히도 먼저 온 사람들이 있어 그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클라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내무부 감사관을 위해 급하게 제공된 숙소에서 면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숙소 앞에 서성거리고 있던 수용소 사람들을 뚫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클라크! 여긴 웬일이야?”

그는 다름 아닌 바이크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과거 가프 용병단 지휘관이자 현재 괴수 목장 책임자인 미켈 슐츠가 있었다.

“바이크 씨!”

클라크가 반가운 표정으로 바이크에게 다가갔다.

***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

필센 제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붙인 이름이지만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을 죄수 수용소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기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불렀다.

자유시.

무시무시한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 강제로 갇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다시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사는 곳을 자유시라고 명명한 것은 모순 같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도 찾기 어려웠다.

이곳은 정부의 어떠한 감시나 통제도 없었다.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규칙을 정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선출된 대표자가 변경 8구역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자체적인 생존을 위해 농지와 과수원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괴수 목장 관리를 배워 주위에 괴수 목장을 늘려 나갔다.

그곳에서 생산한 괴수 부산물과 필요한 생필품의 교환 문제를 변경 8구역과 논의했다.

15년 동안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작은 자치 도시, 자유 도시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괴수들이 횡행하는 거친 원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투쟁하여 어렵사리 나름의 평화로운 질서를 구축한 자유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준 사람은 클라크도 아니고 바이크도 아니었다.

수도 군단이 장악한 변경 8구역을 탈출한 바이크로부터 소식을 들은 괴수 목장의 미켈 슐츠가 바이크를 아라드 변경으로 보낸 뒤 방법을 고민하다 특수 죄수 격리 수용소 사람들을 떠올리고 찾아왔다.

그 역시 변경 8구역을 장악당한 상황에서 루산을 위해 싸워 줄 수 있는 유일한 병력이 자유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켈 슐츠는 자유시 인근에 괴수 목장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문제로 자주 찾아왔었기 때문에 그의 방문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나 그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산 보름스가 비록 자신들을 살려 주었다고는 하나 세상과 단절시켰으며, 대의가 없는 밤베르크 공작과의 권력 다툼에 자신들이 목숨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미켈의 제안이 루산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루산 보름스는 바다 건너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서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이미 죽거나 밤베르크 공작에 의해 잡혔다면 자신들의 거사는 무의미한 싸움이 되는 것이고 거친 원시의 땅에서 어렵사리 만들어 낸 새로운 삶의 터전도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시 사람들은 논의 끝에 미켈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 후에 바이크가 달려왔다.

그 역시 병력을 충원할 방법을 궁리하다 두 번의 무장 투쟁 경험이 있고 루산에 의해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자유시 사람들을 떠올리고 찾아온 것이다.

바이크의 방문 덕에 자유시 사람들은 아라드 왕국 역시 루산 보름스 백작 공격에 가담했다는 것과 루산의 세력이 그 정도는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해도 가장 중요한 루산의 생사와 의지를 모른다는 점은 마찬가지였기에 자유시 사람들은 바이크의 요청에도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자유시의 생존과 운명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보름스 백작은 반란죄로 극형에 처해질 운명이었던 자유시 사람들이 괴수의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수용소 건설 때부터 변경 본부 개척 건설 팀을 보내 면밀히 신경을 써 주었고 생존에 필요한 도구, 장비 지원과 생필품 공급을 아끼지 않았다.

괴수 목장 건설을 허락한 것도 자유시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여 충분한 생필품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었다.

사실상 보호막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루산이 무너지고 변경 통치자가 바뀌어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수용소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이곳은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켈과 바이크의 요청을 거절한 뒤에도 날마다 총회를 열어 자유시의 앞날과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클라크가 찾아온 것이다.

클라크는 앞서 찾아온 두 사람과 달리 루산 보름스의 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의 의지를 확실히 전했다.

“보름스 백작님께서 멕 나이트 부대를 이끌고 상륙하여 노바로 진격하실 겁니다. 필센 제국의 병력 대다수는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간 상태이고 브레머에서 노바까지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백작님의 군대를 막을 충분한 병력이 도착할 여유가 없습니다. 노바 인근의 지방군이 막아선다 해도 충분히 격파하실 겁니다.”

자유시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클라크의 입을 주시했다.

“문제는 노바 관문인데, 대전쟁 이후 관문 수비가 강화되어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할 경우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바 안에서 누군가가 수비 병력을 공격하고 관문을 열어 준다면 피해가 줄어들겠지요.”

자유시 사람들은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마나포를 탈취하여 수도 군단의 멕 나이트 부대와 싸운 경험이 있었다. 노바 병력 배치와 수비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클라크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했다.

“보름스 백작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맡아 준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자유든 권리든.”

총회장에 클라크의 말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자유시 주민들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클라크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클라크와 함께 동부 공업 지구에서 끝까지 저항했던 바움 대학 학생들이었다.

사라 역시 총회장 한쪽에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클라크를 보고 있었다.

자유시에서 멕 워커를 조종하며 나무를 베고 성벽과 울타리를 보수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는 그녀는 클라크를 보자마자 감정이 복받치고 심장이 떨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클라크의 말을 들은 뒤에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사라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보름스 백작은 우리가 그를 위해 싸우면 자유를 주고 일반 백성들의 권리를 더욱 확대시켜 주겠다는 거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라에게 쏠렸다.

사라가 더욱 힘을 주어 소리쳤다.

“이 땅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원하던 세상을 만들어 준다는 거냐고?”

사라와 클라크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그리움, 안타까움, 애절함 등이 순식간에 솟구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클라크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총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에는 그의 입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

“여러분이 백작님을 돕는다 해도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이 바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총회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럼에도 클라크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만 상을 받을 권리는 공을 세운 자에게 있다는 겁니다. 보름스 백작님은 이러한 상식을 저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음!”

사람들의 신음이 콧김과 함께 뿜어져 나와 총회장 안을 다시 뜨겁게 데우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확실히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세운 공만큼 발언권을 가지고 보름스 백작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요.”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여러분이 백작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백작님은 무척 강한 분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없이도 노바 입성에 성공할지 모릅니다.”

루산이 얼마나 강한지는 동부 공업 지구 사태 때 그곳에 있다 루산의 도움으로 탈출한 노동자와 대학생들에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백여 대의 경찰 멕 나이트를 모조리 때려 부수고 투쟁에 가담한 사람들을 대피시킨 놀라운 이야기.

“백작님의 이번 요청은 어쩌면 여러분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요! 이곳에 함께 오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기회,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인간 세상이 이 작은 나무 성채가 전부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자유시 사람들의 마음이 요동쳤다.

사라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우리에게는 변경 8구역까지 갈 마나 연료가 부족해요. 설사 간다 해도 변경 8구역은 수도 군단이 장악하고 있다면서요?”

사라의 말은 자유시 사람들이 보름스 백작을 돕는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질문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클라크가 계획을 설명했다.

한편 총회장 출입문 근처에서는 클라크를 이곳까지 안내해 온 변경 8군단 파일럿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서 바이크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전대장님은 또 왜 여기 계시죠? 이러다 우리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바이크와 미켈이 그들을 으르고 달랬다.

“너희들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을 거야. 시키는 대로만 해.”

“8구역에서 이곳 수용소까지는 무척 멀고 감사라는 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 아닌가? 자네들 복귀가 늦어진다 해도 책임을 묻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수도 군단에서 자네들이 이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을 끝까지 모르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렇지만······.”

“야! 그동안 백작님 덕에 배불리 먹고살았는데 이 정도도 못한단 말이야! 너희한테 전투에 나서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아,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결국 8구역 파일럿들도 수도 군단에 들키지 않는 선에서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클라크가 계획을 설명한 뒤에도 총회장은 떠들썩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말에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기울었다.

옛날 자신들을 구원해 주었던 전설적인 영웅 보름스 백작을 도움으로써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와 새로운 시대의 길로 나아간다!

극적인 신화를 창조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총회에서 의결을 마치자마자 전투 요원을 선발하고 이동 준비를 했다.

마나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자유시에서 운용하고 있는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모두 가지고 변경 8구역까지 이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이크의 멕 나이트와 클라크를 안내해 온 8구역 파일럿들의 멕 나이트 그리고 인근 괴수 목장에서 쓸어 올 수 있는 마나 연료를 모두 모아 움직일 수 있는 멕 워커의 최대 수만 가동해 자유시 사람들을 태우고 가기로 했다.

멕의 어깨로는 충분하지 않아 등에 배낭처럼 엮어 만든 주머니에 사람들을 태우기로 했지만 모두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괴수 목장에서 괴수를 몰이하거나 빠르게 소식을 전할 때 사용하는 탐탐을 모조리 총동원했다.

그렇게 이동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출발 시간이 되어 자유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기 위해 몰려나왔다.

“엄마!”

평생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헤르츠가 두려운 눈빛으로 사라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사라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헤르츠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옆집 제니 아줌마가 돌봐 주기로 했으니까.”

“그게 아니라······.”

그때 한 남자가 헤르츠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가왔다.

“네가 헤르츠구나!”

“예?”

헤르츠가 눈을 껌벅이며 눈으로 물었다.

‘누구······?’

그런데 왠지 기분이 묘했다.

낯선 아저씨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클라크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말을 고민했지만 차마 다 꺼내지 못하고 헤르츠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짧은 말 한마디만 겨우 했다.

“또 보자.”

“예? ···예.”

헤르츠는 뭐에 홀린 듯 멀어지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사라는 그런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그런 뒤 자신의 멕 워커에 올라 동지들이 멕의 어깨와 등에 편히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잠시 후 멕과 탐탐에 올라탄 200여 명의 옛 혁명 전사들이 가족과 동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자유시를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한 전장으로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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