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59. 열흘 안에
4부 59. 열흘 안에
밤베르크 공작이 군무부 전략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군무부 전략실은 대필센 제국의 전쟁 전략을 총괄하는 부서라 경비가 매우 삼엄하고 군무대신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에 제국군 총사령관이라 해도 멋대로 출입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없지만, 밤베르크 공작은 경력으로나 권력으로나 군무대신을 압도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의 방문을 문제 삼지 않았다.
브레머 지방군 사령부에서 마나 통신으로 올라온 보고로 인해 급박하게 움직이던 전략실의 참모들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채 제국군 총사령관을 쳐다보았다.
바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크흠!”
전략실장이 헛기침을 하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듯 전략실 참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략실장이 밤베르크 공작 쪽으로 절도 있게 걸어가 경례하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각하.”
밤베르크 공작은 인사도 받지 않고 물었다.
“상황은 어떠한가?”
“예, 각하!”
전략실장이 밤베르크 공작을 지도가 펼쳐진 테이블 쪽으로 안내하고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 오전 7시 경, 보름스 백작을 자처하는 자가 멕 나이트 4백여 대를 이끌고 브레머 지방군을 공격했습니다. 브레머 항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해군 함대의 눈을 피해 상륙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아마 브레머 남쪽에 인접한 슈텐달 항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거기에도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 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대규모 상륙이 가능하지요. 피닉스 제철의 하역 부두 말입니다.”
“음!”
전략실장의 분석에 밤베르크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침부터 부하로부터 갑작스럽게 보고를 받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이 조금은 풀렸던 것이다.
전략실장의 보고가 계속되었다.
“브레머 지방군이 대응했으나 전투태세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가칭 보름스 백작군의 멕 나이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브레머 지방군 멕 나이트 30여 대가 파괴된 채 전투가 끝났다고 합니다. 보름스 백작군은 브레머 지방군의 멕 나이트 시동 열쇠를 모두 압수한 뒤 브레머를 떠나 노바 쪽으로 다가오고 있답니다.”
밤베르크 공작이 성난 눈빛으로 전략실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필센 제국에 보름스 백작군이라는 부대가 있나?”
“예?”
“우리 군을 공격했으면 적이지. 반란군이란 말이야!”
“예, 각하!”
전략실장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하려다 제국군 총사령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표현을 수정해 보고를 이어나갔다.
“반···란군의 목표는 노바가 확실해 보입니다. 직접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직접 말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브레머에 나타난 보름스 백작이 노바 아닌 어느 곳으로 가겠는가?
그를 제거하려 한 밤베르크 공작을 잡고 권력을 쥐기 위해서라도 노바로 오는 것이 당연했다.
“대책은?”
밤베르크 공작이 전략실장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오늘 아침에 소식을 듣자마자 제국군 총사령부가 아닌 군무부 전략실을 굳이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을 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전략실장은 머뭇거리지 않고 질문에 대답했다.
“노바 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지방군을 불러올려 포위해야 합니다.”
“반란군이 노바까지 오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수도 군단 병력으로 나가서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수도 군단에는 모두 여섯 개의 기동 전단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변경 8구역을 장악하기 위해 빠져 나간 상태였다.
남은 기동 전단이 5개나 되지만, 보름스 백작이 이끄는 군대도 4개 기동 전단급이기 때문에 병력 규모 면에서 압도하지 못한다. 승리하더라도 피해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보름스 백작의 군사적 능력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필센 제국군 수뇌부는 아라드 왕국과 필센 북부에서 그가 행한 전과를 알고 있었다.
수도 군단이 전투 능력과 멕 나이트 수의 우위를 믿고 섣불리 야전을 벌였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노바를 지킬 병력이라고는 황궁을 수호하는 근위대밖에 남지 않는다.
수도를 구원하기 위해 불러올리게 될 지방군 병력이 충분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필센 제국은 멕 나이트 기동 전단을 무려 200개나 보유한 초강대국이지만, 대부분의 병력이 식민지 안정을 위해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 있어 본토에 남아 있는 지방군 규모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전쟁 이전에 본토를 수비하기 위해 남아 있던 남방군과 북방군 병력은 아우로라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공세로 전환하면서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났고 그 뒤로 방면군이 해체되면서 식민지에 배치되었다.
지방군 병력 또한 대전쟁 기간에 식민지로 상당수가 차출된 뒤로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우로라 연합이라는 강력한 적이 사라진 지금, 필센 제국은 본토 방어를 위해 많은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바다 건너 아우로라 대륙에 있는 군대가 돌아오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두 달, 내륙 깊숙이 들어가 있는 병력은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산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아우로라 부흥 운동을 벌이는 세력이 언제 어디서 준동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제로 식민지 주둔 병력을 쉽게 빼올 수는 없다.
보름스 백작의 군대가 턱밑에 와 있는 상황에서 아우로라 대륙 주둔군을 불러 진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토에 남아 있는 병력을 최대한 아껴서 반란군을 압도할 만한 수준이 되었을 때 진압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었다.
“멕 나이트 4개 전단이 갑자기 출현한 것은 본토의 방어 태세를 흔들 만큼 대단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반란군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원 부대가 없다는 것이죠. 보고에 따르면 멕 나이트 부대가 전부라고 합니다.”
정찰, 통신, 보급, 수리, 경비 등을 담당하는 부대 없이 멕 나이트를 운용하는 것은 전투력의 유지와 전투 수행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파일럿들이 정찰, 경비는 물론이고 식사 준비부터 잠자리 마련까지 해야 한다면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다.
“속도가 빠른 경량 멕을 차출해 별도의 부대를 편성하여 반란군의 보급과 정찰을 방해하고, 연락을 차단하고,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 출현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면 반란군의 전투력을 쉽게 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일거에 포위 섬멸하는 것이죠. 그러니 최대한 교전을 피하고 지방군이 모두 집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밤베르크 공작은 전략실장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군사적으로는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반란군이 브레머에서 필센군을 무찌르고 대제국의 수도인 노바까지 진군해 관문 밖에서 서성인다면?
무려 3백만이 넘는 노바의 백성들이 불안에 시달리고 이런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불신하게 되고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진압해야 한다.
그러나 전략실장의 말대로 빠르게 진압하려다 야전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지고, 반란군을 진압할 병력을 조달하지 못해 겨우 멕 나이트 4백 대로 대제국 노바가 함락되는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토비아스 이놈! 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했기에······.’
밤베르크 공작은 루한 주둔군을 총동원하고도 루산을 제거하지 못해 일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무능한 아들이 떠올라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 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밤베르크 공작이 말했다.
“전략실의 계획대로 한다.”
“알겠습니다, 각하!”
“단,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될 것이야. 열흘 안에 진압하라.”
“······!”
열흘이라면 지방군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부대도 노바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기는 했다.
필센 본토에는 철도 노선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는 것이지 전투 준비를 완전히 갖춰서 도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전략실장은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반드시 해내야 했다.
“예!”
노바 방어 계획 및 반란 진압 작전이 실행되었다.
반란군이 다가오는 방향인 노바 동쪽 관문들이 닫히고, 관문을 지키는 멕 나이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부식을 막기 위해 밀폐해 보관하고 있던 마나포도 꺼내어 평시에 운용하던 마나포 옆에 방렬하고 사격 시험을 했다.
관문이 닫히지 않은 방향도 수비 병력이 늘고 검문이 더욱 엄격해졌다.
마나 통신망을 통해 출동 명령을 받은 각 지방군 사령부는 사령부에 남아 있던 기체 먼저 열차에 태워 수도로 보내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병력을 불러오고 낡은 멕 나이트를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병력과 멕 나이트를 실은 열차들이 노바로 계속 들어오는 데다 멕 나이트가 파괴된 사진이 실린 브레머의 신문들이 노바로 전해지고 그것을 토대로 노바의 신문사들이 호외를 발행하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난대!”
“한때 황제 폐하의 측근이었던 보름스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노바로 쳐들어온대!”
수도가 발칵 뒤집혔다.
***
브레머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프 용병단 뒤를 자동차 한 대가 맹렬하게 따라왔다.
행렬의 맨 뒤에 있던 멕 나이트가 자동차를 세우자 차에서 나온 사람이 소리쳤다.
“보름스 백작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들입니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루산이 그들을 만났다.
“백작님, 브레머의 정비 공장에 네오 우르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칼리슈 님의 명령으로 이곳으로 옮겨 조립해 백작님께 넘겨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루산은 반색하며 노바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브레머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후 수백 대의 멕 나이트들이 가프 마법 연구소의 브레머 수리 공장을 철저히 에워싸 비밀을 유지한 가운데 루산이 네오 우르사에 탑승한 채 밖으로 나왔다.
네오 우르사.
우르사도 일반 멕 나이트보다 훨씬 육중한 몸집을 지녔지만, 멕 나이트 방진을 부수기 위한 돌진형 멕 나이트로 만들어진 네오 우르사는 우르사보다 키도 더 크고 몸집도 더욱 우람했다.
그렇다 보니 일반 멕 나이트 엔진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어 타이폰의 생명 구슬을 점화기로 채택한 엔진을 탑재했다.
기가스 엔진의 무려 세 배나 되는 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으로 가동하는 괴물 같은 기체가 바로 네오 우르사인 것이다.
기체 표면에는 세르펜스의 가죽을 덮어 빛이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진녹색 외피가 여러 가지 다른 색으로 번들거렸다.
무기로는 적진에 돌격할 때 사용하는 거대한 방패와 우르사가 휘두르던 대형 철퇴보다 훨씬 커진 초대형 철퇴를 사용하는데, 이것에 맞으면 단단한 멕 나이트도 단숨에 짜부라져 고철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가프 마법 연구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네오 우르사의 무서운 점은 다른 데 있었다.
육중한 무게로 인해 마나포를 들고 발사할 때 세상 어느 기체보다 반동이 적으며, 몸체 부품과 장갑이 두꺼워 마나 진동 화살이 관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들고 전장을 누비는 데 가장 특화된 기체였다.
루산은 네오 우르사의 이러한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점 때문에 네오 우르사가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옛날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가 세르펜스라는 무시무시한 괴수를 때려잡을 때 타던 기체가 바로 우르사였다.
이제 반대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인간 세상의 심장 노바로 가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를 때려잡으려는 길에 네오 우르사를 타게 되었다.
세르펜스를 맨 처음 쓰러뜨렸을 때의 그 짜릿함이 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가자, 노바로!
네오 우르사의 외부 확성기로 루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야아아아!
- 와아아아!
- 가자고!
400여 대의 강철 거인들이 인간 세상을 들이받으려고 원시의 땅에서 온 거대한 우두머리를 따라 소리치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루산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이동속도는 뿜어내는 기세만큼 높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보는 인간 세상을 찬찬히 관찰하며 충분히 감상하려는 것처럼 느릿느릿 이동했다.
브레머에서 노바까지는 멕 나이트로 빠르게 달리면 한나절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임에도, 노바와 가까운 지방에 주둔해 있는 지방군 병력이 열차를 타고 속속 도착할 때까지 가프 용병단은 아직 절반도 가지 못했다.
밤베르크 공작과 필센 제국군 지휘부는 그 점을 의아해하면서도 노바에 아무런 피해가 없이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