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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42화 (442/450)

4부 61.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4부 61.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없도록 원시의 땅 깊숙이 유폐되어 있던 특수 죄수들은 몇 대 되지 않는 변경 8군단 멕 나이트의 호위를 받으며 악전고투 끝에 반달 호수 지역 서쪽 외곽에 도착했다.

무시무시한 괴수들의 습격에 죽음의 고비를 쉴 새 없이 넘기며 먼 길을 달려오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들은 쉴 틈이 없었다.

루산이 노바를 공격하기 전에 노바에 먼저 들어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했다.

그런데 수도 군단이 장악하고 있는 변경 8구역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클라크의 부탁을 받은 렌커가 변경을 벗어날 방법을 마련해 놓고 반달 호수 지역 서쪽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목 수송 열차를 타고 걸 거야.”

원시의 땅에서 자라는 거대한 나무는 변경에서 바깥세상으로 가는 주요 상품 중 하나였다.

물론 변경 8구역은 공업과 농업 기반이 워낙 충실해 임업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반달 호수 지역 서쪽 바깥 원시림 벌목장까지 선로를 깔아 원목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능하겠어요?”

클라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변경 8구역을 장악한 수도 군단은 원시의 땅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서쪽 지역은 병력도 배치하지 않고 완전히 방치해 두었지만,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출입구인 동쪽 지역과 열차 역에는 병력을 빈틈없이 배치해 사람과 화물을 철저히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나무 안에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 거야. 물과 간편식, 옷가지를 넣어 줄 거네. 사흘 동안 거기서 지내야 하지만, 화차에 실려 있는 원목을 모두 내려 검사할 수는 없으니까 절대 걸리지 않아.”

“사흘 동안······, 흐음!”

화물 열차는 여객 열차와 달리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설령 기관사가 통나무 안에 숨어 있는 불법 승객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도 중간에 세워 꺼내 줄 수가 없었다. 거대한 원목을 들 수 있는 장비는 열차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통나무 안에 갇힌 채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원시의 땅에서 나는 나무가 엄청나게 크다 해도 그 안에 집처럼 안락한 공간을 마련해 줄 리 없었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은 간편식과 옷가지로 해결한다 해도 용변은 어찌할 것인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8구역 북부에서 숲과 늪을 통과해 7구역으로 넘어가는 방법도 생각해 봤어. 7구역으로 들어간 뒤에는 관광객들 틈에 섞여 노바로 떠나면 수월할 것 같기는 해. 그런데 8구역과 7구역 사이의 원시의 땅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단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여기서 더 늦어지면 안 되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노바에 서둘러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결국 클라크는 사람들에게 렌커가 준비한 방법을 말해 주었다.

무거운 침묵이 모두를 잠식하기 전에 사라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 정도는 참아 보죠. 못 참으면 그냥 싸고. 아기 때는 모두 그냥 쌌잖아.”

“······.”

“자유가 공짜로 오겠어요.”

“······!”

자유의 대가로 이 정도의 고통과 부끄러움은 오히려 값싼 것이었다.

“젠장! 그러지, 뭐!”

다른 사람들보다 바이크가 가장 먼저 동조했다.

루산의 거사 사실을 알게 된 마당에 변경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거사를 성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노바로 함께 가서 협력하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원시의 땅에서 자란 굵은 나무 안에 숨어서 가기로 했다.

통나무 속을 파내고 거기에 숨어서 변경을 탈출하는 계획은 검문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멕 나이트는 못 실어도 무기는 숨겨 갈 수 있겠군. 마나포를 숨길 수 있을 만큼 속을 파내 줘요.”

바이크의 말에 렌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리다.”

변경 8구역에서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렌커는 벌목장 책임자와 일꾼들을 설득하고 매수해 거대한 원목의 속을 파내고 그곳에 사람과 무기를 숨긴 뒤 떠나 보냈다.

워낙 사람이 많아 열차 한 편에 모두 보낼 수 없어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보냈지만, 전혀 들키지 않았다.

아무리 검문을 철저히 하더라도 화차에 실린 굵은 통나무 안에 사람과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가 있을지 모르니 일일이 들어내어 살펴볼 생각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목을 실은 마지막 열차가 떠나는 날 클라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를 끌고 가 꼭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사라.”

“그런 말은 하지 마, 클라크. 수용소까지 우리를 찾아와서 이런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우니까.”

“이 일이 끝나면 우리 식구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자.”

“응.”

뜨거운 포옹을 마친 사라는 동료들과 함께 옷가지와 먹을 것이 든 보퉁이를 들고 통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원목을 실은 마지막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클라크도 곧바로 변경 8구역을 출발하기 위해 나섰다.

떠나기 전, 8구역을 장악하고 있던 수도 군단 지휘관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루산 보름스 백작이 반란을 일으켜 노바로 다가오고 있답니다. 별일은 없겠지만, 계엄령이 떨어져 노바 출입이 쉽지 않을 테니 신분증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여객 열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한산했다.

반란군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관광객 대부분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클라크는 한산해진 여객 열차를 타고 노바로 향했다.

사라와 옛 혁명 전사들이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통나무 속에서 무사히 지내기를 기원하며.

한편 먼저 출발한 원목 수송 열차는 노바 관문에 도착한 뒤에 쉽게 검색을 통과해 목적지인 남동 공단 제재소로 들어갔다.

오랜 거래처인 제재소 사장을 미리 매수한 덕에 그들이 체포되는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원목에서 나온 사람들은 지저분해진 몸을 씻고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의 안내를 받아 같은 남동 공단 내에 위치한 가프 마법 연구소 멕 워커 판매·수리장으로 이동했다.

아직 판매되지 않은 수백 대의 깨끗한 멕 워커와 수리를 위해 들어와 있는 중고 멕 워커들이 가득 들어 있는 곳.

“여기서 지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도착한 뒤에 움직이시면 됩니다.”

마법사의 말에 바이크가 물었다.

“여기 있는 멕 워커를 사용해도 됩니까?”

“네.”

가프 마법 연구소 대표 마법사의 허락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준비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마나포를 막을 수 있는 두꺼운 방패, 마나포를 발사할 때 생기는 강력한 진동에 멕 워커가 날아가지 않도록 버틸 수 있는 무거운 추 같은 게 필요합니다.”

“음!”

마법사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바이크와 적절한 장비를 의논했다.

짧은 시간에 완벽한 제품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이곳 수리 공장에서 군용 멕 나이트 방패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고 기성품인 멕 워커의 무게를 늘릴 수도 없었다.

결국 방패 대신에 남동 공단 내 다른 공장들에서 구한 철제 빔과 철판으로 거대한 수레를 만들고 그 안에 흙을 다져 멕 워커 여러 대가 밀어서 움직일 수 있는 방패차를 만들었다.

멕 나이트보다 훨씬 가벼운 멕 워커가 마나포의 강력한 반동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탐사 부대 멕 나이트가 멀리 원정 탐사를 떠날 때 등에 짊어지고 다니던 것을 본떠 철제 배낭을 만들고 그 안에 쇠뭉치를 넣어 무게를 늘렸다.

볼품없고 속도도 느리고 우스꽝스러워졌으나 마나포의 반동에 몸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막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단시간에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을 때 변경 8구역을 출발한 원목 수송 열차가 잇따라 노바로 들어와 볼품없이 변형된 멕 워커에 탑승할 파일럿들을 토해 냈다.

무기도 갖춰지고 파일럿도 마련되었으나 옛 혁명 전사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루산과 연락이 닿는 것도 아니라서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것이오?”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다독인 것은 바이크였다.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정신이 없을 테니 지금의 휴식을 만끽하라고.”

그러고 보니 특수 죄수들에게는 1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었다.

숨 쉬는 공기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노바 남동 공단의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불안감을 애써 가라앉히고 휴식을 취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크가 찾아왔다.

“보름스 백작님을 만나고 올 테니 기다리세요.”

“음!”

밖에 나갔다 돌아온 클라크가 그들이 할 일을 알려 주었다.

“보름스 백작님은 머지않아 동쪽 관문을 뚫고 들어오실 계획입니다. 동쪽 관문 가까이 대기하고 있으면 다시 연락을 보내신다 합니다. 그때 움직이면 됩니다.”

“미리 동쪽 관문 가까이 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군.”

“그렇죠.”

바이크와 클라크, 옛 혁명 전사들은 남동 공단에서 동쪽 관문으로 멕 워커 부대를 무사히 이동시킬 계획을 짰다.

멕 나이트가 아닌 멕 워커라지만 한번에 200대나 되는 멕 워커들이 방패차라는 거대한 수레와 등에 쇳덩이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 배낭을 메고 이동하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엘버 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로 분산하여 멕 워커를 이동시켰을 뿐 아니라 방패차와 철제 배낭, 그리고 배낭에 든 쇳덩이를 여러 배로 실어 날라 엘버 강을 건넌 뒤 노바 동쪽 관문과 가깝지는 않지만 도로로 이어져 방패차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설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사용하는 장비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대기했다.

노바에 사는 사람들이 다가올 내전으로 인해 뒤숭숭해하는 모습을 보는 옛 혁명 전사들은 심정이 복잡했다.

‘보름스 백작이 약속대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줄까?’

‘그보다 이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싸움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마당에 이런 생각들은 부질없었다.

어떻게든 이기고, 어떻게든 쟁취해야 했다.

그것이 자기 자신과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 남겨둔 가족과 동지들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발포 연습은 못하지만 주의할 점을 알려 줄 테니 모여 봐요.”

바이크의 말에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다루게 될 파일럿들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사라도 뒤따라 일어나 바이크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쿵!

쿵!

왠지 먼 곳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리는 것 같았던 것이다.

***

가프 용병단은 지금까지 느리게 이동하던 것과 달리 속도를 높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파악한 특임 전대 부대들 역시 바빠졌다.

그들은 먼저 지휘부에 반란군의 움직임이 달라졌음을 보고하고 본격적인 차단·방해 작전에 들어갔다.

[우리를 포함하여 6개 전대가 반란군을 에워싸고 움직일 것이다. 멀리서 투창을 던져 집중력을 흩트리고 휴식과 취침을 방해한다. 우리는 경량 멕을 타고 있다는 걸 잊지 마. 너무 가까이 갔다가 빠져 나오지 못하면 우리가 깨진다. 이동한다!]

게오르그의 말에 갑작스럽게 특임 4전대 소속이 된 슈레머 지방군 소속 경량 멕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보헨 공단에서 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다 어느새 완전히 해가 저물었다.

그러나 경량 멕들은 전조등을 밝히지 않고 나아갔다.

보헨 공단에서 비치는 불빛 덕에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헨 공단에서 멀어져 산과 들이 나오자 사방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전조등을 켜고 거리를 두고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경량 멕 30여 대가 전조등을 켜고 나아갔다.

그런데 야산 등성이에서 누군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는 전투 거미 3호! 전투 거미 3호! 보헨 공단에서 경량 멕 30여 대가 지금 우리가 지키는 길목을 지나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조심스럽게 움직여 이 지역까지 몰래 잠입해 있던 전투 거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알았다. 3호와 4호는 퇴로를 차단하라.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나 통신기로 답신이 들어왔다.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단숨에 모조리 해치워 생존자를 남기지 말라는 뜻이었다.

잔혹한 명령이지만, 한정된 전력으로 이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투 거미를 노출시키지 않아야 했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전투 거미 3호 수신 완료!]

[전투 거미 4호 수신 완료!]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거인들을 거대한 거미 두 마리가 은밀하게 뒤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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