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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44화 (444/450)

4부 63. 일일이 따지지 말아요

4부 63. 일일이 따지지 말아요

밤베르크 공작의 집무실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참모장인 라인홀트 백작이었다.

라인홀트 백작은 밤베르코 공작이 네세베르 공략군 사령관 시절에 만난 군인으로 늘 침착하고 상황 판단이 뛰어나 가까이 두고 부려 온, 믿을 만한 부하였다.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뭔가?”

“혹시 모르니 각하께서는 황제 폐하를 모시고 잠시 노바를 피해 있으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뭐라?”

밤베르크 공작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눈빛이 사나워졌다.

“나에게 지금 루산 보름스를 피해 도망이라도 치라는 말인가? 내가 고작 멕 나이트 4개 전단이 두려워 달아날 사람으로 보이나?”

밤베르크 공작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럼에도 라인홀트 백작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했다.

“각하, 우리가 보름스 백작의 전력과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멕 나이트가 400대뿐인지 아니면 숨겨 놓은 다른 병력이나 조력자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군무부 전략실의 판단은 기껏해야 최근에 정찰대를 통해 파악한 정보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특임 부대의 전멸입니다. 군무부 전략실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죠.”

“으음!”

밤베르크 공작도 찜찜해하던 부분이었다.

“보름스 백작이 아우로라 대륙에서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멕 나이트 수천 대를 동원해 포위했는데도 뚫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멕 나이트를 4백 대나 가지고 본토에 상륙한 것입니다. 그가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의 과거 행적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루산 보름스가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가는 루산이 매우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라인홀트 백작은 루산 보름스가 과거 네세베르 공략군을 찾아와 당시 백작이었던 밤베르크 공작에게 율리안을 황제로 옹립할 테니 황태자를 처리해 달라고 한 일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밤베르크 공작은 루산에게 과연 자신의 조카를 황제로 만들 능력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루한 왕국의 멕 나이트 생산 기지인 공업 도시 브르노를 파괴해 보일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확실히 무리한 내용이었으나 루산은 1개 전단도 되지 않는 가프 용병단만을 이끌고 루한 내부를 휘저어 단지 공작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을 넘어 루한 왕국의 방어 태세를 완전히 무너뜨림으로써 네베세르 공략군이 루한 왕국을 점령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밤베르크 공작과 그의 심복들이 루산 보름스를 경각심을 갖고 지켜보며 그의 과거 행적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밤베르크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더 화를 내지 않고 라인홀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멕 나이트 400대로 노바 동쪽 관문을 공격하려 합니다. 우리 쪽 멕은 900대 이상. 게다가 관문입니다. 마나포가 배치돼 있지요. 브레머 지방군을 무력화시키고 특임 전대 병력을 섬멸했으면서 그다음 행보가 수도 관문 공격이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포위되어 전멸당할 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너무나 비상식적인 움직임입니다.”

“다른 꿍꿍이?”

“그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각하께서 황제 폐하를 모시고 잠시 노바를 떠나 계시면 결국 승리는 각하의 것입니다. 우리 군이 반란군을 완전히 섬멸하고 나서 그때 돌아오시면 됩니다. 만에 하나 우리 군이 노바에서 패하더라도 황제 폐하와 함께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가시면 루한 군을 포함하여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돌아와 진압하실 수 있습니다.”

노바에서 필센군이 패하고 루산 보름스가 노바에 입성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만에 하나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고려하여 노바를 떠나 있으라는 말이었다.

참모의 조언을 들은 밤베르크 공작이 희미한 웃음을 떠올리다 이내 지우더니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꼿꼿한 자세로 앉았다.

“이보게, 참모장.”

“예, 각하.”

“내가 노바를 떠나는 순간, 노바의 주민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욕할 거야. 제 목숨을 구하고자 300만 주민을 버린 겁쟁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압도적인 적의 군세에 어쩔 수 없이 피란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반란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있음에도 목숨을 보존하고자 떠난다? 수도 군단과 소집령에 응한 지방군들 또한 배신감을 느낄 테지. 반란군 진압에 성공한다 해도 훗날 나의 영이 제대로 서겠나?”

“······.”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받아들일 수 없네. 루산 보름스를 경시하지 않는 건 좋아. 하지만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은 곤란해. 미리 피난할 생각을 할 시간에 그의 의도와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물리칠 계획을 세우는 게 나을 것이야.”

그러면서 밤베르크 공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신문들을 두드리며 말했다.

“노바로 들어오는 이런 신문들을 차단해 주민들 동요도 막고 말이야. 알았나?”

“···예, 각하!”

“나가 보게.”

“예!”

라인홀트 백작은 벌게진 얼굴로 돌아서서 제국군 총사령관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그는 밤베르크 공작의 꾸중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웠다.

보름스 백작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문들이 노바로 들어와 유통되는 것만 봐도 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멕 나이트 수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쪽 관문을 그대로 들이받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있는데······.’

밤베르크 공작은 다소 비겁하지만 확실한 승리 대신에 당당한 위험을 택했다.

전쟁 영웅이자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그가 실리 대신 명예를 선택한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으나 라인홀트 백작은 아쉽고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참모장실로 돌아오자마자 부하들에게 물었다.

“지금 가용 병력이 남아 있는 부대가 어디지?”

“네?”

“노바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부대 말이야.”

젊고 영리해 보이는 장교 하나가 병력 배치 현황표를 재빨리 추려 들고는 보고했다.

“현재 노바의 관문들에는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아 있고 나머지 수도 군단 병력은 모두 동쪽 관문 방어 작전에 투입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따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동쪽 관문에 배치된 병력에서 일부 빼내야 할 것입니다. 아!”

젊은 장교가 무언가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토했다.

“뭔가?”

“현재 노바에서 방어 작전에 투입되지 않은 병력이 있기는 합니다. 근위대 말입니다.”

“그래! 근위대가 있었어!”

참모장 라인홀트 백작이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위대 절반을 동쪽 관문으로 보내라고 해!”

“하지만, 근위대는······.”

원칙적으로 총사령부의 명령 권한 밖이었다.

물론 제국군 총사령관인 밤베르크 공작의 신분과 권력이 남다르기는 했지만.

“내가 총사령관님께 허락을 받겠다.”

라인홀트 백작이 들어오던 걸음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설사 다른 꿍꿍이가 있다 해도 그게 멕 나이트 400대에 필적할 병력은 아닐 거야. 그만한 병력은 숨겨 둘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멕 나이트 400대가 잡히면 끝인 거야. 동쪽 관문에서 완전히 섬멸한다!”

그는 밤베르크 공작을 다시 찾아가 근위대 동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각하, 반란군이 동쪽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황궁을 수비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어차피 동쪽 관문에서 끝내고자 한다면 확실히 끝내는 게 좋습니다. 굳이 가용 병력을 남겨 둘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밤베르크 공작은 잠시 고민했으나 정체 모를 찜찜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병력을 더 투입해 확실히 섬멸하는 것이 옳다 여겼다.

“내가 직접 황궁으로 가서 요청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밤베르크 공작을 태운 자동차가 부리나케 황궁으로 떠났다.

***

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대지를 뒤흔드는 멕 나이트 행진 소리.

양측 도합 1,300여 대의 멕 나이트들이 노바 동쪽 관문 바깥에서 대오를 갖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는 400대 가운데 루산이 이끄는 선두 부대는 관문 돌파를 위해 나아갔고, 나머지 300여 대는 삼면에서 포위해 오는 멕 나이트 900여 대와 맞서 싸워야 하니 100대당 300대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관문이 있는 골짜기 지형 깊숙이 들어왔으니 빠져 나갈 틈도 없었다.

부르사의 늙은 전사 슈야 마우메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대장이 내게 등을 맡겼다! 관문을 뚫는 동안 지키고 있으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막고만 있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 적을 모조리 깨부술 것이다! 전사들이여, 함성을 질러라!]

부르사의 전사들이 슈야 마우메 장군의 외침에 호응해 외부 확성기로 소리를 질렀다.

- 와아아아!

- 와아아아!

- 와아아아!

부르사 전사들의 함성이 멕 나이트 외부 확성기로 증폭되어 산에 부딪치고 골짜기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가자!]

쿵쿵쿵쿵!

슈야 마우메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부르사의 전사들이 따라붙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그러나 필센군은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두 차례의 대전쟁에서 강력한 아우로라 연합을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둔 강군이었다.

거대한 파도 같은 맹렬한 돌진에도 필센군 멕 나이트 부대는 흔들림 없이 견고한 방어 대형으로 맞섰다.

[방패 세워!]

촥!

촤촤촤촤촥!

선두의 멕 나이트들이 서로 어깨를 겹칠 정도로 가까이 붙어 방패를 땅에 붙이고 몸 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방어 자세를 취하자 그다음 줄의 멕 나이트들이 방패로 앞선 기체의 등을 받쳤다.

그렇게 6열 밀집 방어 대형을 만들었다.

두껍고 견고한 필센군의 방벽에 슈야 마우메를 선두로 한 부르사의 전사들이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콰콰쾅!

몸체로 들이받고 도끼로 내리찍고 멕 나이트와 멕 나이트 사이의 틈을 벌려 진형을 무너뜨리려 애를 썼다.

그러나 필센군은 규모가 3분의 1에 불과한 적과 맞붙은 정도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를 못으로 긁었을 때 약간의 흠이 생길 뿐 멀쩡한 것처럼 태연하게 공격을 받아내며 버텼다.

한편 그 사이 레보르크와 시에나 역시 가프 용병단의 좌우에서 필센군 병력과 맞붙었다.

그들은 루산이 관문을 뚫을 시간을 번다는 목적에 충실하게 슈야 마우메와 달리 견고한 방패진을 형성하며 필센군 방패진과 맞섰다.

멕 나이트로 방패 벽을 단단히 만들어 싸우는 것은,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의 루산이 이끌고 필센 제국군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가프 용병단에도 매우 익숙한 전투 방식이었기에 가프 용병단 좌우는 큰 피해 없이 필센군의 방패 벽에 맞섰다.

그러나 세 배나 많은 필센군 병력으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가프 용병단이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형 유지하며 그대로 밀어라! 너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반란군 놈들이 먼저 지친다!]

필센군 지휘관들이 파일럿들을 독려하며 양옆에서 가프 용병단을 압박해 나갔다.

레보르크와 시에나가 이끄는 병력이 뒤로 질질 밀리며 의도치 않게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관문을 향해 나아가던 루산은 뒤쪽이 기대만큼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관문에 돌진하다 단번에 뚫지 못하고 시간이 지체되면 관문과 포위 병력 사이에 끼어 전멸할 것 같았다.

필센군에서 전투력이 강한 부대는 수십 년 동안 아우로라 연합과 싸우고 현재까지 아우로라 대륙에 주둔해 있는 옛 동방군, 남방군, 북방군, 네세베르 공략군 소속 부대들이지 지방군은 그에 못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방군 경량 멕으로 구성된 특임 전대를 섬멸하면서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야전에서 정면으로 맞붙으니 그게 아니었다.

필센군은 필센군이었다.

[선두, 정지!]

네오 우르사를 뒤따르던 멕 나이트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이대로 반전하여 후방 포위 부대를 먼저 부순다! 좌우 방어벽 사이를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후방 포위 부대를 들이받아라!]

그렇게 명령한 루산은 거대한 네오 우르사를 타고 힘차게 달렸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좁은 골짜기가 점점 넓어지고, 시에나와 레보르크가 이끄는 부대가 좌우에서 필센군을 악착같이 막아서서 생긴 통로를 지나, 뒤로 질질 밀리면서도 광전사처럼 마나 진동 도끼를 휘둘러 필센군 파일럿들을 질리게 만드는 부르사 전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 전장에서 가장 큰 멕 나이트 네오 우르사는, 가장 크고 무거운 기체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달려 슈야 마우메 가까이 금세 도달했다.

[아니, 관문을 깬다면서? 여긴 나에게 맡겨 놓고 왜 왔소?]

슈야 마우메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루산이 달래듯 말했다.

[일일이 따지지 말아요. 시시각각 변하는 게 전장 아니오?]

[흥!]

[내가 뚫을 테니 슈야 경이 박살 내시오!]

[뭐, 알았소!]

초거대 괴수 타이폰의 생명 구슬을 점화기로 채택한 엔진을 탑재한 돌진형 멕 나이트 네오 우르사가 엄청난 속도로 필센군 방패 벽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신형 마나포를 발사할 때 생기는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발생하더니 네오 우르사와 직접 충돌한 필센군 멕 나이트들이 허공을 날았다.

그러고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그 주변 멕 나이트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일제히 쓰러졌다.

루산이 받은 충격도 어마어마했으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는 충돌로 속도를 잃은 뒤에도 강력한 엔진의 힘과 육중한 몸으로 필센군 방어 대형을 밀고 나갔다.

충돌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던 필센군 멕 나이트들이 뒤로 질질 밀리기 시작했다.

네오 우르사의 뒤를 따라 달려온 관문 돌파 부대 멕 나이트들이 연달아 충돌하기 시작했다.

콰쾅!

쿠쿵!

필센군 진형의 벌어진 틈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부르사 전사들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뚫어라! 부숴 버려!]

[가자!]

마나 진동 도끼를 고쳐 잡은 슈야 마우메와 부르사의 전사들이 균열이 생긴 필센군 진형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잔인한 도끼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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