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64. 안 놀고 관리를 잘했군
4부 64. 안 놀고 관리를 잘했군
아우로라 연합과 긴 전쟁을 치른 필센군은 돌진형 멕 나이트를 많이 상대해 보았기에 대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돌진형 멕 나이트는 고작 한 대뿐이다! 밀착해 에워싸!]
흐트러졌던 필센군 멕 나이트들이 다시 방패를 들어 동료 기체의 등을 받치며 네오 우르사를 밀었다.
끄그그-!
귀를 괴롭히는 사나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강철 방패에 불똥이 튀었다.
마침내 네오 우르사의 전진이 멈추었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이 명령했다.
[에이스 파일럿들은 저놈의 숨통을 끊어라!]
에이스 파일럿.
빼어난 검술 실력과 많은 전투 경험을 갖춘 멕 나이트 파일럿.
타고 있는 기체도 일반형 기체가 아닌 레오파드 슈퍼 파워나 아이언 워리어 Ⅱ 같은 상급 기체들이었다.
그 에이스 파일럿들이 육중한 네오 우르사를 잡기 위해 나선 것이다.
에이스 파일럿들은 아군 방패 벽 뒤에 착 달라붙어 기회를 노렸다.
네오 우르사와 필센군 방패 부대 멕 나이트들 간에 사력을 다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끼기기기-!
소름끼치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네오 우르사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슈야 마우메가 부르사의 전사들을 이끌고 루산을 돕기 위해 달려왔지만, 좁은 지역에 워낙 많은 멕 나이트가 몰려 있어 무기를 제대로 휘두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부르사의 전사들뿐 아니라 필센군 에이스 파일럿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네오 우르사와 그것을 둘러싼 방패 벽 옆에 붙은 채 치명상을 가하기 어려운 한정된 공간에서 숙련된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가프 용병단의 기체에 흠집을 내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이었다면 질식했을 만큼 좁은 구역에 많은 기체들이 몰려 악전고투를 벌였다.
덩치 큰 돌진형 기체도 옴짝달싹하기 어려웠다.
그때 루산이 부르사의 전사들에게 말했다.
[내 주위에서 멀어져!]
[그럼 밀리잖소!]
슈야 마우메가 필센군 멕 나이트에 도끼질을 하며 소리쳤다.
지금의 대치 상황은 물러나고 싶다고 물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섣불리 뒤로 물러나려다가는 둑 터진 물에 휩쓸리듯 완전히 쓸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물러나 봐! 내가 힘을 쓸 공간을 확보하게!]
[알았소! 모두 뒤로 빠져! 네오 우르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서서히 물러나라!]
슈야 마우메가 명령했다.
네오 우르사의 뒤와 옆에 있던 가프 용병단 기체들이 힘에 부친 듯 물러나기 시작했다.
슈야 마우메를 비롯한 숙련된 전사들이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 애를 썼지만, 가프 용병단 기체들이 뒤로 빠지자 앞으로 강하게 밀고 있던 필센군 멕 나이트들의 압력에 넘어지는 기체들이 속출했다.
네오 우르사 또한 등을 받쳐 주던 아군 기체들이 물러나자 속절없이 뒤로 질질 밀렸다.
기회를 포착한 필센군 에이스 파일럿들이 네오 우르사의 옆구리와 등이 빈 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해 마나 진동 대검을 힘차게 찔러 넣었다.
그러나 에이스 파일럿들은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티잉-!
까강-!
마나 진동 대검이 찔러 들어간 깊이가 너무나 얕았던 것이다.
여전히 마음껏 검을 움직일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돌진형 멕 나이트의 몸체가 워낙 두꺼워 일반 멕보다 파손시키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네오 우르사의 표면을 덮고 있는 진녹색 외피가 바로 마나 진동 대검으로도 잘 베이지 않는 세르펜스의 가죽이라는 것을 필센군 에이스 파일럿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멕 나이트가 아우로라 대륙에서 상대했던 돌진형 멕 나이트와 다르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깨달았다.
한편 루산은 가프 용병단을 물리고 뒤로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자 들고 있던 방패로 필센군을 힘껏 밀었다.
쿠구구구!
순간적으로 방패 벽을 형성하고 있던 필센군 멕 나이트들이 갈대처럼 휘청거리고 네오 우르사 역시 반발력에 뒤로 밀려나면서 양측 사이에 거리가 확보되었다.
루산은 거리를 띄움과 동시에 방패를 놓고 등에 메고 있던 대형 철퇴를 앞으로 쥐고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찌이잉-!
붉은 빛이 기둥 같은 손잡이와 거대한 쇠공을 에워싸며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네오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휘둘렀다.
후웅-!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앞을 막고 있던 멕 나이트들의 방패가 하늘로 날아갔다.
방패를 꽉 쥐고 있던 멕 나이트는 방패와 함께 팔이 떨어져 날아가기도 했다.
엄청난 힘에 놀라기도 전에 두 번째 철퇴 공격이 가해졌다.
후웅-!
방패를 잃은 멕 나이트의 가슴이 얇은 함석판처럼 찌그러지고 머리가 날아갔다.
후웅-!
일반형 멕 나이트보다 네 배 이상 무겁고 엔진 출력은 다섯 배가 넘는 괴물 네오 우르사가 휘두르는 거대 철퇴 공격은 어떤 멕 나이트도 버티지 못했다.
어지간한 검술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루산은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네오 우르사와 대형 철퇴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에이스 파일럿들이 탑승한 상급 기체도 무른 호박처럼 터지고 말았다.
후웅!
네오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필센군 멕 나이트들이 나가 떨어지고 진형이 쫙쫙 갈라졌다.
필센군 파일럿들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쳐라!]
슈야 마우메를 필두로 가프 용병단이 돌진해 전투 도끼와 대검을 마구 휘둘렀다.
[후위 포위망이 무너집니다! 버틸 수가 없습니다!]
[버텨라! 원군을 보내겠다! 좌군과 우군에서 후위로 1개 전단씩 보내라!]
전장을 지휘하던 수도 군단 사령관이 명령을 내리자 좌우 부대에서 1개 전단씩 뒤로 이동했다.
그 덕에 레보르크와 시에나가 이끄는 가프 용병단 좌우 부대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들었다.
[좌우에서 멕 나이트가 달려옵니다!]
[신경 쓰지 마라! 일단 뒤를 포위하던 병력을 완전히 와해시키는 데 집중하라!]
루산은 무너져 가던 필센군 후방 포위 병력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대형 철퇴가 붕붕 허공을 가르면 깨진 금속 파편들과 강철 부품 덩어리들이 흩어져 날아가고 파괴된 멕 나이트들이 붕 떠서 바닥에 처박혔다.
와해된 필센군 진형에 부르사의 전사들이 뛰어들어 미친 듯이 도끼질을 했다.
멕 나이트들이 장작처럼 부서졌다.
짧지만 강렬한 전투로 가프 용병단 파일럿들은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으나 쉴 틈이 없었다.
좌우에서 몰려오는 적의 원군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쉰 루산은 대형 철퇴를 다시 등에 걸고 쓰러져 있는 거대 방패를 집어 들어 가슴에 바싹 붙이고는 달려오는 필센군 멕 나이트 부대를 향해 돌진했다.
쿵쿵쿵쿵!
필센군 멕 나이트 부대가 스크럼을 짜고 방패 벽을 세웠다.
촤촤촤촤-!
네오 우르사가 방패 벽에 몸을 들이받았다.
쾅!
충격 완충 장치로도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강력한 진동이 몸에 전해졌다.
[윽!]
루산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조금 이득을 봤으나 병력은 필센군 쪽이 여전히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네오 우르사는 충돌의 여파로 파도처럼 출렁이는 필센군 방패 벽을 힘으로 밀고 들어갔다.
옆구리와 등 뒤에 마나 진동 대검이 꽂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툼한 몸체 부품과 단단한 장갑판 그리고 장갑판을 덮고 있는 세르펜스 가죽을 믿고 힘껏 밀어 방패 벽을 돌파했다.
후쿵후쿵후쿵!
기가스에 탑재된 강력한 엔진을 개량하여 만든 네오 우르사의 괴물 같은 엔진이 쉴 새 없이 힘을 뿜어냈다.
필센군 방패 벽을 형성하고 있던 멕 나이트들이 뒤로 질질 밀리더니 맨 뒤에 있던 멕 나이트의 다리가 튀어나온 바위에 걸리는 바람에 뒤로 넘어지자 연쇄적으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슈야 마우메가 이끄는 부르사의 전사들이 흉포한 늑대 무리처럼 달려들어 쓰러진 멕 나이트를 마나 진동 도끼로 찍고 또 찍었다.
쩌껑쩌껑!
깨진 금속 조각들이 피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네오 우르사는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필센군 진형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
전장을 종횡무진 달리던 네오 우르사는 마침내 다시 관문을 향해 나아갔다.
관문 밖에서 계속 싸울 수는 없었다.
몇 번의 교전에서 이득을 보았어도 애초에 필센군 멕 나이트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섬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좌우와 후방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처음보다는 확연히 줄어든 지금 서둘러 관문을 돌파해야 했다.
관문을 부수고 들어가 차지한 뒤 관문을 닫고 마나포로 관문 밖에 남아 있는 필센군을 막은 뒤 황궁으로 진군해야 하는 것이다.
네오 우르사가 크고 두꺼운 방패를 높이 들고 관문을 향해 달렸다.
쓰웅-!
쓰웅-!
쓰쓰쓰웅-!
관문 위에서 마나포가 발사한 마나 진동 화살이 대기를 뚫으며 날아왔다.
과녁이 워낙 크고 가까워 명중하는 수가 점점 늘어났다.
텅!
터덩!
두툼한 방패에 강철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식은땀이 절로 났으나 다행히 네오 우르사의 방패는 매우 두꺼워 방패를 뚫고 몸통까지 관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들고 싸우는 방패와 달리 멕 나이트가 사용하는 방패는 강철로 만들어져 관통되면 쪼개질 수 있었다.
운이 나쁘면 단 한 발의 마나 진동 화살에 두 동강이 나기도 했다.
물론 멕 나이트 방패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충격에 버틸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되지만, 두꺼운 마나 진동 화살에 관통되면 쪼개질 수 있는 것이다.
쓰웅!
쑹쑹!
날아온 마나 진동 화살이 네오 우르사의 방패에 고슴도치처럼 꽂혔다.
네오 우르사 뒤로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 50여 대가 방패를 삼중으로 엮어 들고 따라왔다.
네오 우르사는 관문과 점점 가까워졌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쿵쿵쿵쿵!
변경 8구역에서 온 괴물 멕 나이트는 눈앞이 뵈지 않는 성난 코뿔소처럼 노바 관문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쿠우-웅!
엄청난 충돌음이 발생하고, 관문 성벽 전체가 흔들리며 돌가루가 후두두 떨어졌다.
그러나 문은 그대로였다.
흔들리고 살짝 뒤로 밀리고 가루가 떨어졌지만, 깨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수도 노바를 지키는 두꺼운 강철 관문의 위용은 이와 같았다.
오히려 네오 우르사가 관문을 들이받은 힘만큼 뒤로 강하게 튕겨 쓰러졌다.
뒤따라오던 가프 용병단 파일럿들이 깜짝 놀라 통신기로 소리칠 정도였다.
[괜찮으십니까?]
코피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지만, 루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어나며 멋쩍게 말했다.
[흥! 수도 군단 녀석들이 안 놀고 관리를 잘했군.]
제국 기사 아카데미 시절 노바 방어 훈련에 여러 차례 참여했기에 알고 있었다.
노바의 관문은 바깥에서는 절대 뚫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루산은 네오 우르사의 막강한 파워로 관문에 계속 돌진하고 대형 철퇴로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어느새 관문 앞에 붙은 가프 용병단의 다른 멕 나이트들도 마나 진동 대검으로 관문과 성벽을 찌르고 두드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쇳조각과 돌 파편이 마구 튀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두꺼운 성벽과 관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거친 공격에 관문이 뚫릴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수비 병사들이 그제야 안심하며 비웃음을 날렸다.
“멍청하게 무슨 짓이야?”
“노바 관문은 그런 공격에는 안 뚫린다, 이 어리석은 반란군 놈들아! 갇혀서 다 뒈질 줄 알아라!”
그들이 볼 때 반란군은 관문과 필센군 포위망에 갇힌 채 몰살당할 운명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 무식하게 관문을 들이받으며 스스로 힘만 빼고 있는 것이다.
가끔 네오 우르사가 돌진해 관문에 부딪칠 때 성벽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하여 수비 병사들을 오싹하게 했지만, 관문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잠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던 병사들은 더욱 분노하여 관문 아래에 붙어 무기를 휘두르는 무식한 멕 나이트들을 향해 마나포를 계속 발사했다.
쓰웅!
쓰쓰웅!
쩡!
퍼썩!
관문 옆 절벽 위에서 발사하는 강력한 마나포에 파괴되고 쓰러지는 기체들이 속출했지만, 네오 우르사와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들은 관문을 깨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수비 병력의 관심을 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절하게 관문을 공격하다 쓰러지면 다른 멕 나이트들이 달려왔고 그들이 쓰러지면 뒤이어 또 다른 멕 나이트들이 달려왔다.
그렇게 가프 용병단의 무모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쿠웅!
마나 진동 화살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네오 우르사가 다시 관문을 들이받자 성벽이 크게 흔들리고 수비 병사들은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에 열이 받아 마나포를 네오 우르사에 집중 발사했다.
쓰웅-!
쓰쓰쓰웅-!
네오 우르사의 몸에 마나 진동 화살이 빼곡하게 꽂혔다.
***
노바 동쪽 관문 수비 병력이 반란군 섬멸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그때, 바퀴 달린 거대한 수레를 몰고 가는 멕 워커들이 있었다.
그 수는 무려 200여 대나 되었다.
쿠웅-!
쿠웅-!
거대한 물체가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치는 것 같은 굉음이 점점 가까이 들렸다.
- 서둘러!
바이크가 소리쳤다.
그가 탑승한 멕 워커는 등에 무거운 쇳덩이가 잔뜩 들어 있는 쇠 배낭을 지고 멕 나이트 전용 마나포를 어깨에 걸쳐 메고 뒤뚱뒤뚱 달려갔다.
그 뒤로 똑같은 자세로 달려가는 멕 워커 서른 대가 따라왔다.
그들 가운데는 사라도 있었다.
“헉헉!”
동쪽 관문을 열어야 새로운 삶이 열린다.
원시의 땅 깊숙이 남겨두고 온 아들 헤르츠를 다시 만나려면, 그 소중한 아들이 괴수들에 둘러싸인 채 고립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늦기 전에 가야 했다.
쿠웅!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충돌음에 사라의 심장 박동이 더욱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