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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2화 (2/208)

<-- 왜 트립되는 위치는 대체로 숲일까 -->  지, 진정하자! 이건 공명의 함정─ 일리가 없잖아! 패닉 상태였던 이성이 폭주하는 망상의 뒷통수를 쳐갈겼지만 당연하게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 난 그냥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시험지 다 풀고, OMR카드 마킹 다하고 책상에 엎어져있었을 뿐이거든? 트립퍼가 되게 해달라고 빈 적 없어! 어디 만화나 게임이나 영화나 기타등등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하고 나도 그런 적이 있긴 하지만 진지하게 뭐가 되서 무슨 능력을 얻은 다음 어디에 가고 싶다고까지는 안했다고! 그런건 트립퍼가 되고싶어하는 무수히 많은 대한민국 학생중 한 명에게 해줘!

일단은 나무를 짚으며 심호흡을 했다. 지금 내가 내 원래의 모습이 아닌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냥 좆고딩에 불과했던 내가 이렇게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기르고, 움직이는데 온갖 에러사항이 무수히 꽃 필 옷차림에, 허리에 검을 꽂고 다닐리가 없잖아? 코스튬 플레이어도 아니고.

"아 잠깐만."

손을 가슴위에 얹어 보았다.

좋아 없어. 밋밋해! TS당하지 않았어! 뭐가 다행인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트립이나 환생 기타등등시 생기는 일차적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구만리까지 펼쳐질 기세인 털망토를 탁탁 털어 주섬주섬 든 다음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

페어리side.

"이 작은거 하나밖에 못 잡았는데 이걸로 되겠냐?"

"모르는 소리 하지마. 요즘 페어리 한 마리 값이 얼만데? 님프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페어리도 비싸."

인간, 인간들. 우리 요정을 붙잡아 납치해가는 간악한 족속들. 상자에 층층히 쌓인 유리판 안에 다른 페어리들이 곤충 표본처럼 날개에 마법의 핀이 박힌채 고정되어 있는 모습에 나는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 날개 찢어지면 값이 떨어진다고."

페어리는 날개가 몸값의 반이라고. 용병이 투덜거리며 하는 말에 나는 기가 찼다. 요정들을 인격체가 아닌, 값비싼 희귀 곤충 대하는 듯한 말투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대하고 있다.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주름가득한 늙은 마법사가 웅얼거리며 지팡이를 휙휙 흔들자 몸이 굳었다.

"이제 빨리 돌아갑세. 이 노구로 더 숲을 돌아다니는건 무리네."

"어이 영감 너무 빠르잖아? 여기서 돌아갈거면 왜 온거유?"

"노후 대비를 위해서지. 이 작은 놈들 두셋만 팔아도 몇 년치 생활비가 굴러들어오니까."

"거 더럽게 현실적인 이유구만."

귀족놈들 취향은 도통 모르겠어. 대체 이걸로 뭘 하려고 그 돈내고 사는지. 뭐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끌끌 혀를 찬 노 마법사는 허리를 두드렸고 다른 요정을 잡기 위해 숲 속을 헤집던 다른 용병들은 더 요정을 찾지 못했는지 그냥 돌아오고 있었다.

이어 내 날개에 핀이 꽂히고 곧 유리 덮개가 씌워진 순간─.

"누구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굳어 일어날 순 없었지만 뭔가가 나타난것 같다.

"…… 이거이거, 철모르는 도련님인것 같군."

인간인 모양이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실망했다. 차라리 흉폭한 몬스터였다면 저 간악한 인간들이 죽을지도 모를텐데.

"어디에서 온 귀족인가? 요정이 갖고싶어서 직접 여기까지 온 모양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은 모두 예약된 것들이네. 도련님에겐 팔 수 없네."

"…… 그건 뭐지."

"우리 용병대 주력 상품인 페어리 세트입니다. 날개 색깔별로 한 세트죠. 이 자리에서 팔 순 없지만 예약은 받는데, 하나 예약하겠습니까?"

저, 저것들이─!! 몸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중독사가 아니라 익사를 할때까지 독가루를 쏟아부었을 망언을 태연히 하는 용병에게 몸이 굳어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상품, 인가."

유리덮개 너머로 다가온 인간이 보였다. 곱상한 얼굴. 험한 숲에 맞지않는 고풍스러운 차림새의 남자가 내가 든 표본 액자를 들어 나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손에서 액자를 놓았다.

쨍그랑!!

"무슨 짓을?!"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몸이 부서질듯이 아팠지만 대신 몸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힘겹게 일어나 남자를 보았다. 막 달려드는 용병을 움직이지도 않고 즉시 검을 뽑아들어 - 그가 검을 차고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 막고, 부드럽게 검을 흘린다음 균형을 잃어 앞쪽으로 기울어지는 용병의 뒷통수를 검자루로 내리쳐 기절시키는 과정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당황하며 다른 용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노 마법사의 지팡이 보석을 검으로 내려쳐 부수고, 우왕좌왕하는 용병들을 한꺼번에 몰아쳐서 쓰러뜨리는 그 광경은 정말─

"굉장해……."

인간인데, 간악하기 짝에 없는 인간인데 정말로 멋있어 보였다.

***

주인공side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간 곳엔 있을거라 생각한 여자애는 없고 왠 우중충한 떡대 무리들만 있었다. 사실 이거에 더 당황했다. 여자애는 어디에?

"누구냐!"

존나 비쌀것같은 루비가 박힌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의 성량에 움찔한 나는 주춤주춤 걸어나갔다. 쓸데없이 펄럭이는 옷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2배는 더 나는것 같다.

"…… 이거이거, 철모르는 도련님인것 같군."

아뇨 그냥 고딩입니다. 시험 끝나는 날 친구들과 피방가기를 당연히 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고딩입니다. 대체 지금 내 면상이 어떻길래 보자마자 도련님이라는 소리가 나오는거야?

"어디에서 온 귀족인가? 요정이 갖고싶어서 직접 여기까지 온 모양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은 모두 예약된 것들이네. 도련님에겐 팔 수 없네."

요정? 그 피터팬의 팅커벨이나 신데렐라의 할머니같은 그거? 개인적으로 전자면 좋겠…… 이 아니고 요정 얘기가 나왔다는건 어쩌면 여기가 대한민국, 나아가서 내가 살던 그 21세기 지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인데? 의외로 쉽게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납득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만, 사실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시점에서 현실 감각은 안드로메다 저 편으로 날아갔다 하하하.

하여튼 일단은 물어보자!

"…… 그건 뭐지."

"우리 용병대 주력 상품인 페어리 세트입니다. 날개 색깔별로 한 세트죠. 이 자리에서 팔 순 없지만 예약은 받는데, 하나 예약하겠습니까?"

"상품, 인가."

아니 나 돈 없어. 거지야. 이 옷 팔면 돈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이거 지금 내 단벌의상이잖아? 당연히 대답하지않았고 일단 그 요정이란 것을 보기로 했다. 혹시 알아? 저 사람들이 단체로 약 한 다음 코스프레하고 숲속에서 자기들이 요정을 잡았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지.

다소 불행할지도 모르지만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아닐지도 모르느니 차라리 이 가정들이 사실이길 간절히 바라며 나비같은 것이 든 액자를 하나 들어서 본 순간.

어머나 진짜 요정이네요.

피규어처럼 작지만 인간을 줄여놓은듯한 비율의 팔다리에 작은 얼굴에 있을거 다 있는 이목구비. 대따 큰 나비가 아니라 진짜 요정이었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손을 미끌~ 했고 액자는 맑은 소리를 내며 깨졌다.

시바 좆됬다.

"무슨 짓이냐?!"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사과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날아드는 칼날에 쩍 굳어버린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검을 뽑아들어 칼을 막았다.

소, 손목이……. 급하게 막느라 충격을 그대로 다 받은덕에 손에 힘이 풀렸고, 내쪽으로 기울어지는 칼날을 다급히 피하며 그대로 검을 고쳐잡지도 못하고 손잡이로 있는힘껏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이어서 당황하며 뭐라 말하려던 할아버지한테는 정말 죄송하지만 달려드는 떡대들에게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보석을 깨버렸고, 검술의 ㄱ자도 몰라서 허우적거리듯이 검을 쓰다보니 어라?

떡대들이랑 할아버지가 모두 기절했네. 하하하 나 어쩌지.

허탈한 표정으로 현실도피하듯 고개를 돌리자, 벙찐 얼굴의 요정이 날 보고 있었다.

그래. 니가 봐도 나 어이없구나.

========== 작품 후기 ==========

평타가 스킬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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