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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3화 (3/208)

<--  -->  페어리side

그 인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오싹해졌다. 저 용병들을 쓰러뜨려준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과연 저 남자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이런 일을 한걸까? 그냥 저들을 죽이고 값비싼 우리들을 - 서글프지만 맞는 표현이다 - 가로채기 위해 저지른게 아닐까?

쓰러진 이들이 확실히 기절했나 확인하던 남자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나한테 다가왔다.

"자, 잠깐만 당신……."

"몸이 움직여지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에? 했다가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너의 동족인가?"

그가 손가락으로 표본 액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액자의 유리판을 들어내고 동족들의 날개에 박힌 핀을 하나하나 뽑았다. 어떻게 보아도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그 행동에 나는 잔뜩 안심했다.

그는 여태 우리가 보아온 인간들과 다르다.

"멍하니 뭘 하고 있는거지."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급히 그를 보았다. 그는 내게 표본 액자를 하나 내밀고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도, 내가 인간에게 구해졌다는 것에 놀라 동족들을 구해야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여전히 몸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그는 하얀 액체가 든 병을 내밀었다.

"저들이 갖고 있던 거다."

그것은 포션이었다. 엘릭서만큼은 아니었지만 포션중에서는 나름 효과가 좋은 축에 속하는 하얀 포션을 받은 나는 그걸을 마신다음 그를 도와 동족들을 고정하고 있는 마법의 핀들을 뽑았다. 노마법사의 지팡이 보석이 깨진 순간 마법 역시 풀렸는지 동족들은 남자를 적대시하지 않고 떨떠름한 혹은 고마운 표정으로 그를 보다 다른 동족들을 액자에서 빼냈다.

잠시 후 마지막 한 명에게 박힌 핀까지 뽑은 그에게 나는 대표격으로 말했다.

"저…… 우리들을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별거 아니다."

그럴리가. 그는 우리들의 면면을 흝어보고는 말했다.

"하나 부탁해도 되나."

"무, 무엇을 말이죠?"

"잠시 너희에게 신세질 수 있나."

그 말에 동족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역시! 라고 외치는 이도 있었고 이것때문에 자신들을 구한거냐며 혐오감을 비치는 이도 있었다.

"인간은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버려! 우리 숲에서 썩 꺼지라고!"

"맞아! 인간은 당장 꺼져!"

"…… 지금 나더러 저들이 있는 곳에 가라는건가?"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서 경멸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는 인간인데, 인간을 싫어하고 있었다. 나는 누가 뭐라하기 전에 바로 말했다.

"그─ 그건 여왕님께 물어봐야 해요. 당신은 인간이지만 우리를 구해줬으니 잘 설득하면 될지도 몰라요."

"알았다."

"저희를 따라오세요."

이후 우리는 그의 처우를 묻기 위해, 동시에 우리가 겪은 일을 말하기 위해 여왕님의 처소로 향했고, 조금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오게 했다. 몇몇 동족들은 내 결정에 불만을 쏟아냈다.

"왜 그런 말을 한거야?!"

"저건 인간이야! 우리를 납치해서 팔고, 우리 물건을 멋대로 훔쳐가는 인간이라고!"

"여왕님을 노리는거면 어떡할거야!!"

모든 동족들이 그런건 아니었지만 탐탁치않은 얼굴을 한 이들도 많았다. 그저 수많은 페어리중 한 명에 불과한 내가 그런 위험한 결정을 한 것이 불만스러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진정해라.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든 우린 그를 이길 수 없다. 대놓고 적대시 한 것보다 차라리 이쪽이 나아. 적어도 그가 먼저 칼을 뽑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그녀를 너무 탓하지 말거라."

우리중에서 가장 오래 산 분의 말에 그제야 동족들은 진정했다. 여전히 불만에 찬 얼굴이 보였지만 그래도 비난은 수그러들었다.

잠시 후, 여왕님의 처소에 도착했다.

***

주인공side.

호, 혹시 죽은건 아니지? 나는 혹여나 내가 살인을 했을까봐 긴장하며 그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좀 죄송스럽지만 내가 거지가 된지라 그들의 품에서 돈이랑 물건을…… 좀 삥땅 쳤다. 얼굴 기억해놓을게요. 나중에 돈 벌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얼마나 정줄놓고 마구 휘둘렀는지 아직도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으며 여전히 날 벙찐 얼굴로 보고있던 요정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만 당신……."

말한다 말해. 진짜 요정이야, 살아있다고! 여기가 지구가 아님을 100% 확실시해주는 증거를 본의아니게 제공해준 요정에게 허무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이 움직여지나?"

별 기대따윈 안하지만 난 니가 존나 정교한 피규어이길 바란다. 열도에서 장잉정신으로 개발된 최첨단 피규어이길 바란다고! 그러나 요정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기대의 허리를 분질러버렸다.

"모두 너의 동족인가?"

저 곤충 표본 비슷한 꼴이 되어있는 요정들이 전부 피규어이길 바랬어! 떡대들이랑 할아버지가 치매 환자이길 바랬다고! 저 사람들에겐 아니겠지만 나한텐 그쪽이 차라리 나아!

나는 표본 액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좀 전에 보았을땐 뭔 박제처럼 움직이지 않더니 지금은 날개가 고정되어 잘 움직이지 못할 뿐 파닥파닥거리는게 살아있는 생물체임이 확실했다. 꺼내줘야…… 아까처럼 깨면 안되지. 유리판을 들어 날개에 꽂힌 핀을 뽑았다. 이상하게 핀에 꽂혀있던 날개에 구멍같은게 남지 않았는데 하하하 이거 설마 마법? 꺄우! 요정에 이어서 마법이냐!!

손에 쥐어진 핀을 대충 땅에 버렸는데 스르륵 사라지는게 이것이 마법 혹은 그 비슷한 것임이 확실했다. 젠장. 고정되어있던 요정은 핀이 다 뽑힌 뒤 몸을 일으키고는 팔랑팔랑 날개짓을 하며 내 주위를 날아다녔고, 다른 요정들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 아 그래 할게 한다고. 해줄게. 근데 그 전에.

"멍하니 뭘 하고 있는거지."

나는 편하게 땅에 앉아있던 여자애 요정에게 표본 액자를 내밀었다.

나 혼자 저사람들 깨기 전에 이거 다하는거 무리거든. 그러니까 너도 해주라.

"저들이 갖고있던 거다."

여기에 나는 뇌물격으로 아까 할아버지 망토를 뒤지다 나온 우유도 줬다. 어디서 구한건지 옛날에나 볼법한 병우유였지만 유통기한은 괜찮겠지.

이후 모든 요정들이 표본상태에서 탈출했고 - 난 여기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님을 확인사살당했으며 내가 누구가 되었는가에 대한건 문제조차 아님을, 그보다 더한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저…… 우리들을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별거 아니다."

진짜로 한게 별로 없거든. 어어어 하면서 검으로 봉산탈춤을 췄으니 솔직히 다 잊어버리라고 하고 싶다고. 그리고 지금 나한테 중대한 문제가 있어.

"하나 부탁해도 되나."

"무, 무엇을 말이죠?"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지구도 아니다.

"잠시 너희에게 신세질 수 있나."

나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되버렸어. 돌아갈 집이 없다고.

요정들의 반응은 거셌다. 몸이 작은데 목소리 톤은 높아서 앵알거리는 것 같고, 숫자까지 많으니 뭐라 말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의 반응이 무척 좋지 않음은 확실히 알았다.

여, 역시 무전취식은 너무했나? 근데 요정이 인간이랑 같은 돈을 쓰는것 같진 않다고.

"인간은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버려! 우리 숲에서 썩 꺼지라고!"

"맞아! 인간은 당장 꺼져!"

인간? 아까전에 그 떡대들과 할아버지 말입니까? 이보세요 방금전에 내가 그 사람들 전부 기절시켰다고요! 그 사람들한테 가서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당신들의 돈과 물건을 슬쩍하긴 했지만 좀 재워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해봐! 멍석말이로 끝나면 양반이지 배때기에 칼침맞는다고!!

"…… 지금 나더러 저들이 있는 곳에 가라는건가?"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요정이라서 머릿속도 메르헨으로 가 있는건 아니겠지? 너무 어이없어서 목소리가 한톤쯤 내려갔다.

"그─ 그건 여왕님께 물어봐야 해요. 당신은 인간이지만 우리를 구해줬으니 잘 설득하면 될지도 몰라요."

다, 다행이다……! Okay는 아니지마 No도 아니야!

"알았다."

"저희를 따라오세요."

여왕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며 앞서 날아가는 요정들이 시끄럽게 뭐라 말하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설마 나 중간에 버리고 가는건 아니지?

========== 작품 후기 ==========

그거 무리.

@천궁사월 - 하지만 여긴 소설속이니 그렇게 써볼……(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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