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어리side
여왕님이 남자에게 호의적일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분이 인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모르는 페어리가 없었으니까.
"당장 꺼져라 인간."
아니나 다를까 여왕님은 혐오감을 감추지 않으셨다.
"어째서냐."
"몰라서 묻나? 니놈같은 수상한 인간이 우리들의 엘린 숲에 왔다는 것 자체가 끔찍해. 듣자하니 단 한 명의 인간도 죽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놈들과 한패고 여기 오기위해 그럴싸한 연극을 했을지 누가 알지?"
여왕님의 말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에게서 질식할것 같은 따가운 기세가 폭사되어 많은 이들이 주저앉거나 땅에 추락했다. 여왕님은 몸을 떨었지만 노기를 띈 얼굴로 그를 보았다.
"어쨌든 안된다는 말인가."
"당…… 연한 말을."
남자와 여왕님의 눈싸움은 그렇게 몇 분동안 - 체감상 수십년은 된듯했다 - 이어졌고,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끝났다.
"그럼 가도록 하지."
"…… 그래도 애들을 구해줬으니 쫓진 않아주지."
그는 망토자락을 털며 미련없다는듯이 홱 몸을 돌렸다. 여왕님은 긴장이 풀리셨는지 그대로 축 늘어지셨다.
그때 남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인간을 닮았군."
일대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숨쉬기 힘든 분위기로 돌변했다. 여왕님은 눈을 흡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며 뚝뚝 말을 끊으며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했지?"
남자는 귀찮다는듯이 고개를 슬쩍 돌려 여왕님을 보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신 여왕님이 외쳤다.
"방금 뭐라 말했는지 다시 말해──!!"
"당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말했다."
한치의 가감없는 대답에 여왕님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남자에게 독가루를 쏟아부으려고 했다. 이어지는 남자의 말만 아니었으면.
"나는 요정이라는 존재가 환상속의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보니 내 상상 이상으로 인간과 닮아있군."
아, 아아─.
나는 그가 여기까지 오면서 그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냈다. 구해줬음에도 구해준 이들에게 의심받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의 분노와 혐오, 종래엔 한 조각의 신뢰조차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그 과정들을.
여왕님 역시 우리가 말한 것을 들으셨고, 그것들을 떠올리셨는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으득 가셨다. 정말로 슬플정도로, 우리는 인간과 닮아있다는걸 깨달으신 모양이다.
남자는 여왕님을 보시다 다시 몸을 돌렸다.
"…… 잠깐만."
"이번엔 뭐냐."
"머무는거, 허락해주지."
여왕님은 질끈 눈을 감았다 뜨시고는 천천히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서는 안돼. 하지만 우리의 영역에서 그대가 머무는걸 허락해줄 수 있어."
남자는 여왕님을 물끄러미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다."
여왕님은 들고있던 완드를 휘둘러 남자에게 무려 친애의 의미인 본인의 날개가루를 뿌렸다. 이제 남자는 페어리들의 적의를 받지 않게 되었다.
"아마란스."
"네, 네!"
"니가 그를 도와라."
"아아, 알겠습니다."
…… 그런데 어째서 내가 불린건지는 모르겠다.
***
여기가 한국이, 지구가 아닌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페어리, 페어리 퀸 에피네아.
"당장 꺼져라 인간."
시바 메이플이였냐아아아아아아──!
왜 하필 게임 속이야! 거기다 왜 메이플이고! 심지어 저 모습이면 완전 옛날이잖아! 영웅들 활약할 그 시기 아니야?! 그 검은 마법사가 존나 깽판쳤었다는, 아 에피네아가 아직 멀쩡하니 검은 마법사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하여튼!
잠깐 그럼 난 대체 누가 된거야?! 쌍검 꽂고 있는거 보면 전사인데 메이플 직업중에 이도류 쓰는 놈은 없어! 듀블이 있긴 한데 그놈은 단검이잖아! 개판이 아니라 카오스가 된 머리는 이 와중에 중요한 사실을 짚어냈다.
내가 여기서 머물지 못한다=맨 몸으로 위험한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숲에서 노숙. 나는 다급히 물었다.
"어째서냐."
"몰라서 묻나? 니놈같은 수상한 인간이 우리들의 엘린 숲에 왔다는 것 자체가 끔찍해. 듣자하니 단 한 명의 인간도 죽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놈들과 한패고 여기 오기위해 그럴싸한 연극을 했을지 누가 알지?"
…… 저같은 평범한 고딩이 칼 들었다고 살인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여왕님. 거기다 그런 연극을 할 정도로 내 머리는 좋지 않은데? 하지만 적대심 충만하신 여왕님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신 것 같고,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노숙이라는 현실에 얼굴을 찡그렸다.
"어쨌든 안된다는 말인가."
"당…… 연한 말을."
왜 말을 더듬으시는 겁니까. 제 표정이 그렇게 안좋나요? 얼굴이 뭐 현상수배범급으로 흉악해졌답니까? 잘 보니 다른 요정들이 죄다 식겁하며 필사적으로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젠장 거울 어디있어 거울! 내 면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좀 보자!
나는 최대한 간절한 눈빛으로 여왕님을 보았고, 여왕님은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나는 쏘아봄으로 답해주셨다.
하아. 노숙 확정이다. 이 숲속에서 어떻게 잘 곳을 찾아.
"그럼 가도록 하지."
"…… 그래도 애들을 구해줬으니 쫓진 않아주지."
차암 감사합니다. 다행이라 생각하자. 만약 페어리들(에인션트 페어리, 샤이닝 페어리Lv100)이 날 죽이기 위해 쫓아오면 완전히 망한다고. 지금 내 렙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검은 물론 몽둥이 휘둘러본 경력조차 없는 내가 있으나마나한 검 두 개 들고 지상 자유형을 선보이며 살기위해 발버둥쳐야하는데 이거 어떻게 봐도 비석 떨굴게 확실하다.
숲의 모든 나뭇잎을 모아올 기세로 끌리던 털망토를 팍팍 털고는 나는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실물로 본 에피네아는 의외로…….
"인간을 닮았군."
어째서인지 다른 페어리들과는 달리 몸집이 인간만해서 날개만 빼면 완전 인간─.
"지금, 무슨 말을, 했지?"
와 시밝.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산하기짝에 없는 목소리에 나는 지금 상황이 조트망이라는걸 깨달았다. 인간싫어하는데 인간 닮았다고 했으니 빡칠만하잖아! 근데 이걸 또 들었어? 아 들릴만하네 거리가 10m도 안되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살짝만 고개를 돌려 보았다.
…… 타락하지도 않았는데 그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기세의 에피네아가 흉흉한 눈으로 날 보고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에피네아의 방어율은 50%이며 모든 속성 반감, 유혹과 지속데미지 그 외 상태이상을 씁니다. 거기다 Lv는 102! 꺄륵!
최, 최대한 변명을 짜내야─
"방금 뭐라 말했는지 다시 말해──!!"
고함과 함께 휘몰아치는 빛나는 칼날 벌레들에 나는 즉답해버렸다.
"당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말했다."
엄마 나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만약 살아서 여길 벗어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내 싸다귀부터 쳐야겠다. 에피네아가 뭐라하기 전에 최대한 그녀에게 화가 덜 날만한 변명을 만들었다.
"나는 요정이라는 존재가 환상속의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보니 내 상상 이상으로 인간과 닮아있군."
틀린 말은 아니야, 틀린 말은! 에피네아가 인간하고 닮게 생긴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페어리들도 인간하고 닮았고! 솔까말 움직이지만 않으면 피규어같이 생겼어.
그러나 에피네아는 이를 갈며 여기서도 보일만큼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고, 나는 그녀가 공격하기 전에 빠져나가기 위해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 그래도 당장 날 공격하진 않을거야. 다른 페어리들이 있으니까!
"…… 잠깐만."
아 여왕님 제발. 살려주세요.
"이번엔 뭐냐."
"머무는거, 허락해주지."
What?
"우리 집에서는 안돼. 하지만 우리의 영역에서 그대가 머무는걸 허락해줄 수 있어."
…… 이거 뭐지? 왜 갑자기 허락한거지?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카오스가 된 머릿속으로 진리가 떠올랐다.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그래 여왕님의 변덕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고맙다."
변덕이라도 머물 것을 허락해주셨으니 감사의 인사는 당연 지사! 절까지 하고 싶었지만 이상한 놈으로 보일것 같아서 고개를 숙인걸로 끝냈다. 그런데 왜 여왕님이 직접 다가오시는 거지?
그러다 갑자기 머리 위로 황금빛 가루가 확 쏟아졌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경악하는 페어리들이 보였다. 뭐야? 이 금가루가 뭐길래 그런 얼굴이야? 왜 저들이 저런 얼굴인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 뭔가가 팍 스쳐지나갔다. 왜 그 포X몬의 가루 시리즈중 하나인 마비 가루. 거기다 페어리들 주 공격기가 독가루였던것 같은…….
"아마란스."
"네, 네!"
"니가 그를 도와라."
"아아, 알겠습니다."
…… 이거 사망플래그 맞지? 감시자까지 붙여서 내가 중독사하는걸 확인하고 싶다 이거 맞는거지?
나는 부디 이 몸이 페어리의 독을 으적으적 씹어먹을만큼 튼튼하기를 빌며 - 마침 체력 빵빵한 전사계열이겠다 - 옆에 따라붙은 아마란스란 페어리에게 제일 먼저 씻을 곳을 물었다.
========== 작품 후기 ==========
그러니까 그거 아니야.
@소설조으다5 - 둘 다 가능합니다. 본인만 모르지.
@darkdestiny - 전사계열이라 기초 스펙이 굉장히 높지만 멘탈은…….
@아쿠아쿠쿠키 - 착각물 소설중엔 이보다 더한게 많습니다.
@허공말뚝 - 그래도 주인공 힘은 진짜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