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인공side.
일단 난 전사 계열 직업인것 같고, 전사는 다른 건 몰라도 체력은 빵빵하니까 - 아란은 살짝 제외하고 - 독데미지에 바로 골로 가지는 않을거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황하지말고 침착하게……!
"저, 그─ 여왕님을 미워하시지 말아주세요. 워낙 인간들에게 안좋은 일들을 많이 당하셔서 그런거에요."
응 스토리 진행하면서 그건 자주 봤으니까 됬어. 설정이 그런걸 어쩌겠냐고. 지금 문제는 이젠 흔적조차 안보이는 가루를 어디서 씻느냐야.
숲에 있는 물은 역시 연못이나 강일거고 혹은 폭포겠지. 씻은 뒤에 옷은? 옷에도 그 가루 묻지 않았나? 이거 단벌의상인데 갈아입을 옷 없다고. 이것도 씻은 다음 말려야하나? 근데 나 빨래 할 줄 모르는데다 이 옷 의외로 꽤 고급인것 같은데 그럼 손빨래는 무리잖아.
어째 점점 딴길로 새던 고민들은 종래에 한복의 드라이클리닝 가격을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란스인지 뭔지하는 페어리는 옆에서 뭔가 열심히 떠들었던것 같은데 대부분 못 들었다.
"집을 드리지 못한건 죄송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건 다 해드릴 수 있─."
"그다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너네들이 사는 집이라 해봤자 스머프네 버섯집 수준일거 아니야. 내가 들어갈만한 사이즈는 그 여왕님 자는 곳 뿐일텐데 그건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았고. 거기다 내 손바닥만한 애를 부려먹는건 양심에 찔린다.
"네에……."
왜 실망하는거지. 너 뭘 기대했던거야?
도착한 곳은 입구같은 구멍이 뚫린 텅 빈 나무였다. 와 씨 잠깐만 이거 어째 뭐가 생각나는데? 그 왜 열대쪽에서 쓴다는 나무 속을 파내서 관 대신 사용하는 그거같은데?
페어리가 나무에 손을 짚더니 나무 안쪽에서 나뭇잎이 자라나 바닥을 덮었다. 아 어째 보면 볼수록…….
"그런가."
완전히 미움털 박혔구나. 시체 처리하기 쉽게 돌돌 말아다 버릴 수 있도록 이런것까지 하고. 여왕님 왜 이렇게 속이 좁으신겁니까! 아 물론 내가 말실수한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이 근처에 씻는 곳이 있나?"
급하다. 존나 급해. 야동보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두드린 것만큼 긴급한 상황이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난 수레바퀴 안가지고 있고, 여기서 죽으면 원래 세계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더 지체할 수 없다.
"일단 가장 가까운 곳은 이 나무 위에 수원이 있긴 해요."
"알았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나는 타잔에게 왕복 싸대기를 쳐줄만큼 빠르게 나무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중간에 몇 번 헛디뎌서 떨어질뻔했지만 이 몸은 의외로 튼튼한지 발목 삐끗 한 번 안하더라. 전사계열이라 고맙다.
나무의 꼭대기엔 부유하고있는 바위들과 바위틈으로 핀 색색의 꽃, 가장 위에 있는 바위에 보석이 장식된 새하얀 아치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내 코가 석자인지라 그런건 눈에 안들어왔고 흘러내리는 물만 보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없이 떨어지는 물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두개골을 파고들어 뇌까지 세척하는 냉기에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바로 뒷걸음질 쳐야했다. 뭔 물이 이렇게 차가운거야!
"아씨 뭐 되는게 없어……!"
그, 그래도 씻었으니까 이제 괜찮겠지? 얼굴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내며 왜 여자들은 귀찮게 머리를 기르나 했다. 걸레짜듯이 머리를 비틀어 짜며 옷은 거의 안 젖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나무관짝에 들어가긴 싫고, 숲에 가는건 자살짓에 노숙도 못하고, 난 내 직업에 렙도 모르는 상태이니…….
"스킬 연습이나 해봐?"
그런데 나 스킬 쓸 수는 있는거지? 아니면 심각하게 곤란하다.
***
아마란스side.
"저, 그─ 여왕님을 미워하시지 말아주세요. 워낙 인간들에게 안좋은 일들을 많이 당하셔서 그런거에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우리 종족마저 인간들처럼 불신하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걸어가는내내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나는 더 초조해졌다.
"집을 드리지 못한건 죄송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건 다 해드릴 수 있─."
"그다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네에……."
기대하지 않았다니.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그가 머물 곳에 도착했다.
엘린 숲에서만 자라는 높은, 그러나 속이 빈 나무에 들어온 나는 나무에 손을 짚으며 나무에게 부탁했다. 싹을 틔우고 잎을 뻗어 우리에게 도움을 다오. 순식간에 나무 안쪽에 자란 큼직한 나뭇잎이 바닥을 덮었다.
"이곳에서 주무시면 될거에요."
그런가. 그는 내게 물었다.
"이 근처에 씻는 곳이 있나?"
"일단 가장 가까운 곳은 나무 위쪽의 수원이 있긴 해요."
"알았다."
그는 그대로 땅을 박차 나뭇가지를 몇 번 딛고는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가버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그의 모습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인간들 중엔 모험자라는 떠돌아다니는 강한 이들이 있다는데 어쩌면 저 남자가 그런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나뭇잎을 정리하고, 입구쪽의 잔가지를 치워낸 나는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의외로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했다. 그와 같은 검사가 이곳에서 위기에 처할리는 없으니 여왕님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무리가 그에게 시비를 걸었나하는 우려에 수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내 두 눈을 의심할법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허공에 그어지는 검의 궤적은 놀라울만큼 자유로웠다. 한 쌍의 검이 중력과 공기의 저항을 무시하고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한 번 휘둘러지고 다시 휘둘러지는데 끊어짐이 없어 모두 하나의 동작같았다. 그 경이로움에 눈을 뗄 수 없었던 나는 한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옷과 모자에 달린 방울들의 소리도, 수원의 바위 위에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물을 밟는 찰박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게 사람이 가능한 행동인가.
놀라움이 공포로 바뀌기 직전, 남자는 어느순간 검을 뚝 멈추고는 말했다.
"뭐하고 있는거지."
눈치챘어?! 아니, 눈치 못채는게 이상하다. 저런 검사가 자신같은 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살짝 머리가 아픈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더 숨길 수 없는 것을 안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갔다.
"훔쳐봐서 미안해요. 좀 많이 놀라서……."
"됐다."
벌써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엘린 숲은 너무도 울창해 밤이 되면 달빛조차 내려오지 못했다. 그가 나무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 언뜻 실루엣으로만 보였을뿐이다.
그러니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것이리라.
***
주인공side.
스킬을 쓰기 위해 정말 되는대로 막 검을 휘둘렀다. 근데 난 그냥 고딩이잖아? 검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고.
…… 시바 누구냐 이도류가 존나 짱쎄다고 지껄인 자식이. 양 손을 따로따로 움직여야해서 진짜 쓰는것부터 불편하다고! 손목 관절 나가겠네.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도 몰라서 정수로 잡았다가 역수로 잡았다가 몸을 돌리면서 검 휘둘렀다가 물밟고 미끄러질뻔하고, 나오라는 스킬은 안나오고. 소아온처럼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나 싶어서 진짜 오만가지 포즈로 쫘라락 해봤는데 택도 없더라.
이 와중에 여왕님이 또 변덕을 부릴까봐 옷이랑 모자에 달린 방울이 안울리게, 발소리도 조심해야했다. 이놈의 옷은 디자인만 번지르르하고 실용성이란게 안보이냐. 나중에 이거 다 뜯어버려? 대체 왜 방울이 달린거야? 단벌의상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진짜.
그렇게 한참동안 검을 휘두르다 어느순간 뚝 멈췄다.
아놔…… 나 정말.
"뭐하고 있는거지."
스킬=MP를 소모해서 쓰는 기술이다. 달리 말하면 MP를 쓰지 않으면 스킬은 발동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MP를 쓸 줄 모른다.
나 여태 뭔 삽질을 한거야. 깊은 빡침이 올라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역시나 시끄러운 일을 하면 여왕님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물에 머리를 박으면 좀 식으려나.
그런데 갑자기 아마란스란 페어리가 툭 튀어나오며 말했다.
"훔쳐봐서 미안해요. 좀 놀라서……."
쥐구멍!! 누가 나한테 쥐구멍 좀 줘! 지금이라면 그 관짝같은 나무에 망설임없이 몸을 던질 수 있어! 거기다 놀랐다고 했어, 놀랐다고 했다고! 그래 그 병신같은 춤시위를 보면 당연히 놀라겠지! 존나 내가 봐도 저거 뭔 짓거리냐고 묻겠다!
나는 그녀에게 그 기억을 레테의 강물에 쳐박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그녀의 안구를 테러한게 나이므로 차마 말할 순 없었다.
"됐다."
그냥 포기하자.
결국 나무안에 기어들어가 웅크렸다. 나는 왜 트립퍼 보정을 하나도 못 받은 것인지 한탄하며 내 직업의 그지같음을 욕했다.
그나저나 여왕님 기왕이면 위에서 물 안새는 나무를 주시지 그랬나요. 간간히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슬려서 털망토를 덮어야 했다. 처음으로 이 망토가 쓸모있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검호 좋은 직업이거든.
주인공은 관같다고 했지만 그건 분위기가 그런거고 실제로는 발 쭉 뻗고 잘 수 있을만큼 넓습니다.
@화뉴 - 연참은 무리에요. 그래도 최대한 일일연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구속상해 - 히로인은 일단은 구상중.
@허공말뚝 -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darkdestiny - 그러니까요. 진짜 독이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음.
@ReFrante - 예. 전혀 상관없었죠.
@소설조으다5 - 큰 폭의 성장은 없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먼치킨인데 주인공이 좀 그래서 티가 안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