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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6화 (6/208)

<--  -->  주인공side.

페어리들의 영역에서 머무른지 어언 1달이 지나갔다. 와아, 시간이 진짜 허무할정도로 휙휙 가는구나.

원래는 대충 하루나 이틀정도 머물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 했는데 우연히 숲에서 만난 용병들이 날 보고 한다는 말이─

'현상수배범이다!'

…… 알고봤더니 나한테 두들겨맞아 기절당하고 금품까지 갈취당한 용병과 할아버지가 날 신고했었단다. 거기다 그 사람들한테 페어리 세트를 예약했던 귀족들이 빡쳐서 나한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고? 하하하 끝내주는 인생이군! 온지 하루만에 현상수배범이 됬어! 거 높으신 분들은 이럴때만 처리속도가 우디르급이냐?!

덕분에 숲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페어리네 영역에서 머물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잉여하게 있긴 좀 그래서 요정들을 잡으러 온 이들을 쫓아내곤 했다. 나같은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궁금하기도 하겠는데, 사실 난 그냥 검 두 개 들고 열심히 아등바등할 뿐이고 진짜 일은 아마란스가 한다. 이 쪼끄만 애가 나보다 더 능력있어서 우울해서 짜져 있기도 했다.

내가 사냥꾼들을 쫓아내는 것을 안 여왕님이 묻기를.

'왜 그들을 죽이지 않는거지?'

'내가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 거지.'

이보세요. 아무리 칼들었어도 전 그냥 고딩에 불과해서 살인은 무리라고요.

사실 죽이진 않았지만 죽일뻔한적은 많다. 꼴에 게임속이라고, 사람을 베는데 베는 느낌이 없다. 종이 쌓아놓은걸 내려친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오히려 힘조절을 해야하는 판이다. 사람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죽이기 위해서.

…… 그리고 이 거지발싸개같은 직업은 진짜 나한테 충격과 공포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생겨먹은게 단 한 번도 스킬이 나오질 않냐고! 초보자냐? 전직 안한 초보자냐고! 일주일동안 내내 검 두 개 들고 팝핀인지 브레이크 댄스인지 모를 춤시위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이 검을 어디다 팔아먹을까였다. 결국 계속 가지고있기로 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나는 여왕님께 쫓겨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사냥꾼들을 쫓아내며 숲을 돌아다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제발 생각이라는걸 좀 하고 살라고 멱살잡아 마구 짤짤짤 흔들어주고 싶다.

***

???side.

엘린 숲 부근에 갔을때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요정 기사(Fairy Knight). 인간이면서 요정들을 지킨다는 한 남자에 대한 소문. 최초 이름높은 용병대를 쓰러뜨려 페어리들을 탈출시킨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숲에 들어오는 모든 요정 사냥꾼들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쫓아낸다고 한다.

왜 죽이지 않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혹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비'라고 추측했다. 허나 그에게 당한 용병중 한 명이 콧웃음을 치며 말하길.

'자비? 그놈은 우리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어.'

그건 경고였어. 다시 이 숲에 발을 들여 요정에게 손을 대면, 반드시 목을 날려버리겠다는 경고. 실제로 그에게 당한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요정을 잡으러 숲에 가지 않았다. 그만큼 요정 기사가 두려운 것이다.

"절대적인 힘과 공포에 의한 지배……."

그 남자, 요정 기사가 하고 있는 행동이 딱 그거였다. 다음에 요정들에게 손댄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은연중에 퍼져 사냥꾼들의 발을 묶었다. 저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압도적인 힘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고, 그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혹은 무시할만큼 일확천금에 눈이 먼 이들은 여전히 요정을 잡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유도 손해를 입은, 혹은 미색있다는 요정 기사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괴악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건 현상금때문이 아닌가.

숲에 볼일이 있어 왔다만, 또다른 용건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며칠동안 숲을 배회한 끝에 여러가지 의미로 이름높은 요정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길게 흔들리는 검은 머리와 깊게 잠겨든 붉은 눈,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봤음에도 난생 처음보는 형태의 옷을 입은 쌍검의 남성이 붉은 날개의 페어리와 함께 내 앞에 나타났다.

***

주인공side.

여기가 메이플인건 알았지만 구체적인 시대는 몰랐다. 에피네아를 보니 검은 마법사가 탄생하기 이전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몇 년 전인지 몇 십년 전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적당히 페어리들에게 신세지다 현상금이 좀 잠잠해진다 싶으면 숲을 나가서 확인해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정 기사."

와 시발 잠깐만.

긴 백발에 지성으로 빛나는 푸른 눈,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울림의 목소리. 곳곳에 금색이 장식된 하얀 마법복을 펄럭이는 남성이 온화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흡사 명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내 눈엔 입체파 그림수준의 흉악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 하얀 하법사 - 미래의 검은 마법사라는 사실을.

"진정하세요. 위해를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닥쳐 새꺄 넌 존재 자체가 만악의 근원이잖아!

"저는 그저 이 숲에서 자라는 마법초를 채취하기 위해 그리고 페어리 퀸 에피네아를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응 그리고 죽어. 문답무용으로 검 뽑으려고 했는데 뇌에서 빌빌거리며 기어나온 지식이 말했다. '하얀 마법사는 당대 최고의 빛 마법사야 병신아.' 아 그러고보니 오멘무리들도 보조 스킬 한 방에 전★멸 시켰지?

결론:타락 전에도 나보다 더 쌤ㅋ 아니 이 세계관에서 나보다 약한 놈은 어린애밖에 없겠다만.

꿈도 희망도 없는 - 언제는 있었냐만 - 결론에 인상이 구겨졌다.

"의심이 가는건 당연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저는 요정들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믿어도 될까? 일단 검은 마법사가 아닌 하얀 마법사때는 과거에 사람들도 도왔다고 하고, 에피네아가 홀딱 빠지기도 했다만. 고민하는 사이 하얀 마법사는 지팡이도 손에서 놓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왜 그걸 나한테 묻냐? 페어리는 너잖아.

어차피 난 저놈을 죽이는건 무리고 -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 쫓아내는것도 무리고…… 나 진짜 무능하구나. 여태껏 어떻게 사람들 쫓아냈지? 아참, 아마란스가 다 했지.

"…… 따라와라."

기운이 쭉 빠졌다. 나중에 저놈 검마되면 어디로 피해가지.

***

아마란스side.

그 환상이라고 해야할 검무(劍舞)는 매일 이어졌다. 저런 실력의 검사이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는걸 단 하루도 빼놓지 않는 모습에 살짝 질리기까지 했지만, 달리 말하면 저러니까 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는 우리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들을 사냥하는 이들을 공격해 쫓아내주었다.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건 없어서 간간히 풀을 자라게 해 사냥꾼이나 개의 발을 잡거나 날아드는 매에게 마비가루를 뿌리는 정도의 간단한 일만 했다. 이후 그걸 안 여왕님은 그를 조금이나마 믿게 되었지만 그를 불러 의심쩍은 부분을 짚으셨다.

'왜 그들을 죽이지 않는거지?'

'내가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 거지.'

동정심도, 자비도 아니었다. 뿌리깊은 혐오감. 뭐 그리 당연한걸 묻냐는듯한 대답에서 그것이 선명히 보여 숨이 막혔다. 대체 그는 인간에게 무슨 일을 당했길래 검에 피를 묻히는것마저 저리 기분나쁘게 여기는걸까.

그러다 그가 현상수배범이라는 말이 사냥꾼들에게서 터져나왔다. 귀족들이 그에게 현상금을 걸고 생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그 말에 그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었다. 귀족과 연관이 있는 이였나? 아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남자의 고급스러운 복식만 봐도 그가 범인(凡人)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사냥꾼들을 죽이진 않되 병신으로 만들어 쫓아내길 약 한 달, 사냥꾼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가고 남자가 여왕님에게서 어느정도 신뢰를 얻었을 무렵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정 기사."

빛나는듯한 백발의 마법사가 우아하게 인사하며 우리를 반겼다.

처음 그를 본 순간 그의 미소와 목소리에 단번에 그를 환영할뻔 했지만, 남자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내가 조금 전에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고작 외모만으로 사람을 믿으려 하다니!

"진정하세요. 위해를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이 숲에서 자라는 마법초를 채취하기 위해 그리고 페어리 퀸 에피네아를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눈꼬리가 올라가며 손이 검병에 닿고 있었다.

"의심이 가는건 당연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저는 요정들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를 땅에 박고 두 손을 펼치는 마법사를 보며 그는 생각에 잠긴듯 마법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 따라와라."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의 영역으로 가는 중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마법사를 믿나요?"

"지금 당장은."

다행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

검마는 당연히 신용불량자고 하마는 뭐─ 좀 믿어도 되겠지? 설마 에피네아가 지 종족한테 해가되는 놈한테 반했겠어?

…… 아 근데 나중에 에피네아 보스몹 되고 다른 페어리도 죄다 몹되잖아. 진짜 괜찮으려나. 불안한데.

========== 작품 후기 ==========

슬슬 내가 아니라 페어리가 작가인것 같다.

@천궁사월 - 그런데 주인공은 그걸 몰라요.

@ReFrante - 착각계는 대화의 중요성을 알려주죠.

@화뉴 - 수정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허공말뚝 - 서로 깊은 대화를 안하니 오해는 풀릴 기미도 안보이고…….

@darkdestiny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mp를 써도 본인이 생각하는 스킬(뭔가 번쩍번쩍한 것)이 안나오니 썼다는 자각도 없음.

@소설조으다5 - 나중에 중요한 분기점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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