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7화 (7/208)

<--  -->  주인공side.

여긴 분명 메이플 세계지만 어느정도 현실 보정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모 게임 소설들처럼 사냥을 하면 레벨업했다는 알림음같은건 없고, 스킬 이름을 외쳐야 스킬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건 페어리들의 마법으로 확인했다.

길게 설명할거 없이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내 직업,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전사계열이라는 것. 무기로 검이나 도, 창을 들며 체력과 힘이 우수한 이 계열은 다른 직업계열에 비해 일상에서도 상당히 유용하다. 무거운 것을 들때 쉽게 들 수 있고, 남들에 비해 오랫동안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마법사는 어떨까?

"저, 자자, 잠깐만 좀……."

5개의 직업군 중에서 가장 체력이 거지라는 설정이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재현되어 있는걸까. 목끝까지 숨이 차오른 하얀 마법사는 헐떡이며 지팡이에 매달리다시피 주저앉았다. 와나 진짜, 내가 쟤한테 쫄았어?!

처음엔 몇 번 텔레포트도 쓰더니 이제는 그것도 무리인 모양이다. 나같은게 뛰어다닐 수 있는 숲을 저렇게 헉헉거리며 따라오는 모양새에 이제는 약간의 안쓰러움마저 느껴졌다. 쟤는 INT에만 포인트를 부었나? 그게 정석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 옷보다 희어진 얼굴이 재색으로 돌아오지 않아 이대로 버리고 갈까 했다만, 그랬다간 보복당할 것 같았다. 아마란스가 그를 보다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그러니까 왜 자꾸 나한테 묻냐고. 나는 좀 망설이다 어떻게든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려는 하얀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업혀라."

"예?"

예는 뭔 예야? 그럼 내가 널 안고가리? 시발 아무리 잘생겼어도 남자잖아! 남자를 공주님 안기하고 숲 속을 질주? 어디의 BL물이냐? 솔까말 그냥 포대자루처럼 들쳐메고 싶어! 그랬다간 내 끝이 안좋을것 같아서 안하는거지.

하얀 마법사는 심히 당황하다가 곧 제 상태를 - 탈진으로 쓰러지기 직전임 - 알고서 순순히 업혔고 나는 그대로 페어리들의 영역을 향해 달렸다. 지금의 내가 남자 하나 업고 달려도 지치지않는건 이미 알고 있어서 이런 행동을 한거다. 내 발길질에 다리몽둥이가 작살난 사냥꾼들이 걷지도 못해 숲을 나갈 수 없어 그대로 들고 숲 밖에 던져놓은적이 꽤 있었으니까.

"…… 죄송합니다."

"별로."

니놈의 웃긴 면을 봤으니까 상관없어.

얘 체력이 이런식으로 거지면 레이드 보스 검마는 체력은 얼마일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하드 스우 체력도 괴랄하던데 검마면─ 게임은 현실 보정 안넣으니까 단위부터 틀리겠지.

딴 생각하며 달렸음에도 방향은 그럭저럭 제대로 잡았는지 저~ 멀리 에피네아의 처소인 큼직한 분홍색 꽃이 보였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힘차게 도움닫기를 했는데…….

"멈추세요!!"

이미 늦었어 이년아.

한참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발 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십알 계곡! 페어리들의 영역의 반을 둘러싸고 있는, 왜 이딴게 여기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넓은 폭의 - 약 30m - 계곡에 내가 다이빙하고 있었다.

이런미친이런미친이런미친이런미친──!

온 몸의 피가 순식간에 쫙 빠져나가 내 안색이 표백제를 제끼고 스머프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만큼 시퍼래지는 순간.

"어쩔 수 없군요."

그 말과 함께 내 발밑에 푸른 해골 무늬의 발판이 생겨나더니 내 발이 절로 움직이며 그것을 딛고 한 번 더 뛰어올랐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실로 마법처럼, 수십 미터의 계곡을 단숨에 건너버렸다.

맞은편 땅에 사뿐히 착지한 나는 낙하데미지따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멀쩡한 다리를 내려다보다 의미없이 두들겼고, 하얀 마법사를 땅에 내려주었다. 그는 그대로 풀썩 앉아 흡사 X친 놈 보듯이 날 보았다. 그래 길 잃고 계곡에 다이빙하는 새끼는 댁도 처음보겠지. 그래도 마법써준건 진짜로 고맙다.

"괘, 괜찮으세요?!"

"아무 문제 없다."

노 프라블럼. 끝내주는 마법일세. 빛 마법 전문이라더니 다른 마법도 잘하는구나.

"무슨 생각을 하신겁니까?"

"…… 그다지."

뭔 생각을 했으면 내가 그딴 짓을 했겠수?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가 진정하길 기다렸다가 에피네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줬다.

***

하얀 마법사side.

요정 기사는 나의 상식을 훨씬 웃도는 실력자였다. 숲을 거니는 그는 날개없는 요정이라 칭해지는 엘프보다 더 가볍고 표홀하게 움직였고, 사각거리는 풀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아 눈앞에 그 모습이 있음에도 유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와 쓰러진 나무, 흐르는 강과 절벽을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뛰어오르는 것만으로 건너버려 간간히 텔레포트를 사용했음에도 따라잡지 못했다. 나는 마법사지만 오랫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체력을 쌓았고, 이는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보편적인 마법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내가 숨이 찰 정도로 요정 기사의 움직임은 기묘했다.

혹시 일부러 저를 따돌리기 위해 험악한 지형만 다니고 있는게 아닐까? 페어리의 영역이라는게 이렇게 가기 힘든 곳인가? 결국 입안에 단내가 날 정도로 지쳐 주저앉았을때 그런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붉은 날개의 페어리와 남자가 무어라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뭐라 하는지 듣지 못할정도로 지쳐버렸다.

마법 지팡이를 본래 지팡이의 용도로 사용할 무렵.

"업혀라."

"예……?"

아무렇지않게 다가와 등을 내미는 모습에 당황했다. 그는 빨리 않업히고 뭐하냐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 죄송합니다."

고작 이런 일로 당신을 의심해서. 그리고 짐이 되어서.

"별로."

그는 자신을 업고 조금 전과 한치의 다름없는 속도로 숲을 뛰었다. 업혀있는동안 안 것은 그는 사실 여태껏 속도를 제대로 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지형도 그의 두 다리앞에서 평지와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조금 전까지 그가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가 계곡이 쩍 벌린 아가리에 망설임없이 몸을 던진 순간, 죽음을 생각해버렸다.

사실 그는 자신을 에피네아에게 데려다줄 생각따윈 없었고, 이대로 계곡에다 집어던져 자신을 영영 묻어버리려는게 아닌가하는 불측한 생각마저 든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요정 기사에게 티끌만큼의 신뢰를 받지 못해서, 오히려 멋모르고 그를 믿었다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라고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며 답을 도출해냈다. 지팡이를 휘둘러 텔레포트를 쓰려 해도, 몸을 단단히 잡고 있는 그의 두 팔때문에 완전히 무리.

그러나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은 다가온 속도만큼 빠르게 물러났다. 그가 허공에 생겨난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해골 문양을 자연스럽게 디디기 무섭게 튕겨나듯이 계곡 건너편 땅으로 아무렇지 않게 도착한 것이다.

"괘, 괜찮으세요?!"

"아무 문제 없다."

나는 분명 업혀있는동안 어느정도 쉬었을텐데 완전히 풀린 다리때문에 주저앉아버렸고, 경악한 요정에게 덤덤히 대답하며 가볍게 다리를 두드리는 그를 망연히 보았다. 저 거대한 계곡조차 그에겐 지름길에 불과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신겁니까?"

"…… 그다지."

자신의 실력에 대한 한치의 의심조차 없는 대답. 속으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수 년동안 한 적 없는 상념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직도 수행이 모자라구나.

이윽고 그를 따라간 나는 여왕의 처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호의적으로 대하는 페어리 퀸을 안좋게 보는 그를 보며, 정말 그는 요정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다.

***

뻑갔네 뻑갔어. 아주 간이고 날개고 다 떼줄 기세구만? 내가 걱정할 건 아니지만 페어리들의 앞날이 괜찮을까 몰라. 아 이미 몹되기로 예정되어 있지?

나는 별 소용 없겠지만 아마란스에게 말했다.

"주의해라. 넌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라."

"네!"

어째서인지 기합이 팍팍 들어간 대답이 돌아왔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드디어 스킬을 사용함.

스킬:이도류 이동술.

@그냥마법사 - 그렇게 성의없이 대답하진 않습니다.

@초코에클레르 - 표지처럼 생겼습니다. 플러스로 키가 좀 큰데 목소리는 완전 남자라서 여자로 착각해도 목소리 들으면 아 남자구나 하고 알 수 있음.

@chlwoals - 재밌으시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kyh1237 -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vbk - 그리고 전 시험공부 안하고 쓰고 있죠.

@darkdestiny - 글쎄요…… 일단 고대의 책 퀘스트를 해보면 아시겠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어도 수백년을 살 수 있긴 합니다(예:주먹펴고 일어서).

@화뉴 - 어떤 관계로 설정할지 고민중.

@소설조으다5 - 군단장과 영웅을 동시에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어느쪽으로 가느냐에 대한 분기점이 있을겁니다.

@히야풀버스터 - 고로 더더욱 건필할겁니다!

@블리자스 - 좀 과장했을 뿐이지 정보가 조각조각되면 저런 일이 레알 발생할 수 있다는거.

@ReFrante - 검마보다는 믿을만함.

@허공말뚝 - 꽤 오래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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