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8화 (8/208)

<--  -->  아마란스side.

그 사람은 하얀 마법사를 그리 좋게 보고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럴만도 했다. 그가 페어리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의 사상과 행동은 여왕님을 매료시켰고, 이는 여왕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이들도 동조하게 만들었다. 절대적인 힘에 의한 통치. 이 혼란한 시국에 그보다 달콤한 말이 있을까? 솔직히 나도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한다. 이미 가까운 예가 있지 않은가. 그는 사람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지만, 하얀 마법사는 단순히 잘생기기만 한 이가 아니었다.

여왕님은 하얀 마법사에게 영역 한 쪽을 제공해주었고, 그는 빛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거기에 여왕님은 그의 실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기로 했고, 그 남자또한 사냥꾼을 쫓는 일에서 실험을 돕는쪽으로 일을 자연스레 바꿔야 했다.

나와 그는 마법초와 몇몇 몬스터를 잡아 구한 재료들을 들고 영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당신은 하얀 마법사를 왜 좋게 보지 않는거죠?"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왜 그걸 묻는거지."

"그분이 하신 말은 잘못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대륙은 혼란스럽고, 이런 상황에서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절대적인 힘으로 혼란을 잠재우고, 바른 통치를 해야한다구요. 그런데 왜 당신은─."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화가 났다. 분명 하얀 마법사가 옳은걸 알텐데 왜……!

"내가 그를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했을때 결과를 알고있기 때문이야."

"미래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가 궁극의 빛을 찾는다면 분명 바르게 세상을 이끌어줄 수 있을거라구요!"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당신도 똑같은 일을 했잖아요!"

하얀 마법사가 알려주었다. 그가 사냥꾼들을 쫓아낸 방식이 그의 사상과 다를게 없다는 것을.

"…… 내가 그걸 한 이유는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그걸 썼어."

그리고. 그가 말을 끊었다.

"미래를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어."

몸이 굳었다. 날개짓을 하지 않아 땅으로 떨어지는 나를 받은 그는 제 키보다 더 높은 재료들 더미 위에 얹어주고는 길을 걸었다.

예측할 수 있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요?"

"과거에 이미 봤으니까."

절대적인 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라는건 언제나 변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과거를 바탕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예측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되새긴다.

눈물이 나왔다. 절대적인 힘에 의한 통치를 추구한 이들은 예외없이 독재자가 되고, 독재자는 그에게 짓밟힌 사람들에 의해 끌어내려진다는 사실을 간신히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가 옳았다.

"그럼 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아요?"

"바라는 사람이 없지않나."

지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아아, 분명 내가 말해도 아무 소용없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왜 그걸 나한테 묻는거지."

이제 선택할 수 있게 됬으니 니가 선택해. 말하지 않은 뒷말이 절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

주인공side.

여왕님이 하얀 마법사한테 뻑간 이후 날 아주 하얀 마법사 전용 하인처럼 굴려먹고 있다. 저 여자가 진짜. 여왕만 아니었으면 확 그냥! 직접 말하지 않고 은근히 눈빛만으로 재촉하는게 진짜 짜증난다.

마법초는 뭐가 뭔지 몰라서 같이 온 아마란스가 어떻게든 구분해주지만, 몬스터는 내가 다 잡아야 했다. 광물질의 몸을 하고있는 스톤 버그라든지, 두 개의 갓을 쓴 이끼 버섯이라든지, 꽃을 피운 트리로드라든지. 별 희한한걸 요구해서 숲을 사방팔방 뛰어다녀야 했다. 그나마 난 사람은 못 죽이지만 몹은 별 무리없이 죽일 수 있어서 손쉽게 척척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얘들을 죽일 수 있다는건 내 렙이 한 100쯤 된다는 걸까? 그래서 사냥꾼들보다 기본 스펙이 높은거고. 그런가보네. 나는 혼자 추측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저…… 당신은 하얀 마법사를 왜 좋게 보지 않는거죠?"

"왜 그걸 묻는거지."

얜 또 갑자기 뭔 소리야?

"그분이 하신 말은 잘못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대륙은 혼란스럽고, 이런 상황에서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절대적인 힘으로 혼란을 잠재우고, 바른 통치를 해야한다구요. 그런데 왜 당신은─."

아 얘도 뻑갔구나. 불쌍하게도. 절로 한숨이 나왔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그놈은 페로몬 덩어리라도 되나 페어리들을 줄줄이 다 꼬셔버리네.

"내가 그를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했을때 결과를 알고있기 때문이야."

그놈이 타락하고 니들이 죄다 몹 되는걸 아니까 그런거지. 내가 100렙때 니들 조져가면서 렙업했거든.

"미래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가 궁극의 빛을 찾는다면 분명 바르게 세상을 이끌어줄 수 있을거라구요!"

그러니까 이미 다 안다고 이 아가씨야. 그 궁극의 빛인지 뭐시기가 없는지도. 아 근데 진짜 하마가 검마되면 어디로 피신가지? 저어~기 리엔같은데 가야하나?

"당신도 똑같은 일을 했잖아요!"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뭘 했다고?! 나랑 하얀 마법사가 똑같이 한 일이라고 해봐야…… 페어리들한테 빌붙은거?

"…… 내가 그걸 한 이유는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그걸 썼어."

현상수배범만 안됬으면 너희한테 계속 있지 않았어. 아마 메이플 월드 돌아다니면서 현실 세계로 갈 방법을 찾고 있었겠지. 슬슬 계속 있는것도 미안해지고 있고.

"그리고."

중요한거 하나 더.

"미래를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어."

이미 네타 다 봤어 야. 여기까지 진행됬는데 바뀌고 자시고 할게 있겠냐? 갑자기 날개짓을 멈춰버려 뚝 떨어진 아마란스를 빠르게 검집채로 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받은 다음 들고있던 재료 위에 얹었다. 와 이 몸 진짜 여러모로 좋네. 돌아갈때 좀 바꿀 수 없을까.

"어떻게요?"

"과거에 이미 봤으니까."

퀘스트란 형식으로 말이지. 차원의 도서관이 꽤 퀄리티가 좋았지.

"그럼 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아요?"

"바라는 사람이 없지않나."

여왕님은 하얀 마법사한테 어지간히 반해서 슬슬 날 유용한 노예쯤으로 취급중이거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현상금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갈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왜 그걸 나한테 묻는거지."

어이 너 이제 나한테 그만 좀 물어봐. 니가 생각 좀 하라고.

잠시 후 나는 영역에 도착하고 술먹은 모기처럼 날아가는 아마란스를 뒤로하고 모아온 재료들을 하얀 마법사에게 전달해주었다.

"꽤 빨리 구해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작작 좀 부려먹어 이 양반아. 뭔 실험을 하길래 사람을 이렇게 혹사시키는거야? 몸이 튼튼한 덕에 딱히 지치진 않았지만 돌아다니면서 사냥꾼까지 쫓아내야하는 내 처지를 좀 생각해 달라고.

"그건 이쯤에 놔주실 수 있나요? 아 거기요."

대충 탁자랑 방 한쪽에 재료들을 툭툭 놔둔 나는 그대로 나가려고 했다. 어설프지만 유일하게 있는 검이나 휘두르려고. 그런데 하얀 마법사가 날 붙잡았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러니까 이제 꺼지고 다시 만나지 말자.

***

하얀 마법사side.

내가 부탁한 것 때문에 늘 숲에 들어가야하는 그와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에피네아가 설마 그런식으로 날 도울 줄은 몰랐다.

뛰어난 검사인 그는 초인적인 체력으로 내 마법 재료를 구하는 일과 사냥꾼들을 쫓는 일 둘 다를 동시에 소화해냈지만, 대신 페어리들의 영역내로 돌아올즘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어 돌아오면 잠만 자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아무렇지 않아보였지만 꽤 미안해서 얘기를 하려 했는데 그가 딱잘라 거절하며 가버렸다.

나는 어둠속에서 투명한 빛을 뿌리는 광물질에서 지팡이를 뗐다. 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내려앉았고, 창문을 열자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진 달빛이 쏟아졌다.

"저건……?"

조각난 달빛이 끊임없이 어지러졌다. 지금 바람은 불고있지 않다. 저 위에 뭔가가 있다.

밖으로 나와 지팡이를 휘둘러 몸을 띄웠다. 나뭇가지들을 치우며 조심스레 올라간 그 위에 경이가 펼쳐져 있었다.

희미하게 달빛에 붉은빛으로 반사되는 검을 든 그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수원에서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무를. 그가 돌아와서 잠만 잔다는 생각을 강제수정해야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마란스?"

붉은 날개를 가진 페어리, 아마란스가 당황한 얼굴로 나와 그를 보더니 설명을 해주었다.

"그게─ 그는 요즘 이 시간에 검을 휘둘러요. 예전엔 좀 일찍 했는데 지금은 이때말고는 시간이 없어요."

여기저기에 민폐를 끼치고 있었구나 나. 내일 에피네아에게 꼭 말해야겠다.

그녀에게서 눈을 뗀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검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절정에 오른듯 점점 빨라지면서 반대로 정교하고 유려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흔들리는 방울은 고장난것처럼 울리지 않았고, 흐르는 물을 밟음에도 물방울 튀기는 소리가 났으면 났지 물을 밟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 소리마저 없었으면 진짜로 그가 유령이 아닌가 실존여부를 의심했으리라.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며 수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저보다 더 뛰어난 검사는 본 적 없다.

"검호(劍豪)……."

어느 먼 나라에선, 검술에 통달한 이를 그렇게 부른다 했던가. 만약 그 칭호에 어울리는 이가 있다면 눈앞의 저 남자가 아닐까.

"그러고보니 저 남자의 이름이 뭔가요 아마란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저도…… 몰라요. 저번에 물어봤는데 대답해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어째서입니까?"

"쓸 수 없는 이유가 있다했어요."

쓸 수 없는 이름, 불가사의할정도로 뛰어난 검 실력……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어째서 저런 사람이 여태 알려지지 않은걸까.

"그럼 이제부터 그를 검호라고 부를까요?"

"예?"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칭호일거에요. 영영 사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살 수 없고 말이죠."

이 숲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신비로운 검무가 끝날때까지 지켜보았다.

***

…… 저 쉐이크들은 왜 온거야 대체? 뭘 꿍얼거리고 있는거냐고. 가뜩이나 밤이라서 더 소리 안내려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설정도로 신경쓰고 있는데. 거슬린단말이야!

하얀 마법사가 날 앞으로 검호니 뭐니라고 부르겠다하는데, 검호는 또 뭐야? 검든 호구? 아씨 저놈 하얀 마법사때도 뒤끝 있었던거냐? 내가 대화 거절한게 그리 짜증나든?

========== 작품 후기 ==========

주인공은 검호의 뜻을 알정도로 한자를 잘 알지 않습니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건 걍 본명이 쪽팔려서.

@로젤란스 - 무력은 다른사람이 본 쪽이 정답인데 의도는 주인공 쪽이 정답.

@적당주의 - 외모가 아주 관련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상황 탓이 더 큼. 지금도 주인공은 좀 수상한 놈인데 하얀 마법사는 목적과 신분등을 바로바로 알려주니…….

@바이렛트 - 메이플 세계인데 딴 게임의 놈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건 힘들잖아요.

@소설조으다5 - 근데 제가 군단장물을 좀 많이 봤음.

@darkdestiny - 스펙이 향상된건 알지만 얼마나 괴물같은지는 모른다는.

@vbk - 시험을 포기하시면 안되죠!(여기 설득력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히야풀버스터 - 하필 마법사를 업고있는 상황이라서.

@그냥마법사 - 에너미 컨트롤러! ← → A B 이 커맨드에 따라 코멘을 단다!

@kyh1237 - 저도 이름 까먹어서 검색해서 다시 떠올렸음.

@허공말뚝 - 폭주계 스킬쓰면 병걸렸다고 착각하는게 아닐지 걱정되는 수준.

@chlwoals - 착각계는 타이밍이 절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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