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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12화 (12/208)

<--  -->  검호side.

하룻밤만 재워줄 수 있냐는 내 물음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데몬의 어머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그 자체였고, 그 자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에게 무릎끓고 기도할뻔했다.

가지고있던 돈을 드리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억지로 쥐어드려야했다. 그, 그래도 금화가 아니라 은화였으니까 괜찮아! 근데 데몬 쟤는 진짜 어디 아픈건가. 왜 스튜를 코로 먹은거야.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는 모험가에요?"

"아니다."

모험가면 차라리 다행이지 전직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이놈의 직업은 전사계열인데 스킬의 ㅅ도 안나와서 몹 잡을때 하나하나 직접 달려가서 때려잡아야 하는데다, 1대 다수 싸움에선 다굴맞으면 그냥 좆되야하는 극악하다못해 변태적인 난이도의 직업이거든.

"아저씨는 직업이 뭐에요? 마법사? 도적?"

"검사다."

보면 모르겠냐. 허리에 차여있던 검은 장식이 아니…… 요 열흘에 가까운 시간동안 저 두 놈을 지팡이에 부지깽이를 시작으로 온갖 용도로 쓴 사실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검사 맞…… 지? 검보다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썼지만 검사 맞아! 무기가 이거 하나뿐인걸!

나는 어째 부담스러울정도로 초롱초롱한 눈의 어린 소년 - 데미안을 차마 마주볼 수 없었다. 얘가 나중에 중2중2열매를 먹고 군단장으로 취직해버린 웹툰과 애니가 뇌내에서 파노라마를 찍고 있었으니까.

"우와~ 형! 이 아저씨 검이 두 개나 있어! 이도류 쓰는거에요? 어떤건지 보여주세요!"

"데미안!"

"거절하지."

미안한데 내 검 실력은 차마 말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해서 너한테 보여줬다만 향후 수백년간 이도류에 대한 환상이 박살날거야.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나도 검에 대한 지식이란게 개미 눈물만큼도 없어서 막 휘두른게 전부거든. 하하 다시 생각해보니 이딴 실력으로 잘도 살아남았네.

"우웅…… 그럼요 아저씨, 이 옷 어디서 사셨어요?"

옷이란 말에 반사적으로 몸이 쩍 굳었다. 참고로 내가 입고있는 옷은 내 유일한 단벌의상이었던 옷이 아니라 페어리퀸 에피네아 - 여왕님께 받은 옷이다.

"그건 왜 묻는거지?"

"진짜로 예뻐서요! 나중에 커서 제가 돈을 모으면 엄마한테 이거랑 똑같은거 사드리고 싶어요."

의도는 더 말할것도 없이 좋지만 영영 불가능할 것 같구나. 페어리 그것도 여왕님 수제작이거든 이거. 레어도를 따지면 유니크를 넘어서 레전드급일걸?

여왕님이 주신 옷은 파자마─ 흔히 잠옷이라 부르는거였다. 그래 이거까진 좋아. 잠옷이라도 어디야. 근데 왜이렇게 레이스가 많은겁니까 여왕님?! 소매끝부터 목깃, 단추 잠그는 부분까지 왜 죄다 레이스냐구요!! 천 색과 같으면서 은은히 빛나는 무늬같은 것도 있었지만 레이스가 너무 충격적이라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답례로 받은건데다 단벌의상을 제외한 유일한 옷이라 버릴수도 없어서 가끔 잘때 입고는 한다만 쪼, 쪽팔려!

"무리다."

"에에─ 왜요오?"

"이건 요정이 만든거니까."

"요정?! 요정이요!?"

으왓 깜짝이야. 갑자기 방방 뜨는 데미안과 좀 놀란듯한 데몬, 어마나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데몬의 어머니가 보였다. 이게 그렇게 신기한 일입니까…… 신기하겠군. 근데 난 쪽을 바겐세일중이야.

"진짜요?! 아저씨 요정이랑 아는 사이에요? 어떤 요정이 만들어줬어요? 실프? 님프?"

"페어리다."

"우와아……."

그렇게 부럽다는듯이 보지마. 이거 입고있는 것만으로 수치플레이니까. 생각해보라고. 키 180에 가까운 건장한 사내자식이 레이스투성이 잠옷을 입었다고! 보는 사람 시신경을 강간한다고 이거!!

"왜 페어리가 아저씨한테 옷을 만들어 줬어요?"

"그들을 도와줬으니까."

근데 이거 사실 표면적인 이유고 사실 내가 엘린 숲에 머무는동안 계속 단벌의상으로 지내는게 너무 안쓰러워서가 아닐까. 나같아도 그런 놈 보면 불쌍해서 뭔 옷이라도 하나 주고 싶겠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가는 둘째치자. 배부른 투정이니까.

"페어리들 얘기 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

이 밤에 뭔 고생이냐고 불평하고 싶었지만,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눈으로 날 보고있는 데미안과 은근히 기대하고있는 데몬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다.

***

데몬side.

그는 내가 내려두었던 버섯바구니를 대신 들고 집까지 따라왔다. 어머니는 그를 하룻밤 재워주기로 하셨고, 그의 표정은 눈에띄게 풀어졌다.

"감사합니다."

깊게 고개를 숙인 그는 가방을 뒤져 돈을 꺼냈다. 놀라 거절하시는 어머니에게 어떻게든 돈을 쥐어드린 그는 이후 자잘한 집안일을 도왔다.

…… 솔직히 그의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의외라서 집에 온 이후로 계속 벙찐 표정이었다. 저녁 먹을때 스튜를 입이 아니라 코로 쑤셔넣고 있어 데미안이 '형 왜그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놀라움이 경악으로 돌변한것은 어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할 즈음 그가 잠옷을 입고나온 이후부터였다. 남성용치고는 레이스가 좀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얼굴이 상당히 선이 가늘어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데미안은 이불을 까는 그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이상하다. 어릴때부터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와 가족 이외에는 마음을 열지않던 저 아이가 낯선 사람한테 저토록 쉽게 다가가다니.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는 모험가에요?"

데미안……! 아저씨라니! 어떻게 봐도 젊은 청년이라고! 위험한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만났을때 사람 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었을 기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던 나는 들고있던 그릇을 던지고 바로 데미안에게 뛰어갈뻔했다.

"아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대답하며 이불을 펼쳤다.

"아저씨는 직업이 뭐에요? 마법사? 도적?"

"검사다."

뭐? 검사라면 검은 어디에─ 그가 내려놓은 짐중에 있었다.

"우와~ 형! 이 아저씨 검이 두 개나 있어! 이도류 쓰는거에요? 어떤건지 보여주세요!"

"데미안!"

새를 대략적으로 형상화한 황금 장식이 있는 예사롭지 않은 빛의 붉은 검 2개가 벽에 기대어져 있는게 겨우 보였다. 대체 저걸 어디 들고 있었던거지? 그를 처음 만났을때를 황급히 떠올려보았다. 가방에 들어있진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도 가방 안에 있어야하니까. 그렇다면…… 허리에 차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런데 왜 지금까지 몰랐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몸의 일부같아서. 그것이 검이 아니라 그의 신체 한 부분이라 착각해서 넘어가버린 것이다. 순간이지만 몹시 그윽한 눈으로 검을 흘겨본 그를 보고 정말 어지간히 저 검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거절하지."

사사로운 목적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데미안도 그것을 알았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다른 것을 물었다.

"우웅…… 그럼요 아저씨, 이 옷 어디서 사셨어요?"

"그건 왜 묻는거지?"

내가 묻고 싶은거였다. 그는 조금 당황했다가 되려 물었다.

"진짜로 예뻐서요! 나중에 커서 제가 돈을 모으면 엄마한테 이거랑 똑같은거 사드리고 싶어요."

데미안…….

그는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리다."

"에에─ 왜요오?"

"이건 요정이 만든거니까."

여기서 나도, 어머니도 놀랐다. 요정이 만든 옷. 동화속의 요정은 깊은 호의를 가진 이에게 직접 만든 물건을 준다고 했다. 그것이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것임은 확실했다.

"요정?! 요정이요!?"

데미안은 요정이 직접 만들었다는 대목보다 요정 그 자체에 완전히 넘어가버렸지만.

"진짜요?! 아저씨 요정이랑 아는 사이에요? 어떤 요정이 만들어줬어요? 실프? 님프?"

"페어리다."

"우와아……."

페어리라. 빛에 반사되며 그려지는 알 수 없는 무늬는 내가 아는 단어들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닌것만은 확실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왜 페어리가 아저씨한테 옷을 만들어 줬어요?"

"그들을 도와줬으니까."

그러고보니 근래 요정의 영역인 엘린 숲이 꽤 시끄러웠던걸로 기억한다. 기사니 마법사니 뭐라 말이 굉장히 많이 떠올라왔는데 반대로 너무 많아서 난잡해져 뭐가뭔지 알 수 없게 되버렸다.

어쨌든 페어리들을 사냥하러 가는 사냥꾼들은 많이 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그렇게 잡힌 페어리들을 도와준 것 같다.

"페어리들 얘기 해주실 수 있나요?"

데미안의 부탁에 그는 마지막으로 베개를 놓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그의 요정 이야기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마지막이…….

***

애한테 그대로 다 말하면 충격받을 것 같아 적당히 각색하면서 얘기를 한 나는 그래도 애는 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은 밝고 활기찬 어린애다. 이야기를 겨우 끝낸 나는 두 형제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

"얘들아."

""네?""

"난 아저씨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문제다. 20살도 안됬는데 애한테 아저씨 소리를 들어야해?!

========== 작품 후기 ==========

요정의 옷[레전드]

상세설명:페어리퀸 에피네아가 직접 만든 옷. 천부터 의상 디자인, 제작까지 모두 그녀가 했습니다. 마법적 가공을 한 그녀의 날개 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으며, 옷 전체에 수놓아진 무늬는 정령의 가호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자연 친화력과 항마력이 꾸준히 상승합니다. 상승된 자연 친화력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줘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레이스 범벅이라 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딱 평균정도? 보는 이가 남고딩이라 그렇게 본거지. 사실 범벅으로 달고 싶어도 시간이랑 천이 모자라서 못했습니다. 에피네아는 가장자리에 프릴을 달고 싶었지만 못했다는 후문이.

@로젤란스 - 작중 인물에게는 여태껏 여러분이 상상하신 어투로 들리시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냥마법사 - 전 대학생이라 10시에 시작!

@darkdestiny - 속사정이 이런거고 실제로는 별 문제 없습니다.

@김쑥 - 고로 우리는 착각물을 원샷해야 합니다!

@히야풀버스터 - 안믿던 종교를 믿을뻔했다고 합니다.

@사이나99 - 이 작품 장르가 착각계인것이 다행이죠.

@vbk - 그리고 어떻게든 한 편을 짜내는게 제 일상이 되었죠.

@화뉴 - 목소리가 꽤 낮아져서 사투리 억양은 물론이고 평소 하는 말의 고저도 애매해졌으므로 노 프라블럼!

@karuma - 진행하다보면 어차피 다 만나겠지만요.

@가면광대 - 착각계는 어떻게든 작중 인물들을 착각시키기위한 작가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조으다5 - 퀄리티와 반비례하는 속도입니다.

@허공말뚝 - 과연……? 군단장or영웅이 되기전에 얼마나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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