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 그 오버시어들의 사정 --> 우리는 신이라 추앙받으나 실제로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매우 긴 세월을 사는 종족에 불과하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신으로 보이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행성계를 만드는 것도, 영혼의 순환을 조작해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도, 시간과 공간을 재편성 하는 것도 심지어 우주의 지도를 바꾸는 것마저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불가능한게 아니었다. 예전에는.
"이제 지긋지긋해."
그는 짐승의 으르렁거림같은 말을 내뱉었다.
재[灰]로 이루어진 새가 느리게 날개짓했다. 역한 재냄새에 코를 막고 싶지만 고개를 들 기력마저 없었다. 나는 침울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언젠가, 먼 과거 그의 몸이 잿더미가 아닌 번영의 불길로 이루어졌던 때가 있었다.
"언제까지 우린 이러고 있어야 하는거지?"
"글쎄…… 모르지."
나는 내 무릎에 뉘인 미미하게 숨을 쉬는 아이의 이마를 쓸었다. 말라붙어 갈라진 비늘과 축 늘어져 흐물거리는 지느러미가 안쓰러웠다.
"이 좆같은 세계에 갇힌게 몇 억년이야?! 우리 힘이 조각조각나 뺏긴 것도 몇 년이고! 다 싫어! 이딴 세계 그냥 멸망시킬거야─!!"
그의 거친 날개짓에 그를 묶고있던 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며 비명을 질렀다. 언제나 그렇듯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됬을까.
나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깨져버린 탁한 유리로 이루어진 내 손을 허무하게 내려다보았다. 그가 불길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었던때, 나의 몸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수정질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강하다는 것을 넘어 초월적인 힘과 광활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 종족은 세계에 동화되어 그 세계에 살아가는 지성체들의 사념을 수집해 정신을 채워나갔다. 감정, 이성, 본능…… 그 모든 것들을 말이다.
나와 그, 아이는 함께 우주를 떠돌다 막 창세가 시작된 세계를 발견했다. 바로 얼마전에 한 세계가 멸망했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갓 탄생한 세계의 의지에 양해를 구해 세계에 녹아들어 창세를 도왔다. 하늘과 땅, 태양과 달을 만들고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들을 만들었다.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세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성체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잘못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곧 저쪽에서 자칭 내 대리인이 탄생할거야."
"그래."
"그를 시켜 이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지성체를 말살할거야."
"…… 뭐?"
나는 경악하며 그를 보았다. 날개짓하길 그만두고 땅에 내려온 그는 신경질적으로 사슬을 짓밟고 있었다.
"초월자라고 했나? 빌어먹을 세계놈이 우리 힘을 가로채서 만든 것들이. 썩어도 준치라고 그 정도 힘은 있겠지. 내가 보니까 그것들은 우리를 닮게 되더라고. 정확히는 탄생할 시기의 우리 성향과."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불꽃이 남아있는 발갛게 타오르는 눈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지금 난 세계가, 세계에 사는 모든 지성을 가진 존재가 멸종되길 바래. 이미 확장될대로 확장되고 지성체들로 안정된 세계가 쉽게 멸망할리가 없지. 답은 간단해. 그 지성체들을 멸종시키면 돼."
"그건 안돼!"
"왜─!!"
그가 확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왜 안돼?! 저 씨발같은 세계가 우릴 가두고 힘까지 착취해서 종래엔 말려죽일게 뻔히 보이는데 그 전에 없애겠다는게 뭐가 나빠!!"
"그들은 우리가 만들었어!"
"창조주를 죽이는 생명들따위 사라져버려! 니 말대로 우리가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없애겠다는데 누가 뭐라해?!"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유리가루가 푸스스 떨어졌다.
"그들에겐 잘못이 없어."
"무지는 죄야."
틀렸다. 이미 설득하기엔 한참 늦었다.
본래 우리 셋중에 가장 온화한 그이지만, 몇 억년간의 감금은 그의 또다른 면을 끌어내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강제로 쓴 빛의 오버시어라는 감투는 빛의 그림자까지 씌워버렸다.
"날 말리게?"
"…… 그건 옳지 않아."
"하! 창조는 몰라도 파괴에 관해선 제일 약해빠진 주제에."
그의 조롱에 나는 휘청이며 날 묶고있던 사슬을 잡고 일어났다.
"니 말대로 나도 이 악몽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니 의견에는 반대야."
"그래서 어쩔건데? 다른 방법이 있어?"
"그래. 나는 내 방식대로 할거야."
내 손에 얼음과 크리스탈 사이의 무언가로 이루어진 정(釘)과 망치가 들렸다. 나의 신물(神物), 영원한 고정과 불변을 상징하는 말뚝과 망치.
경악하며 눈을 부릅뜬 그를 무시하고 나는 내 몸을 통과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말뚝을 갖다댔다. 이어 높이 망치를 치켜들어 말뚝을 내려쳤다.
까앙──!
"…… 아직도 그걸 쓸 수 있었던건가."
"보험이야."
시간의 흐름에 박힌 말뚝. 저것은 실패를 대비한 세이브 포인트다.
"니 방식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의 말대로 내 장기는 창조지 파괴가 아니다. 나는 미약하게 남아있는 힘을 모아 시간의 기록을 뒤져 이전 세계의 영웅을 현현시켰다.
"니가 맞다고 내가 틀리진 않아."
조각난 힘을 모아 세계의 구속을 푼다. 그게 내가 내린 답이야.
내 말에 빛의 오버시어는 목까지 부리를 열며 미친듯이 웃어제꼈다. 그래, 너는 니 방식을 써! 나는 내 방식대로 할테니까!
오래전에 의식을 잃은 아이는 여전히 늘어져있기만 했다.
***
옛날에 비하면 비참할정도로 약해진 나지만 그래도 다른 행성계의 영혼 하나를 불러들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사실 신물을 쓰느라 영혼까지 창조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세계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다른 세계의 혼을 부를 수 밖에 없었지만.
"만나서 반가워."
"너, 넌 뭐야?"
"이 세계의 신이야."
중간에 돌아가겠다고 그만두는 일 없이, 별다른 연고없는 이를 선택해 영웅의 몸에 안착시킨 나는 임의로 창조한 공간에 그를 불러 설명해주었다.
나의 상황, 이 세계의 상태, 그를 부른 이유, 힘을 사용하는 법까지. 모든 말을 들은 그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 했다.
분명 일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행방을 모르는 초월자를 찾고, 가장 사악한 초월자들과 맞서 싸우며 우리의 구속을 풀 준비를 착착 갖춰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 물어봐도 돼?"
"뭘?"
"내가 이 일을 끝내면 난 어떻게 돼지?"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왜 물어?"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초월자들과 싸우지 않았다. 대륙 깊숙한 곳에 은둔해버린 것이다.
"왜 그러는거야!"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원래 세계에서 그에게 연고자가 없었다는게 문제였다.
사악한 초월자와 싸우며 영웅으로 추앙받고, 연인까지 생긴 그는 결국 무능력하고 혼자가 될 원래 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끝끝내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는 그를 본 나는 일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박아둔 말뚝을 붙잡고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당겼다'.
그렇게 세계는 한 차례 되감겼다.
처음으로 생긴 연인은 모르는 사람이 되고, 그의 동료들은 완전히 남이 되었으며, 그의 노력은 없던 것이 되었다. 그는 절망했다.
"악마같은 년."
그를 동결처리했다. 이번 일로 힘이 소모되어 그의 영혼을 돌려보낼 수 없었기에.
되감긴 세계에서 나는 이번엔 신중하게 영혼을 골랐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며 돌아갈 의지가 충분해보이며, 내게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서슴없이 선택할 선한 이로.
그에게 적합한 영웅의 몸을 만들어준 나는 첫 번째 때처럼 부탁했다. 그는 당황했지만 들어주었다. 일은 일전에 비하면 느리지만 잘 되어갔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 사람을 죽였어."
"뭐?"
딱히 힘을 준 것도 아니고, 걸리적거려서 팔을 휘둘렀을뿐인데 사람이 죽었다고 그는 말했다.
초월자와 싸워야하는 만큼 강한 몸이지만 그 안에 든 것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 나는 별 문제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을 혐오스럽게 보다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두 번째 동결 처리를 하며 또 시간을 되감았다.
***
세 번째부터는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처음엔 죄책감이나 PTSD등에 시달리지 않도록 이 세계가 게임이고, 그들이 입은 것은 게임 캐릭터라고 말해주었었다. 스킬창이나 스텟창같은걸 보이게 해주기도 했다.
"오! 여기가 메이플스토리 속이라고?"
"응."
우주는 넓다. 그들의 세계에서 이 세계는 게임에 불과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세계에 녹아든 우리의 동족에게 예전에 내가 우리 세계에 대해 알려줘 그걸 모티브로 게임으로 만든 것이지만.
"너에게 퀘스트를 줄게. 우리를 구출하는 거야."
"퀘스트 보상은?"
"너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주는 것."
"…… 꼭 해야겠네."
세 번째로 불려온 이는 청년였다. 호기심많고 활기차며, 보편적인 관점에서 착하다고 볼 수 있는. 그는 씩씩하게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서버렸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부른 그가 물었다.
"나…… 지금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무리다. 힘이 많이 줄어든 나는 그를 돌려보내줄 수 없다. 하지만 초월자 - 조각난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구속을 푼다면 가능하다. 그걸 말해주자 그는 격분했다.
"웃기지마!! 왜 그 중요한걸 말해주지 않은거야?!"
그가 말해버린 모양이다. 부르는 건 가능하지만 보내줄수는 없는 내 사정을. 결국 입을 다문 나를 망연히 보던 그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거라 판단한 나는 그를 동결처리 하려고 했다.
역한 재냄새가 몰려왔다.
"이건 잘 받아가지."
"너……!"
나는 시간을 다시 되감았다.
이번에도 게임식으로, 감각을 다소 둔하게 만들어 만에 하나 있을 PTSD와 죄책감을 덜게 해 두 번째와 같은 일을 대비했다. 다만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음을 명시했다. 그렇게 불려온 이는 소녀.
"가상현실같네?"
눈앞에 떠오른 여러 창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그녀에게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닌 게임이며, 유일한 클리어 조건을 말해주었다.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주지!"
그녀는 신나게 즐기듯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부디…… 그렇게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그녀가 한 마을을 통째로 몰살시켜버린 것이다.
"왜 그런거야!"
"에이 왜 화내는거야? 그냥 스킬 좀 연습하다 날려버린건데. 고작 npc죽은거 가지고."
나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이 세계를 게임이라고 생각하기에 벌인 짓은 내가 이런 방법을 고른 이유와 완전히 부딪힌다. 거기다 다음에 또 똑같은 일을 할 지 모른다.
또다시 말뚝을 당겼다. 그녀를 동결처리하기 전, 그녀는 되감기는 세계를 보며 '서버 롤백?'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이후 또 그에게 그녀를 뺏겼다.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게 확연히 느껴졌다.
다섯 번째로 부른 이 역시 여자였다. 게임의 요소는 다소 넣었지만 어느정도 노력해야만 스킬을 터득할 수 있고, 게임같지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전에 했던 감각 둔화도 쓰지 않았다.
"조금 늦게 해도 돼?"
"응. 하지만 꼭 완수해줘."
그러나 그녀는 끝내 일을 다하지 않았다.
죽음이 확정되는 병에 걸려 병실에서 살던 그녀는 오감이 생생히 느껴지는 건강한 몸과 보기만 했던 게임 속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 친구와 부모님이 존재했지만 그정도 상실을 감수하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시간을 감았다. 탈력감에 쓰러져버려 몰려오는 지독한 재냄새에 반응하지 못했다.
***
돌아갈 의지가 충만한 사람.
무언가를 죽이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
사지 멀쩡하고 장애가 없는 사람.
신념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과 윤리가 있는 사람.
친구와 부모, 형제가 있는 사람.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
사소한 것 같았지만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시간을 감는데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어느 학교, 수많은 학생들처럼 엎드려 자고있는 한 남학생이 보였다. 거르고 거른 끝에 남은 것이 평범한 이라니.
이번엔 부디 성공하기를.
========== 작품 후기 ==========
다 이해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요약드리겠습니다.
빛의 오버시어는 세계의 강제 노예화에 빡쳐 세계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함. 근데 방식이 말 그대로 세계 멸망-지성체 멸종입니다.
이에 시간의 오버시어가 반발합니다. 세계에 잘못이 있지 지성체에는 잘못이 없다고말이죠. 그래서 최대한 피해없이 해결하기 위해 트립퍼를 부릅니다. 문제는 오버시어는 종족특성상 근본적으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 5번이나 실패해버림.
이해하기 힘드시면 시간의 오버시어-빛의 오버시어 = 모리안-키홀 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밀레시안은 트립퍼가 되겠네요. 실제로는 많이 다르지만 구도가 대충 저럼.
세계가 어째서 오버시어를 노예화했는지는 본편에서 언젠가 언급될겁니다. 아마도.
코멘 많이 달아주세요...
@유풍낙화 - 인간화는 모를까 드래곤버전은 어지간한 건물만한 크기인데요?
@Blake117 -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아아아아아!!
@종말군 - 우어어어어어어어ㅓㅓ!!!
@Keisha - 많은 분들이 소리를 지르시니 저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아아아아아아!!!
@루엔다이스 - 좋지 아니한가아아아아아아아아!!
@책벌레씨 - 본편은 다음 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