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힐라side.
"왜 그렇게 느려터진거야? 답답하게."
"지금 가고 있잖아!"
누군 늦고싶어서 늦는 줄 알아?! 나는 가마 위에서 지팡이를 휘둘러 한때는 인간이었던 해골 병사들에게 마력을 더 주입해 속도를 올렸다.
아스완을 대가로 내게 영원한 아름다움과 젊음을 주신 검은 마법사님의 사자. 그분과 비슷하게 검은 망토로 온 몸을 감싸고 후드까지 눌러쓴 이는 사막의 모래가 무색하게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재수없는 이였다. 인내심이라는 것을 어디 방구석에 던져놨는지 폭급하기 짝에 없고, 정신병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변덕스럽다.
"아아─ 이제 너하고 다른 주역 npc들 다 모으면 퀘스트 시작이네~ 뭔 서버 롤백을 2번이나 하냐구우."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몰라도 돼 아줌마."
나는 지팡이를 꽉 잡았다. 역시 저놈은 맛이 간게 틀림없다. 그리고 미친놈은 신경쓰지 않는게 답이다.
그렇게 들끓는 속을 다스리며 묵묵히 나아가던 중, 모래 언덕 아래로 붉게 휘몰아치는 포탈이 보였다. 그분이 열어둔 것이 분명했다.
"디멘션 게이트같은게 있으면 진짜 좋겠지만 없으니 저런 구닥다리라도 써야지. 빨리 들어가 아줌마."
저 천박하기 짝에없는 행동이라니……! 왜 그분은 저런 놈을 부하로 둔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포탈에 들어가기 위해 해골들을 부리려는 순간, 갑자기 시야에 검은 무언가로 가득 찼다.
[도착했어 마스터!]
"아스카. 내가 위험하다 싶으면 도와줘. 지금은 올라가있어."
[알았어!]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체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거대한 드래곤은 하늘을 가릴만큼 큰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고, 나는 엄청난 모래바람에 눈을 가렸다.
다시 눈을 떴을때 드래곤이 있던 자리엔 기묘한 복식의 한 남자…… 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니가 힐라인가."
"…… 그렇다면 어쩔거지?"
그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그의 발치에 모래들이 그에게서 밀려가고 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에 지팡이를 흔들어 해골 병사들에게 명령하려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볼에서 뜨거운게 흘러내렸다.
"유감이군. 여기가 사막이라서."
발목까지 모래에 파묻힌 발을 빼내며 대체 언제 뽑았는지 모르는 칼이 햇볕 아래에서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나는 황급히 볼을 쓸어보았다. 그분의 힘으로 붉게 변한 머리카락보다 더 붉은 핏물이 한움큼 잡혔다.
"당장 공격해!!"
해골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가마에서 내려와 포탈에 뛰어들려고 했다.
갑자기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거리때문에 얕아졌는지 아슬아슬하게 옷자락만 잘려나갔다. 아니었으면 대신 두 발이…… 뒤돌아보자 해골 병사의 숫자가 무색하게 검격 한 번에 뻥 뚫린 길을 만든 그의 이글거리는 눈과 마주쳤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쏟아지는 검의 숲에 전신이 난도질당하는 환상통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얼어붙은 사이 남자는 허공에 만들어진 발판을 디뎌 뛰어올라, 다시 일어나는 해골 병사들을 무시하고 내 앞으로 강림하듯이 내려왔다.
저건 죽음이다.
태양처럼 붉은 검이 오색찬연한 빛을 머금고 목을 노리며 쏘아진 순간, 여태껏 가만히 있던 정신병자가 나섰다.
까가가각─!
"곤란해 이쁜 오빠. 얘는 에픽 npc라서 죽으면 안된다고. 없으면 퀘스트를 시작할 수 없단 말이야."
검은 로브에서 튀어나온 전기가 파직거리는 쇠사슬이 감긴 팔이 검을 막았다. 파직거리며 우는 전류가 무색하게 남자는 검에 더 힘을 주며 정신병자를 내려찍어갔다.
"어이 아줌마~ 뭘 멍하니 있는거야? 후딱 튀어야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혹시몰라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 방어막을 친 나는 빠르게 포탈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다시 한번 검격이 날아왔지만 아슬아슬하게 먼저 이동한 나는 그분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었다.
***
검호side.
스킬을 사용할 줄 아는 것과는 별개로 항상 수련장처럼 단단하고 평평한 땅에서만 썼지, 색다른 환경에서 써보는건 처음인지라 발도술을 줄창 삐끗하는건 그렇다 치자. 뭐만 하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이동기 쓰면 되니까.
눈 딱 감고 손에 힘 빡 넣어서 힐라한테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검을 막은 있는지도 몰랐던 수상한 사람A의 말은 내 머릿속에 익스터미나투스를 갈겼다.
"곤란해 이쁜 오빠. 얘는 에픽npc라서 죽으면 안된다고. 없으면 퀘스트를 시작할 수 없단 말이야."
자자 과거 회상 스타트해보자. 오버시어년이 저번에 뭐라고 했지? 나 이전에 다른 트립퍼가 있었다고 했지? 전부 실패해서 날 불렀다고 지껄였었어. 근데 말이야…….
실패했다고 했지 돌아갔다고는 안했지 아마?
"어이 아줌마~ 뭘 멍하니 있는거야? 후딱 튀어야지!"
내가 넋나간 사이 힐라가 포탈에 뛰어들려고 했다. 다시 한 번 발도술을 날렸지만 한발 늦어 포탈만 박살났을뿐 힐라는 없다. 성공적으로 토낀 것이다. 젠장.
나는 어째선지 쇠사슬에서 떨어지지않는 검을 놓고 내려찍기를 시도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팔과 마찬가지로 사슬에 감긴 다리가 내 턱을 올려차려고 했다. 황급히 뒤로 몸을 빼며 검을 회수했다. 씨발 뭐야 이거?!
"이쁜 오빠 보기보다 터프하네?"
닥쳐 새끼야.
수상한 놈은 로브를 확 벗어던졌다. 타이트한 제복에 팔다리에 사슬을 칭칭 감은, 취향이 심하게 의심스러운 복장의 -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소녀가 방싯방싯 웃었다.
"…… 넌 뭐지."
"이 쿠소게의 플레이어지. 설명은 이걸로 끝낼게 이쁜 오빠."
여태껏 발암덩어리 그 자체인 오버시어에게 하고싶은 욕이 정말 많아지만 이번만큼 욕이 쏟아지는 것은 처음이다.
아니 이 썅년이 지가 퍼질러놓은 똥도 안 치워뒀던거야?!
"npc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얼굴 내 취향인데 말이야♪"
코스프레년이 크게 발을 구르는걸 본 순간 반사적으로 뒤로 크게 뛰어올랐다. 간발의 차로 내가 있던 자리에 검붉은 빛기둥이 솟구쳤? 내려꽂혔? 다.
"AI좋은 오빠구나? 그럼 오랜만에 PVP나 해볼까나~"
시퍼런 스파크가 쇠사슬에 감겨들어갔다. 어이어이 이거 위험해! 군단장도 지금 될까말까인데 '저런걸' 상대하라고?! 농담이 아니야, 그냥 악몽이라고!
쓸데없이 지형 역보정받은 나와는 달리 불공평하게 공중에 둥둥 떠있던 코스프레년은 크게 돌려차기를 해 엄청난 전격 다발을 날렸다. 나는 내 유연성의 한계에 곧바로 도전했다. 땅에 달라붙다시피 몸을 낮춰 간신히 전격을 피한것이다. 머리카락 끝이 조금 지져져 그을렸다.
이어서 날아오는 수많은 전격 다발들을 데굴데굴 모래바닥을 굴러가며 피했고, 덤으로 내 자존심도 절찬 바겐세일했다. 우연히 어쩌다가 코스프레년 가까이 온 나는 이 기회를 틈타 다시 발도술을 시도하려다─ 발이 푹 빠져 거하게 앞구르기를 했다.
아 썅 미치겠네 이 와중에.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실로 기적적으로 날아간 검기가 코스프레년의 어깨에 명중하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우아앗……?!"
코스프레년은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쩍 벌어져 시뻘건 속을 드러낸 어깨를 움켜쥐었다. 자자, 잠깐만 방금 허연게 보였어 허연게 보였다고! 설마 그거 뼈냐?!
공격한건 나인데 내가 더 당황해버렸다. 어떻게 생각해도 분명 나보다 더 강했던 아란과는 달리 - 지금은 안그런가 싶지만 - 일단 겉보기로는 내 동생뻘로 보이는 소녀한테 뼈가 드러날정도의 일격을 먹였다는 사실에 패닉상태가 되어 더 공격하지 못하고 금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렸다.
어느새 땅에 내려온 코스프레녀가 상처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인채 덜덜 떨었다. 이, 이거 왠지 감이 안좋아. 주춤거리며 막 한 걸음 물러선 순간, 확 고개를 들며 코스프레녀가 외쳤다.
"─ 오빠 짱이다~!!"
누구든 좋으니까 이 상황 좀 이해시켜줘.
"아파아파아파 진~짜루 아프다고! 팔이 잘 안움직여! 머리가 띵해! 오빠 뭐야? 숨겨진 히든캐? 창고 슈터랑 현질 블레이드같은 스페셜 모험가야? 응?"
나는 코스프레녀한테서 조금씩 떨어졌다. 아까랑 다른 의미로 위험해. 그러나 한 걸음에 확 내 앞으로 날아온 코스프레녀는 미치광이같은 웃음을 한가득 지으며 물었다.
"오빠 나랑 같이 가자."
취소. 묻는게 아니라 확정이다.
전기가 튀는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차 검을 휘둘렀지만 이쪽은 땅에 붙어서 2d로 움직이는데 저쪽은 하늘까지 포함해서 3d로 움직이니 맞지도 않는다.
"반항하면 팔다리 하나씩 잘라서 가져간다?"
미친 대체 뭘 어째야 저만한 여자애가 저렇게 또라이가 될 수 있는거지? 여전히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던 코스프레녀가 갑자기 뒤로 빠지더니 씩 웃으며 베이지 않은 쪽의 팔을 들어올렸다.
쿵─ 하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몸을 짓누르는? 튕겨져나가는? 사방에서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힘이 휘몰아쳤다. 잠깐 이거 뭔……! 나는 삐그덕거리며 주저앉으려는 무릎에 힘을 줘 간신히 일어나 어떻게든 검을 휘두르려고 자세를 잡으려하자─.
하늘에서 심판이 떨어졌다.
[마스터한테서 떨어져!!]
니가 짱먹어라 아스카.
그야말로 폭격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황금색 빛기둥의 난사에 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힘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깔깔거리던 코스프레녀는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 버그야?! - 살충제맞은 모기마냥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피해다녔다.
"두, 두고봐 버그캐! 다음에 만나면 삭제시킬거야!!"
너덜너덜해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질것 같은 팔이나 걱정하지 그래.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종이쪼가리를 입에 문 코스프레녀는 그대로 입과 손으로 확 종이를 찢었다.
잠깐 저거 귀환주문서……!
새하얀 빛과 함께 코스프레녀가 사라졌다.
[마스터 괜찮아? 어디 안다쳤어?]
"…… 힐링 좀 해줘."
삭신이 쑤셔. 정신 데미지도 장난 아니고. 초록색 빛이 쑤시는 부위에 모여들었고 빠르게 나았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그로기 상태.
아…… 그년이 내 앞에 몇 놈이나 있다고 했었지?
========== 작품 후기 ==========
사이키커-약칭 사이코. 특징:M이다.
시간의 오버시어가 PTSD와 무언가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방지하고자 감각을 둔화시키고 게임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물. 보정이 너무 과해서 오히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해 어떻게든 현실감을 느끼고자 자극을 찾았고, 결과적으로 M이 되버렸음. 원래는 걍 메이플 좋아하던 여중생이었습니다(…).
구르면서 날린 검기:파라노이아, 검붉은 빛기둥:사이킥아츠-폭, 전격 난무:사이킥아츠-사이킥난무, 힘의 결계:사이킥아츠-크랙.
아스카가 막판에 나선건 본인이 보기에 이전까지 전혀 마스터가 위험해보이지 않아서.
@대어의예감 - 외전을 다시 보시면 그 트립퍼 동결처리 됬습니다. 2번째도 마찬가지.
@ReFrante - 사후처리 전에 강탈당했죠. 다 알려줬다가 피본게 몇 번 있어서 이번엔 안해주는거.
@유풍낙화 - 드래곤 버전은 모를까 인간 버전에선 마구 주무르면 감촉이 좋다고 합니다.
@로젤란스 - 아카이럼 아닌가요?
@랏쿤 - 어찌어찌 커버가능한게 반 레온이랑 데몬정도.
@darkdestiny - 그래서 누구를 하차시킬까 고민중.
@책벌레씨 - 시간의 오버시어에게 쉴드 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저러는 이유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성체들을 위해서라는겁니다.
@클레리온 - 3일이상 늦지 않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karuma - 일단 세계에게 가서 조치를 취하겠죠.
@바이휴런 - 개인으로는 이기는거 무리고 솔직히. 트립퍼끼리 공대짜서 가면 이길 수 있음.
@적현월 - 안좋은쪽으로 변했습니다. 힐라 부탁을 들어줬다는것부터 이미…….
@허공말뚝 - 아스카는 대부분의 트립퍼와 상성이 안좋아요.
@칼크래프트 - 영웅쪽은 의도는 좋다?
@뭉글이 - 군단장이 되기엔 심성이 좋음.
@가면광대 - 힘받은지 얼마 안되서 잘 쓰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