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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33화 (33/208)

<--  -->  검호side.

마침 오르비스가 있겠다 리프레까진 비행선을 이용한 나는 곧장 논스톱으로 시간의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에 도착하니 역시나 저번과 마찬가지의 소란이 일어났지만 신관들에게 신경끄고 곧바로 대충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후회의 길로 뛰어갔다. 저것들이 아스카를 어쩌지 못할거고, 아스카라면 어떻게든 대처할테니.

산산히 부서지는 얼음, 몰려오는 추위. 그 모든 것을 무시한 끝에 도착한 곳은 역시나 일전에 그년을 보았던 얼음기둥으로 둘러쌓인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년이 있었다.

"하나 성공했네."

나는 곧장 이동기를 써 그년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인형같은 얼굴. 이년은 알리샤와는 다른 의미로 인형을 닮아 있었다.

"설명해."

"뭐를?"

"내가 만났던 그 미친년, 내 앞에 있었다는 다른 트립퍼들 중 한 명 맞지."

"…… 그래."

쿠웅─! 콰지지직……! 홧김에 구른 발길질에 신전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왜 말 안했어."

"분명 그들이 존재한다고 말했었잖아?"

"내가 묻는건 왜 그놈들이 원래 세계로 안가고 여기 있냐는 거야!!"

내 고함에 순간 그년의 모습이 크게 흔들렸다.

"내가 돌려보내지 못했고, 빼앗겼으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너희가 싸울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시간을 되감는데 내 힘의 대부분이 소모되었어. 특정 영혼을 여기에 데려오는 것 하고, 그 영혼을 특정한 몸으로 보내는데 필요한 힘은 완전히 달라."

"그딴걸 묻는게 아니야!"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왔다. 대체 이년은 뭐지? 아는 것도 할 줄 있는 것도 없잖아! 민폐끼치는거 말고 한 일이 있나?!

"왜 처음부터 그걸 말하지 않았냐고 묻고 있잖아!!"

얼음기둥이 뒤흔들리며 푸스스 가루가 떨어졌다.

"…… 말하면 하지않았을테니까."

"뭐?"

"일단 나도 그들이 지금에서야 나서는걸 막 알았어. 빛의 오버시어는 지금까지 잠잠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들의 존재를 너한테 말했으면 넌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어."

저건 말이 아니다. 똥보다 못한, 소리로 이루어진 핵폐기물이다.

"넌 내 마지막 기회야. 이번마저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실패의 가능성은 하나라도 더 차단해야했단 말이야."

나는 그년을 집어던졌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야가 마구 흔들려 얼음기둥이 깨진건지 저년이 깨진건지 알 수 없었다. 분노를 넘어선 혐오감이 손끝에서 시작되어 온몸을 기어다녔고, 입술이 떨리고 숨이 가빠져 미친듯이 엉킨 머릿속을 표현할 단어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 부탁이니까 포기하지만 말아줘."

모여드는 얼음이 깨진 몸을 채워넣으며 비틀비틀 일어나는 그년이 어렴풋이 망막에 잡혔다.

또 이딴식으로 사라지려고? 나는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뛰어가 그년의 양 어깨를 으스러지도록 세게 붙잡아 꾹꾹 눌러놓았던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포기하지 말라고? 웃기지마! 가뜩이나 이런 거지발싸개같은 사기에 당한것도 미칠 것 같은데 이젠 노예짓까지 하라는 거야?! 계속 이런식이면 다 때려치우는 수가 있어! 아니, 때려치울거야! 관둘거라고!"

"그런─."

"닥쳐 내 말 자르지 마! 계속 말같지도 않는 소리만 하지 말고 최소한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란 말이야! 무능한것까지는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지만 민폐는 끼치지 말라고!! 니가 싸놓은 똥을 내가 치우는건 존나 짜증나지만 할 수는 있어! 하지만 적어도 그게 어디있는지는 알려줘야 내가 밟지않고 치울 수 있잖아!"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뭘 해야하는지 저년은 나한테 반드시 알려줬어야 했다.

"니년 대가리 속에 든 뇌엔 주름이 없냐?! 니 몸뚱이처럼 청순하기만 하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날 안믿을거면, 대체 왜 하필 날 데려와서 그딴 부탁따윌 해?! 그냥 인형같은걸 만들것이지! 걸핏하면 지 할 말만 쳐하고 돌아가면서 뭐 그렇게 기대하는게 많아!"

어찌어찌 단어로 만든 말들을 모두 쏟아낸 나는 헉헉거리며 간신히 숨을 내쉬었고 리얼 얼음인형이 된 그년은 박살난 팔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설마 다 안듣고 가버린거냐? 엉?

사방에 흩어진 얼음조각이 저절로 떠오르며 몸을 고치는걸 보지 못했다면 난 저년이 또 가버린걸로 생각했을 것이다.

"…… 면."

"뭐?"

내 청각으로도 제대로 못 잡을 정도로 벌레처럼 웅얼거리던 그년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겨우 말했다.

"다 말해주면, 포기하지 않을거야?"

내가 방금 한 말은 대체 뭘로 들은거지 저년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듣고나서 정할게."

억지 눈물을 쥐어짜내는 신파극을 넘어 희대의 막장드라마의 영역에 들어갈 길고 긴 속사정을 들은 내 감상을 말하자면, '차라리 안듣는게 나았다'였다.

***

"…… 해서 5번째는 일을 포기했고, 다시 시간을 되감았는데 그때 그가 걔를 가로챘어.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널 불렀어."

나는 갑자기 천장의 무늬에 매우 깊은 관심이 생겼다. 새삼보니까 참 예쁘네. 신전이라서 그런가? 아주 고풍스럽고 멋지다. 건축가의 솜씨에 감탄했다.

목을 꺾다시피 위를 한참 보던 나는 목을 원위치 시키며 그년을 다시 보았다.

"너 장애인이냐."

"뭐?"

"타협이라던가 대화라던가 하는 거 할 줄 몰라? 초등학생도 할 줄 아는걸 왜 니가 못해?! 아 씨발 설득까진 바라지 않고 하다못해 대화만 좀 했으면 해결됬을게 세 개는 나오는데 왜 일을 이따위로……!"

혈압이 쫙쫙 올라가는게 라이브로 느껴졌다. 뒷목을 잡은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에게 그년은 눈치없이 또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종족 - 오버시어라 불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이 공허한 상태야. 감정과 이성같은 기본적인 것도 지성체들의 사념을 채집해 어느정도 채우지 않은면 느낄 수 없어. 본능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없어서 앞에 말한 두 개와 마찬가지고. 니가 말한 모든 행위는 학습하지 않으면 할 줄 몰라."

요약하자면 종족 전체가 코즈믹 호러급으로 강한주제에 지적 장애+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란 뜻이잖아. 시발 뭐 이딴게 다있어.

더이상 이년을 욕하는건 없느니만 못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년을 포함한 창조신-오버시어는 그냥 태생자체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란 말이다! 다 필요없고 첫 번째 트립퍼를 불렀을때 일이 끝나면 돌려보낸다, 대신 여태껏 해준게 있으니 특별히 이 세계에 살 수 있게 한다 로 했으면 바로 끝났을거 아니야! 실패 이유 분석만 하지 이해를 못해 이년이!

"…… 야."

"으, 응?"

"내가 니 부탁 들어주면, 나한테 뭘 해줄거냐?"

"니가 여기 오기 전의 시간대의 원래 세계에 돌려보내줄게."

"그리고."

"그리고?"

"꼴랑 그거 하나뿐이냐?"

맹하게 눈을 깜빡이던 년이 말었다.

"또 뭘 원한다면 내가 가능한 선에서 들어줄 수 있어."

…… 아까 오버시어에 대한 설명중에 본인은 원래 은하급 창조가 가능하다고 씨부리지 않았냐. 상식이란게 있, 아 없군. 진짜 이딴거에 왜 걸린거야 나.

"그 말을 다섯번째 트립퍼한테 했어야 했어."

듣는 내내 답답해서 질식사할뻔했다 망할년아.

"왜 그놈들이 빛의 오버시어 아래에서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아?"

"모르겠어. 세뇌의 흔적은 없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대가리가 비어있다는 증거를 그딴식으로 보여주지 마. 짐작컨데 빛의 오버시어는 이 얼빵한 시간의 오버시어와는 달리 그래도 뇌에 든게 좀 있으리라. 협상했겠지.

"일단 대답을 주자면 니 부탁은 들어줄게."

뭉개진 보라색 눈이 확 커졌다.

"하지만 그건 니년이 좋아서가 아니야. 니가 여태껏 왜 그랬는지 납득은 했지만 쌓인게 없어지진 않거든?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널 박살내고싶어."

난 어디 만화에 나오는 나교주님같은 대인배가 아니란말이지.

"그래도 니 부탁을 들어주는건 나한테 있는 선택지가 꼴랑 두 개 뿐이고, 이쪽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낫기 때문이야. 정말 어떻게 생각해봐도 말이지, 집에 돌아가겠다고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건 터무니없다 못해 그냥 미친 소리잖아. 그런건 못해."

현실이랑 게임도 구분 못하게된 그 애처럼 되지 않는이상 말이지.

천천히 부서져나가는 그년이 일어났다.

"…… 너의 그 결정, 고마워. 다음 행동을 알려줄게. 생명의 힘을 얻었으니 그걸로 생명의 오버시어의 봉인을 풀어줘."

"어이."

"나보다 그 애가 더 급해. 위치는 아쿠아리움에서 더 깊은 심해의 미궁 라비린스(labyrinth). 그곳에 그 아이의 본체가 있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모습이 지금까지 봤던것과는 달라보였다.

"조심해. 너의 앞에 있던 이들은 너보다 더 많은걸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이와중에도 제 할 말만 다 하고 가버렸다. 하도 욕해서 이젠 욕도 안나왔다.

엉망진창이 된 주변을 보고 한숨을 내쉰 나는 툭툭 털망토를 털며 일어났다. 아쿠아리움, 이젠 아쿠아리움이란 말이지.

거긴 뭐 떡밥이나 스토리 없으니 괜찮겠지?

***

another side.

"나 왔어."

"이제 오면 어떡해 푸쨩~!"

달려드는 소녀를 기타를 들어 막아낸 푸쨩-검은 양갈래 머리의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지들 방에 들어갔지 뭐. 얼마전에 왠 돌덩이같은게 새로 왔었는데, 진~짜 재미없는 놈이였어!"

"구와르?"

"대충 그런 이름이었을거야."

달라붙은 소녀를 어찌어찌 떼어낸 여자는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을 툭툭 두드렸다.

"또 어디 가게?"

"응."

"넌 왜그렇게 방랑벽이 심한거야? 나만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치킨 오빠한테 포션 받아야하는데 오빠도 안오고 있고!"

"그 사람은 장기 임무 받았는데?"

"엑─?!"

"포션은 내가 대신 맡아놨어. 지금 줄게."

갑자기 공중에 좌르륵 생겨난 포션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사이킥 그물망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병들을 잡았다.

"이번엔 또 어디가게?!"

엄청난 숫자의 포션들을 꾸역꾸역 인벤토리에 우겨넣는 소녀에게 여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바다."

그 말과 함께 여자는 텔레포트하며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가장 긴 대사를 한 순간.

저기 독자분들께 묻겠습니다. 재미없으신가요? 선작 수는 오르고 있는 것 같은데 코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지름작이라서 그런가.

@대어의예감 - 적어도 현재 대립구도는 검호:그외 트립퍼 3명입니다.

@유풍낙화 - 로리는 트윈테일이 좋습니다!

@가면광대 - 흠? 한 명은 줄여볼까요?

@로젤란스 - 별명도 마탄의 사수죠. 일단은 간지나게 쌍권총씁니다.

@마서 - 그냥 척하면 척이죠 뭐.

@적현월 - 에, 지금은 이것저것 패치되서 좋은걸로 압니다만? 그리고 프쉬는 믿기지 않지만 적어도 소설상에서 검호와 상성이 안좋습니다. 이유는 검호는 근거리캐인데 프쉬는 원거리라서.

@그냥마법사 - 울보짖은 소리를 마조사이커가 한 걸로 생각했거든요. 착각했습니다 Sin Sa님.

@darkdestiny - 사이키커양을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정상인 쪽에 속합니다.

@리누렌 - 그래서 오늘 욕처먹었습니다. 주인공 성격상 그건 진짜 무리고요.

@허공말뚝 - 현재 프쉬군 소속은 황제 경호입니다.

@책벌레씨 - 체호프의 총이라고, 1막에 총이 나왔으면 3막에 쏴야한다는 말이 있죠. 적어도 언제 어떻게든 한 번은 끊어질겁니다.

@karuma - 자 열심히 구르게 검호군!

@소설조으다5 - 검마를 어이없이 죽일 수가 없어요!

@칼크래프트 - 정확히는 잘못맞으면, 입니다.

@건전한독자 - 검호가 마지막이라서 그래요. 없는 힘 쥐어짜내서 만든거니까요.

@바이휴런 - 상성 안좋은 놈이 좀 있긴 하지만 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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