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픈스타side.
우리, 트립퍼라 자칭하는 이들은 그녀의 부탁 - 바램을 이루기 위해 매우 강력한 힘을 받았다. 그 소녀나 그 남자에 비해 비전투원에 가까운 나도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보다 더 강하니 어느정도 힘인지 감이 올까?
하지만 갑자기 주어진 힘은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켰다. 근력이나 민첩성이 낮은쪽에 속하는 마법사, 심지어 그것도 힐러인 내가 손찌검 잘못하면 사람의 목을 한 바퀴 돌릴 수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됬다. 그래도 나는 그 두 사람에 비하면 양호한 축으로, 스킬을 쓰기 위해서 어느정도 노력이 필요한 시스템이기에 힘조절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하여튼 그런고로 나는 메이플 월드에서 우리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날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검은 마법사? 그건 규격 외다. 흠집내고자 하면 아주 못할건 없지만 쓰러뜨릴 수 있냐고 물어보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수 있다.
'사람이야……?!'
지금 그 생각이 완전히 박살났다.
여긴 물 속이다. 범위가 제한된 방울 안에서,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란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해야 올라오는 온갖 해양 몬스터를 발도술 하나만으로 전부 죽일 수 있는거지?
아쿠아리움에 가는 중에 몬스터의 습격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 왔을때의 경험을 살려 속성 반감이 들어가긴 하지만 렙빨로 밀어붙여 정리하면서 갈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일단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얼리기 위해 마법을 쓰면 이미 검의 궤적이 지나간 후다. 결과적으로 시체만 꽁꽁 얼리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사람을 이전 세상에선 못 본거지?'
우리와는 다른 진짜 강자.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힘만 얻은 우리랑 비교해서는 안되는, 영웅의 영역에 들어가있는 사람이 분명할 저 남자를 왜 예전엔 보지 못한거지?
곱상하긴 하나 결코 나약해보이지 않는 얼굴,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무기를 들었음에도 그 화려함에 묻히지 않는 절도있는 행동거지. 저런 사람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잊을리가 없는데?
[마스터, 뭔가 다가오고 있어.]
웅─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다. 어떻게 검사가 드래곤과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건 그가 계약을 한 드래곤이 많고 많은 드래곤중에서 오닉스 드래곤이란 말이다.
그리고 검은 마법사는 아프리엔과 미르를 제외한 모든 오닉스 드래곤을 죽여 멸종시켰다.
'…… 그 과정에서 죽은건가.'
그렇다면 내가 저 남자를 못 본 것도 납득이 된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초월자, 검은 마법사에게 상대가 될리 없으니까. 아마 이전 세상에서 남자는 검은 마법사에 의해 죽었던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들 중 한 명인 모양이다.
"뭔지 알겠나?"
[모르겠어. 하지만 엄청 커.]
"물고기 떼일거에요. 이쯤에서 흔히 보이는건데……."
저 아래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올라오는게 보였지만 아직 절반정도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위험한 몬스터는 없는 구간이다.
[아니야. 저건 하나야.]
"네?"
"알아봐줄 수 있습니까."
"아, 네! 가능해요."
나는 기타줄을 튕기며 이상하게 요동치는 바다에 마력을 퍼뜨렸다. 여기에 저 정도 크기의 몬스터는 없을텐데 왜 굳이──.
"헤일 스톰!!"
우리를 중심으로 얼음 폭풍이 불어닥쳤다. 나는 급하게 일으킨 폭풍을 유지하며 기타줄을 거칠게 당겼다.
"무슨 일입니까?!"
"저게 여기에 올 리 없는데 대체 왜……!"
몰아치는 얼음 송곳들 사이로 점차 그것의 모습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색이지만 그 생김새는 같은, 남자의 오닉스 드래곤보다 더 거대한 물고기가 입을 쩍 벌리며 온갖 몬스터들을 입으로 '빨아들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뭐야 저게!]
"피아누스, 입니다."
남자가 인상을 썼다. 못 알아들은 것 같다. 하기사 바다 주변이나 아쿠아리움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저런 몬스터 이름을 일일이 알고있는게 이상하지.
손가락이 떨리며 음이 불안정해졌다. 여긴 바다 속이다. 공기방울 하나에 사람 둘 드래곤 하나가 있는 가운데, 반감 속성 마법만으로 저걸 잡아야 하는 판이다. 환경이 끔찍하게 안좋다. 내가 사용하는 또 다른 마법, 음악은 물 속이라는 환경아래 물 마법보다 더 효과가 떨어진다.
드드드득─! 얼음 폭풍 속으로 피아누스가 점차 머리를 들이밀었다. 얼음 송곳에 머리에 꽂히고 비늘을 할퀴었지만 치명타는 입지 않았다. 망할 속성 저항……!
"아스카, 원호해."
[오~케이!]
"잠깐만요! 함부로 공격하면─."
순간 드래곤의 뒤로 무수히 떠오른 마법진들의 빛에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이어 폭음이 울리며 얇은 눈꺼풀을 뚫고 침투한 황금빛이 동공을 두들겼고, 엄청난 마력의 방출에 방울이 터져버렸다.
코와 입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시야가 물때문에 흐려진 가운데 간신히 버블버블을 사용해 머리에 겨우 방울을 씌웠다.
"어푸, 이봐요! 지금 괜찮은……."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시뻘건 내장과 뼈, 비늘과 지느러미 파편들이 둥둥 떠오르고 있다. 몇 초 전까지 피아누스'였던' 것들이다.
내가 일으켰던 얼음 폭풍이 우스워보일만큼 재앙적인 푸른 검기의 회오리가 미친듯이 몰아치며 피아누스를 갈아버리고 있었다.
대체 언제 만든건지, 버블버블과 유사한 마법으로 방울을 만들어 몸을 감싼 드래곤이 그 광경을 보다 물길을 조종해 붉은 것들 사이에 있던 붉어진 남자를 방울 안으로 들였다. 언제 뽑아든건지 모를 검을 쥐고 있던 남자는 검을 검집에 넣으며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내 꽉 쥐어짰다.
붉은 눈이 나를 보더니 손짓했다. 멍한 기분으로 헤엄쳐 그들의 공기방울 안으로 들어간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사기지만 저 남자는 치트 그 자체라고.
***
검호side.
이 여자 진짜 괜찮은건가. 약이라도 거하게 한사발 한 것 같단 말이지. 붉어진 얼굴에 가끔씩 말도 더듬고, 의미없는 말이나 해대고. 동행인으로 괜찮은건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물론 이 걱정은 잠시 후 할 시간마저 없게 되버렸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마냥 몰려오는 대량의 몬스터들때문에! 잠깐만 뭐야 저거?! 본 적 있는 놈부터 난생 처음보는 놈까지, 아 종류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고 갑자기 우우 몰려오는 놈들때문에 우리의 공기방울이 위태로워졌다. 여기 수심이…….
나는 정말 필사적으로 스킬을 날렸다. 아스카 위에 올라갔으면 좀 더 나았을텐데 그럴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검을 넣었다 뺐다 하며 발도술을 사용했다. 스킬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잘쓰는데다 범위도 나름 넓으니까.
근데 나보다 저 여자가 더 사기였다.
내가 몹 좀 베면 칼같이 그 시체를 얼음덩어리로 만들어 종래엔 큼직한 벽을 형성해내 몬스터의 접근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 진짜 법사는 사기구나.'
여기 바닷속 아니었냐. 얼음이 생길 수 있어? 아 마법이니까 된다 치고 저런걸 만들고도 숨 헐떡이기는 커녕 안색조차 변하지않은 여자를 보니 어째 무섭다.
[마스터, 뭔가 다가오고 있어.]
또 오는거냐. 나는 전사 계열답게 mp가 그리 많지 않다. 뭔소리냐면, 아까 실컷 발도술 날려서 또 스킬 못 쓰겠다고. 머리 띵해.
"뭔지 알겠나?"
이번엔 니가 좀 나서라. 니가 제일 잘하는거 해도 되니까 나 이제 좀 쉬자.
[모르겠어. 하지만 엄청 커.]
"물고기 떼일거에요. 이쯤에서 흔히 보이는건데……."
이보세요 아가씨 아까전에 몬스터들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거기다 어째 감이 안좋아. 숙제를 집에 두고 등교한 것 같은 기분을 10배쯤 증폭시킨 것 같다고.
[아니야. 저건 하나야.]
"네?"
이쪽 부분으로는 아스카가 나보다 더 좋다. 마법사는 촉이 좋다고 그러던가, 저 여자도 마법사지만 아스카를 더 믿어야 할 것 같다.
"알아봐줄 수 있습니까."
"아, 네! 가능해요."
근데 왜 갑자기 기타를 치는거냐. 소리가 나쁜건 아닌데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갑자기 여자가 소리쳤다.
"헤일 스톰!!"
에, 엑? 몬스터의 접근을 막던 얼음벽이 쪼개지더니 갑자기 우리를 빙 둘러싸며 엄청난 속도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바다속에서 얼음 폭풍을 만든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저게 여기에 올 리 없는데 대체 왜……!"
그런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 이 아가씨야. 세로로 쌓아둔 동전처럼 불안정해진 기타음이 다소 듣기 괴로워졌다. 그거 그냥 관두면 안되겠수?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에, 에? 방금 내가 뭘 본거지? 환각?
[뭐야 저게!]
"피아누스, 입니다."
…… What the hell?
요상한 연주에 내 귀가 나가버린건가 의심했지만 곧 얼음 폭풍을 뚫고 머리를 디민 놈의 모습에 내 얼굴은 뭉크의 절규 실사판이 되버렸다. 아직 아쿠아리움도 아닌데 왜 저게 여기 있는거야! 니 서식지는 심해 구석탱이에 있잖아! 아무리 현실이라지만 정도가 있지 이건 무리무리무리!! 이런 상황에서 저건 못 잡아!
"아스카, 원호해."
[오~케이!]
너밖에 믿을게 없다! 가랏 아스카츄! 중세RPG에 슈팅게임 폭탄을 떨구라고! 물마 공격 무력화같은거 쓰기 전에 날려버려!
"잠깐만요! 함부로 공격하면─."
그리고 보통 이런 말 한 다음 뭔 일이 생기는건 클리셰지.
어머낫 제네시스때문에 방울이 터져버렸네요★
끄아아아우어크가아에우오카가갸아악──!
'사, 살려……!'
제 손으로 목숨줄을 끊은 병신 이곳에 잠들다. 익사체로도 발견되지 못하고 물고기 밥이 되는 미래가 라이브로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물때문에 뿌옇게 된데다 해초처럼 퍼진 머리카락에 가려진 시야로 피아누스의 불그스름한 모습이 보였다. 니놈한테 잡아먹힐까보냐! 다시 생각해봐도 참 신기할만큼 나는 매우 신속하게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여긴 물 속, 발 디딜 땅 없음 + 산소 없음 + 수영 잘 못함 이라는 눈물나는 트리플 크라운이 달성된 가운데 나는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이때의 나에게 뭔가를 물어볼 수 있다면 진심으로 묻고싶은게, 피아누스를 쓰러뜨린다고 내 산소부족이 해결되는건 아니니 차라리 잡아먹히는 쪽이 뱃속에서라도 생존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는데 왜 그런 삽질을 했냐는 거다.
몸을 굴려서 사용할 수 있는 쪽팔린 스킬을 미친듯이 퍼득거리며 쓰고 또 썼다. 자세가 안잡히는데 - 그 이전에 뇌가 안굴러가고 - 쓸 수 있는게 이거뿐이니까.
무리하게 움직여 팔다리에 쥐가 난 가운데 몸이 멋대로 물살에 휩쓸렸고, 소금에 절여진 입과 코로 산소가 들이닥쳤다.
[괜찮아 마스터?]
눈물이 줄줄 나왔다. 예전에 구박한거 다 사과할게! 너랑 계약한게 내가 이 세계에 와서 한 것들중에 가장 잘한 행동이야!! 덕지덕지 붙은 긴 머리카락에서 뚝뚝 물이 떨어져 눈물이 가려졌고, 물을 토해내느라 말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마음속 깊이 아스카에게 고마워했다.
검을 검집에 넣은 후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여기저기 붙은 머리카락을 떼내며 콱콱 짰다. 아, 그러고보니 아까 이것때문에 가뜩이나 잘 안보이던게 더 안보였지. 반드시 자르고 만다.
"……!……."
어찌어찌 정신을 수습하자 주위가 겨우 보였다. 시뻘겠다. 피아누스였던 것의 파편이 사방에 둥둥 떠다니고 있어 보는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까보다는 훨씬 작은 방울을 머리에 쓴 여자가 이쪽을 보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 댁이 한겁니까아─! 허우적거리기만 했던 나는 감히 그녀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녀에게 이리로 오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마을귀환서 사두는건데.
========== 작품 후기 ==========
파라노이아 인피니티 스킬 버전. 3~5초만에 피아누스 순삭. 그나마도 삽질하느라 발동 시간이 느려져서라고 생각하면…….
아스카는 바다에 내려가는 도중 파픈스타가 버블버블 사용법을 알려줘서 사용했습니다. 의외로 쉬웠다고 합니다.
@디저터 - 그 이전에 제가 로맨스 고자지만요.
@라그실 - 일단 트립퍼들은 군단장이지만 검마 명령에 예예하면서 따르지 않습니다. 명령 계통이 빛의 오버시어 직관이거든요. 글고 데몬 확률이 언제 낮아졌다고……?
@적현월 - 여기서는 거품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다용도로 씁니다.
@아리사토미나토 - 바닷속에 들어갈땐 필수!
@그냥마법사 - 트립퍼가 보기에도 사기고 실제로도 사기지만 멘탈이 문제로다.
@소설조으다5 - 돌려드렸습니다^^
@Novel알케미스트 - 얼굴값 못하는 사람…… 일까요?
@유풍낙화 - 모바일로 보면서 다느라 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도M 여중생은 앞으로 프로 팀킬러로 활약할거고, 아스카는 레알 꼬리가 있으니 머리모양은 아무래도 좋잖아요?
@책벌레씨 - 하면서 본인도 살짝 박았다는거. M이니까 상관없지만!
@ReFrante - 같은 트립퍼&오버시어를 제외하면 모두 npc로 보므로.
@lte23 - 그 이전에 사이키커는 검호가 트립퍼인걸 몰라요.
@대어의예감 - 돌아가는 그날까지 멘탈이 남아날 수 있을것인가?!(빠밤)
@karuma - 저런거랑 싸워야돼……?(예상)
@darkdestiny - 일단 모른다는 이유가 가장 크고 파픈스타는 호전성이 진짜 낮은 축에 들거든요.
@허공말뚝 - 메이플쪽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잠깐 분량을 줄였습니다. 대신 이번화에 늘려줬잖아. 좀 고생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