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몬side.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렀다.
강해지는데엔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더 노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나의 힘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줄 그분을 따르기로 했다.
"……."
앞머리가 살짝 눈을 덮어서 거슬렸는데, 이제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기분은 전혀 좋지 않았다. 제 머리를 친히 직접 잘라준 그가 말했다.
"손이 미끄러졌다. 미안하다."
변명이 가히 예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검호라고 불렸고 지금은 오르비스의 영웅인 이가 손이 미끄러져서 이런 일을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이마엔 상처하나 없이, 제 앞머리만 베어내는게.
이건 어떻게봐도 경고였다. 그를 만나 다소 들떴던 기분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됬습니다. 당신의 의사는 잘 알았습니다."
나는 셉터를 꽉 쥐었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반응하지 못했다. 어렸을때엔 어렴풋이 그냥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힘을 얻은만큼 많은 것이 보이게 된 지금 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강자인지 실감했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반드시 질 것이다.
허나 나는 그분에게 명령을 받았다.
"물러갈건가."
"아니요. 그분께서 오르비스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전신에 충만하게 포스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저는 혼자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하사받은 나의 직위는 '군단장'. 그 말인즉, 군단을 통솔하는 자란 뜻이다.
허공에서 커다란 붉은 포탈이 형성되며 나의 군단, 날개를 가진 마족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전사인 그들은 미리 지시한대로 사람들이 대피한 오르비스의 중심부로 향했다.
"이자식……!"
"당신을 이길 생각은 방금 버렸습니다.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니까요."
일단 이 도시를 그분께 바친 다음 다시 얘기를 하도록 할까요?
그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더니 오닉스 드래곤을 마족들이 날아간 곳으로 보냈다. 듣자하니 저 오닉스 드래곤은 뛰어난 마법사라 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단 뜻이며 실제 사실이기도 했다.
내가 휘두른 포스가 둘러진 셉터와 그의 붉은 검이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
검호side.
이젠 하다하다 검까지 맛이 가다니. 믿을게 아스카랑 이거밖에 없는데. 나는 잔뜩 굳은 얼굴이 된 데몬에게 애써 말했다.
"손이 미끄러졌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화는 내지마라 제발. 다른 군단장들과 어찌어찌 싸우는건 가능해도 너랑 싸우는건 무리라고! 설정상 저놈이 군단장 최강이잖아! 아 뭐 겔리메르한테 마개조당한 스우보단 덜하겠지만 몇 년 전까지 그냥 중딩쯤으로 보였던 애가 떡하니 검은 마법사의 군단장이란 직책을 꿰차고 있다는 시점에서 저놈의 사기성을 알 수 있다.
"됬습니다. 당신의 의사는 잘 알았습니다."
싸하게 굳어진 얼굴로 하는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개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거기다 셉터를 얼마나 꽉 잡았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있는게 보였다. 나는 쥐꼬리만한 희망의 존재를 기대하며 혹시나 물었다.
"물러갈건가."
"아니요. 그분께서 오르비스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글렀다. 완전히 글렀어! 오르비스도 나도 다 망했어. 루미너스! 한시라도 빨리 눈썹 휘날리도록 뛰어와줘! 법사의 저질체력따위 이겨내고 당장 여기 와달라고! Help!!
"그리고 저는 혼자오지 않았습니다."
…… 암만 봐도 너 혼자인데. 탁 트인 하늘에 혼자 날고있는 박쥐를 실시간으로 보고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그런데 어째 불길한 예감이 슬금슬금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하늘에서 시뻘건 빛이 터져나오며 박쥐떼가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으와앗─! 무어야 저거!! 물량 승부냐?!
"이자식……!"
"당신을 이길 생각은 방금 버렸습니다.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니까요."
그래 너한테 난 이길 가치도 없는 허접이겠지. 시간 끌면 알아서 체력 다 소진하고 뻗어버릴테니까.
"아스카."
[알았어 마스터.]
나한테서 떨어지지 말아주라─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왜 가버리는 거냐?! 아니 잠깐만 왜 가냐고 진짜! 나 너 없으면 공중전 고자된단 말이야! 이동기 하나만 믿기엔 상대가 너무 하드하다고! 나한텐 날개가 없어!
애처롭게 손을 뻗으려고 했으나 이미 상대는 만전의 상태로 웃고있었다. 줄줄 흘러넘치는 검보라색 포스가 몹시 중2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냥 사신이다. 악마가 여기 있어.
……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그러나 하필 아스카가 내려준 곳이 그지같이 작달만한 구름섬 - 이라기보단 그냥 큼직한 바위만한 크기의 - 이었기에 도망칠데도 없었고, 나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검을 휘둘러야했다. 배수진도 이것보다 낫겠다!
투콰아아아앙──!
직후 내 검 못지않게 화려한 놈의 둔기와 검이 부딪힌 순간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충격파가 사방에 퍼졌다.
아악! 내 어깨! 내 팔!
"여전하군요 당신은."
너무 아파서 말도 안나왔다. 손목 다 박살난것 같아……. 어깨는 아프기라도 하지 이쪽은 통증도 안느껴져. 그나마 검을 놓치지않고 계속 잡고 있는게 다행일까.
사뿐히 날개를 접으며 땅에 내려온 놈은 좀전의 일격은 준비운동이었다는양 가볍게 셉터를 털었다.
"그래도 당신이 상대인만큼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이거 곤란하군요."
주위의 풀들이 파삭파삭 말라비틀어졌다. 피라도 뒤집어쓴듯한 까마귀들이 여기저기에서 몰려들어 그에게 흡수되었다.
…… 저새퀴 자체 힐링기가 두 개나 있었지?
"좀 더 진지해지겠습니다."
아니 제발 건성건성 해주세요오! 내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를때 그놈은 뜬금없이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왁! 소리를 질렀다.
에? 잠깐, 왜 시야가 흐려지는 거지? 거기다 어째서인지 순간 다리가 풀릴뻔했다. 내가 황급히 자세를 잡는사이 놈의 셉터 끝에서 끝에 살벌한 갈고리가 달린 사슬이 튀어나와 나에게 날아왔다. 간신히 삐걱이는 어깨를 움직여 겨우 쳐냈─
"반응이 느리군요."
왜 전사가 텔포따윌 쓰는거냐아아!! 내 위에서 갑툭튀한 놈이 내리찍은 셉터를 이를 악물며 통증을 애써 무시해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그리고 바닥이 무너져 추락★
참고로 놈이랑 부딪힌건 모두 학교 연못만한 구름섬 위에서였다. 충격을 못이기고 기어코 박살나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땅이 꺼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된 나는 발버둥도 못치고 떨어…… 지지 않았다.
"당신……!"
너덜너덜한 팔을 간신히 움직여 그나마 가장 익숙한 스킬인 발도술을 놈에게 날렸다.
내 이동기가 발판 형태라는 사실에 신에게 무릎끓고 감사하고싶다.
***
마스테마side.
데몬님의 명에 따라 포탈을 타고 단숨에 오르비스까지 온 나는 마족들을 지휘하며 사람들을 처리하려고 했다. 헌데 그들사이에 섞여있던 은발의 마법사가 쓰는 공방일체의 빛의 마법에 우리의 공세는 상당수 막히고 있다.
"인간따위가……!"
"어둠에 빌붙은 놈들이 입만 살았군."
어째서 저런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지 않은거지? 저정도로 흉악한 빛의 마법이라면 알려지지 않은게 이상한데!
으득 이를 갈며 공격 진형을 바꾸려는 순간, 멀리서 날아왔음에도 거대한 충격파가 날개를 흔들었다. 그 진원지가 데몬님이 있는 곳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마스테마님?"
"…… 후퇴하도록 합시다."
"그, 그렇지만 상대는 고작 인간입니다!"
"저정도의 강자를 미리 알지못한 시점에서 우리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
나는 인간들을 감싼 거대한 결계안에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오닉스 드래곤을 보았다.
"저 둘을 현재의 전력으로 동시에 상대하는건 무립니다."
초반에 땅에서 솟구친 무시무시한 숫자의 빛기둥에 상당수의 전사들을 잃었다. 아무리 저 인간이 대단한 마법사라도 그런 마법을 쓰고 우리를 여기까지 상대하는건 무리, 즉 첫번째 일격은 저 드래곤의 솜씨란 뜻이다. 하나면 모를까 둘은 불가능하다. 이 이상의 피해는 입을 수 없다.
우리는 실패했고, 결국 후퇴했다.
포탈이 있는 곳에 돌아왔을때 상처투성이의 데몬님이 한 남자와 싸우는 것을 보았다. 황급히 그분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자리에서 빼냈다.
"크윽……!"
"호, 혹시 다친 부위입니까?"
"…… 꽤 아프군요."
그와 처음으로 부딪혔을때 여파로 오른팔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그분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이런 실례를 저지르다니!
"다른쪽 팔로 잡아드리는건데…… 죄송합니다!"
"아뇨 마스테마. 바보같이 충격파에 날개가 찢긴 제 탓입니다. 회복 기술을 써도 이상하게 잘 낫지 않더군요."
"금방 악사 여자를 불러오겠습니다!"
나는 부하들을 닦달했다. 그 악사 여자는 대체 어디있는거야!
***
몸도 마음도 걸레짝이다. 검은 마법사의 광신도가 된 데몬과 싸우는건 진짜 자살하고 싶을때나 할법한 미친 짓이었다. 게임에선 악에서 선으로 지향한 최초의 캐릭이라 여러모로 인기가 있었다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저놈은 최악의 적이다.
거기다 마지막까지 않왔어 반짝이자식…….
비척비척 어떻게 걷는지도 모르고 겨우 마을까지 도착했을때 나는 그냥 중간에서 쓰러지는게 낫지 않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신 여기 있었어요?!"
"오랜만이야 검호!"
[마스터 이 사람 알아?]
아까 데몬이 한 제의 갑자기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눈을 휘둥그레 뜬 프리드와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란, 도도한 얼굴의 메르세데스와 떨떠름한 표정의 루미너스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내며 가뜩이나 걸레쪼가리가 된 내 정신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왜 영웅이란것들이 이제 오는건데?!
========== 작품 후기 ==========
데몬이 뭔 스킬을 썼는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뭐 알아서 알아내시겠…… 누군가 저 대신 설명해주세요!(퍽)
루미너스가 안알려진 이유요? 검호가 하도 많이 해먹어서. 군단장이 뜰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싸워 쓰러뜨린 사람이 누군데요.
@가면광대 - 크리 많이 띄웠다고 함.
@karuma - 사실 초월자란게 오버시어의 힘 파편에 불과하니...
@로렐라인 - 엘나스지대에 떨어졌을테니 가면 한가닥쯤 찾을 수 있을지도.
@유풍낙화 - 풀려난 생명의 오버시어가 어떻게 알리샤를 먹었고 어디로 갔는지 쓸까했지만 그냥 생략하고 나중에 중요한 일 하나 하기로만 결정됬음. 나머지는 출연 비중을 줄일거임.
@좌절거북이 -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지만서도.
@칼크래프트 - 주인공의 멘탈은 오늘도 갈린다!
@적월식 - 엄밀히 따지면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간겁니다.
@책벌레씨 - 하하하하 이것보세요.
@적현월 - 날이 갈수록 충격적인 일만 겪어서 종래엔 현실부정을 할지도 모름.
@호롤롤롤롤롤롤 - 서로 정면을 보고있는데 어떻게 뒷머리가 잘립니까. 앞머리만 컷됬음.
@ReFrante - 조언을 듣고 군단장이 됬다는게 아니라 조언을 듣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해졌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