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41화 (41/208)

<--  -->  검호side.

언제부터 영웅이라는 집단이 인력난에 시달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고많은 사람중 나한테 영웅이 되라는 제의를 할 줄은 진짜 몰랐다. 바로 옆에 루미너스가 있는데 왜 나냐! 아니 다 떠나서 난 그런거 절대 못해!! 군단장이랑 몬스터 상대할때마다 속으로 왜 이짓을 해야하냐고 울면서 했다고!

현실이랑 게임은 다르다. 하나못해 3D도 아니고 2D에서 보스 잡는거랑 레알 현실에서 보스랑 1:1 현피뜨는게 같을리가 없잖아! 하물며 그 상대가 나라를 뒤집는 힘을 가진 군단장급이 되면 아주 그냥…….

내가 미쳐도 영웅은 안될거야! 심지어 영웅들은 나중에 검마 레이드까지 뛰잖아! 나같은게 그런거 하면 사망 100% 확정이라고!

"어째서지?"

"나한텐 영웅의 자격이 없다."

루미너스 혼자서 아스카급으로 마법을 난사하는걸 보고 아 역시 저놈들은 진짜 괴물이구나 했지. 아란한테 쳐맞아가면서 겨우 얼치기 검 휘두르는법 배웠을때 영웅이란 족속은 나하고는 비교를 하면 안되는 존재란걸 알았다.

"그럼 왜 오르비스를 지금까지 지킨거야?"

"나한테 책임이 있으니까."

"책임?"

알리샤가 죽어버린거에 대한 책임이지 뭐. 진짜 다시 생각해도 돌아버릴 것 같네. 그 싸가지가 바가지인 생명의 오버시어는 어디로 날래날래 가버린거야 대체.

영웅 3인방의 눈빛이 엄청 매섭다. 너같은게 거절해? 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뭐야 무서워 저거. 뒤통수가 - 비유든 물리적으로든 - 뚫려버릴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하며 아스카랑 함께 미네르바한테 받은 집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 조만간 여기도 떠야지 진짜. 더이상 있다간 제 명에 못살고 죽을거야. 창문으로 아스카가 빼꼼 머리를 드러냈다.

[마스터는 영웅이 싫어?]

얘까지 왜이런데. 나는 뚱하게 대답했다.

"싫어하진 않아."

[그럼 왜 거절했어?]

"영웅이란건 그리 좋은게 아니니까."

이름이 번지르르할 뿐이지 영웅이란건 실상 노조도 없고, 연금도 없고, 보험도 없는데다 월급까지 없는, 그런주제에 악당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목숨걸고 싸워 이겨야하는 정신나간 3D업종이라고.

몬스터들이랑 군단장이 사람들을 헤치는걸 가만히 두고볼순 없지만, 그렇다고 내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하면 그건 무리. 여태까진 그래도 오르비스가 이 지경이 되는데 내 책임이 없진 않아서 싫어도 나서긴 했는데 이젠 영웅들 왔으니까 나 안싸워도 되잖아.

[하지만 마스터는 이미 영웅이라 불리고 있잖아.]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지."

루미너스랑 너잖아 영웅은. 그놈의 몬스터들과 군단장이 습격할때마다 첫빠따로 달려들었다가 종잇장같은 방어력때문에 쳐맞을때마다 팔다리 나가고, 죽기싫어서 아등바등 시간끌다 니들 오면 딜링 부탁하는게 내 역할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운나쁘면 끝까지 안와서 피토할때까지 구르기도 하고. 오늘처럼.

"거기다 영웅자체도 문제야."

[다 좋은 사람들이잖아?]

아까 걔들이 나한테 눈 야린거 못봤냐. 진짜 근시일내에 안뜨면 인력난에 시달리는 영웅에 강제로 끼워넣어질 판이라고.

"영웅이 필요하다는게 안좋은거야."

대체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나따위에게 영웅 제의를 하는거야?

[으음─ 마스터 말은 어려워.]

"…… 생각이 너무 복잡해."

대체 좀 전의 말 어디가 어렵다는거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스카가 말했다.

[근데 이제 어쩔거야? 아까 그 사람들 여기 머무를거라고 하던데.]

"다른 곳으로 가야지."

[어디로?]

"루디브리엄이나 가자."

거긴 봉인석이 나중에 맡겨지는걸 빼면 검은 마법사나 군단장이랑 별로 안엮이니까 괜찮겠지.

만약 내 행운을 스테이터스화 한다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악운을 제외하면 완전히 바닥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 발로 지옥만 골라갈 수 있을까.

***

아스카side.

마스터는 메르세데스-라고 아란에게 불린 엘프 여자의 권유를 거절했다.

"어째서지?"

엘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 나도 당황했다. 이어진 마스터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거였다.

"나한텐 영웅의 자격이 없다."

에, 에에……? 그게 무슨 소리야 마스터? 자격이 없다니? 힘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대체 뭐가 모자라다고 자격이 없다는거야! 내가 속으로 경악하는 사이 아란이 물었다.

"그럼 왜 오르비스를 지금까지 지킨거야?"

"나한테 책임이 있으니까."

"책임?"

말을 하면서 마스터는 살짝 인상을 썼다. 책임이라니. 항상 옆에 있던 나마저도 마스터가 말하는 책임이란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추측되는건 몬스터들과 군단장이랑 싸워 이겨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상자와 사망자들의 존재려나.

마스터는 설명을 요구하는 세 사람의 눈빛을 무시하고 곧바로 몸을 돌려 미네르바에게 받은 집으로 향했다. 마스터는 싸우고 난 뒤에 항상 집에 돌아와 푹 쉬더라. 다음 싸움을 대비해 체력을 보충해두려는 것임을 알았기에 여태껏 방해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조심스레 창문으로 궁금한걸 물었다.

[마스터는 영웅이 싫어?]

책임이니 자격이니 하는건 몰라도 이상하게 그들에게 차가운 마스터의 반응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스터는 슬쩍 눈동자만 굴려 날 보며 대답했다.

"싫어하진 않아."

[그럼 왜 거절했어?]

"영웅이란건 그리 좋은게 아니니까."

응? 영웅이 안좋은건가? 수많은 사람들한테 존경받고 - 마스터는 항상 표정이 살벌해서 두려움을 더 받지만 - 강하고, 강대한 적과 싸워 이기는 대충 그런 존재…… 인걸로 아는데. 아 거기다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한 굉장한 업적을 세우기도 하고.

마스터처럼.

[하지만 마스터는 이미 영웅이라 불리고 있잖아.]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지. 거기다 영웅자체도 문제야."

더더욱 모르겠다. 영웅이 왜 문제라는 거지? 프리드도, 아란도, 루미너스도 오늘 처음 본 그 엘프 여자도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거기다 영웅이라 불릴정도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다 좋은 사람들이잖아?]

"영웅이 필요하다는게 안좋은거야."

…… 아아 그런 뜻이구나. 겨우 마스터의 말 뜻을 알았다. 바보같이, 마법사인데 이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다니.

영웅이 안좋다는건, 그것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뜻이아니다.

영웅이라는 굉장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세계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걸 간신히 깨달았다. 마스터는 자신을 영웅으로 필요로 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한 것이리라.

[으음─ 마스터 말은 어려워.]

"…… 생각이 너무 복잡해."

우우, 마스터가 말을 너무 압축해서 한거라고!

[근데 이제 어쩔거야? 아까 그 사람들 여기 머무를거라고 하던데.]

이렇게 강한 사람이 많으니 그 군단장 중 한 명쯤은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물었는데 마스터의 대답은─.

"다른 곳으로 가야지."

…… 마스터. 영웅 싫다고 해도 결국 사람 도울 마음만 잔뜩 있구나. 오르비스에 강한 사람 많으니까 이제 다른 곳에 가서 도우려는거야? 나는 기대감에 물었다.

[어디로?]

"루디브리엄이나 가자."

한 번도 간 적 없는 곳으로.

미리 준비했다는듯이 빠르게 여장을 꾸려 배낭을 맨 마스터는 척척 나와 내 등에 올라탔다. 목적지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빙그르르 돌았고, 나는 날개를 펴며 곧바로 날아올랐─.

"잠깐만요!"

이크! 다급하게 불러세운 목소리에 삐끗했다. 다행히 마스터는 뿔을 잡아 떨어지지 않았지만 시선이 영 곱지 않았다.

"뭐지."

"메르세데스의 부탁을, 허억, 거절했다고, 헉, 들었어요."

"그게 어쨌다는거지."

숨가쁘게 달려온 프리드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세우며 마스터를 보았다. 대단해졌네 저 꼬마. 마스터랑 눈 마주치고도 안 쫄고.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헉, 그래도 일단 이걸 받아주세요."

프리드가 내민것은 자색 수정구였다. 저거 통신용 수정구인것 같은데? 곧바로 프리드가 설명을 해줬다.

"만약 생각이 바뀌거나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그걸 써서 연락해주세요."

"…… 알았다."

잠시 생각하던 마스터는 그에게서 수정구를 받아 배낭에 넣었다.

나는 다시 날아올랐고, 아란과 루미너스가 손을 흔들어주는게 작게 보였다.

***

프라이쉬츠side.

"거절─ 했단 말입니까."

[예. 사실 당연한 일이죠. 그 나라 너무 가난해서 돈과 식량은 물론 인력난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병사가 귀해서 연합 가입은 곤란하다는 말이 그렇게 설득력이 넘칠줄은 몰랐습니다. 진짜로 검은 마법사도 거긴 안노릴겁니다.]

나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딱딱 두드렸다. 예정된 결과다.

"연합군 제 4지휘관 단테. 지금부터 특별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예!]

"그 왕국을 멸망시키십시오."

[예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히 연합에 가입하길 거부한 건방진 소국을 멸망시키십시오."

[하, 하지만 그 왕국은 그럴 수 밖에─.]

"단테."

팔짱을 끼고 수정구 너머의 그를 보았다.

"우리 연합은 검은 마법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메이플 월드의 모든 나라, 도시는 그의 군단과 힘에 영향을 받아 포악해진 몬스터의 습격에 시달리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 가진것 없는 나라가 연합의 가입을 거부했다는 말이 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연합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물론 현재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중 몇몇이 빠져나갈지도 모릅니다. 연합을 보는 시선도 만만해질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되겠습니까?"

나는 입에 바른 말을 이었다.

"우리는 여제님의 고결한 뜻을 위해 하나로 뭉쳤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을 넘겼다 피를 보는 일은 있어선 안됩니다."

[그, 그럼 왜 하필 멸망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을 죽이는건…….]

"본보기죠. 하나로 뭉쳐도 간신히 살까말까 하는데 제 목숨 아깝다고 손을 내친 놈이 어떻게 되는지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여줘야합니다. 예외라는 선례를 만들어둬서는 안되니까요."

단테는 바짝 말라비틀어지다시피 굳어버렸다.

[정말…… 그래야합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소국이니 다행이죠. 중요한 대도시나 나라였으면 그걸 잃은 피해 역시 컸을겁니다."

나는 연습하고 또 연습한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죄책감 가지지 마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겁니다."

[알겠, 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저번에 준 마도구를 이번 기회에 쓰십시오. 만에하나 소중한 연합군의 병사를 잃을 수 없으니까요."

[예…….]

수정구의 빛이 꺼졌다. 지휘관의 눈에 생기가 사라진것과 비슷하게.

나는 수정구를 움켜쥐어 마력을 불어넣어 과열시켰다. 당분간 연락따위 못 받으리라.

밖으로 나와 좀 걸었을때 정원을 산책중이던 여제와 마주쳤다.

"아 프라이쉬츠. 또 보고를 받으러 갔었나요?"

"예. 그런데 엘나스 지역이 원체 차가운 마력이랑 정령들이 많은 지역이다보니 통신이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결과가 나올때까지 보고를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런가요……."

"단테는 유능한 지휘관이니 분명 좋은 소식을 가져올겁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건 이미 여러번 해본 것이기에, 익숙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제님, 그 보석은……?"

"아, 이건 제가 아끼는 스카이아란 보석이에요."

다우징 추와 언뜻 비슷하게 장식된 청보라색 보석이 햇빛에 맑게 반사되며 빛났다.

"이걸 에레브의 보물이라고 소문내서 그가 여기 오도록 해볼거에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제님."

"후훗, 고마워요 프라이쉬츠."

땅에 일어나는 일과는 상관없이, 에레브는 언제나처럼 포근했다.

마치 온실속처럼.

========== 작품 후기 ==========

전 화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현재 루디브리엄은...

참고로 마도구는 검마가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사자왕의 성 스토리를 기억하시는 분은 저쪽 결말이 어떻게 날지 상상이 가시겠죠.

이피아 살릴까요? 독자분들 대답으로 결정할게요. (주의※살아서 좋은건 아님)

@큐냥이 - 제가 예전에 스트라이더 유저이기도 했지만 일단 검호 일러스트 외모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화뉴 - 아아! 이분 오랜만이시네! 코멘 감사합니다.

@Blake117 - 연계퀘스트가 아니라 반복퀘스트 아닙니까.

@여행자구름 - 연애대상, 루트대상으로서의 히로인보다는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여주인공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시기가 늦어서 문제지만요...

@Eluines - 걱정마세요 주인공이잖아요... 사망 플래그가 있지만.

@적현월 - 동결풀면 PTSD나 기억 손보기 전에 빛의 오버시어한테 탈취당함.

@가디즈 - 비중은 없지만 뒤에서 할건 다 하는 놈이란 설정이거든요.

@Ratios - 시간의 오버시어를 가리킵니다. 아바타가 '소녀'의 형태잖아요.

@소라루 - 소리를 질렀다는 서술이 있잖습니까. 그냥 단순한 고함이었이면 검호가 데미지를 받았을리 없잖아요.

@우울한나란 - 아프리엔도 알만들었는데 아스카도 해볼...〈퍽

@허공말뚝 - 히익! 여기 다음 편이요!

@대어의예감 - 히로인의 여부에 상관없이 절대적인 아군이란 포지션이니까요.

@예리카 - 아리아가 죽어야 팬텀이 영웅이 되는 고로.

@EaThan - 원래 스토리에서도 끝나기로 되어있었음.

@유풍낙화 - 아스카는 공략대상이라기보단 든든한 지지자란 느낌입니다.

@좌절거북이 - 겉보기로는 부드러운&신뢰감이 드는 청년이란게 함정.

@책벌레씨 - 아무리 검호라도 저 하늘의 일까진 알 수 없습니다.

@란유첸 - 두번째 트립퍼가 세피로트란 설정이 있지만 출현을 안할것이므로 의미없죠.

@칼크래프트 - 네 듭니다. 아란의 현재 힘이 어느정도인지 대략 알 수 있는 표현이죠.

@wjasjvh - 여제의 사망플래그만 보지말고 엘나스쪽도 좀... 반 레온님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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