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용이 좀 딥 다크합니다.)
단테side.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군인이고, 명령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그것이 아무리 부당하다 생각되어도 말이다.
"모두 지급받은 마도구를 쓸 준비해라."
병사들은 상부에서 나눠준 칙칙한 검은색의 창을 들었다.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저 색이 검을뿐인데 어쩐지 기분이 안좋졌다.
사용자의 근력과 체력을 높여주고, 마력을 모아 강한 일격을 날리게 해주는 간단한 마도구인 이것은 어디서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연합군 병사에게 보급되었다.
"…… 감히 연합의 뜻을 거부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나는 결국 말해버렸고 병사들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대도시보다 작고 보잘것 없는 나라다. 의외로 성벽은 높고 튼튼했지만 어떤 방어 마법도 걸려 있지 않아 마법사들의 마법과 공성병기의 맹공에 오래 버틸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며, 상대쪽 병사들은 척박한 오지 출신이라 그런지 실력은 제법 있었지만 무구가 워낙 안좋아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지휘관님. 포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잡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원 사살한다."
내 대답에 부관은 입을 쩍 벌렸다.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생존자는 남기지 않는다. 전원 사살한다."
"알겠…… 습니다."
머리가 아팠다. 집중적으로 공성추를 두들겨 맞은 성벽의 한쪽이 점차 금이 가더니 결국 무너져내리는걸 보고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후방에 세워진 지휘부 막사에 돌아온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전투는 의외로 오래 지속되었다. 왕국의 저항이 거세기때문이 아니라, 큰 소란에 반응한 몬스터들이 간간히 난입했기 때문이다. 엘나스 지역의 몬스터는 이곳의 환경에 특화되어 상대하기 까다로웠고, 왕국의 병사들보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잃은 병사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올라온 보고들을 넘겨버렸다. 조금씩 병사들이 사라지는 것도, 몬스터의 숫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것도.
전투가 사흘째에 들어갈때, 포로를 잡지 말라고 명했음에도 병사들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한테 왔다.
건장한 몸에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붉은 겉옷을 입은 무겁고 강인한 인상의 남자. 이 가난한 소국의 왕, 반 레온이었다. 그는 날 본 순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공격을 그만둬주시오! 우리가 연합의 심기에 거슬렸다면 왕인 내가 무릎끓고 사과하겠소! 그러니 이제 그만─."
왕인데, 아무리 가난하고 작다해도 한 나라의 왕인데 애원하다시피 비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한, 잘못된것 같은 명령이었다. 상부의 허락없이 이런 짓을 했다간 분명 처벌받겠지만 그래도 나는 선택했다.
"알겠습니다.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나는 그를 계속 볼 면목이 없어서 빠르게 몸을 뺐다. 마법사를 불러 최전선쪽의 백인장들에게 연락해 공격을 멈추라고 말하려는 순간,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지휘관님! 지휘관님! 제발 살려주십─ 으아악!!]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가?"
[몬스터가…… (치직)병사들이……!]
"또 몬스터의 습격인가? 그렇다면 지원군을─."
[갑자기 병사들이(치직) 이상하게 변하(치이익!)]
수정구 너머의 백인장이 커다란 조류의 것같은 발톱에 찢겨나가는 광경에 나는 얼어붙었다. 거대한 독수리의 형상을 한 몬스터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저쪽 수정구가 깨진건지 소음조차 완전히 끊겨버렸다.
"대체……."
나는 황급히 망토를 두르고 막사 밖에 세워진 말을 타고 곧장 성으로 향했다. 통신 마법사가 불러세운것도 같지만, 불길한 예감이 목끝까지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몇 년이 지난것같은 시간이 지나 겨우 도착한 부서진 성벽 너머, 불타오르는 마을은 지옥이었다.
창을 든 붉고 흰 순록의 형상을 한 몬스터, 곰의 형상을 한 몬스터, 수정구 너머로 보였던 독수리의 형상을 한 몬스터들이 들끓어 아비규환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다 어째서인지 몇몇 몬스터들의 목엔 너덜너덜한 연합의 증표가 걸려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끄아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온 심연에서 기어나온것 같은 비명에 나는 반사적으로 말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새카맣게 물든 창에서 나온 기류에 휘감긴 병사의 몸이 뒤틀리며 주변의 부서진 성벽 파편들을 들러붙었고, 이내 인간이 아닌 형상이 되었다. 마치 마법사들의 인형인 골렘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이, 몬스터로?"
오한에 걸린듯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너무도 충격적인 광경에 사고가 마비되었는지 당장 뭘 해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말에 박차를 가해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더 빨리, 더 빨리 말을 재촉하며 성벽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우수수 내려온 독수리 형상의 몬스터들과 성벽으로 이루어진 골렘들이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살의로 불타오르는 눈들에 둘러쌓인 순간 나는 모든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
반 레온side.
갑자기 나간 연합군의 지휘관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결국 막사에서 뛰쳐나왔다. 지금 이 시간동안 죽어나가고 있을 백성들과 병사들이 걱정되어 계속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봐버렸다. 더이상 제 구실을 못할만큼 무너진 성벽과 하늘을 물들일듯이 새카맣게 피어오르는 연기들을.
무작정 달려서 성에 도착한 나는 연합군도, 백성들도 볼 수 없었다. 오직 몬스터들만이 들끓고 있었다.
"…… 이피아."
충격에서 벗어난 것은 지휘관을 설득하기위해 나오면서 혼자 남겨진 그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초조하게 성에 가는 길을 막는 몬스터들을 베고 베어서 간신히 성에 돌아온 나는 황폐해진 성을 뛰어다니며 그녀를 찾았다.
"이피아! 어디있소! 이피아─! 들리며 대답해주시오!"
근위대도, 시종들도 모두 죽어있었다. 오랫동안 나를 섬겼던 루덴의 시체를 봤을때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찾아야했다.
다섯 개의 탑루를 돌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성 안쪽까지 들어온 몬스터들을 수십쯤 베었을땐 너무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오직 그녀를 찾아야하는 일념하에 삐걱이는 몸을 움직였다.
아직까지 찾지 않은 곳. 그녀에게 선물한 장미 정원.
그녀는 불안할때면 정원을 찾았다. 그곳에 있을지도 몰라. 거기 있어야해.
어째서인지 지금 시기엔 피기 이른 장미꽃들이 만개한 정원에 들어섰을때, 굽어치는 갈색 머리칼을 늘어뜨린 사랑스러운 여인의 뒷모습에 망막에 잡혔다.
"이피……!"
나는 무엇을 보고있는걸까.
화려하게 피어난 붉은 장미로 온몸을 치장한 그녀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등뒤로 꿈틀거리는 가시넝쿨은 대체 뭐지? 왜 바닥에 시체와 피가 가득한거지? 어째서 정원의 모든 장미들은 나를 보듯이 이쪽으로 꽃을 기울이고 있는가.
"…… 레, 온."
그녀는 살아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죽었다.
죽어야만 지옥에 가는게 아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이피아를 살려달라고 해서 살렸는데 반 레온은 2배쯤 더 비참해졌네요…… 그래서 이피아 살아서 좋을거 없다고 했잖아요.
이피아가 어떤 상태인지 감을 못 잡으신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사자왕의 성 몬스터들은 옛날에 사람이었음.
검호 파트도 쓰려고 했는데 검호쪽도 만만치않게 어두워서 다음으로 미룹니다.
@니들이야자를알아 - 네. 그런데 검호는 루디브리엄에 가고있고 반 레온의 왕국은 엘나스 한 구석에 박혀있습니다.
@로렐라인 - 에, 살려는 줬습니다... 돌던지지 마세요.
@건전한독자 - 살아... 있습니다. 네.
@IIIIIIk - 그렇게 반 레온은 연합에 복수하기위해 검은 마법사를 찾아가고...
@예리카 - 저도 자기위안중입니다.
@Eluines - 싸우지도 않는데 어그로는 왕창 끌고 있군요.
@뭉글이 - 매력+100되서 살았음... 에, 살아있긴 합니다.
@좌절거북이 - 그렇게 검호의 멘탈은 와장창 박살나고...
@적현월 - 주인공이 보신주의자이니 모르고 사건현장에 직접 가거나 근처에 사건이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내용이 진행되거든요.
@Ratios - 프라이쉬츠는 후방 딜러인데 어그로도 잘끄는군요.
@지상아래h - 한 명쯤 죽일까나.
@책벌레씨 - 걔한테 복수할 사람 지금 막 생겼습니다. 나중에 한 명 더 추가되겠군요.
@허공말뚝 - 바닥엔 더 바닥이 있습니다.
@칼크래프트 - 왕비님 살았습니다. 네, 좀 상태가 그렇지만.
@lte23 - 루디브리엄에서 또 고생해야죠.
@큐냥이 - 그리고 사이키커한테도 미리 애도하겠습니다.
@낼모레쉰 - 정답입니다. 그리고 반 레온은...(후 새드)
@유풍낙화 - 프라이쉬츠가 뭔 뒷공작을 펼치는지 알려주기 위해&아리아가 뭘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근근히 출현하는겁니다.
@그냥마법사 - 이미 전쟁이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