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호side.
옷가게에서 나온 이후로 이상하게 계속 속이 안좋다. 그나마 현실적인 추측으로는 예전에 루디브리엄에 왔을때 군단장과 싸웠다고 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생겼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때 일은 전혀 기억 안나잖아? 떠올려보려고 해도 아스카가 했던 말이나 다 잊어버린 현 상황으로 봤을때 그냥 모르는쪽이 나은 것 같고.
프리드가 루디브리엄의 국왕에게 - 퀘스트로 딱 한 번 언급되었던 그 사람이 진짜로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 가서 결계를 보수하고 봉인석을 만드는데 허가를 받는동안 나는 영웅들과 함께 도시 재건을 도왔다…… 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란이랑 루미너스가 다해먹었다. 전사인 아란은 그렇다치고 루미너스 저놈은 마법사면서 왜저렇게 힘이 센거야? 그러고보니 오르비스에서 샤이닝 로드로 몬스터의 머리를 빠개는걸 언뜻 본것도 같은데.
그리고 허가를 받아온 프리드는 엘린 숲의 봉인석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를 본보기삼아 이번에는 미리 매개물을 준비했다. 다름아닌 레고 블럭. 어이없지만 루디브리엄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물건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 아 다시 생각해도 내 옷 진짜 아까워!
"그런데 프리드. 그 보석은 결계석 대신으로밖에 못 쓰는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일단 이건 그 자체로 거대한 힘 덩어리라서 가능성자체가 무궁무진해. 그런데 그만큼 사용하는게 힘들어서, 당장 내가 쓸 수 있는 부분이 결계석의 형태밖에 없는거야. 좀 더 연구해보면 다른 수많은 부분에 쓸 수 있을거야."
"그걸 어떻게 쓰고있는거지?"
도로에 널려있는 건물 파편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펑펑 빛을 터뜨려 한곳에 모은 힘법사 루미너스가 물었다.
"음…… 일단 이건 사람의 생각에 반응하는 성질이 있어.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강한 생각을 하면 그걸 이루어주는거야. 다만 그 생각이 뭔가 파괴적이거나, 인과율에 어긋나는 것이면 힘을 사용하는데 몇 배나 더 강한 생각을 해야돼."
프리드는 얼음주머니로 머리를 식히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내 생각을 마법을 증폭시키고, 강제로 보석에 각인시켜서 힘을 끌어낸다음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쓰고 있는데…… 굉장히 비효율적이지."
"그것 말고는 없는건가?"
"지금 당장은 없어. 사람의 생각 이외에 다른 것에 반응하는건 없나 싶었지만 이것저것 실험해봤는데 없더라고."
"상당히 곤란하군."
"그래도 그만큼 사용법이 까다로우니 악용될 여지도 적어."
뭔가 굉장히 진지한 얘기가 오간 것 같은데…… 난 마법사가 아니다. 고로 마법 얘기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생각을 증폭? 각인? 조각하냐? 뭔 말을 하는거야 대체?
그리고 프리드가 어떻게 봉인석을 혼자서 사용하고 있나 했는데, 그냥 저놈이 존나 먼치킨이었던 거잖아! 그 공식 설정에서 봉인석이라는건 일종의 원기옥 비슷한 방법으로 쓰는걸로 기억하는데. 모두의 염원을 하나로! 처럼.
"보석의 지극히 일부의 힘만으로 이런 결계를 만들 수 있다는게 놀라운거지. 완전히 활용할 수 있으면 검은 마법사를 없애는것도 꿈도 아닐텐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초조해할수록 답은 더 보이지 않는다.]
"알고 있어……."
아, 말해야하나? 그냥 넘어가도 어차피 다 알아낼테지만 내가 말한다해도 결과적으로 같으니까…… 괜찮겠지?
"하나 물어봐도 되나."
"예? 아, 예. 말씀하세요."
"그 보석은 강한 생각- 그러니까 염원을 들어주는 성질이 있는거 맞나?"
"네 그렇죠. 그런데 그 염원이 아주 강해야하기때문에 제가 사용하려면 마법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럼 혼자서 안하면 되지 않나."
"…… 예?"
마법의 ㅁ도 모르는 놈이 하는 말이니 씹어도 이상할게 없다만, 그래도 일단 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똑같이 강하게 뭔가를 바란다면 거기에 반응하지 않을까하는데. 예를들어 지금 루디브리엄의 사람들이 모두 도시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 그것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나는 말끝을 흐렸다. 내 말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구가 튀어나오지않을까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로 눈을 흡 뜬 프리드와 루미너스의 무어라 비유할 수 없는 강렬한 시선때문에 얼굴이 후벼파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나, 나 뭐 잘못 말했나? 그런거야? 현실보정 받아서 봉인석 사용법이 바뀐거냐고!
"…… 아프리엔. 나 정말 멍청한가봐."
[그건 아니다. 사태가 심각해서 가까이에 있는걸 보지 못한거다.]
"마법사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군……."
[마스터, 지금이라도 마법 배우는게 어때?]
줄줄이 말들이 이어져서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에, 일단 나 실수한거 아니지? 아니라고 해주라.
"바로 가볼게요. 조언 정말로 감사합니다 검호씨."
"아, 알겠다."
그러고는 프리드는 곧장 아프리엔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어쨌든 잘된거겠지……? '너따위가 그런걸 아냐?'에 가까운 눈빛으로 날 보는 루미너스를 어찌어찌 무시하고, 건물 파편들을 마저 치우려는데─.
콰앙─!
"폭음……?"
[외벽쪽이야! 당장 가자 마스터!]
야 잠깐만 왜 무작정 날 끌고가는거야!
***
마스테마side.
그분의 명령을 받아 일전에 군단장들이 거의 정리해둔 루디브리엄을 이 기회에 완전히 점령하기로 했다. 본래는 데몬님과 왔어야 했지만, 그분은 다른 임무를 받고 가셨고 루디브리엄자체가 꽤 약화된 상태라 나와 부하들 그리고 폐쇠된 탑에서 끌어온 몬스터들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건만…….
"마족?"
"운이 정말 나쁘네요."
영웅. 그중 엘프 영웅이랑 마주쳐버렸다. 도시에 들어가기도 전에 외곽에서!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검을 뽑아들어 포스를 두른다음 검격을 날렸다.
"어둠에 빌붙은 종족이 감히!"
"그 말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마족이라는게 원래 어둠에 속하는거 아니었나? 포스로 전신을 강화하며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을 지그재그로 뛰며 피했다. 주위에 다른 영웅들은 없나?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저 엘프밖에 보이지않는다. 그렇다면 가망성이 좀 있다.
"결계를 깨세요!"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바로 몬스터를 부려 결계에 온갖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엘프는 몬스터들 사이로 몸을 숨긴 나를 보고 혀를 찼지만, 타겟을 바꿔 이번엔 몬스터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물론 그렇게는 안된다. 나는 그것을 끄집어냈다.
등 뒤에서 거대한 은빛 액체덩어리가 출렁이며 소환됬다.
"지금 당신의 상대는 접니다!"
은빛 액체덩어리의 일부가 떨어져나오며 잘게 쪼개지더니 얇은 원반 형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액체 원반은 회전 톱날을 연상케하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아가며 엘프에게 날아갔다.
"이건?!"
"한 방이라도 맞으면 험한 꼴 볼겁니다 엘프."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으로 날아든 액체 칼날들을 피해낸 엘프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눈치챈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렇겠지. 액체긴 액체지만 엄연히 금속인- 수은이니까. 회복력 좋다는 엘프라도 체내에 중금속이 들어가면 절대 괜찮지 않을것이다.
수은의 칼날을 자동 전투모드로 변경, 칼날을 떼어내고도 아직도 많이 남은 수은덩어리에서 주먹만한 덩어리를 또 떼어낸다음 최대한 넓게 펼쳐 커다란 원반 형태로 만들고,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 최속으로 회전시킨다음 결계에 날렸다. 카가가각─! 하는 고막을 긁어내는 소리가 울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별 거 아니다.
저 결계의 내구도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런 종류의 벽을 뚫는 방법은 고대로부터 하나였다. 하나는 안에서부터 여는 것, 다른 하나는 한 부위에 지속적으로 타격을 줘 틈을 만드는 것. 영웅을 오래 잡아둘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틈을 만들어야 한다.
"내버려둘 줄 알고!"
그 사이에 블록 골렘들을 방패삼아 수은의 칼날을 대부분 막아내고, 정령을 불러내 몸을 감싼 엘프가 붉은 빛으로 이루어진 유니콘을 날렸다. 의외로 강맹한 일격이었지만 단순하기짝에 없는 일직선 공격에 혀를 차며 바로 몸을 옆으로 빼 피한다음 포스를 두른 검으로 내려쳐 유니콘의 허리를 잘라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울리며 결계가 뒤흔들렸다. 많이 깎여나갔지만 결정타가 부족해……! 그 순간 하늘에서 보라빛을 휘감은 황금의 창들이 떨어졌다.
저거다.
"군단장의 부관 자리는 가위바위보로 따낸건 줄 압니까!!"
폭발적으로 뻗어나간 수은의 가지가 내리꽂히는 창들과 엘프를 후려쳐 상당히 얇아진 결계에 쳐박았다.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면 다른 영웅들이 올테니 빨리 저걸 뚫어야 하는데 결과는…… 아직도 벽은 여전했다. 나는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고작 결계주제에 더럽게 단단하다. 그래도 많이 약해졌으니 수은의 칼날을 불러들여 다시 거대한 수은덩어리로 만든다음 저기에 세게 쳐박으면 어찌어찌 틈은 생길 것 같다.
"그래. 확실히 도박으로 따낸 것 같지 않네."
"…… 하."
능글맞은 기색이 묻어나오는 미성. 화려한 차림의 금발머리 남성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결계에 쳐박힌 엘프를 부축하며 걸어왔다. 인적사항은 모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세로 보아 영웅 혹은 그에 비견되는 이임이 분명하다.
"마스테마님."
"아아, 알겠습니다. 계속 하는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죠."
하나도 아니고 둘. 여기에 영웅이 있는것 자체가 상정외 요소인데다 더 있을지도 모른다. 군단장님도 없는 현재의 전력으로는 무리. 저 엘프만이라면 어찌어찌 격파가 가능했겠지만 다른 영웅들이 더 온다면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 방은 먹여야 속이 시원하겠네요."
나는 도망치기위한 최소한의 포스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검에 있는대로 전부 밀어넣었다. 동시에 자동 전투모드로 흩어져있던 수은의 칼날을 모두 불러들인다음 수은덩어리를 추 모양으로 만들어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맞고 으깨져버리세요!"
콰앙! 꽈르르릉…….
수은의 추에 기어코 부서진 결계 안으로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곧바로 날개를 펼쳐 자리에서 도망쳤다.
***
아스카를 타고 가는데 뿔을 잡지 않으면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놈의 등에서 도저히 버틸수가 없다. 정면에서 부는 바람은 마법으로 막는다치고 관성의 법칙은? 검까지 뽑아들어서 비늘틈에 꽂아 겨우 매달렸다. 이랬다가 다쳐도 니놈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그런데 결계 끄트러미에 다다를때 갑자기 아스카가 급정지해버렸다. 야! 탑승자도 좀 생각하라고! 몸이 확 쏠리더니 비늘사이에 꽂힌 검이 빠지며 결국 난 떨어져버렸다. 이자식아 제발 안전비행하자고오오…….
정말 어이없는 추락에 나는 비명마저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슈우욱 떨어졌다. 제발 땅에 부딪힐때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퍼억!
바, 방금 뭐랑 부딪힌거지? 큰 새? 운나쁘게 뭐랑 부딪혀버린 나는 더 생각할것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어서 그것을 밑에다 깔고 땅에 착지 - 90도로 추락하는게 착지라면 - 했다.
아스팔트위의 빈대떡 꼴이 된 나는 끙끙 신음을 내며 비척였다. 나 왜 이 꼴이 된거지.
"다리가……."
뼈 작살난 것 같아. 다리는 물론이고 전신이 아프다. 이게 대체 뭔 고생이냐고! 속으로 눈물을 삼킨 나는 검을 지팡이삼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세우며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다.
"…… 어?"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내 밑에 매트리스대신 깔려있는게 뭔지 알았다.
고양이귀에 미니스커트, 메가데레 심지어 존댓말 캐릭터라는 모에 속성을 장착했음에도 짝사랑 상대인 데몬이 여자의 적이나 다름없는 둔감&철벽남이라 묻혀버린 희대의 캐릭터 - 마스테마였다.
========== 작품 후기 ==========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2번이나 날려서 결국 오늘 올리네요.
마스테마 강합니다. 군단장급은 아니더라도 영웅을 상대로 시간끌기가 가능한정도. 사용한 수은은 페제의 월령수액을 상상하면 편합니다.
@여기돈까스요 - 그러면 검마가 검호를 공략할 약점이 없어지는데요.
@대어의예감 - 에이 뭐 어때요. 카드캡처의 유에도 남자(무성이지만 생긴게)였는데.
@소라루 - 진짜 네임드들만 만났음.
@Dt월 - 나중엔 저것들 모아서 전설같은게 막 만들어질듯.
@Ratios - 사커는... 영구퇴갤은 아니지만 어떤식으로 나올지는 스포일러라 대답못하겠네요. 다만 사커는 메이플에서의 비중보다 현실의 정체가 더 충격이라는.
@Keisha - 실제로는 살아온 인생=솔로 인생인데 말이죠.
@화뉴 - 검호:전력으로 거절할게.
@좌절거북이 - 님 코멘보고 상상했는데요, 도저히 그걸 글로 쓸 수가 없네요. 전투씬은 쓰기 어려워서리.
@적현월 - 그리고 미래에 모험가들이 보는거죠!
@예리카 - 그래도 파퀘할때는 어느정도 사람있는데가 좋던데.
@karuma - 하하하 개판이군(코쓱)
@레시코 - 검호는 아스카를 식모로 보지 않습니다.
@허공말뚝 - 전 카드캡처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것이 세대차이인가.
@Novel알케미스트 - 남잡니다! 모든 영웅들은 공식 성별(아란은 제가 여아란 지지자라서)을 따릅니다.
@뭉글이 - 봉인이 문제가 아니에요. 생사가 문제임.
@패러디좋아 - 어감이 꽤 부드러우니까요.
@Eluines - 부서진건 에레브. 루디브리엄은 사람도 죽고 도시도 많이 망가졌지만 도시째로 부서지진 않았음.
@여행자구름 - 아뇨 이런 곰손을 어떻게...
@핑구친구 - 검호는 친구가 적어요. 그리고 에피네아는 현재 만날 수 없고 나중에도 만날 일 없음. 미래에 다른 페어리면 모를까.
@카즈사야 - 그건 어디의 메리 수 캐릭터?
@토토토미 - 은월의 히로인은 프리드라는 말이 있었죠.
@ReFrante - 나중엔 또 뭐가 생길까요 하하.
@Sisre - 괜히 트립퍼겠습니까! 정작 본인에겐 별 보정이 없지만서도.
@Blake117 - 그렇게 구르다가 죽을듯 검호는.
@칼크래프트 - 얼떨결에 포로 잡음.
@아토상자 - 중국어는 발음이 중요하죠.
@책벌레씨 - 스토리의 안습함은 둘째치고 퀄리티가 영 안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