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호side.
얘가 왜 여기 있는거야?! 그리고 어째서 떨어지는 날 뺑소니친거냐고? 아니 잠깐만 마스테마가 여기 있다는건 데몬도 근처에 있다는 뜻 아니야? 뜬금없는데다 어쩐지 심각한 상황에 당황해버린 나는 일어나다말고 엉거주춤 수그린 자세로 뻘쭘하게 그러고 있었다.
[마스터! 어디 안다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아픈 곳이 없다 짜샤! 마음같아선 오랜만에 저놈 머리를 한 대 치고싶었지만, 그래도 힐링을 받아야하므로 꾹꾹 참았다.
"아스카. 일단은……."
"저쪽으로 떨어졌어! 몸상태가 좋지 않을테니 당장 잡아야해!"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다친 메르세데스와 팬텀이 뙇 등장했다.
"…… 검호?"
휘둥그레 눈을 뜬 둘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마스테마의 등을 한쪽 무릎으로 짓누르고, 엉거주춤 일어나는건지 숙이고 있는건지 모르는 애매한 포즈.
이 무슨 하렘 주인공 만화에나 나올법한 '넘어지고보니 덮치는 자세'인거냐!! 심지어 내가 까는쪽이야?! 내가 어버버 당황하는동안 두 영웅들도 어이없는지 이 초유의 사태에 쩍 굳어있었다.
"크으……!"
"움직이지 마라."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고양이 눈을 뜬 마스테마에게 급히 말했다. 이제보니까 나 검을 지팡이 대신으로 쓰고 있잖아! 심지어 꽂힌 위치가 그녀의 목 바로 옆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뎅겅! 해버릴 수 있단말이다.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제쳐두자. 심지어 나 지금 전신이 아파서 당장 일어날수도, 검을 다시 넣을수도 없다고!
"당신은─!"
"가만히 있어라."
"검호. 그대로 제압하고 있어줘."
…… 이 쪽팔린 자세로? 마스테마가 끙끙거리며 벗어나려는데 손을 삐끗해서 목에 쭉 붉은 선이 그어졌다. 아 잠깐만 미안, 고의는 아니었다.
"이참에 죽여버리는게 좋을것 같네. 군단장의 부관이지만 상당히 성가신 상대니까."
잠깐만 나보고 얘 죽이라는거냐! 나 누구 죽이는거 무리거든?! 몬스터면 몰라도 사람은 힘들다고! 살인이잖아! 아 뭐 마스테마나 데몬이나 커버칠 수 없는, 내 기준이나 보편적인 사람 기준이나 악인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원작 스토리대로 가야하느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죽이고 싶지 않다. 죽어마땅한 사형수라 해도 그 사람의 사형을 집행해야하는 사형집행인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하면 욕먹겠지만 - 실제로 그 사람 심정이 어떤지 난 모르지만 비유하자면 - 대충 그렇다. 이기적이라고 욕하지마! 제정신 멀쩡히 박혀있는 사람중에 살인하고 싶은 놈이 어디있어!
"어째서지? 그쪽도 싸워봤을테니 알거 아니야?"
저기요 안싸웠거든요. 얘 상관인 데몬이라면 온몸이 박살나기 직전까지 싸우긴 했지만 얘는 사실상 초면인데요.
"지금은…… 안된다."
날 이상하게 보는 팬텀에게 메르세데스가 구원의 빛줄기처럼 말했다.
"팬텀. 포로로 잡아두는 쪽이 더 나을거야. 다른 군단장을 유인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굴욕적으로 살려둘거면 차라리 죽여!"
앙칼지게 소리친 마스테마의 목에 붉은 선이 더 깊어졌다. 야 제발 가만히 있어주라. 예나 지금이나 손대중이 힘들다고. 내가 얘 목을 자르고 있는데 손에 살이 닿는 느낌이 없어서 소름끼친단 말이야!
"그럼 더더욱 살려놔야겠네. 거기다 군단장 부관인만큼 아는것도 많을테니까."
메르세데스가 차갑게 말하며 빠르게 걸어와 마스테마의 머리를 듀얼보우건으로 세게 갈겼다. 빠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와 시발 잠깐만 이거 뭐야 무서워. 분명 궁수인데, 엘프인데 뭐 이렇게 힘이 센거야?
기절한 마스테마는 마법의 밧줄에 꽁꽁 묶여 루디브리엄 성의 감옥으로 끌려갔고, 나는 애써 근엄해보이려는 애같은 국왕에게 불려가 감사 인사? 같은걸 들었다. 난 그냥 떨어지다가 뺑소니당한거밖에 없어서 대면하고있는 내내 쪽팔렸다. 이거 원래 마스테마랑 싸운 메르세데스랑 팬텀이 들어야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어째 불길해…… 마스테마 구하러 데몬이 직접 올 것 같은 느낌이라고.
그리고 빌어먹게도 이런 예감은 항상 맞는다. 최악의 형태로.
***
메르세데스side.
수은의 추가 부순 결계 틈으로 들어온 몬스터를 최대한 정리해두고 바로 그 마족을 쫓았다. 분명 힘이 많이 빠졌을텐데 하늘을 날고있는지라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와중에,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오닉스 드래곤이 머리 위를 날아갔다.
"프리드?"
"아니 아프리엔이 아니야. 그것보다 더 큰걸로 봐서는─."
말을 채 잇기전에 쫓고있던 마족이 갑자기 추락하는게 보였다. 뭔가에 뒤엉켜서 떨어지는게…… 새랑 부딪힌건가?
"저쪽으로 떨어졌어!"
군단장의 부관급 인물이다. 계속 살려두면 앞으로 사람들이 받을 피해가 더 커지는건 자명한바, 거기다 단순히 무식한 놈도 아니고 마법과 검 둘 다 잘 쓰는 굉장히 뛰어난 마족인만큼 두고두고 물고 늘어질거다.
"몸상태가 좋지않은만큼 당장 잡아야해!"
건물 파편들과 홀로 서 있는 벽들을 지나 그 마족이 떨어진 곳에 겨우 다다랐다. 막 지나갔던 오닉스 드래곤이 선회하면서 그곳에 내려오는게 보였다. 잠깐 저게 여기 있다는 말은─.
"…… 검호?"
그 마족 여자를 제압한 그가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싸움이 있었는지 상처가 보였지만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움직이지마라."
날지 못하도록 등을 누르는 상태에서, 어느때보다 서늘한 빛을 뿌리는 붉은 검이 마족 여자의 목에 바짝 붙었다. 끙끙거리며 고개를 돌린 - 그 와중에 목이 조금 베였다 - 그녀는 검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라."
"검호. 그대로 제압하고 있어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저 마족을 잡은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참에 죽여버리는게 좋을것 같네. 군단장의 부관이지만 상당히 성가신 상대니까."
팬텀이 케인을 들었다. 그도 저 마족이 얼마나 곤란한 상대인지 짧게 보고 바로 알아챈 모양이다. 그런데 검호-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건 곤란하다."
"어째서지? 그쪽도 싸워봤을테니 알거 아니야?"
"지금은…… 안된다."
어째서 그가 저 마족을 살려두자고 하는지 의아함이 들었다가 상황이 급해 내 생각이 짧았다는걸 금방 깨달았다.
"팬텀. 포로로 잡아두는 쪽이 더 나을거야. 다른 군단장을 유인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굴욕적으로 살려둘거면 차라리 죽여!"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족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달려들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동시에 그의 검이 조금 기울어지며 마족의 목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그럼 더더욱 살려놔야겠네. 거기다 군단장 부관인만큼 아는것도 많을테니까."
나는 애써 허세를 부리듯이 말했다. 좀 전에 수은의 채찍에 맞으면서 땅에 쳐박혔을때 입은 상처는 팬텀이 힐을 써준 덕에 아물었지만 어디까지나 겉만 그렇지 속은 여전히 욱씬욱씬하다. 하지만 저 검호가 직접 마족을 제압하고있는 상황이기에 나는 안심하고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좀 무식한 방법이지만 나는 듀얼보우건에 마력을 실어 직접 때려서 마족을 기절시켰다. 옆에 있던 팬텀이 눈을 휘둥그레 뜬 걸 애써 무시했다.
***
데몬side.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너의 부관이 영웅들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다고 했다."
덤덤하게 그-프라이쉬츠가 하는 말을 뇌로 받아들이는데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상을 박살내버렸다.
"구출하러 갈건가?"
"…… 예. 말리실겁니까."
"아니. 대답여하에 따라서 도움을 줄지말지 생각했거든. 마침 나도 루디브리엄에 용건이 있었고."
프라이쉬츠는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영웅들이 전부 거기에 있다. 이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라."
"걱정마시죠. 마스테마만 구하면 바로 빠져나올겁니다."
나는 곧바로 셉터를 점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거긴 결계가 쳐져있으니 정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
"방도가 있습니까?"
"좀 뱅 돌아서 가는 방법이 있지. 야 이제 들어와!"
문이 열리며 헐렁한 양갈래 머리의 여자, 파픈스타가 들어왔다. 기분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보였다.
"그녀는 왜……?"
"다른건 몰라도 물 마법은 파픈스타가 최고니까. 그래도 혹시나해서 묻는건데, 너 수영할 줄 아냐?"
"할 줄 압니다."
"그럼 됬어."
대체 어디로 루디브리엄에 들어가려는거지? 수영은 또 왜 물어본거고? 그는 대답하지않고 척척 걸어나갔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당신은 왜 루디브리엄에 가려는겁니까."
"점령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서 만날 사람도 있거든."
그의 연홍색 눈이 어쩐지 사납게 이글거렸다.
"그녀의 부질없는 희망을 꺾어둘 필요가 있어서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프라이쉬츠는 섣불리 건드렸다간 애꿎은 사람이 피봐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은 살인 못합니다. 사이키커를 죽인건 정줄놓상태에서 한거니 논외로 치더라도, 아마 완결까지 킬수가 절대 5를 안넘을듯.
프라이쉬츠vs검호 가 되려나? 하하하 전투씬따위 잘 쓰지도 못하는데 뭐 이렇게 써야할게 많은거야. 줄이고 줄여도 계속 쓸게 나와 젠장.
@대어의예감 - 그리고 졸지에 포로가 됨.
@레시코 - 본인은 하렘 주인공같은 포즈라고 생각함.
@Blake117 - 파픈스타도 싫어합니다.
@Racine - 연애대상으로서의 히로인을 묻는거라면, 없습니다.
@에넘 - 대여불가임. 마스테마가 수제작한거라서.
@좌절거북이 - 그런데 마스테마의 수은과 케이네스의 수은이 싸우면 마스테마가 이김.
@여기돈까스요 - 검호는 죽기전에 연애해볼 확률이 0%인데요.
@Sisre - 히로인일리가. 얀데레(데레가 없는)만 꼬이는데.
@패러디좋아 - 힘이란 힘은 다 빠진 상태에서 땅에 쳐박혔으니 제압당한것도 이상하지는 않음.
@적현월 - 진짜 마스테마는 좋은 히로인인데 데몬이 고자라서...
@라그실 - 여러분이 아는 그 사이키커가 아닐겁니다.
@Pote - 정작 저런 위험에 빠진다는것 자체가 불운이지만.
@야여요 - 아 초반에만 쓰려고 했는데 그냥 계속 착각계로 밀기로 했음.
@Ration - 케이네스보다 더 수은 잘 씀.
@Elunes - 그리고 둘의 눈에 검호는 고공낙하해 마족을 순식간에 제압한 영웅으로...
@책벌레씨 - 검호의 장례식도.
@토토토미 - 마족이라 튼튼해서 살았음.
@유풍낙화 - 이제 본인이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겠군요.
@아토상자 - 검호! 도망쳐!
@karuma - 애초에 군단장이라 적대치가 처음부터 만렙.
@ReFrante - 사고의 전환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봉인석 사용법을 알고있었던거임.
@칼크래프트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소라루 - 본인은 그냥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허공말뚝 - 알아서 위험에 빠지고 알아서 위험을 해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