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리드side.
군단장들을 물러가게 한 이후 돌아온 우리를 반긴 것은 도저히 본래 모습을 알 수 없을정도로 갈려나간 공터였다. 그곳에는 검호와 그의 오닉스 드래곤만이 덩그라니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온몸에 녹색 빛이 쏟아져내리던 그는 비틀, 일어나며 말했다.
"…… 지금 당장 에우렐로 가야한다."
"검호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에요?"
"설명할 시간 없어! 당장 에우렐로 가야한다고!"
감정변화를 거의 보이지않던 그가 몹시 다급한 얼굴로 외치고는 바로 오닉스 드래곤을 타고 날아올랐다. 그 광경에 잠시 당황했다가 바로 아프리엔을 불러 다른 동료들을 태운다음 그를 뒤쫓았다.
마법까지 병행해 굉장한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그의 뒤를 쫓는건 상당히 힘들었다. 메르세데스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 아프리엔의 날개에 붙여줘서야 어느정도 따라잡는게 가능했을 정도다. 그의 모습이 보일정도로 가까워졌을때, 나는 통신 마법을 써 말을 걸어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겁니까 검호씨."
[검은 마법사가, 에우렐을 노리고 있다.]
"예?!"
"프리드, 왜 그러지?"
"그가 뭐라고 말했나?"
"자, 잠깐만요 그걸 대체 누가……."
[아는 사람중에 군단장과 검은 마법사에 대해 알려주는 이가 있다. 더이상은 설명해줄 수 없다.]
대체 누가 그런 정보를 알려준다는 거지? 묻고싶었지만 그가 대답할 것 같지 않았다.
"좀 전에 저희가 군단장들과 싸웠는데 갑자기 왜 검은 마법사가 에우렐을 노린다는거죠?"
[처음부터 눈속임이었다. 군단장들로 우리를 리프레에 잡아두고, 그 사이에 검은 마법사가 에우렐을 치는게 목표였어.]
어이없을정도로 간단한 양동작전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간파해내지 못했다. 우리가 모두 모여있는 리프레를 습격하는데 군단장 전원이 나서도 이상할게 없었고, 검은 마법사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었으니까.
[미안하다.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는데.]
……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함부로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힐링을 받았다는건 그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리프레를 습격한 군단장들 중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들과 좀 전에 보았던 살풍경의 흔적들을 생각해볼때 그가 상대한 이들은 데몬과 구와르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있는 곳과 가까운 상태에서 그쪽으로 피해를 전혀 주지않고 싸움을 끝낸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가 에우렐로 연락을 보낼거에요. 그리고 일단 엘린 숲엔 대결계가 있으니 당장 큰 걱정은 하지 마세요."
[…… 그 결계 별로 믿을게 못된다만.]
"예?"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올때 그가 자포자기하듯이 말했다.
[적어도 검은 마법사에게 그 결계는 의미없는 것이다.]
"어째서죠? 아니 그 전에 검호씨 당신은 대체 뭘 알고있는거에요?"
이성이 아닌 감에 불과했지만, 검호 그가 뭔가를 알고있는게 분명했다.
"대답해주세요!"
땅이 꺼지는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 그 결계를 만든 사람이 검은 마법사다.]
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잠…… 깐만요! 그게 뭐에요?! 그걸 만든게 그라고요? 그 무슨 터무니없는─"
[옛날의 검은 마법사는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 선악을 구분하자면 선에 속할, 누구나 돌아볼만한 미모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지성을 가진 이였지.]
이어지는 말들을 모두 거짓말로 치부하고 싶었다.
[다만 생각이 좀 특이했어. 하지만 세상이 개, 아니 어지러워서 그런 생각을 가져도 충분히 이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넘겨버렸는데…… 사실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알고 있었는데, 믿고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으로 내 눈앞의 그가 그렇게 변해버릴거라고 믿고싶지 않았던거야…….]
어느순간부터 설명이 아니라 후회어린 한탄이 되어있었다.
아아…… 검호 그가 검은 마법사에 대해 잘 아는 이유가 이런거였다니. 경악과 울음, 분노가 뒤섞인 얼굴을 손을 들어 가린 나는 통신 마법을 더이상 유지하지 못했다. 평정심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프리드?"
이름을 부른 이가 유에인지 루미너스인지 알 수 없었다. 배신감과 비슷한 감정으로 가슴이 울렁거려 숨이 가빠왔다.
"필리우스! 당장 도망쳐! 싸울 생각은 하지도 마! 모두를 데리고 거기서 도망치라고!"
통신구로 황급히 에우렐에 연락을 보내는 그녀의 목소리만 어렴풋이 들렸다.
***
파픈스타side.
원래 나는 본거지에서 군단장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는 역할이다. 자체적인 전투능력도 우수하지만 - 트립퍼중에서 쳐질뿐이지 기본적으로 영웅보다 강하다 - 다양한 힐을 사용할 수 있어서 후방에 배치된것이다. 물론 이것 외에 내가 영웅들을 돕게 만들지 않게 하려는 프라이쉬츠 그놈의 내심도 반영되어 있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감시의 눈을 피해 슬쩍 채팅을 써서 소식을 알려주고, 바로 이동석을 써서 검은 마법사의 뒤를 쫓았다. 사실 이러면 나중에 그의 손에 죽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왠지 이번만은 절대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나와버렸다. 불안하게 찌르르─ 울리는 예감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고하는 것 같다.
초월자인 검은 마법사의 이목을 완전히 피하는건 무리지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은신, 은폐 마법을 총 동원한다음 관련 아이템까지 잔뜩 쓰고, 거리를 꽤 벌려서야 간신히 그의 감각에서 벗어나면서 마법으로 강화한 시야에 겨우 보이는 아슬아슬한 지점을 찾는데 성공했다.
'제발……! 늦지말아줘!'
엘프가 인간이 아니니 상관없다? 라는 개소리를 지껄일만큼 난 인간찬가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엘프든 페어리든 님프든, 거기다 마족과 정령도 모두 사람이다. 데몬이랑 그 쌍둥이들, 구와르가 하는 짓을 보면 걔들은 사람도 아닌 것 같지만 그건 극 소수고.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데 거창한 이유같은건 없잖아…… 사실 별 생각같은건 안들고 바로 몸이 움직여버렸다.
최악의 경우, 에우렐로 쳐들어가는 검은 마법사를 나 혼자서 막아야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뒷목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끔찍한 가정이지만 실제로 그래야할지도 모르는게 함정이다. 사실 꽤 가능성이 높다.
'난 시간끌기밖에 못한단 말이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나 왜 이렇게 약한거지? 검호 그처럼 전투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생각따위 안들었을텐데. 하다못해 그 애나 그 놈정도의 힘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한탄을 할 때 저 멀리서 파공음과 함께 검고 큰 물체 둘이 날아오는게 보였다.
"아!"
마력을 집중해 강화한 시력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긴장과 공포로 뛰던 심장이 겨우 진정되었다. 반사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웅과 검호가 다 있으니 검은 마법사를 어느정도 맞상대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뻐했던 것도 잠시.
"왜…… 내려오지 않지?"
그들은 땅에 내려오지 않고 계속 하늘에 있었다.
***
검호side.
아하하 나 망했다. 프리드한테 다 말해버렸어. 마지막에 어찌어찌 변명하긴 했는데 말한 내가 생각해도 궁색한데다 빈약하기 짝에 없는 그걸 듣는 입장인 걔는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내려가는대로 나한테 마법 갈기지 않을까.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거의 도착했는지 아스카가 말했다.
[…… 마스터.]
"응?"
[저게…… 검은 마법사야?]
나는 몸을 일으켜 아래를 보았다. 몸 주위로 넘실거리는 어둠,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을 헤엄치는 사슬들, 붉고 검은 로브. 멀리서 보고만 있는데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확신했다. 검은 마법사가 맞다.
"맞아."
[저런거랑 싸울거야 마스터……? 당장 그만둬! 죽을게 분명하다고!]
반사적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미쳤다고 검은 마법사랑 싸우겠냐. 그건 영웅들이 할 일이라고. 난 엘프들 피신시키는 일같은거 할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스카의 옆에 다가온 아프리엔 - 정확히는 그녀의 등 위에 타고 있는 영웅들을 보았다.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경악으로 치켜뜬 눈과 비명이 터져나오려는 입을 막은 손. 저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가 그리 많지않은 나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
"왜 그런 얼굴이지?"
반사적으로 그들에게 물어버렸다. 6명의 시선이 모두 나한테 꽂혔다.
"영웅이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검은 마법사를 무서워해도 너희만은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야.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얼마나 강한 적이든 맞서 싸워 이기는게─ 영웅 아니었나."
내가 말해놓고도 좀 터무니없었다. 이건 굉장히 무례한 내 멋대로의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영웅이 모든걸 다 해결해주길 바라는건 어린애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빌법한 소원이니.
그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은 예전에 시간의 신전에서 처음 검은 마법사를 대면했을때의 나와 똑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 하."
지금 저들에게 당장 검은 마법사와 싸워서 에우렐을 지켜달라고 말하면 그게 가능할까? 당장 엘프의 왕인 메르세데스마저도 온 몸이 굳어버렸는데.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영웅들의 상당수는 나하고 비슷한 혹은 나보다 어린 나이다. 거기다…… 사실 알고 있었으니까. 영웅들이라고 불리는 저 여섯 명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수많은 이들의 죽음에 울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이를 잃어서 복수를 생각하고, 더 많은 사람을 돕기위해 강해지길 바라며, 곤란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다. 내가 옆에서 본 영웅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딜가나 볼법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평범한 사람.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많이 강했고,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거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러니까, 감당하지 못하는 적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것도…… 당연한거다.
[마스터! 결계가!]
아스카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려보니 결계가 저절로 열리고있는게 보였다. 빛나는 벌레무리가 한가득 모여들여 벽을 깎아냈고, 어디선가 피어오른 짙은 녹색 가스가 결계의 벽을 녹여낸 것이다.
아, 에피네아 여왕님 결국…….
"…… 아스카."
손이 병에 걸린것마냥 덜덜 떨렸다.
영웅이 에우렐을 지키지 못하면, 검은 마법사와 싸우지 못하면 결국 메이플 월드는 어떻게 되는거지? 답은 뻔하다.
이 세계는 멸망할거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확실하게.
"날 저기에 내려줘."
젠장 나 미쳤나봐. 말하면서 머리속으로 격렬히 후회했다.
[저건 마스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알아."
검은 마법사는 물론이고 군단장도 버거운 난데, 아니 심지어 몬스터 떼한테도 죽기직전까지 몰리는데 상대가 될리 없잖아. 내려가자마자 광속으로 살해당해도 이상할게 없다고.
"그래도 내가 가야해."
[마스터 제발…….]
영웅들이 못 가니까, 하다못해 나라도 가야한다고.
상대가 되든 안되든간에 검은 마법사랑 누군가가 싸워야 한단 말이야! 모두가 다 무섭다고 피해버리면, 두렵다고 움츠리고 있으면 대체 누가 저걸 막을거냐고!
…… 내 허접한 실력으론 막는건 고사하고 일방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너무 높다. 그래도, 그래도─
아무것도 안할 수 없잖아.
========== 작품 후기 ==========
검은 마법사를 보고 공포를 느낀다는건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거기다 현재의 영웅들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 적어도 힘만은 준 초월자급인 검호랑 비교하면 안됩니다.
이전 화의 마지막 장면을 어떤 분이 만화로 그려주셨습니다! 뜰에 가면 볼 수 있으니 보고싶은 분은 가서 보세요오~
@핑구친구 - 데몬도 그렇게 될줄은 진짜 몰랐을겁니다. 어찌보면 댓가를 치르는거.
@노란우산s - 슬슬 이 챕터가 끝날 것 같네요. 동시에 개학이 다가오는... 어흐흑.
@Sisre - 이 글이 착각계라서 그래요.
@karuma - 힘있는 사람만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바라죠.
@여기돈까스요 - 걔 스토리는 상당히 정교하긴한데 어쨌든 되는게 없는 놈임.
@넝기 - 더 괴로워질겁니다.
@루서스 - 살아있으면 직접 말하지 왜 대신 전하겠는가... 라는 생각?
@적현월 - 괜히 둔감 속성이 있겠습니까.
@아토상자 - 그런데 봉인석으로는 죽은 사람은 못 살림. 장소는 복구해도.
@미소녀가될꺼야 - 떡밥 몇 개로 이야기를 새로 창작해야하는 수준임. 검은 마법사랑 영웅의 시대에 구체적으로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어서.
@백서련 - 응? 그거 아닌데요?
@브룬 - 네. 일단 무력 비교를 하자면 초월자>트립퍼>영웅&군단장 이거든요.
@Racine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오버시어는 힘이 좀 모자라서 검호의 몸과 영혼을 완벽하게 잇지 못했습니다. 좀 부실하죠. 그래서 육체에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몸이랑 영혼을 잇는 고리가 흔들려서 그에따른 고통이 느껴지는거. 실제로 몸이 다친 경우는 진짜 드뭄. 전사직이라 얼마나 튼튼한데.
@흑접아 - 불행으로 따지면 그쯤 될듯.
@Pote - 나날이 착각을 갱신중.
@ReFrante - 아이러니한건 가족을 위해서 군단장으로 뛰고 있다는거.
@패러디좋아 - 아뇨. 과거를 좀 알면 할만한 놈이란걸 알 수 있습니다. 괜히 군단장중에서 검은마법사의 이상에 심취했던 놈이 아님.
@책벌레씨 - 음, 대우가 좀 심할건데.
@Ratios - 그 가족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게 데몬의 목표라서...
@허공말뚝 - 그리고 이제 착각계는 산으로.
@소라루 - 이 챕터 빨리 끝내고 싶어요.
@Blake117 - 음, 미리 피해있어야겠네요. 이미 결과는 정해뒀지만 그걸 여러분이 보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뭉글이 - ... 히익!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토토토미 - 쓰는 전 웃으면서 썼습니다.
@레시코 - 되는게 없음 얘는. 주인공 보정? 그거 먹는건가요?
@여행자구름 - 그것보다는 가족의 무사함에 대한 안도, 본의아니게 검호의 과거 상처를 들쑤신 죄책감 비슷한것이 되겠네요.
@칼크래프트 - 레알 영웅이 될 기세.
@Eluines - 옆에 사람 없었습니다. 영웅들은 딴데 나타난 군단장들 상대하러 갔으니까요. 그래도 만화는 다른 분께서 그려줬습니다!!
@좌절거북이 - 쓰고싶었지만 진행을 위해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