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67화 (67/208)

<--  -->  파픈스타side.

"대단, 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를 따라 검은 마법사에게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는 영웅들의 모습은 그저 병풍이고, 정말로 굉장한건 제일 먼저 검을 뽑아든 그였다.

항상 검은 마법사의 앞에 설때마다 무릎을 꿇었다. 배신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자위했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해도, 한 수가 있어도 이기는것만은 무리라는걸 아니까. 그런데…… 똑같이 알고 있을 그는 저렇게 싸우고 있다.

내가, 저기에 있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손톱이 살에 박힐만큼 손을 꽉 쥐고 있었다.

"…… 하아."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됬잖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소리를 통한 마법은 거의 닿지 않을 것이다. 작정하고 지르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러면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할테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줘야지.

현재 검은 마법사는, 관찰자인 내 시점에서 보자면 거의 데미지를 받지 않은 상태다. 검호나 영웅들이 약하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거의 모든 공격이 방어막에 막혀 본체엔 아예 닿지않고 있다. 한 점으로 화력을 집중하면 깨는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땅이 너무 불안정해.'

시작부터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흘러넘쳐 그 자체로 설치형 맵병기가 되버린 지형때문에 말뚝딜을 못하고있는 상태다. 거기다 용암은 유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무리 빙계 마법으로 굳히고 얼음을 만들어도 열기가 엄청나 녹는건 순식간이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순간적으로나마 용암을 통째로 굳히는것도 가능했겠지만 그게 아니니 무리.

'할 수 있는걸 하자.'

나는 최대한 섬세하게 기타줄을 튕기며 마력을 퍼뜨렸다.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오직 물 마법 뿐이지만, 그렇다고 물'만' 다룰 수 있는게 아니다. 정확히는 액체의 형태를 한 것 전반. 용암도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다.

'눈치 못채는 선에서 조작하는 수밖에!'

노골적으로 하면 들켜서 제어권을 바로 가져갈테니. 피해가 안가는 형태로 마력이 스며든 용암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트립퍼라도 용암이라는 무지막지한걸 이렇게 먼 곳에서 건드리는지라 흐름을 조작하기만 하는데 mp가 %단위로 퍽퍽 깎여나가서 포션을 입에 물고 기타줄을 튕겨야 했고, 그 모양새는 퍽 우스웠지만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어서 아예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잔뜩 꺼내 옆에 두었다.

그렇게 내가 조심조심 용암을 조작하는 결실이 서서히 맺히고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쉽게 검은 마법사에게 접근해갔고, 방어벽도 2배이상 많이 두들겨지고 있다.

'프로모션 영상에선 데몬한테 한 방에 깨지더니 더럽게 단단하네.'

시기상 세계수랑 싸운 이후라서 그때쯤엔 약화되어 있던건가? 그런 생각이 들때 은근슬쩍 용암을 움직여 방어벽의 표면에 튀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찬란한걸 넘어 가히 재앙적으로 밝은 빛더미가 굉음과 함께 검은 마법사에게 내려꽂혔다.

"꺄아……!"

나는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여야했다. 일반적인 천둥소리를 몇 배로 키운듯한 소리에 귀가 멍멍해져 순간 몸을 휘청였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재해나 다름없었을 정도로 밝았던 빛이 마력으로 강화한 눈의 망막 가득 들어와서 시야가 완전히 까매졌다.

'미친 이거 팀킬이잖아.'

아무리 강인한 트립퍼의 몸이라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빛과 소리로 공격하면 별 수 없다. km단위를 적용해야할만큼 멀리 떨어졌던 내가 - 시력 강화때문에 더 빛을 잘 본 탓이 있긴 하지만 - 이럴진데 저기있던 사람들은 어떨지 안봐도 훤하다. 황급히 기타에 손을 뻗어 기억하는 감각대로 다시 연주해 나 자신에게 힐링을 걸었다. 보통 시간을 되감아 상처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리지만 이런 경우엔 디버프 해제의 용도로 쓸 수도 있다.

곧바로 마력으로 눈을 강화해 다시 그곳을 보았다.

"위험해!"

저쪽도 다르지않은 상황인지 두 눈을 질끈 감고 휘청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하고는 달리 날아드는 사슬을 검을 휘둘러 끊어내는게 과연 검호,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왜 불길한 예감이 드는거지? 나한테 예지력은 없는데? 그건 그 애의 능력인데 왜…….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을게 분명한데, 사슬끝의 칼날에 그의 한쪽 소매를 찢으며 살을 베어버리는 소리가 너무도 선명히 귀에 박혀들었다. 붉은 옷이 더 붉게 물들어가는 광경이, 그가 한쪽 검을 놓쳐버리는게 보일무렵엔 이미 몸이 움직여지고 있었다.

늦으면 안돼.

나는 텔레포트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

검호side.

젠장, 미친! 프리드 이자식 왜 니가 팀킬을 하는거냐! 니가 영웅에서 아카이럼 포지션이었던 거냐고! 한 걸음만 더 가까웠으면 검은 마법사가 아니라 내가 번개 쳐맞고 죽을뻔했잖아!!

아 앞이 안보여. 번개가 떨어질때 소리도 너무 커서 오히려 잘 들리지 않았는데, 청각이 어떻게 되지 않았나 진짜로 걱정된다. 귓구멍에 슬쩍 손가락을 넣어보니 액체같은건 안묻어 나오는걸로 보아 기적적으로 고막은 무사한 듯 하다.

열기가 올라오긴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굳은 용암 발판위에서 나는 이상하게 휘청이는 몸을 겨우 가누었다. 안보이고 안들리고 걷기도 힘드니 진짜 최악이다. 검은 마법사의 말대로 밑에는 더 밑이 있구나.

[마스터! 옆에!]

어느쪽?!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아스카의 외침에 급히 검을 휘두르려했는데 방향을 몰라서 그냥 한바퀴 빙 돌았다. 카앙! 하는 금속음과 함께 사슬이 튕겨나간건지 잘려나간건지 하여튼 막아내는데엔 성공했다.

간신히 보이기 시작한 눈은 오래된 필터를 끼운것처럼 뿌옇기만 하고, 손으로 비벼봐도 별로 소용이 없는데 그래도 아스카가 힐을 퍼부어주고 있는지 녹빛이 모여드는게 보였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에 없어.]

사람의 것 같지않은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용암의 열기를 한순간에 식혀버릴만큼 차가운 냉기가 훅 밀려와 소름이 돋았다. 뿌연 시야로 어렴풋이 보이는 사슬을 막아내려고 검을 휘둘러 쳐내려고 했는데 늦어버렸다.

"……!"

쏘아지다시피 날아온 칼날이 옷을 찢고 팔을 길게 베어버렸다. 한순간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무 아파서 되려 비명이 나오지 않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때문에 손이 덜덜 떨려서 결국 검을 놓쳐버렸다.

[차라리 혼자인게 나아보이는군.]

검을 집어들려고 했는데 어차피 들어도 휘두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신음이 새어나오려는 입을 악물고, 물감이 번진것처럼 제대로 보이지않는 검은 마법사를 향해 뛰어갔다. 차라리 계속 잘 안보이는게 나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지.

"그랬으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어!"

나는 크게 다친 쪽의 팔을 들어 방어벽에 있는힘껏 주먹을 꽂았다.

나 전사직이야! 힘 세다고! 검 안들어도 데미지 나와!

쨍──!

"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방어벽에 금이 가더니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버렸다. 검은 마법사보다 내가 더 당황했다. 자, 잠깐만 너무 갑작스러운데?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스스로 나아갈줄도 모르는 이들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푸확, 하는 어쩐지 식상하게 느껴지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다리를 관통했다. 눈물나게 아파서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이어서 또다른 사슬이 반대쪽 다리를 휘감아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겨 쳐박았다. 빌어먹게도 적절하다. 멀쩡한쪽 팔로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아, 그냥 일어나기 싫어. 쉬고 싶다고. 몇 초가 몇 년같은 이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아픈 곳이 없는 이런 상태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코앞에 두고 싸워야 한다니 뭐냐고 이거.

"니가 왜, 가치를 평가해."

다리가 아프다. 움직일때마다 사슬이 철그럭거리며 살을 헤집어서 진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게 어떤건지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사슬에 묶이고 뚫려서 다리가 거의 움직여지지 않아 일어서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힐을 쓰면 진짜 고어물을 찍는것이므로 이지경까지 다쳤는데 아스카도 힐을 안쓰고 있다.

"걔들도, 너도, 나도…… 다른게 없는데."

용암때문인지, 아까 팔을 다칠때 튄 피때문인지, 그놈의 번개때문에 눈이 맛이 갔는지 계속 세상이 뻘개졌다가 말았다가 한다. 머리를 몇 번 팍팍 때리니까 좀 나은것 같기도 하다.

없는 힘까지 끌어모아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일어났다. 용암의 열기때문인지 너무 지쳐서인지 땀이 비오듯이 했다. 옷도 축축하다. 이어서 나는 하나 남은 검을 놓치지않게 꽉 쥐었다. 한쪽 팔이 다쳐서 양 손으로 잡는건데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능한한 세게 잡았다.

"모두 다 약하잖아."

내가 뭔 소리를 하는건지. 검은 마법사는 계속 봐도 두렵고, 또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되니까 여기에 있기로 했고, 결국 이렇게 됬다.

앞으록 갈 수 있도록 얼음이 깔렸다.

달려나갔다. 사슬을 끊어내고,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시야를 겨우 다잡아 그를 똑바로 보며 덜컥거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여태껏 휘두른 어둠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듯 보다 짙은 암흑이 나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들어왔다.

"검호씨!"

[마스터!]

벼락이 줄기줄기 내려꽂히며 어둠들이 태웠다. 이어서 빛이, 충격파가, 빛나는 화살이 독사떼처럼 날아드는 사슬을 부쉈다. 불기둥처럼 폭발하는 용암이 어디서 날아드는지 모르는 냉기에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결코 닿지않을만큼 멀어보였던 거리가 어느새 좁혀졌다. 그냥 다 아파서 고통이 느껴지지않는지 나는 피가 흐르는 다리로 뛰어올라─

어둠 속에 검을 박았다.

[니놈의 힘, 설마……!]

그대로 팔을 움직여 검을 쭉 내려그었다. 믿을수 없게도, 어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눈앞의 존재가 나와 같은 생명체라고 증명하듯이. 중2병한 글이나 만화에서 그토록 극찬한 피냄새는 그의 것이라 해도 역시나 기분나쁘고 역했다.

'나도…… 하면 되잖아.'

저 검은 마법사한테 한 방 먹일 수 있잖아 나도. 싸우는거, 완전히 의미없는게 아니었다고.

모든 힘을 다 써버린 몸은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밀려온 탈력감에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고장난 인형처럼, 불규칙적으로 단내나는 숨을 쉬는 것 밖에 못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어둠에 반응할 수 없었다.

검고, 기분나쁘고, 도저히 살아있는 이의 것이라 볼 수 없는 그의 손이 무엇보다 빠르게-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다리를 뗄 수 없었고.

손이 가슴에 파고들며 차가운 뭔가가 온몸에 퍼지는걸 생생히 느끼면서 반항조차 못하고 그것을 망연히 보고만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등을 뚫고 나왔을때, 싸우는내내 붉은색으로 변하던 시야가 완전히 검게 물들ㅇㅓ─

========== 작품 후기 ==========

하트 캐치★... 는 농담이고. 마지막 부분 오타 아닙니다. 저기서 의식이 완전히 끊겼거든요. 죽었다고요. 심장 뚫리면서 즉사.

챕터 아직 안끝났습니다.

@라그실 - 알려주세요. 오타는 바로 수정해야합니다.

@루서스 - 약간 비슷했어요.

@Sisre - 어, 음 죄송합니다.

@좌절거북이 - 애초에 빅토리아 아일랜드는 영웅들과 검은 마법사가 싸워서 대륙에서 떨어져나갔다고 스토리에서 언급됨.

@패러디좋아 - 사실 이미 떡밥은 있었습니다. 검호가 누군가를 돕는것, 싸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그러겠다고 스스로 선택한거였음.

@Ratios - 이런. 위키에 검색해서야 알았네요.

@넝기 - 더 굴리면 좀 불쌍하긴 한데 그래도 굴려야죠 하하.

@백서련 - 본문을 제대로 보셨으면 누군지 아시겠죠.

@살아가는기계 - 왜 여기까지 와서야 멋있게 해줬을까요?

@Blake117 - (대답이 없다. 도망친듯 하다.)

@적현월 - 그놈의 번개때문에 기절상태 뜰뻔함.

@핑구친구 - 그런놈들은 한 걸음만 잘못가면 망하는 부류.

@아토상자 - 플래그 회수 완료.

@노란우산s - 초월자가 되면서 안거죠.

@karuma - 음? 세계 구하고 배신은 누구?

@그냥마법사 - 검호 미안.

@소라루 - 아뇨. 검호의 정신세계는 큰 변화 없습니다. 저때 필요한건 절망을 보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용기였지, 정의로움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원래부터 있었으니까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하지 말아야하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wltns920 - 제가 보여주고자 했던건 소시민이라도 조금만 용기를 내면 영웅처럼 될 수 있다~ 였습니다. 좀 안된 것 같네요...

@브룬 - 아하하하하.

@가면광대 - 예정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토토토미 - 그리고 그 결과는... 어, 미안 검호.

@Eluines - 어떡하긴 어떡해요? 죽는거죠.

@가르시디안 - 그런거 없었다고합니다.

@zeil - 음? 아뇨. 그건 아닙니다. 한 명이라도 깨어났으니 오랜 시간이(최소 네 자리 수에서 다섯 자리 수)흐르면 힘을 되찾고 난 뒤에 다른 오버시어들을 풀어줄테니까요. 문제는 빛의 오버시어는 그걸 손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거란거. 최대한 빨리 봉인에서 벗어나 제 손으로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심산이거든요.

@칼크래프트 - 우웅? 주인공 보정? 그게 모에여어?

@ReFrante - 소시민의 사고방식이라도 조금만 바꾸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거.

@허공말뚝 - 네 영압이 느껴지지 않네요.

@키하라스티카 - 쓰는데 몇 시간이 걸립니다 의외로. 손이 느린것도 있지만 머리속의 것을 끄집어낸다는게 꽤 어렵거든요...

@여행자구름 - 아뇨. 통신 마법으로 연결되었던건 프리드뿐이라서.

@책벌레씨 -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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