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 이후의 이야기 --> side out.
검은 마법사와의 싸움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와 직접적으로 싸운 영웅들의 경우, 검호의 죽음에 한참동안 시름에 잠겨있었지만 그것을 겨우 받아들이고 힘을 기르는데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군단장들을 상대할 수 있을만큼 강했던 그들은 이 일을 계기로 자기수련에 매진했다.
특히 프리드의 경우 그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질 정도였다. 봉인석을 연구해 시간 마법을 하나 둘 개발하더니 아예 직접 시간의 신전에 찾아가 륀느 여신을 만나고 온 이후엔 시간 마법이란 분야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고작 몇 년 만에.
반면 검은 마법사측은 오히려 공세가 약해졌다. 검호의 일격에 제대로 맞으며 생긴 상처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속도로 악화되었고, 초월자인 검은 마법사라도 상당량의 힘을 쏟아부어서야 그것을 억제하는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검호가 쓴 시간의 힘 자체가 초월자의 것이 아닌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오버시어의 것이라 초월자인 그라도 억제가 고작이었다.
이때문에 검은 마법사의 시간의 신전 점령 계획이 앞당겨졌고, 프리드가 륀느를 만나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않아 시간의 신전은 그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웅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검은 마법사가 륀느에게서 힘을 빼앗고도 상처의 악화를 정지시키는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그냥 멈춘게 아니라 최소 본신의 힘 60~70%를 거기에 완전히 쏟아야 멈추는 거라 전체적인 전력이 뚝 떨어진건 자명한 바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군단장들은 도시, 나라 점령에서 파픈스타 수색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건 오직 시간 회귀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녀뿐이었으니까. 검은 마법사, 근본적으로는 빛의 오버시어에게서 손을 놓은 그녀는 잔재만 남은 세계수의 힘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도망치고, 또 도망치며 생명의 오버시어를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메이플 월드를 샅샅히 뒤지고 다녔다.
"아…… 죽겠, 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막 사랑니를 뺀것처럼 입 부근의 감각이 맛이 가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디딘 땅이 누구의 발걸음도 허용하지 않았던 혹한의 대지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한계에 다다른 힘때문인지 모른다.
[여기까지 왔는데 없으면 어쩔거야.]
"그럼, 다, 망하는거지 뭐……."
징하게도 오래 버텼다. 솔직히 이 찌끄레기에 가까운 힘으로 몇 년이나 살 줄은 몰랐다. 그녀는 초월자들의 힘에 경의를 표했다.
힘이 서서히 떨어질때마다 안그래도 빛의 오버시어의 힘을 다 대체하지 못해 둔해진 감각이 더 둔해져갔고, 이내 몇 개가 사라지는걸 생생히 느끼면서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는 결국 여기까지 왔다.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메이플 월드가 하나의 행성인 이상 반드시 존재하는 장소─ 북극에.
아스카가 보온 결계를 쳐서 동상을 막은 - 어차피 감각이 맛이 가서 추위도 거의 못 느끼지만 -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디며 기타를 연주하며 나아갔다. 소리를 통해 광역 탐지 마법을 시전해 북극 전역을 벌집마냥 들쑤셨고, 마침내 찾아냈다.
「헤에? 넌 누구야?」
갖가지 해양 생물을 뒤섞은듯한 형태의.
「좀 많이 상태가 안좋네 너.」
고개를 들어도 그 머리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정도로 터무니없는 크기때문에 지형지물로 착각해버린 생명체를.
"흠, 자세히보니까 진짜 어떻게 여태껏 살아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네."
그리고 눈 깜빡이는 잠깐 사이에 괴생명체가 비취색, 흰색, 검은색, 바다색 등의 온갖 색들로 어우러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아이로 변하는것까지 본 순간 그녀와 아스카는 확신했다.
저 존재가 생명의 오버시어임이 확실하다고.
***
???side.
"…… 컥!"
무언가에 막힌듯한 숨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눈을 뜬 순간 보인것이 낯선 천장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전에 나는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하다가 사레까지 들려 정말 숨넘어가기 전까지 기침을 한 나는 속을 진정시키며 반사적으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헐렁하고 부드러운 민소매 상의(런닝), 고무줄이 들어간 편한 반바지. 왜 이걸 입고 있는거지? 란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부분에 손을 더듬었다.
"멀쩡해……?"
분명히 ─의 손에 뚫렸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만. 누구의 손에 뚫렸다는거지?'
그리고 여긴 어디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화책과 소설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책꽂이, 참고서 몇 권이 올려진 책상, 문 근처에 있는 긴 옷걸이 봉에는 막 벗어서 대충 건듯한 청바지와 셔츠들, 모자가 있었다.
너무도 낯선-동시에 어째선지 익숙한 방을 벙찐 얼굴로 한참 둘러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속에서 흘러넘쳤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언제까지 쳐잘꺼냐?!"
그렇게 들어온 이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제 내 컴할때 자리 뺏어놓고 롤 갈기더니 기어코 새벽에 잔거냐 어? 오늘부터 개학이라고 개학! 쳐 일나라고 새꺄!"
항상 짜증스럽게 여겨지던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반가워서.
"니 교복은 밖에 건조대에 걸렸으니까 알아서 찾아 입어. 어제 비와서 제대로 안말랐으니까 니가 드라이기로 말리든 그냥 입고가든 하고. 밥은 나중에 니돈으로 매점에서 사먹든가 해. 돈 안빌려줄거야."
"…… 아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비틀,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휘청휘청 그 애한테 다가갔다.
"인간적으로 머리는 좀 감고 가라. 완전 떡졌으니까. 그렇다고 내 샴푸는 쓰지말…… 뭐하냐 너?"
나는 그 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야 징그러! 놔! 돈 안빌려줄거라고! 캐쉬 지른다고 돈 다쓴건 니잖아!"
"후으으, 흐윽……."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욕설이 섞인 말들이 너무도 반가워 계속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을정도였다.
"아 놓으라고!! 나 이제 버스타러 가야한단 말이야!! 지각해서 벌점 먹으면 책임질거냐 어?!"
기나긴 악몽속에서 간신히 헤어나온 것처럼, 무슨 꿈을 꾸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음에도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벅차올랐다.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 작품 후기 ==========
하하하하.
아, 외전이긴하지만 스토리상 엄연히 본편입니다. 짧아서 외전으로 분리해둔거.
리코멘은 본 챕터에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