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 그녀의 무대 --> (후기가 깁니다)
파픈스타side.
나는 내 양 팔을 감쌌다. 피부의 부드러움이, 두 손의 온기가, 숨을 쉴때마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날 뭘로 보는거야. 이 모양 이 꼴이 됬지만 영혼과 육체의 부실한 연결을 강화하는것 정도는 쉽다고."
어린 아이-생명의 오버시어는 당연하다는듯이 말했다. 상당히 시건방지게 보였지만 그래도 그 능력만큼은 가히 신적이었다. 이마를 손가락을 툭 찌른 것만으로 이 몸과 영혼의 연결이 견고해져 다시 예전처럼 생생히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팔을 내리며 물었다.
"그럼……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어?"
"가능은 한데 그건 왜 묻는─ 잠깐, 설마 누굴 살려달라고? 그럼 거절이야."
[왜?! 가능하다며!]
"할 수 있다고 꼭 해야하는 이유가 없잖아. 거기다 이미 죽은 놈을 살린다는건 단순한 기적이 아니야. 엄밀히 따지면, 한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살리는거지."
"그게 무슨 뜻이야?"
쉽게 힘을 빌려주지 않을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식으로 나오면 좀 곤란하다. 보이는 것과 같은 어린아이의 치기가 아닌 정당한 논리때문에 안된다고 하는거면…… 아이는 반쯤 드러누운 상태에서 발을 까딱이며 말했다.
"윤회라는 말 알고 있지?"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 용어잖아."
"너희가 보기엔 그런거고, 우리 입장에선 그냥 영혼을 재활용 하는거지. 한 번 쓰고 버리면 다시 또 만들어야 하니까. 얼마나 귀찮아?"
환생이라는 시스템의 존재여부는 둘째치고 그런 이유로 윤회가 이루어진다면 정말 더럽게 현실적인 이유라고밖에 못 보겠다.
"이 환생이라는건 죽음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 순간 거기에 쌓여있던 기억이 모두 흐름에 씻겨나가고, 다른 몸에 들어가는거지. 니가 살려달라는 사람은 이미 다른 존재로 환생했을거야. 만약 내가 그를 부활시키면, 지금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 그는 죽어."
상관없다, 고 말하려 했지만 아이에게 내 대답이 어떻든 그를 살려주지 않을것이다. 처음부터 들어줄 생각이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말로 아이를 구슬려야 한다.
"그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데도?"
"…… 잠깐만, 그거 자세히 설명해봐."
좋아 낚였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 들고다니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안전하니까 - 얼음에 가둔 그의 시체를 꺼냈다. 아이의 붉은 눈이 찌푸려졌다.
"나와 그는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불려왔고, 시간의 오버시어가 만들어준 몸에 들어왔어. 그러다 그는 검은 마법사와 싸우다 죽었고. 이런 경우에도 환생이 이루어져?"
"그 여자 뭔 삽질을 한거야 대체."
내 말이.
"아아, 이거 골때리는 특이 케이스잖아."
아이의 손이 그를 감싼 얼음을 아무렇지않게 쓱 통과하더니 마치 물장난을 치듯 그의 시체를 헤집었다. 아이의 손이 지나갈때마다 그의 시체가 물 위의 잉크처럼 번지다가 다시 모여들어 - 새삼 만들어진 몸이라는걸 알았다 - 아스카는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기세였다. 아 제발.
"하필 다른 차원에 가있냐. 귀찮게."
"뭐?"
"특이 케이스라 좀 뒷수습 할까 했는데 그냥 안할래."
[대체 왜!!]
"너 좀 시끄럽다."
딱! 아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스카의 거대한 몸이 한순간에 작게 줄어들었다. 내 품에 들어올만큼 작달만한 사이즈로. 나는 곧바로 아스카를 붙잡아 꼭 끌어안아 입을 막았다. 더이상 시끄럽게 하면 얘한테 뭔 짓을 더 할지 모른다.
"…… 왜 안하겠다는 거야."
"아까 들었잖아. 이 몸에 들어가 있었던 영혼은 지금 여기-메이플 월드가 아니라 다른 차원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 있어. 그래도 여기 있으면 불러오는데 별 수고를 안해도 되는데 이래서야 가져오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든다고.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그런데 힘을 막 쓸 수 없는 상태라서 말이지."
"그가 널 봉인에서 풀어줬어! 그정도는 해줘도 되잖아!"
"난 해달라고 한 적 없어. 물론 봉인에서 풀어준건 정말 고맙지만, 답례의 형태가 꼭 부활일 필요가 있냐? 어차피 살아나봤자 다시 그 빛의 초월자놈이랑 싸우는 것 밖에 없잖아. 내 말 틀려?"
뭔 오버시어가 이렇게 입을 잘 터는거야. 빛의 오버시어나 시간의 오버시어는 어디 모자란 것처럼 굴더니.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있을 그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주는게 더 좋은 답례가 아닐까 하는데. 나중에 힘을 다 찾고나면 그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으니까."
"그게, 뭐야……."
느닷없이 다른 세상으로 끌려와, 생고생해가면서 구르고 - 사실 검호의 힘을 생각하면 별로 고생 안했을 것 같지만 마지막을 생각하면 -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돕다가 죽고. 원래의 세계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기억도 다 잃어버린채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니.
너무 비참하잖아.
"적어도 원래 세계에 보내주기라도 하란 말이야! 너희를 위해 그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그것조차 안해주냐고!"
"그러니까 난 지금 그런것조차 못할만큼 힘이 떨어져 있다고. 차원내에 영향이 안가는 선에서 구멍 하나 뚫는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아? 니가 대신 하기라도 할거야?"
"그건……!"
아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날 보았다.
"까놓고 말해서 이놈을 살리는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그럼 왜!"
"말 끊지마. 넌 부활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내 입장에선 영혼을 가져와서 몸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근데 이걸 과정으로 하면 '특정 영혼이 있는 차원의 벽에 구멍을 뚫는다→ 목표로 하는 영혼을 가져온다→ 손상된 몸을 고친다음 영혼을 붙인다'야. 1번은 아슬아슬하게 되는데 2번이 안돼."
길게 땋아진 푸른 머리카락을 휙 넘긴 아이는 말을 이었다.
"1번에서 힘을 상당량 소모할거라서 2번을 할때 제대로 안될게 뻔하단 말이야. 다른 세계에서 온 놈이니 저항력도 있을걸 생각하면 그냥 무리지."
"저항력?"
"설명하면 기니까 간단히 말하면, 영혼을 강제로 끌고가면 반항을 해서 힘이 더 소모된다는거야. 예전이었으면 그런 저항따위 의미없는데 지금은 그런거에 손을 다칠 수 있으니. 하아, 진짜 비참하네 나."
뒤에 붙은 한탄은 제외하고, 나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 저항이라는게 없어지는데?"
"너희 기준으로 생각해봐. 누가 나를 갑자기 막 끌고가는데 저항하는게 일반적인 상황. 그럼 그걸 안하는 상황은?"
계속 드는 생각인데 이 생명의 오버시어라는 놈, 다른 두 놈이랑 완전 다르다.
"…… 어디로 가는지 알고 그것에 동의하는거?"
"그거야. 근데 그게 될리가 있냐. 그놈 죽으면서 기억도 다 잃어버렸을텐데, 제정신 박힌 놈이라면 멀쩡히 잘 살다가 갑자기 딴 세상으로 끌고 가겠다는거에 동의하겠냐고."
"내가 할게."
"하아─?"
내 말에 아이는 한쪽 눈만 크게 떴다.
"설득하면 되잖아."
"말 참 쉽게하네."
"학교에서 국어성적은 좋았─ 악!"
[언제까지 막고 있을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품안으로 안고있던 아스카를 놓았다. 작아져도 여전히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손은 붉은 잇자국이 선명했다.
"오~케이. 그럼 다 결정됬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목에 걸려있던 기타 피크를 꼭 잡았다가 놓았다.
"난 차원벽에 구멍을 뚫고, 넌 그놈을 설득해서 여기에 오는것에 대한 동의를 얻는다. 거기까지 완료되면 그걸 통해서 여기로 돌아온다. 됬지?"
"좋아."
허공에 푸른 빛이 모여들며 반투명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쉽지 않을거다."
"여기와서 쉬운건 하나도 없었어."
"…… 뭐, 그렇겠지."
푸른 포탈에 몸이 거의 다 통과할때, 아이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후회없는 선택을 하는게 좋을거다."
그렇게 나는 이세계 트립 2회차를 하게 되었다.
***
너무도 오랜만에 코끝에 닿은 메케케한 냄새.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의 숲.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색색의 눈부신 네온사인과 멋진 야경을 연출해내는데 크게 일조하는 건물들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밝은 빛들.
그리고 너무도 익숙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물결까지.
"뭐야, 이거."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렸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꼴이 되었지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우린…… 죽어야 돌아오는 거였어?"
등뒤에서 쏟아지는 빛에 고개를 들어 풀린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너무도 익숙한 지하철 노선의 색과 이름에 더더욱 넋이 나가려는데 간신히 눈에 들어온 단어가 화살처럼 눈에 박혀왔다.
사립 영재학교역 2번 출구.
"응?"
서울에 이런 역이 있었나?
옷을 털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일어난 나는 다시 주위를 잘 둘러보았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정문이 닫힌 학교가 보여 가까이 갔다. 어디 라노벨,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아가씨, 도련님들이 다닐것처럼 생겨먹은 학교였는데, 잘 보니 근처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머리색과 눈색이 참 컬러풀하다. 진정한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진건가.
"이 뭐 병……."
너무 어이없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교문의 철창을 꾸지직 우그러뜨렸다.
"─한국에 이딴 학교가 있을리가 없잖아!!"
이때 나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나서 그 고함에 마력을 실어버렸고, 일대의 사람들을 모조리 스턴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진짜 한국이었으면 파픈쨩 멘붕했겠지. 사실 초안은 그랬는데.
생명의 오버시어는 오버시어중에서 제일 감정이 풍부해서 공감이라는게 가능한 놈입니다. 그래서 대화가 잘 되는거.
외전 리코멘은#
@Eluines - 그냥 생각나서 바로 적었음.
@패러디좋아 - 영웅들 폭렙했음.
@라그실 - 부나방이라고 적은거 맞습니다.
@Dt월 - 모든 트립퍼는 사망 플래그가 꽂혀 있습니다.
@흑접아 - 어느쪽일까요 하하.
@모텃으 - 다른 메이플 패러디 소설에서 프리드가 하도 능력있어서 그 반감으로 쓴... 은 농담이고, 저 시점의 프리드의 미성숙과 어린 모습을 보여준겁니다.
@Pote - 그리고 파픈스타는 고생하러 감.
@Sisre - 힘이 쪼달려서 바로 살리는건 무리.
@ReFrante - 안해줄것 같이 굴어도 부탁한거 다 들어줬다는게 함정.
@책벌레씨 - 그래서 외전편 올렸습니다.
@노란우산s - 살려달라고 한 대상이 자기 봉인을 풀어준 놈이라 해줄까 했는데 힘이 쪼달려서 때려치우... 려다 파픈스타가 나서서 선행조건 검.
@우후지로 - 예전에 어떤분 리코멘에 답한적 있지만, 트립퍼중에서 제일 약한 파픈스타도 육탄전으로 아란보다 쎕니다.
@레시코 - 바로 못 살리고 좀 고생할거임.
@좌절거북이 - 딱히 연참은 아닌데... 시간 텀이 꽤 있었으니까요.
@토토토미 - 트립퍼는 세계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karuma - 간결한 내용 요약.
@여행자구름 - 그리고 그런거 업ㅅ음
@넝기 - 어떨까요... 후후후.
@루서스 - 두고볼 일이요.
@Blake117 - 파픈스타의 히로인력이 올라간다!
@적현월 - 시간이 멈춰 내구도가 무한인 기타로 맞았으니...
@chokopoko - 아스카는 생명의 오버시어가 인형 사이즈로 만들어 부둥부둥 당하는중.
@Ratios - 이부분은 제 창작이 아니라 본 스토리에서 언급된거라서.
@arays - 굳이 시간의 힘이 아니라도 초월자라서 제 힘으로 억누를 순 있는데... 억누르는게 고작.
@로레리루라 - 넥슨이 잔혹해진다면 어디까지 잔혹해지는지 보여주죠. 특히 사자왕.
@마서 - 즉사했으니 고통은 없었을겁니다. 아마도.
@뭉글이 - 제가 죽으면 다음편이 없습니다.
@아토상자 - 세이브 완료! 그리고 고생하러 직접 발로 뜀.
@화뉴 - 맙소사 꿈으로 이걸 보시다니...
@KnightDream - 검호는 다음 화에 나올지도?
@칼크래프트 - 죽었는데 무슨 감각이 느껴지겠나요.
#blue clown J - 그정도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낭류 - 남자맞습니다. 원래 일러스트는 눈매가 둥글둥글해서 좀 여자같은데 팬아트 주신분이 날카롭게 해주셔서(개인적으로 이쪽이 본편의 검호 이미지와 더 맞습니다) 다소 중성적으로 보이는거.
#지나가던 일반인 - 막 썼는데 생각해보니 진짜 소름이네요.
#넝기 - 대정답!!
#Eluines - 하지만 이제부터 연재 텀이 좀 길어질지도... 개강이 다가와서.
#적현월 - 정답은 프렌즈 스토리였습니다!
#루서스 - 기억이 안난다는 점은 맞음.
#하늘연꽃 - 생명의 오버시어 말이 아주 틀린건 아니었습니다.
#여행자구름 - 과연 어떤식으로 설득될까요~?
#karuma - 조건자체가 '동의'가 됬으므로 이번엔 강제가 아님.
#세인트다크니스 - 접속 불가상태.
#책벌레씨 - 초안에서는 진짜 현실 세계로 귀환이었는데...
#패러디좋아 - 쓸데없이 비슷해서 헷갈림.
#좌절거북이 - 북극이라고 말했을때 가슴 진짜 쫄렸음. 나름 반전이었는데.
#소라루 - 검호 입장에서는 해피하지만.
#칼크래프트 - 진짜 현실이었으면 돌아갈 이유가 거의 없음.
#클레리온 -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고 함.
#Sisre - 초안은 진짜 현실세계로 귀환하는거였는데 시기적절하게 키네시스가 나와서 변경되었다는 뒷사정이 있음.
#마서 - 그거였으면 파픈스타는 레알 멘붕했음.
#Blake117 - 그보다 어떻게 기억을 되찾게 하는지가 문제.
#ReFrante - 외전이라 쓰고 본편이라 읽읍시다.
#Buche - To be continue 아닌가요.
#허공말뚝 - 그건 아닐듯.
#dumy - 본편 스토리입니다. 분량이 하도 짧아서 외전으로 분리해둔거.
#Ratios - 그게 뭔가요?
#아토상자 - 그건 아니지만 과연 돌아가는게 좋은걸까요?
#붉은 큰 곰 - 그럴리가요. 만약 그랬으면 시간의 오버시어는 부관참시 당해도 할 말 없어요.
#흑접아 - 그랬으면 진짜 트립퍼들 반란 일으켜도 이상할게 없음.